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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므안 쑥반(80), 까룬 쑥반(79) 목사 부부(1)

업마가 만난 사람(1)
D·I·G·I·T·A·L JOURNAL 17호 2019. 6

복음의 불모지에서 복음에 뿌리내린 믿음의 선배들을 만나는 일은 새로운 선교현장을 리서치하면서 가장 즐거운 일 중에 하나이다. 태국 남부에서 27년을 사역하신 권오혁 선교사님을 따라 자신의 ‘영적 아버지’라 부르는 쑥반 목사님 부부(텅므안 쑥반, 까룬 쑥반)를 만날 수 있었다. 태국 CCT 교단 제 9노회 노회장을 역임하고, 베들레헴 교회 담임목사로 40여 년을 사역해 오신 쑥반 목사님 부부를 만나고 나니 이 나콘 지역에 교회가 120년 간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느 시골 아낙네 같은 모습으로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는 까룬 사모님은 우리를 보자마자 손에 초콜릿을 쥐어 주시며 파킨슨 병을 앓고 계신 텅므안 목사님을 대신하여 인터뷰에 응해 주셨다.

 

텅므안 쑥반(80), 까룬 쑥반(79) 목사 부부

Q. 태국에서 목회자들이 가장 꺼려한다는 남부에서만 40년 넘게 사역하셨다. 태국 북부 출신이라고 하시던데 남부까지 어떻게 오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A. 텅므안 목사와 나(까룬)는 모두 할아버지 세대부터 예수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텅므안 목사는 치앙마이, 나는 치앙라이 둘 다 태국 북부 출신으로, 조부모가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듣고 장로가 된 분들이다. 우리는 치앙마이의 맥길버리 신학교(현, 파얍 신학교)에서 만나 졸업 후 결혼했다. 신학교 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1호 커플이다(웃음). 그 때가 1967년이다.

당시 맥길버리 신학교는 4년 동안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2년은 지방 교회로 목회 실습을 하는 총 6년 학제를 운영했다. 그때 목회 실습지가 나콘이었다. 이곳에서 2년 동안 병원과 시골 지역으로 전도를 다녔다. 텅므안 목사는 북부의 프래(Phrae)라는 지역으로 실습을 나가서 결혼 전에 각기 다른 곳에서 목회실습을 했다. 사실 결혼 후에 처음 사역했던 곳도 텅므안 목사가 실습했던 프래라는 지역이었다. 산악지형인데다 교통도 좋지 않아 성도의 집에 심방을 가면 그 집에서 잠을 자고 올 수 밖에 없는 일이 허다했다. 프래에서 3년 동안 사역하면서 4개 교회를 순회하며 목회를 도왔고, 4개의 전도처를 개척했다.

이후 나콘의 친구로부터 사역자가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베들레헴 교회를 담임하던 목사(까룬 사모가 목회 실습할 때 함께 사역했던 목사)가 펫부리(Phet Buri)로 사역지를 옮기면서 목회자가 공석이 된 것이다. 당시 남부의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방콕을 제외한 지방 특히 시골지역에는 공산당이 득세하던 시기여서 핍박도 많아 사실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남부로 파송되었다”는 선교의 마음으로 내려왔다. 5개월 된 딸을 데리고 나콘으로 내려온 때가 1971년이다. 2013년에 은퇴했으니 나콘에서 정식으로 사역한 기간이 42년이다.

쑥반 목사님 부부 결혼식

Q. 나콘에서의 사역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당시 사역 이야기를 들려 달라.
A. 1971년 나콘에 왔을 때 이 지역에 2개의 교회와 2개의 전도처가 있었지만 건물이 있는 교회는 베들레헴 교회뿐이었다. 나콘에서의 사역은 주로 전도하는 일이었다. 항상 어딜 가든지 전도했다.

전도처가 많이 생겨난 후에는 주일날이면 오전에는 베들레헴교회에서 예배하고, 오후에는 성도들이 함께 전도처에 가서 사역했다. 이 일은 그 전도처가 자립할 때까지 이어졌다. 목회자가 없어서 여기 저기 교회를 개척하고 살피느라 처음에는 참 힘들었다. 현재는 20개의 교회가 개척되었고 10개 내외의 전도처가 세워졌다.

나콘에 온지 6, 7년 쯤 되었을 때, 나는 목사 안수를 받고 교사로 섬기던 나콘의 기독교학교(시탐마랏 쓱사)에서 교목으로 섬기게 되었고, 그즈음 텅므안 목사는 CCT교단 제9노회장을 맡아 2005년까지 28년 동안 사역했다. 나콘에서 사역을 잘한다고 소문이 났는지 사역을 시작한 지 10년 쯤 되었을 때 맥길버리 신학교에서 총장 제의가 들어왔다. 고민은 되었지만 나콘의 영혼들을 버리고 갈 수가 없어 거절하고 남은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고 싶다고 얘기했다. 태국 교계에서는 다들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편하게 사역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계속해서 남부에서 사역을 이어가겠다고 하니 그런 것이었다.

