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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선교사 & 의정부 펠로우십 교회

업마가 만난 사람
D·I·G·I·T·A·L JOURNAL  2018. 7

이용웅 선교사 & 찾아온 디아스포라,
의정부 펠로우십 교회에서 만난 태국 이주민들

2018년 4월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수는 약 254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중국 동포를 포함한 중국인이 약 46%를 차지하고, 베트남(7.9%), 태국(7.4%), 미국(6.7%) 순이다. 2030년이면 500만의 외국인 국내에 체류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은 앞으로 더욱 외국인 사역의 중요성 또한 증가할 것을 의미한다. 이 중 세 번째로 한국 체류 비율이 높은 태국 국적의 18만 명이라는 숫자에 주목하고자 한다. 태국의 정치, 경제적 이유로 인해 농촌의 젊은이들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고, 태국과 한국이 무비자협정을 맺어 관광비자로 입국이 쉬워진 점, 그리고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을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태국 전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지만 유독 ‘이산(Isan)’이라 불리는 태국의 동북부 지역 출신이 7,80%를 차지한다. 이산족(UPMA에서는 이산지역의 사람들을 ‘이산족’이라는 종족그룹으로 구분하기로 하였다)의 복음화율이 0.2%에 그친 것을 고려해 본다면 이들은 명확한 미전도 종족이다. 그런 점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의 땅 한국에 온 이들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지난 12년 동안 의정부의 태국인교회(펠로우십 교회)를 섬겨온 이용웅, 백운화 선교사를 방문해 태국 이주민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이용웅선교사 / 의정부 펠로우십교회

Q. 태국인교회 사역을 시작하시게 된 배경은?
저희 부부는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방콕에서 태국인 교회를 개척해서 사역했고, 이후 본부 사역(GP선교회)을 하던 중 의정부 지역의 태국인 교회 사역자가 급하게 사임하게 되어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에는 우리는 본부 사역 중이었기에 난감했다. 하지만 교회가 어려움에 빠진 것을 보고 외면할 수 없어서 주일만 일시적으로 돕는 조건으로 교회사역을 시작했다. 그때가 2007년이니 지금까지 12년째 사역하는 중이다. 2015년 본부사역을 마칠 즈음에 의정부로 이사해서 지금은 전적으로 태국인 교회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가 교회 가까이 거주하니 수시로 교인들을 접할 수 있고 그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어 태국 교인들이 좋아한다.

의정부 펠로우십교회 주일 예배

Q. 태국인들의 거주지역과 교회는 거리가 있는데, 의정부에 교회가 세워진 이유가 있는가?
의정부는 경기 북부 지역에서 허브 도시이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생겨 서울에서 포천, 동두천으로 직접 가는 길이 생겼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두천, 포천, 양주 사람들이 서울 가려면 의정부를 통과해서 가야 했다. 그리고 의정부는 백화점 등 상권이 잘 형성되어 있다. 그러니 주말이면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쇼핑도 하고 여가시간을 즐긴다. 우리 교인들은 주로 양주, 동두천, 포천 사람들이지만 이들도 유일하게 쉬는 일요일에 쇼핑도 하고 시장도 보기 위해 의정부에 오고 싶어 한다. 이런 요인은 이들이 교회에 올 수 있는 중요한 동기부여가 된다.

Q. 펠로우십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우리 부부만 제외하고 교인들 모두 태국인들이다. 최근 치앙라이 라후족이 들어오긴 했지만 지방으로 많이 옮겨갔고, 90%는 이산 지역 출신이다. 이들은 다른 태국지역 출신보다 생활력이 강해서 웬만한 환경에는 잘 적응해 간다. 태국에 있는 태국교회들은 대부분 헌금이 적고 재정이 약해서 태국의 교역자들이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기 때문에 사역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진다. 그것은 당연히 교회 성도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한국에 나온 현지인들은 잘 훈련시키면 재정적으로도 자립하면서 교회를 잘 세워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들이 처음에 교회에 나올 때는 고향 사람을 만나고, 태국 음식을 같이 먹고, 정보도 얻고, 한글도 배울 수 있다는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오지만, 한국에 와서 처음 교회를 접하고는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 들 중에 사역자로 세워진 좋은 모델도 있다. 우돈타니 출신 한 명이 한국에 와 있는 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지금은 우돈타니에 있는 한 교회를 맡아서 사역하고 있고, 한국 교회가 그 분을 현지 선교사로서 임명하고 협력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이것이 바로 그 가능성이다. 

