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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아무슬림권역을 위한 기도

미전도종족을 위한 기도
D·I·G·I·T·A·L JOURNAL 22호 2020. 6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이사야 54장 2-3절)”


1. 서남아무슬림권역은 근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 이래 수많은 서구 선교사들이 헌신한 지역이며, 이곳에서 사역한 도날드 맥가브란, 폴 히버트, 필 파샬 등 선교학자들은 이 지역에서의 사역을 바탕으로 한 시대를 이끌어간 선교이론들을 제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1961년 감리교 최초의 여성 선교사 故 전재옥 선교사를 비롯 불의의 병으로 순교한 故정성균 선교사, 한국-방글라데시개발협회를 통해 방글라데시 선교의 플랫폼 역할을 해온 장순호 선교사, 북인도 지역 한국 침례교단 선교의 문을 연 윤사무엘, 김바울, 곽야곱, 이여호수아 선교사 등 지금까지도 수많은 한국 선교사의 헌신과 희생이 드려진 서남아무슬림권역이다. 그럼에도 이 지역의 여러 가지 위험 요소들로 인해 상대적으로 자원하는 선교사가 적고, 교회의 관심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 지역의 선교적 남은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 앞으로 더 많은 선교사와 선교자원들이 전략적으로 투입되고, 한국 교회와 선교 헌신자들의 관심과 기도가 다시 강력하게 일어나도록 함께 기도하자.

2. 서남아무슬림권역의 역사는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하게 되지만, 이 지역의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서로 이질적인 종교적 갈등은 정치적 이해와 만나면서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이슬람 주류 지역이 인도로부터 분리, 독립하면서 파키스탄이 성립되었지만, 인종, 지리적 차이와 갈등이 다시 파키스탄에서 동 파키스탄(방글라데시)의 분리, 독립을 야기했다. 복잡한 정치, 종교, 인종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이 지역의 첨예한 갈등과 분쟁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관용의 종교를 자처하는 이슬람교로도 평화를 담보할 수 없었던 이 지역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 긍휼이 임하여 참된 평화와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

3. 서남아무슬림권역에서의 기독교는 외부 의존성이 강하여 ‘하층민의 종교(북인도)’, ‘선교는 비즈니스(파키스탄)’, ‘NGO의 무덤(방글라데시)’이라는 왜곡된 이미지로 얼룩져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현지인들에게 예수와 참된 진리로 나아가는 데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한 번 각인된 잘못된 이미지를 바로 잡으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도 참된 진리를 모른 채 하루하루를 어두움과 두려움 속에서 죽어가는 이 땅의 수많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아니 적어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처음처럼 다시 그 땅을 기경할 일꾼들이 필요하다. 지금 그 땅을 위해 울어줄, 그들을 위해 달려갈 새로운 일꾼들을 일으키시고, 자원함으로 헌신케 하시며 보내시도록 함께 기도하자.

4. 인도에서 사역하는 1,500여 명 이상의 한국 선교사 중 약 50여 명의 선교사만이 무슬림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펀자브(Punjab), 아프간(Afghan), 카슈미르(Kashmir), 신드(Sindh), 발루치스탄(Baluchistan) 등 5개 지역이 종족과 지역적으로 구분이 뚜렷하므로 이들을 파키스탄 5대 우선 선교대상 미전도종족으로 분류하여 사역할 필요가 있다. 방글라데시 복음화를 위해서는 2%의 오지 소수부족 선교도 중요하지만, 98%의 주류 벵골족 선교 돌파가 더욱 절실하다. 선교는 하는 것 자체가 귀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서남아무슬림권역 각 국의 미전도종족 선교를 위한 필요들은 이 지역 복음화를 위해 바로 지금 직면하고 돌파해야 할우리의 남은 과업임을 기억하고 한국 선교가 이를 위해 순종과 헌신으로 나아가도록 함께 기도하자.

5. 서남아무슬림권역은 현재 전 세계 무슬림 인구의 ⅓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곳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슬람 실천사상과 운동이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에 독립하여 세워진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와 같은 이슬람 국가들은 여전히 지역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고, 세계적으로 심각한 테러 음모의 ¾이 파키스탄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더욱이 이 지역은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의 영향으로 비정통적 민속 무슬림들이 전체 70%를 차지하는 매우 혼합주의적 신앙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은 3천만 명 규모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북부, 인도 북부에 분포된 빠탄 족과 같은 거대 미전도종족들이 산재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지역에 적지만 토착화된 지역 교회들을 남겨 두셨다. 무슬림으로부터의 차별과 가난, 교회 내 분쟁 등 많은 어려움과 도전이 있지만 그들 안에서 예수를 위한 자원 군대가 일어나야만 한다. 이와 같이 견고한 이슬람 미전도 세계인 서남아무슬림권역에 현지 교회를 통한 강력한 부흥의 바람이 일어나게 하시고, 이를 위해 한국 교회를 새롭게 도전해 주셔서 더 많은 선교사와 선교자원들이 선택과 집중을 통한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

6. 인도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혼돈한 가운데 질서가 유지되는 나라이다. BC 1500년 경 정복민인 아리아인과 피정복민인 드라비다인 간의 해묵은 갈등이 지금도 존재하며, 절대적인 남성 우월주의 사회이지만 대중교통에서는 여성들이 여성우대석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으며, 힌두교가 주류 지배 종교이지만 그 안에 이슬람교와 시크교와 심지어 기독교까지 모든 신과 진리를 수용하는 듯한 갈등과 수용이 교차하는 것이 인도이다. 참되고 절대적인 진리를 알지 못하고, 혼돈과 불안 속에 살아가는 그들의 마음에 속히 참되고 유일한 구원의 길이 증거 되도록 함께 기도하자.

