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마가 만난 사람
Web Journal 31호 2024.9
2023년 7~8월 선교 현장 리서치 사역을 하던 8월 1일, 베트남 호찌민의 한 식당에서 윤한열 선교사를 인터뷰했다. 윤한열 선교사는 1999년 3월 7일 GMS 베트남 선교사로 파송 받아 2024년 현재까지 25년 동안 사역하고 있다. 윤 선교사는 고신대학교 신학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베트남 호찌민 국가인문사회과학대학교 문화학과에서 외국인 최초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동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호찌민 국가인문사회과학대학교, 호찌민 외국어 정보대학교, 호찌민 국가사범대학교, 반랑대학교에서 교류와 비교의 시각으로 한국 역사와 한국 문화를 21년 동안 강의하고 있다. 2023년에는 『같은 베트남 다른 베트남』이라는 제목으로 베트남 관련 도서를 저술하였다. (편의상 인터뷰어는 UPMA로, 인터뷰이는 윤한열M으로 표기, 인터뷰 내용은 작년 현장 리서치 내용에 올 해 10월 서면 추가질문을 통해 업데이트) |
UPMA : 반갑습니다. 본인과 사역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먼저 베트남 선교사로 오기 전까지 과정을 알고 싶습니다.
윤한열M : 안녕하십니까? 윤한열 선교사입니다. 저는 1999년 3월 7일에 예장합동 교단의 GMS 선교회 파송을 받고 베트남에 왔습니다. 저와 저희 가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은 우선 고신대학교에 재학하던 때 같이 자취를 했던 친구가 베트남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 친구는 당시 인터콥의 전신이던 ‘전문인국제협력단’에서 주최하던 텐트메이커 양성훈련 및 선교 캠프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면서 저도 몇 번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이 친구가 처음으로 제게 선교와 베트남에 대해 도전을 주었습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총신대 신대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신대원에서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 자매는 저희가 교제하는 조건으로 선교와 선교사의 사명을 놓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대학교 때 친구의 도전과 선교참여, 그리고 신대원 시절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통한 두 번의 선교사로서의 사명과 부르심에 대한 인도하심의 여정이었습니다.
신대원에서 재학할 때 울산의 한 지역교회 부교역자로 사역을 하던 중 제가 국내 목회와 해외 타문화 선교사역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라치면, 제 아내는 자기가 초등학교 시절 때 한 선교사의 전기를 읽고 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 지금까지 선교사로서 준비와 부르심을 더 확신하게 된다며, 저를 계속해서 선교사의 준비와 훈련으로 도전하곤 했습니다. 마침 복음의 진전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제 사역 여정에 더 의미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었던 때였기에, 신대원 1학년 때인 94년에 아내와 함께 선교한국 대회에 참가하면서 일주일간 다양한 선교 강의, 조별 소그룹 모임, 전 세계를 위한 중보기도, 현장 선교사 이야기를 통해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선교한국 주제가 미전도종족선교였습니다. 다음 해 신대원 2학년이던 95년에는 인터콥 비전스쿨을 통해 전략적 선교지로 베트남을 소개받고 중보기도 하면서 베트남을 더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비전스쿨 후 선교 현장으로 한 달간 단기선교에 참여하는 FO 과정이 있었는데, 저는 베트남 단기선교팀으로 합류하여 처음으로 베트남 땅을 밟았습니다.
제가 인터콥에서 훈련을 받고 도전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목사 안수를 받고 교단에 속한 사역자로서 지역교회와 함께하는 건강하고 균형 잡힌 선교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교동원이 너무 감정과 정서적인 면으로 치우친 경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 아내는 IVF 핵심 멤버로 사역하고 있었고, 저도 그 영향을 함께 받았기에, 인터콥을 통한 선교 참여와 훈련은 중단하기로 부부가 결정했습니다. 또 이 시기 베트남 단기선교를 가기 전부터 사전 리서치를 통해서 베트남의 인구 통계와 관련 자료, 베트남의 미래를 생각하고 서로 나누던 중이었는데, 이때부터 저희 부부는 베트남에서 대학생 사역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이 방면으로 더 선교적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UPMA : 지금까지는 주로 선교사로 오기 전까지 국내에서의 준비과정, 훈련 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선교현장으로 들어오시고 나서는 어떠했는지요?