우리 교회가 규모는 작지만 매달 6곳의 선교지에 헌금을 한다. 그러면서 교인들이 함께 기도한다. 이 모두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다. 또한 우리 교회는 운영위원회를 세워 그들 스스로 교회 운영을 하게 한다. 특히 교회 부설 쉼터는 임시 거처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쉼터 운영을 그들이 맡아서 한다. 지방에서 일거리를 찾아 수도권에 와 있는 사람들이 SNS나 친구 소개로 많이 찾아오는데 아무나 받을 수 없어서 우리 내외가 아닌 그들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주일예배 후 온누리교회와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펠로우십교회 성도들

Q. 사역의 어려움은?
첫째, 지속적 양육이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외국인들에게 장기 거주 비자발급은 제한하고 있고 대부분 외국인들이 단기 노동비자 등으로 거주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체계적으로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양육하기 어렵다. 잘 훈련된 교인들이 돌아간다고 하면 낙심이 되었으나 지금은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 교회는 선교훈련원이다. 일정 기간 훈련받고 교회 없는 그들의 고향에 돌아가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여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마음을 바꾸니 평안이 왔다.
둘째, 현지에 가서 적응이 쉽지 않다. 우리 교회는 2,30대의 비슷한 또래나 친척들이 모인 동질 집단이다. 그런데 태국에 가면 이런 교회를 찾기가 힘들고, 태국 교회는 예배, 양육, 케어 면에서 한국에서 그들이 경험한 교회 모습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교회는 노동자 중심의 교회이기에 예배, 친교 시간 등이 부족하다. 대부분 토요일까지 일하기 때문에 주일을 최대한 활용해야 되는데 유일하게 쉬는 휴일에 그들을 오랫동안 교회에 붙들어 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Q. 앞으로의 사역 계획이 있다면?
이주민들에게 연합사역이 중요하다. 16년 전부터 약 15개 태국인 교회가 연합하여 설과 추석 두 차례에 걸쳐 약 300여 명 규모의 연합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사역의 가장 큰 열매는 공동으로 운영하는 신학교 사역이다. 신학교 사역을 한지가 8년 정도 되어 가는데 이를 통해 사역자 배출에 도움을 받고 있다.
또한 경기북부의 이주민 교회 사역자 네트워크가 있는데 비영리 단체 등록(열방선교 네트워크)도 했다. 총체적인 이주민 사역을 하려면 한 교회가 실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법률, 의료, 문화 등 협력하고 서로 역할을 분담하는 일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주일예배 후 온누리교회와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통역을 맡은 백운화선교사

쿤* 쨍(여, 34세)  * 쿤(Khun): 태국에서 사용하는 존칭으로 이름 앞에 사용하여 서로를 칭한다.
앙라이에서 왔고, 태국에서 NGO계통에서 사무원으로 일했다. 교회에 나온 지는 4년 정도 되었다. 한국에 온지 일주일 만에 쿤 파이툰의 소개로 교회를 오게 되었다. 처음부터 교회에 어려움 없이 적응했고 아주 재미있고 분위기도 좋다. 태국에 있는 아이를 위해 돈을 보내고 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재정적인 부분에서 염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가까이 있는 교회를 물질적으로 섬기고 싶다.

쿤 싸이롱(여, 34세)
이산지역 펫차분이라는 마을에서 왔다. 태국에서는 호텔경리로 일했고 한국에 온지는 4년 되었다. 현재 한국에서는 양주에 있는 플라스틱공장에서 일한다. 현재 남편 수입과 합해서 100만 원정도 태국에 보내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사용한다. 한국에서 돈을 벌면 돌아가서 내 이름으로 농장을 소유하여서 더 이상 남에게 월급 받는 일이 아니라 내가 충분히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싶다.
마트를 운영하는 파이툰 집사 부부를 통해 교회로 인도되었다. 태국에서는 교회를 본적도 없다. 태국인들은 개인주의적이어서 남을 돌보거나 신경 쓰는 일이 없는데 교회 에서는 서로 돌보고 사랑을 가르치고 이런 것이 태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교회에 다니는 것이 굉장히 좋다. 보통 금요일까지 일하고 주말에는 오전까지만 일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나면 교회에 와서 음악팀 봉사도 하고 음식도 함께 준비한다. 그 자체가 재미있다.