7. 인도의 무슬림을 이해하려면 수피즘에 대한 선 이해를 필요로 한다. ‘신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는 이슬람 수피즘 사상은 카스트제도로 천대받던 인도 하층민들의 호응과 함께 힌두 범신론과 어우러져 큰 저항 없이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수피 성자(바라카)의 무덤들은 수많은 신자들의 숭배의 장소가 되었으며, 특히 니자무딘의 무덤은 델리 제일의 수피 성지이며, 이곳의 숭배의식은 흡사 힌두사원과 많이 닮아 있다. 이슬람 신비주의 신앙으로 토착 힌두교, 민속신앙들과 혼합되어 있는 북인도 무슬림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진리와 지혜의 겸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선교사들이 준비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

8. 인도 러크나우의 곰티(Gomti) 강 서편 올드시티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길 하나를 두고 수니파와 시아파 무슬림이 서로 단절된 채 긴장 속에 살아간다. 러크나우의 시아파 무슬림들은 과거 이 지역의 지배 종족이었기 때문에 자존심이 강하지만, 지금은 소수 무슬림 속 또 다른 소수자들로 고립되어 있다. 대부분 선교사들도 수니파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기 때문에 시아파 무슬림들은 복을을 들을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선교사들이 복음으로부터 소외된 러크나우의 시아파 무슬림들에게로 향할 기회를 주시고, 그들에게도 복음이 증거되는 은혜를 누리도록 함께 기도하자.

9. 인도 서벵골주의 주도인 콜카타는 그 이름의 유래인 죽음의 여신 칼리(Kali)를 신봉한다. 힌두교가 77%를 차지하는 주류 종교이지만, 20%의 적지 않은 무슬림도 함께 어울려 있는 도시이다. 콜카타가 있는 서벵골주는 역사적으로 영국령 인도의 벵골주였다가 동서벵골로 분할되었고, 독립 당시 동파키스탄에 속한 동벵골 내 힌두들이 국경을 넘어 난민으로 유입되며 혼란을 겪었다. 지금도 방글라데시로부터 난민유입이 계속 증가하여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로 인해 콜카타는 인도의 3대도시이면서도 난민 등 빈곤층 문제가 심각한 도시로 손꼽힌다. 죽음과 빈곤의 그늘이 드리워진 콜카타에 하나님의 치유와 긍휼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모든 영혼들이 참된 구주이신 주님께 나아오도록 함께 기도하자.

10. 바라나시는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유명한, ‘신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힌두 최대 성지이다. 인도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은 이 도시를 흐르는 강가(Ganga, 갠지스강)에 꼭 가기를 원하고 죽어서라도 뿌려지길 원하는데, 그 강에 죄사함과 구원의 길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거 영국 식민지 당시 서구 선교사들은 이러한 바라나시의 힌두교적 영향력을 의식해 이곳을 복음화 시키기 위해 집중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은 오히려 그들의 철학, 명상, 음악, 요가 등을 배우려는 서구인들로 일년 내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의 심장과 거룩한 영성, 냉철한 전략으로 무장한 많은 선교사들이 일어나 이 같은 바라나시의 견고한 영적 진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무너지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을 맞이하는 그 날을 위해 기도하자.

11. 인도 최북단 스리나가르가 속해있는 잠무 카슈미르(Jammu and Kashumir)주는 인도-파키스탄 간 영유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잠무는 53%, 카슈미르는 93%로 무슬림이 다수인 이 지역은 당연히 파키스탄에 편입되어야 했지만, 당시 힌두교를 신봉한 지역 군주로 인한 갈등이 결국 두 국가 간의 전쟁으로 발발되었다. 현재는 휴전협정으로 일단락 되었지만 여전히 테러의 불안과 빈곤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세계의 화약고’라는 오명이 붙은 카슈미르와 그에 속한 스리나가 르에 오직 그리스도의 화해와 화평이 선포되며, 결코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갈등과 분쟁이 종식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

12. 암리차르는 파키스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시크교도(Sikhs)가 전체 76% 이상인 도시이다. 시크는 인도 인구의 2%에 불과하지만, 좋은 환경과 그들의 근면성 덕분에 인도 부(富)의 10%를 보유하고 있다. 시크들의 종교문화적 중심지인 ‘황금사원(Goldentemple)’은 짓는데 400kg의 황금이 들었을 정도로 화려한 위용을 자랑한다. 일주일에 1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이곳은 시크 최고 경전 ‘그랜드 사힙(Grand Sahib)’을 모신 사원까지 걸으며 기도하는 인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함께 걸으며, 자신들이 찾는 신에 대한 공동체적 소속감을 느끼며, 그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것 같다. 그들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아를 찾아 구원에 이르는 은혜가 있도록,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공동체에 속하여 참된 안식과 자유를 누리도록 함께 기도하자.