윤한열M : 처음 2년은 베트남어 언어를 배우는 데 집중했습니다. 2년 동안 베트남어를 열심히 배웠는데 베트남어로 설교하고 강의하기에는 부족해서 베트남어와 베트남을 좀 더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결정하고, 베트남어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정식 학위 과정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학위 과정을 하던 중에 현지 베트남 대학에서 제게 한국학과에서 한국 문화에 대해 강의를 요청하여, 4년 차 때부터 학교 교수 비자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여정이 21년째 계속되어, 지금은 일주일에 2~3일은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2~3일은 저희가 베트남에서 2016년 7월에 발족한 대학생 선교단체 CEM(Campus Evangelical Movement)에서 리더들을 훈련하고 성경 공부와 간사 모임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과거를 회상해보면 대학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베트남어를 더 잘 구사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베트남 학생, 교수진과도 의미 있는 교류를 나누며 베트남 문화를 알 기회가 되었습니다. 처음 베트남에 오기 전 단기선교 때 대학생 사역에 비전을 가지고 준비했던 저희 부부에게 베트남 선교사 여정의 첫 텀 기간에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 하심은 선교사의 부르심과 사명을 재확인하며, 베트남의 미래 인재 양육에 더 힘쓰게 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주님의 은혜입니다.
UPMA : 대학과 대학생 선교단체 이야기가 나와서 질문합니다. 베트남 대학교를 잘 알고 계시니 베트남에도 한국처럼 대학 캠퍼스 선교 단체 이를테면 IVF, CCC 등 선교단체가 활동하고 있습니까?
윤한열M : 예. 베트남에도 대학생 선교단체가 있습니다. 베트남 최초의 대학생 선교단체는 NTC입니다. 베트남어로 ‘NHOM THONG CONG’이라고 하는 단체인데, 의미는 ‘펠로우십 모임’입니다. 이 단체는 국제단체인 IFES(International Fellowship of Evangelical Students)가 기원입니다. 한국에서는 이 단체를 IVF라 하며, 베트남에서는 NTC라고 합니다. 이 단체는 1950년 말 6명의 베트남복음성회(C&MA) 대학생과 당시 OMF선교사이자 IFES협력 간사인 폴과 마이다 콘텐토 부부에 의해 첫 모임을 가진 후, 1975년 봄에 베트남 대표를 세웠지만 얼마 못 가 그 해에 베트남이 공산화가 되었기에, 1990년대 초에야 다시 모임이 재개될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NTC는 한국의 서서울 IVF와 지속해서 교류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NTC는 처음부터 베트남 복음성회(C&MA)의 지원과 영향을 받아 독립적이고 자립적이긴 하지만 2010년 이후 복음성회 교단으로 완전히 들어가면서 제도화 보수화되면서 캠퍼스에서의 운동성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선교단체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어 매우 아쉽습니다. 대표 교단에 속한 이 단체를 통해서 대학생 사역에 동역하며 섬기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사역하면서 보람도 있었지만 한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민이 2016년 저로 하여금 CEM이라는 자생 단체 설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UPMA : 예. 그렇군요. NTC선교회 다음으로 어떤 단체가 베트남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윤한열M : NTC 다음으로 베트남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단체는 CCC입니다. 이 단체는 1993년에 공식적으로 캠퍼스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CCC는 처음 베트남의 열악한 상황 가운데 대학생 선교단체의 야성을 가지고 캠퍼스 개인전도, 커피숍이나 레스토랑을 이용한 전도 집회, 호찌민 내 학사 사역과 출판 사역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역을 전개해오다가, 베트남복음성회의 지지를 받는 NCT가 CCC의 이러한 사역 형태를 잘 수용하지 못하여 서로 대립하고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 이후로는 간사들의 사임과 해외로 유학을 하러 간 간사들이 베트남으로 미복귀하는 문제, CCC 간사 출신들이 교회 개척을 하면서 CCC멤버 탈퇴 등으로 특히 호찌민에서 전임 간사와 리더들이 재생산되지 못해 급격한 쇠퇴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IVF, CCC 이 두 단체가 베트남에서도 대표적인 대학생 선교단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외 YWAM(예수전도단)도 한국과 싱가폴, 호주 사역자들에 의해 제자훈련 DTS가 실시되면서 점점 알려지기 시작하여, 대학교에서 기도 모임과 소모임 등을 통해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가지 우려되는 상황은 한국의 이단인 IYF(구원파)와 JMS(정명석) 단체가 호찌민의 각 대학교에서 특히 한류의 붐으로 한국 문화를 통해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단체의 한국 사 역자들이 베트남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데 비해 한국 선교사들의 전반적인 베트남어 수준이 낮은 것이 큰 도전이며 반성해야 할 점입니다. 적극적인 한국 이단의 캠퍼스 침투에 연합해서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UPMA : 이제 윤선교사님이 설립하신 CEM선교회를 좀 설명해주십시오.
