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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선교원리를 회복하라

성경이 말하는 CAS
D·I·G·I·T·A·L JOURNAL  2018. 7

이 글은 김병선 선교사님이 그동안 진행해 오신 “선교의 성경적 관점” 강의를 주제별로 발췌하여 설교문으로 재정리한 연재글입니다. 이는 지역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성경적인 선교 설교로 돕기 위해 마련한 것이며, 설교문 작성을 위해 구성과 표현상의 각색은 있지만 최대한 원 강의의 관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성구 인용은 개역개정판을 사용하였습니다.

본문: 마가복음 1장 35~39절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갈리리 호수

예수님은 공생애의 시작과 함께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공생애 기간 동안 부르신 제자들을 훈련하십니다. 그 훈련의 핵심은 결국 세계 복음화 완성을 위한 전도와 선교 훈련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필연적으로 타문화권, 타종족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을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직접 선교의 모본을 보여주시는 방식으로 제자들을 훈련하셨는데,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선교의 지향점을 알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전체를 염두에 두고 사역하셨습니다.
복음서의 기사들은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제자들을 ‘온’ 갈릴리, ‘모든’ 도시와 마을,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게 하시면서 처음부터 전체에 관심을 갖게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 23-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 후 처음 행하신 대중 전도사역에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셨고, 또 마태복음 9:35에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누가복음 8장 1절에도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응이 좋은 어느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사역한 것이 아니라, ‘온’, ‘모든’, ‘각’ 지역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점은 잘 되냐 안 되냐가 아니라,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제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또 특히 앞서 누가복음 8장 1절에서 각 도시(성)와 마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저 되는 대로 모든 곳을 다 다니신 것이 아니라 거점이 되는 도시(성)을 통해 복음이 그 전체 마을들까지 확산되는 전체에 대한 전략적인 관점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3년의 짧은 시간과 이스라엘 지역에 국한 된 사역이었지만 당시 국한된 지역에만 복음을 전할 목적이 아니라, 복음사역과 제자훈련을 통해 이 원리를 가르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대에서 이 사역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하신 제자들을 통해 연쇄적으로 계속해서 모든 종족들이 복음을 듣고 또 전하는 큰 비전을 바라보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의 전체 시간과 공간에 관한 관점이자 전략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직접 전체 지역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시되, 그와 함께 한 제자들과 또 오고 오는 장래의 제자들이 동일한 전체의 비전을 품고 나아갈 수 있도록 훈련하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우선순위를 두고 사역하셨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마가복음 1장 3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새벽에 따로 다른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는데, 전날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놀란 많은 사람들이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8절에서 제자들에게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라고 하시면서 이미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시고,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 가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교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의 또 하나의 주된 관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체의 관점을 가지되 그 가운데에서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우선순위(priority)를 두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피곤해서 자고 있는 그 새벽 미명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신 예수님은 성부, 성령 하나님과 무슨 대화를 나누셨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이후 벌어지는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은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전날 예수님의 능력을 본 사람들이 자기 식구 중에 아픈 사람들을 데리고 몰려와 웅성웅성하고 있습니다. 그제야 그 소리에 깨어난 제자들은 다른 데 계신 예수님을 찾아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 왔으니 병 고쳐주고 귀신 쫓아내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자고 말씀드립니다. 어쩌면 제자들로서는 마땅히 그럴 수 있는 요청을 한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38절 말씀은 ‘성부 하나님이 다른 마을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기 때문에 어제 이미 복음을 전한 이 사람들에게 나는 시간을 더 쓸 수 없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예수님은 몰려온 사람들을 그대로 두고 다른 마을로 가 버리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사역자의 입장에서 어찌 보면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왜 그러시는지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설마 이미 복음 들은 그들은 사랑하시지 않아서, 중요하지 않아서 그러셨을까요? 이미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전혀 그것은 맞지 않는 해석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물론 이 상황이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는 사역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또한 예수님께서 큰 비전을 가지고 제자들을 훈련하시는 훈련장이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뜻밖의 상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인가 확실하게 각인시켜 가르치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선교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동일하게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 베풀기를 원하셨을 그 사람들을 뒤로 하고, 그곳을 떠나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다른 동네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복음을 듣게 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왜 중요합니까? 예수님의 기도로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회의에서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지요. 그 말은 선교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우선순위, 그것이 바로 철저히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우선순위(priority)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예수님의 선교 원리에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병 고침을 받고자 몰려오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예수님은 단지 당장 눈앞에 있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온 백성을 구원하실 영적 전쟁의 궁극적 승리를 위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도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 우선순위가 있는 것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And this gospel of the kingdom will be preached in the whole world as a testimony to all nations, and then the end will come.