13. 라호르는 파키스탄 펀잡주의 주도로서 파키스탄의 문화, 교육, 예술의 중심지이다. 특히 ‘무굴인들의 정원’이라 불릴 정도로 무굴제국 문화유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라호르에서 약 50Km 떨어진 라이윈드(Raiwind)에서는 해마다 몰비(maulvi, 이슬람 사역자) 캠프가 열린다. 이곳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밀려난 파슈톤족 몇 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전 세계 무슬림들을 훈련하고 파송하는 대형 캠프로 성장했다. 연 2-3회에 실시되는 캠프 참석자가 3백만 명에 달한다. 몰비 캠프가 꾸란과 무함마드의 가르침이 아닌,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대체되게 하시고, 이곳이 전 세계 이슬람화가 아닌 전 세계 복음화의 비전의 중심으로 세워지는 그날이 반드시 오도록 함께 기도하자.

14. 파키스탄은 국민의 96% 이상이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이지만, 기독교를 소수종교로 인정하고 ‘알라’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않다면 교회도 인정한다. 독립 이전 신드(Sindh)와 펀잡(Punjab)지방을 중심으로 시작된 파키스탄의 기독교 역사는 당시 펀잡 지방 불가촉천민인 쭈르하(Chuhra)종족이 집단개종하면서 비약적으로 진전했다. 공교롭게 파키스탄에 크리스천의 80% 이상이 거주하면서 이 지역 최대 소수 종교 집단으로 남았고, 독립 이후 무슬림들에게 땅과 직업을 잃고, 대부분 카스트 제도 하에서의 쭈르하 전통 직업인 청소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파키스탄의 기독교는 비천한 계급의 종교로 인식되어 복음전파에 상당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쭈르하 종족의 후손은 파키스탄의 ‘크리스천 종족’이다. 이들이 진정한 복음으로 깨어나서 온 파키스탄을 복음으로 섬기는 영광의 날이 오도록 함께 기도하자.

15. 카라치는 파키스탄 제 1의 도시로 특정한 주류 민족 없이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섞여 있는데, 그 중 파슈톤 종족이 5백만 명이나 거주하고 있어서 탈레반의 활동이 용이한 곳이다. 최근에도 반정부 테러가 일어나고, 강도 사고가 빈번한 위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카라치에는 방송, 전화, 서신으로 성경을 가르치며 크리스천을 양육하는 사역자들이 있다. 이들의 주 사역대상은 무슬림들이지만 크리스천들에게도 주목하고 있다. 20~30%되는 명목상 크리스천들은 개종 후 직업의 문제, 알코올 중독 등의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살기 때문에 이들을 말씀으로 회복시키고 제자로 바르게 세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테러의 위험과 소수라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못할 것 같지만, 이를 극복하고 그 너머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희망이 있음을 믿는 사역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이 결코 포기치 않고 이 땅의 무슬림들과 잠자는 크리스천들을 깨우는 일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

16. 방글라데시는 1947년부터 1971년 독립 때까지 서파키스탄에 의해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차별당했으며, 특히 98%가 벵골어를 사용하는 언어문화 집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적으로 우르두어를 사용하게 한 정책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벵골 민족주의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전쟁을 통해 결국 독립은 이뤘지만 그 상처는 그대로 남아, 교통, 통신, 발전, 항구 시설 등 모든 사회 인프라가 폐허가 되었고, 지금도 정부의 부정부패로 그 상태가 많이 호전되지 못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 여전히 남아있는 독립 과정에서의 전쟁의 상흔이 주님의 손길로 치유되게 하시고, 국가와 위정자들을 일깨우셔서 국민이 살아갈 수 있는 나라로 회복되게 하시며, 경제적 회복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하나님의 백성 되도록 함께 기도하자.

17. 다카는 방글라데시의 수도이자 방글라데시 최대 도시이다. 모스크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소수 종교 집단인 힌두교도들의 세력도 무시할 수 없는 그룹이다. 다카 시내의 ‘다카의 여신’이라는 뜻의 ‘다케슈와리(Dhakeshwari) 국립 사원’에서 드리는 예배의 모습은 기존 힌두사원에서도 보기 힘든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이슬람 개종 전에는 대부분이 힌두교도들이었던 벵골 무슬림들에게는 그들의 민속종교인 힌두의 모습이 이슬람 신앙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스스로 이슬람교라고 자부하지만, 뿌리를 알수 없는 혼합주의 신앙 속에 진리로부터 멀어진 다카와 방글라데시에 참된 진리가 증거되게 하시고, 그들의 종교와는 다른 진정한 영혼의 해갈을 맛보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들을 참 자유케 하시며 구원하시도록 함께 기도하자. 

 *위 자료의 저작권은 UPMA에 있으므로, 인용하여 사용하실 경우 반드시 출처를 남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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