윤한열M : 우리 단체는 NTC와 CCC에 비하면 신생 단체이면서 선교회로서 이제 8년째 되는 작은 단체입니다. 처음 저희 가정이 베트남에 와서 언어 연수 후 처음 만난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이 1979년생인데 이들을 비롯해서 지속해서 졸업생들이 배출되고, 이들과 정기 비정기 모임을 하면서 베트남 자생 단체로 새로운 베트남 미래세대 캠퍼스 복음화 운동 비전을 가지고 2016년에 CEM을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CEM선교회는 정기 비정기 예배, 캠퍼스 소그룹 리더 훈련, 여학생과 남학생 학사 운영을 통한 공동체 훈련, 한국과 베트남 대학생 연합 수련회를 통한 도전과 상호 교류, 호찌민시를 4개 지역으로 나누어 운영하는 지역별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아! 또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저녁 6시에 CEM 각 캠퍼스 학생들이 함께 모이는 비전 모임을 호찌민 시내에 있는 현지교회에서 갖고 있습니다. 매번 모일 때마다 새로운 친구들을 초대하는데, 이 모임을 통해 자기가 베트남에서 태어난 후 처음으로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저희 부부와 현지 리더들, 모임에 종종 참여하는 베트남 현지 목사님들이 큰 감동과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곤 합니다. 그동안 선교회를 함께 섬긴 총 간사 수는 9명이었는데, 현재는 3명이 동역하고 있습니다. 전임 간사가 1명, 파트타임 간사가 2명입니다. 저와 저의 아내 임시연 선교사가 풀타임으로 선교회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UPMA :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 한국선교사들이 발행한 베트남 선교백서를 보면 베트남 현지 교단, 공인 교단하고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윤선교사님의 견해와 현지 교단과 관계할 때 어떤 방향으로 하는 것이 좋은지요?
윤한열M : 좋은 질문입니다. 베트남 선교사역의 키워드는 사실 현지 공인교회와의 관계입니다. 저는 지금 대학생 사역을 하는 파라 처치 곧 선교단체이지만 현지교회들을 끼고 하고 있습니다. 현지교회를 끼고 한다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절대 현지교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주일날 모임을 한다든지, 기독교의 중요한 절기에 선교단체 독자적으로 행사를 한다든지 하지 않고, 중요한 모임 혹은 규모가 큰 모임은 반드시 현지교회와 함께 현지교회에서 개최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현지에서 영향력 있는 중요한 교회와 현지교회 중직들과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의 경우 동계 하계 수련회를 한다거나 특별한 특강이 있을 때 베트남 목사님들을 강사로 초대합니다.