한 번은 텅므안 목사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모두들 가망 없다고 이야기했었다. 그 때가 권오혁 선교사가 나콘으로 처음 부임해 왔던 해였을 것이다(1992년). 하지만 기적적으로 되살아나 20여년을 더 사역할 수 있었다. 태국 교회는 매 2년마다 담임목사가 재신임을 받아야 계속해서 사역할 수 있는데, 계속 재신임을 얻어 42년 간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지금은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서 2013년에 은퇴했다.

텅므안 목사님 베들레헴 교회 담임 목사 취임식

Q. 48년 동안 목회를 하시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A. 기억에 남는 것보다는 감사로 정리하고 싶다
첫 번째로 제일 중요한 사람을 키울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나콘에서의 주 사역은 전도와 제자양육이었다. 집을 오픈해서 다음 세대 중에서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과 함께 살며 양육했다. 이렇게 제자훈련해서 성장한 아이들 중에 10여 명이 목사가 되었고, CCT교단 총회장 혹은 총회 총무가 된 사람도 있다. 이 중에서 아짠 수라폰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텅므안 목사님의 권유로 초등학교 때 불교학교에서 기독교학교로 전학해서 집에서 함께 살면서 양육한 아이다. 어려서부터 시골지역에 가서 설교도 하고 어딜 가든 말씀으로 훈련하고 전도했다. 후에 변호사가 되었고, 기독교학교 교장, CCT교단 총회 총무까지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잘 자라주어 참 기쁘다. 지금의 베들레헴교회 담임목사도 고등학교 때부터 데리고 살면서 훈련했던 사람이다.(이분들 뿐 아니라 현 제 9노회장을 비롯한 나콘 지역의 많은 사역자들을 배출했다고 권오혁 선교사는 전한다. 텅므안 목사는 태국 남부에서 살아있는 성자로 불릴 정도로 삶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낸 사람이라 덧붙였다.)

두 번째는 남부에 교회개척이 너무 힘든데 20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사람들을 세워 이양하게 된 것이 감사하다. 나는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뽑아주시고 집중하게 하시고 지역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어 교회가 세워진 것이 감사하다. 다만 우리는 도구로 쓰임 받을 뿐, 우리가 했으면 하지 못했을 일을 하나님께서 하게 하셨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방학이 되면 산 속 마을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곤 했는데, 그 마을의 예수님을 믿게 된 첫 번째 집에 머물면서 학생들을 위한 캠프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은 잠을 자다가 얼굴에 무언가 떨어져 비가 오는 줄 알고 잠에서 깼는데 일어나 보니 비가 아니라 핏물이었다. 마을의 공산당 폭도들로 인해 그날 밤 일행 중 2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 2명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어려움을 많이 경험했다. 당시 죽은 순교자의 손자가 베들레헴교회 현 담임 목사가 된 아짠 수라삿이다. 교인 중에는 아들 2명을 하나님께 드린 분도 있다. 교회는 이런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지게 되었다.

세 번째는 우리 가족 모두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기독교학교의 지도자 혹은 선교사로 섬기게 된 것이 감사하다. 두 딸과 아들 하나가 있는데, 첫째 딸은 사업을 하고, 둘째는 아들인데 목사 안수를 받고 현재 기독교학교(시탐마랏쓱사) 음악 총괄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둘째 아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막내 딸은 권오혁 선교사의 제자인데, 의학공부를 하고 현재는 선교사가 되어 캄보디아의 베트남 교회를 섬기고 있다. 선교사적인 사명으로 나콘에 와서 복음을 위해 헌신했지만, 생활은 물론 교육에도 어려움이 많아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 맥길버리 신학교 총장 제의를 받았을 때 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우리는 갈 수가 없었다. 당시 나콘 병원 원장이었던 쫑디가 찾아와 “목사님이 가버리시면 나콘의 영혼들은 어떻게 되느냐? 돌봐줄 사람들이 없는데 우리를 버리지 말라”는 부탁이 마음을 움직였다. 교회가 사례를 충분히 못해주었지만, 쫑디 원장이 매달 돼지고기를 끊이지 않게 공급해 주었다. 이런 어려움에도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으니 참 감사하다.(CAS17호 업마가 만난 사람_텅므안 쑥반(80), 까룬 쑥반(79) 목사 부부(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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