쿤 팻(여, 31세)
친구 소개로 한국에 왔고 현재 양주에서 일한다. 태국 우돈타니가 고향이다. 한국에 온지 2년 되었을 때 하나님 믿게 되었다. 펠로우십 교회에 나오게 된지는 6년 되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온다. 주일에는 교회 예배 후에 격주로 오후 5시 30분부터 8시까지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평일에는 인터넷을 통해서, 주일에는 교회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있다.
오전 5시30분 부터 일을 시작해서 모든 일이 끝나면 밤 10시쯤 된다. 보통 집에 오면 12시가 다 된다. 한국인 친구는 없지만 사장님 가족과 많이 대화한다. 그러면서 한국어가 많이 늘었다. 가족들이 많이 그립지만 매일 영상 통화를 할 수 있으니 괜찮다.

쿤 파이툰(남, 44세)
고향은 농카이 아래에 있는 나콘 파놈이다. 메콩강 옆에 있고 아름다운 곳이다. 한국 온지 15년 되었고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한국에서 태국 식품 취급하는 마트를 하는데 배달 위주로 한다. 비즈니스 비자로 있고 1년에 한 번씩 연장된다.
처음에는 돈 많이 벌고 싶어 한국에 왔는데 한국에 온지 2년이 되었을 때 많이 아팠다. 병원도 많이 다녀 봤는데 원인을 모르는 병으로 치료가 되지 않았다. 한 3~4개월 정도 돈도 못 벌고 방에 있는데 어느 날 한국 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예수를 믿으라고 했다. 그 때는 태국말을 하는 선교사가 없었고 한국말로 전도했는데, 목사님이 계속 방문하고 기도하면서 병이 나았다. 그 이후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한국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기에 기도만 했다. 운전도 못하던 때인데 어느 날 큰 외국 식품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장사를 하고 싶은데 왜 회사에 들어가게 하셨을까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가서 운전도 배우고, 거래처를 만들어 의정부, 일산, 서울 등으로 외국인들에게 물품 배달을 다녔다. 그 때 일을 많이 배웠다. 그리고 지금은 양주에서 태국 식품을 취급하는 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 때에 비로소 내 기도가 기도응답 받은 것을 알았다. 하나님 하시는 일은 내 생각과는 다르다.

쿤 엠(여, 35세)
한국에 온 지 4년 되었고 포천에 있는 청바지 공장에서 일한다. 처음에는 일 적응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특히 급하게 납기일 맞추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은 많이 적응되었다. 북부의 람빵이 고향이고 학교에서 회계학을 공부했다. 불교 가정에서만 지내왔기 때문에 한국에 오기 전에는 교회를 구경도 못했고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교회를 접하게 되었다. 펠로우십 교회 다니던 친구가 교회를 소개해서 오게 되었고 친구들 3명과 함께 교회를 나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적응을 했다. 교회에 나온 지 4~5개월 되었는데 열심히 배우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굉장히 적응이 안 되었다. 불교는 조용한데 교회는 일어나서 예배도 드리고 손도 들고 해서 어색했다. 태국에서 불교도로 있을 때는 생활 속의 종교이고 불경을 읽고 공부한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별로 강조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교회 나오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고 지금도 알아가는 중이다. 공장에서는 크고 작은 갈등이 많이 있는데 만일 크리스천이 아니었으면 굉장히 심각했을 것이다. 이런 어려움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이 극복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용납하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다.

쿤 비(여, 라후족, 24세)
라후족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영세를 받았다. 현재 남편과 3살짜리 딸이 있는데 이들은 태국에 있고 혼자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면 돈을 벌수 있다고 해서 작년(2017년) 10월에 한국에 왔다. 태국에서 일을 아무리 해도 수입이 만족스럽지 않다. 남편이 먼저 한국에 왔다가 비자가 없어서 추방당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를 두고 혼자 왔다. 태국에서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다 같이 사는데, 이곳에서도 모두가 모여 함께 산다. 이곳도 시누이가 초청해서 왔고, 여동생도 함께 와 있다.
고향에서는 집안 모두가 가톨릭이지만 교회에 가서 성경을 배우거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없었다. 부모도 별로 관여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목사 아들인 남편과 결혼을 해서 시댁에 와서 같이 살면서 교회를 나가게 되고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이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되었고 이곳에서 믿음을 키워가고 있다.

 글 | 채형림(SIR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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