제가 대학생 선교단체 CEM을 설립하기 전에는 호찌민에 있는 사이공교회라는 베트남 복음성회 제1호 교회에서 이 교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두 개의 학사를 운영하면서 수년간 사역을 전담했었습니다. 현지교회와 함께하는 선교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지금은 CEM도 학사 사역을 하고 있어서 더는 이 교회의 학사 사역을 히고 있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지교회하고 관계가 소홀하거나 현지교회를 무시하고 관계하지 않으면 베트남에서는 사실 선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영향력도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핵심입니다. 겸손하게 현지교회를 존중하며 협력하려는 태도와 노력이 제일 중요합니다. 현지교회와의 관계 증진을 위해서도 초청 설교, 특강, 세미나 등에 요구되는 것이 바로 베트남어입니다. 한국선교사들이 현지 교단 공인교회와 관계가 취약한 것은 대부분 베트남어 구사 수준 때문입니다. 한국의 베트남 선교가 30년이 되는 이때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베트남 사회와 경제 발전에 따른 이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베트남어 설교자, 강의자, 상호 교류를 통한 여러 모임과 회합 등에서 베트남어와 베트남 사람 이해는 가장 필수적인 사안입니다. 150명이 넘는 호찌민의 한인 선교사 중 능숙하게 베트남어로 설교와 강의를 할 수 있는 선교사들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라는 엄중한 사실이 심각한 베트남 한국선교 사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언어적인 문제 때문에 베트남 현지교회, 특별히 젊은 목회자와 미래세대 리더들에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면, 또 하나 현지 공인교회와 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전문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개런티(guarantee)라고 하지요. 베트남 현지교회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베트남 실정상 선교사들은 비자 문제 등으로 집회나 강사 초청 세미나 등 교회 프로그램, 행사를 종교성에 보고를 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선교사들의 학력과 교단의 배경, 전문적인 자격증 등인데, 한국선교 사들이 현지 교단 교회와 긴밀한 교류가 없어서 이런 부분을 잘 모르고 준비하지도 못했습니다. 사실 베트남에서 공산화 이후 중단되었던 신학교가 오픈한 지도 이미 20년이 넘었고, 이제는 지방 신학교도 있으며, 또한 각 교회마다 자체 수련회, 특강 세미나도 많은데, 한국 선교사가 NGO 사역과 교회당 리모델링, 건축 사역 등 프로젝트 사역으로 기회를 유실했습니다. 한국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이 베트남에서 사람을 세우고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좋은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합니다.
UPMA : 윤선교사님께서 오늘 저희와 인터뷰하면서 『베트남 선교, 비판적 성찰과 제안』, 『베트남 한인 선교사의 출구전략』, 『베트남 대학생과 선교단체 운동에 대한 고찰』 등 세 개의 KMAC1자료집을 주셨는데, 감사드리며 추후 현장리서치 결과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013년부터 진행된 KMAC 포럼은 어떤 취지로 시작되었습니까? 포럼의 각 주제가 한인 선교사들의 선교 역사와 현황과 상관있을 것 같은데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윤한열M : KMAC 포럼은 지난 2013년에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저와 캠퍼스 사역을 하던 한국 선교사 중 몇몇이 중지를 모아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포럼의 목적은 베트남 캠퍼스 사역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알리고, 사역 현장을 연구하여 전략을 세우는 포럼입니다. 또한 건강한 베트남 선교 현장을 위하여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포럼이기도 합니다. 베트남의 한인 선교가 20년이 되어가던 시점에서 베트남 선교 현장이 급변하는 가운데 한인 선교사들에 이제는 과거의 패러다임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담론이 매우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베트남 호찌민의 경우 150명이 있는데 절반 정도가 10년 차 정도 된 한인 선교사들이고 이후로는 5년~10년 차 미만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베트남에서 그동안 사역해오던 1세대 선교사 중 정점 은퇴하신 분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사역 전환을 맞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단편적으로 10년을 주기로 했을 경우, 베트남에도 1세대, 2세대, 3세대의 선교사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문제는 베트남에 들어온 한인 선교사 1세대들이 거의 모두가 NGO 사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실제 구호 사역의 필요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상흔 후에 정부가 다양한 현지인의 필요를 채울 수 없었습니다. 특히 지방이나 외딴 데 사는 교육적으로 열악한 사람들과 빈곤 문제 해결, 사회적인 약자를 대상으로 한 사역에 NGO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이처럼 실제 펠트 니드 측면뿐 아니라, 베트남에서 중장기 거주하기 위한 실제적인 비자 해결도 NGO로 가능했었습니다. NGO 단체에서 사역 비자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초기의 경향이 기조가 되면서 이후 2세대, 3세대 한인 선교사들은 선배 선교사들이 주로 베트남에서 사역하고 있는 형태와 모델이 NGO 사역이었기 때문에, 이로부터 베트남을 이해하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베트남이라는 선교 환경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게 급변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한인 선교 30년 기간 동안 현재까지 베트남은 한국과 반대로 매우 급속하게 고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경제 발전, 안정적인 사회 유지로 인한 베트남 정부와 리더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 상승, 베트남 사람들의 자존감 자부심 증가, 도시화와 중산층의 급속한 증가 등 베트남은 더 이상 ‘월남전’으로 구호 사역이 필요했던 나라가 아닙니다.
