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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부의 상업도시, 우돈타니

도시와 사람들
D·I·G·I·T·A·L JOURNAL  2018. 7

우돈타니(Udon Thani)는 “북쪽의 도시”라는 뜻으로, “우돈(Udon)”은 산스크리트어의 “utara”에서 파생 된 것으로 북쪽 방향을, “타니(Thani)”는 “도시”를 의미한다. 즉 우돈타니(Udon Thani)가 방콕의 북동쪽인 것을 말한다. 짧게 “우돈”이라 불리기도 한다.

우정의 길
또다시 “미트라팝 도로(Thanon Mittraphap)”다.

한 낮 태양이 내리쬐는 정오에 우리 일행은 우돈타니(Udon Thani)의 “미트라팝” 도로 확장 공사장 안을 한참 헤매고 나서야 도로 건너편으로 건너는데 성공했다. 미트라팝 도로는 이산(Isan)의 주요 도시를 거쳐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과 인접한 국경도시 농카이(Nong Khai)까지, 그리고 또 다시 태국-라오스 사이의 “우정의 다리”로 연결되는 중요도로다. 

“우정의 길”이라는 의미를 가진 미트라팝 도로(Thanon Mittraphap)는 미국의 재정 지원을 받아 세워진 태국 최초의 고속도로이다. 이러한 미국과의 “우정”은 베트남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 전쟁 시에는 우돈타니 왕립 공군기지(Udorn Royal Thai Air Force Base)가 미 공군의 최전선 기지로 쓰였고, 미국 중앙정보부의 경찰항공정찰대가 라오스 영토내의 호찌민 통로를 공격하는 데에 이 공군기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태국과 라오스에서 CIA의 반공산주의 운동을 위한 가장 큰 기지였다. 

한참 공사중인 2번 국도 미트라팝(Mittraphap)도로

당시 미국 군인들의 휴양지 역할을 한 우돈 시내에는 바(bar), 커피숍 및 호텔들을 운영해 돈을 번 현지인들이 상당했고, 그들 중 영어가 가능한 이들은 세계 시장에도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공군기지는 동북부의 상업 중심 도시로 발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호텔 주변으로 형성된 유흥시설과 상점들이 그 예로, 외국 문화의 유입이 자유로운 우돈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현재는 퇴역군인들이 노후를 보내기 위해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 태국 내 외국인과 결혼한 태국 여성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 또한 우돈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나이가 지긋한 외국인 커플들의 모습은 우돈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멜 깁슨(Mel Gibson) 주연의 영화 “에어 아메리카(Air America)”는 당시 공군기지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와 함께 재미도 선사해 준다. 또한 우돈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이주해온 난민들이 다수 거주하면서 현재 태국 전역에서 가장 큰 베트남 공동체를 가진 곳이 되었다. 

우돈의 중국인 공동체
공군 기지와 함께 중국인들의 시장형성은 우돈을 상업도시로 발달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라마 3세 통치 동안(1824~1851) 태국에는 수많은 중국인이 이주해서 정착했다. 중국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이주해 온 이들은 그들 특유의 부지런함과 끈질김, 무역에 상당히 익숙한 장점을 살려 사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우돈에 정착하기 전부터 방콕과 태국의 여러 도시로 상품들을 실어나르는 사업을 한 첫 번째 사람들로, 우돈에 정착한 후에는 “올드마켓(Ta-lad Kao)”이라 이름붙인 작은 식료품가게를 오픈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도시의 발전에 따른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에 따라 작은 식품점에서부터 우돈타니 첫번째 금거래 상점, 최초의 약국, 타이 향신료 가게, 최초의 사진관, 첫번째 주유소를 세웠다. 특히 중국 상인들은 우돈타니 주의 주요 수입원인 사탕수수로부터 추출한 시럽을 팔기 시작했는데 후에 설탕공장 사업으로 확장되어 우돈타니 최초의 설탕공장을 세웠다. 이들이 우돈 최초의 중국인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고 부와 번영을 이루었다. 초기 중국인 공동체의 흔적은 올드마켓 안의 100년 넘은 세월동안 보존된 건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챠오푸야(Chao Pu-Ya) 사당(상)과 타이-중국인 문화센터(하), 恭喜发财(gōngxǐfācái, 돈 많이 버세요.)