3. 예수님은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가지고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기회 되는대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아닌, 전체의 전략적 관점에서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함을 가르치셨을까요? 그것은 단지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닌 세계복음화의 비전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4절에서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 끝은 예수님의 재림과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입니다. 그런데 그것과 맞닿아 있는 것이 바로 모든 민족(종족, 족속)에게 천국 복음이 증거되는 세계 복음화라는 것입니다. 온 세계, 온 민족이 복음화되어야 끝이, 주님 다시 오셔서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는 그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외치는 세계 복음화의 비전입니다. 

그러니 그 온 세계, 온 민족, 바로 그 전체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온 세계, 온 민족들 가운데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찾아가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교전략이란 것이 다른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체 가운데서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을 신속히 전할 수 있을지를 찾는 것이 선교전략일 것입니다. 목봉(木棒)을 나를 때 사람들이 많이 있는 쪽에 가는 것은 목봉이 기울어져 도움이 안 되고,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 가서 들어야 목봉을 쉽게 나를 수 있습니다. 또 겨울이 되어 잔디를 태울 때 다 태우려면 아직 불이 안 붙은 곳에 가서 불을 붙여야 전체적으로 빠르게 다 태울 수 있는 법인데, 불이 잘 붙는다고 한 곳에만 집중하여 더 잘 타도록 만드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전쟁에서도 아군이 전면전에 승리하려면 이기고 있는 전선보다는 지고 있거나, 전력이 대등하여 소강상태에 있는 전선에 병력과 장비를 투입해야 전쟁 전체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전체의 관점을 가지고,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집중하셨던 것은 바로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전 세계, 모든 족속을 복음화하시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곳에서 집중적으로 사역하셨을 것이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선교 전략상 어느 한 선교회 단독으로 선교하는 것이라면 조율하는 것이 그래도 좀 쉬울텐데, 단체마다 나름대로 생각이 달라 선교사들이 한곳에 너무 몰려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말랑이라는 도시만 해도 인도네시아에 있는 전체 선교사의 1/10이 몰려있습니다. 다 이유가 있겠지만, 이래서는 안됩니다. 아직 선교사가 없는 곳이 어디인지 찾아 그곳에 더 많은 선교사를 배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선교의 주인되신 예수님의 목표가 세계복음화, 모든 족속 복음화의 완성인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전방개척12권역 +α, 남은과업 완수

바둑에서 이기려면 처음부터 바둑판 전체를 고려한 ‘포석’을 잘 해야 합니다. 바둑의 승리를 위해 선점해야 할 전략적 거점을 파악해 그곳을 선점하는 것입니다. 선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와 지역 전체를 보고 복음을 아직 듣지 못한 지역에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기 위해 전략적인 거점이 어디인지 파악하여 그곳에 선교적 포석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우선적으로 선교사와 자원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선교의 주인되신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신 대로 오늘날 그 길을 따라 가는 우리도 그 단순한 원리에 다시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속한 곳이 교회라면 교회에서, 선교단체라면 선교단체에서 지금 복음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지역이 어디인지, 복음을 듣지 못한 종족이 누구인지 찾아 그들에게 우선순위를 두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이루는 첩경이 될 줄 믿습니다. 

글 | 김병선(現 인도네시아 선교사)
편집 | 강호석(SIReNer)

디지털 저널
C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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