중국인들의 이주는 꾸준히 이어져 1910년에는 태국인구의 10%에 달할 정도로 많은 수가 이주해 왔다. 이후 태국과 중국간의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수립되면서 태국 시민권을 가진 이들이 늘어났고 태국인 다음으로 큰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이들 공동체는 공동기금을 마련해 농부아(Nong Bua)공원 근처에 조상을 모시는 사당(Chao Pu-Ya Shrine)을 건립하고, 사당 부지 안에 타이-중국인 문화센터(2009년)를 섭립했다. 이 센터는 박물관, 명예의 전당, 교육센터, 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신들의 문화 예술과 전통을 유지시켜 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이미 오랜 세월동안 태국화가 되었지만,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유교 숭배와 조상을 섬기는 예절을 철저히 따르고 있는 모양새다.

라오스 물품구입의 통로가 되는 우돈타니의 마켓

이산의 주요 상업 중심지
우돈은 라오스를 이웃 국가와 연결해주는 중요한 거점도시로, 라오스가 우돈에 미치는 경제적인 영향력 또한 상당한다. 우돈의 백화점이나 병원을 이용하는 라오인들이 상당하고, 실제로도 우돈의 대형 백화점 센트럴 프라자는 라오스 상류층들의 결혼식 장소나 중요 이벤트 장소로 자주 사용고 있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80km 거리의 우돈은 560km 떨어진 태국의 수도 방콕보다도 거리상으로 훨씬 가까워 라오스 물품구입의 통로가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대형 마트에서 물품을 구입하는 라오스 사람들을 발견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어느 일간지에는 은퇴 후에 가장 거주하고 싶은 곳으로 우돈이 선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라오스에 비해 풍부한 자원, 저렴한 물가, 기차나 국제 항공노선(방콕-치앙마이-푸켓)이 있는 교통 등의 편리한 이점이 작용한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한때 라오스의 영토였다는 점과 라오 민족들이 살고, 이산어로 불리는 지역 사투리(라오어와 상당히 유사하여 서로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를 사용하기에 정서적으로도 이질감이 적은 것도 이유일 게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이는 우돈은 라오스의 도시라고 말할 정도다. 분명 우돈은 태국 북동부의 주요 상업 중심지이지만 라오스로 가는 관문이 되는 중요한 도시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우돈 근방에서 라오스에 관심을 가지고 예의 주시하고 있는 사역자도 만나 볼 수 있었다. 

우돈의 대표 상징물인 농 프라작(Nong Prajak)공원의 대형 토기모양 조형물

이외에도 우돈타니 주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기 시대 문명이 존재한다. BC 2100년 부터 AD 200년 사이의 것으로 보이는 토기와 청동 파편이 반 치앙(Ban Chiang)에서 발견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형 토기 모양의 조형물은 우돈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주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농 프라작(Nong Prajak)공원에 세워져 있다.

우돈타니 한국문화센터

한국문화센터를 찾는 이산인
이러한 문화유산을 지닌 위상과 상업도시로서의 유명세와는 달리 우돈타니 외곽 시골지역에서의 경제적 어려움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경제적인 활동을 할 만한 곳이 없기에 대도시나 일본, 이스라엘, 대만 등 해외 근로자로 취업한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한국은 가장 인기가 많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우돈의 한국문화센터를 찾아오는데, 먼 지방에서 온 이들을 위해 기숙시설까지 갖추었다. 1년에 두 차례 치러지는 한국어 능력시험이 취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에 기꺼이 많은 돈을 지불한다. 우리가 방문한 한국문화센터는 태국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많게는 80명 정도의 태국인들이 한국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작지 않았다. 현재 한국과 태국간의 고용허가제(EPS: Employment Permit System) 양해각서에 의거해 연간 한국어능력시험 합격자 약 6,000여 명의 태국 근로자들이 한국으로 송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태국인의 대부분이 우돈타니가 포함된 이산 지역의 이주 근로자로, 0.2%의 복음화율의 원거주지(고향)와의 연결을 통한 변화에 집중, 지원해야 할 부분이다(이와 관련된 내용은 ‘업마가 만난 사람’참고).

한국문화센터의 한국어 수업

중국인, 미국인, 라오스 사람들과 같은 외부인에 의해 북동부의 상업도시로 자리 잡은 우돈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인 이유로 가장 많은 내부인을 외부로 송출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돈은 이산지역의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미트라팝 도로를 따라 아세안 국가들 간의 활발한 무역으로 앞으로 더 많은 외부인들이 도시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글 | 채형림(SIR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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