특별히 베트남 정부의 자존심과 자신감이 대단히 높아졌습니다. 이제는 외국 NGO 단체의 도움이 아니라 국가 프로젝트 또는 베트남 내 재벌, 기업가의 지원 사업, 사회 사업가의 출현 등 다양한 국가 발전을 위한 인재 집단이 많아졌습니다. 물론 산간 고원지대나 어려운 지역의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청된다고 했을 때 중요한 것은 베트남 사회, 베트남 교회와 한국교회를 비교해보았을 때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베트남 교회는 베트남의 국가 발전 가운데 환경적으로 계속 개방되고 있으며 성장 일변도를 걸으면서 밝은 미래 국면인데, 이와는 반대로 한국교회는 대사회적 이미지뿐 아니라, 실제로 한국교회의 신자들이 감소하고 재정도 감소하면서 코로나 시기에 교회가 문을 닫고 없어지는 상황이어서 한국 선교사들에게 과거와 같은 많은 물질적 지원을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근본적으로 한국교회는 큰 위기와 사역 전환을 경험하고 있는데 베트남 교회는 중산층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지식인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베트남 선교의 기회적 타이밍을 잃어버린 10년, 20년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 점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데 주력하지 못했던 과거가 기회를 선용할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필요를 채우고 현상적인 보이는 프로젝트 선교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한류도 무조건 우리나라 문화 트랜드를 소개하는 것이어선 한계가 있습니다.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들을 더 알려고 하는 상호문화, 교차 문화에 대한 인식과 전문가들이 필요합니다. 다시 또 베트남 언어 구비와 문화 이해 문제로 돌아가네요. 결론은 이러한 문제에서 베트남 한인 선교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자성과 반성을 통하여 우선 남부 호찌민 선교사역의 미래 대안을 모색하려고 ‘사람 세우기’, ‘인재 양성’, ‘리더 재생산’을 위해 KMAC 포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대학을 변화시켜라! 그러면 베트남이 변할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세상 변화, 베트남의 변화에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되는 대학생 지식인 집단에게 복음으로 이들의 세계관을 바꾸어 미래 베트남 교회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베트남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한인 선교사 1세대들은 베트남이 폐쇄적이던 시대에 들어와서 NGO로만 사역을 돌파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리고 사역을 하면 할수록 구호 활동이 규모가 더욱 커지는 NGO 사역 특성상 프로젝트와 활동 중심으로 오히려 변화의 흐름을 보지 못한 채, 2세대, 3세대 선교사 후배들에게 베트남은 직접 사역이 불가능하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힐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현재의 베트남을 완전히 닫힌 국가도 아니고, 완전히 개방된 국가도 아닌 절반 정도 열려 있는 상태라고 판단합니다. 한 가지 방법이나 접근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선교적인 돌파와 사역을 시도하면 가능성이 많은 선교지가 베트남입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베트남 정부에 저촉될 위험한 한계선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면서, 지혜롭게 사역을 한다면 얼마든지 개방된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선교사역이 많은 곳이 바로 베트남입니다.
위에서 계속 이야기했던 현지교회, 공인된 교회, 지방 신학교 등 목회자와 교회 리더를 도울 부분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간접사역을 해왔던 1세대 선교사님들이 후배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직접적인 사역을 하게 돼서 이로 인한 부담과 두려움도 있었다고 봅니다. “직접적으로 사역을 해서는 안 된다. 위험하니까 하지 말아라” 이런 기조가 강했습니다. 이러한 기조는 결국 점점 베트남에 한인 선교사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교적인 돌파와 창의적인 시도보다 베트남 종교법이나 환경을 탓하며 사역을 도전적으로 시도해보지 못 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후로 베트남의 북부와 남부에 있는 선교사들도 패러다임 전환 시기에 함께 ‘같은 베트남, 다른 베트남’의 실제를 파악하면서 서로 만나 베트남에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조성하고 남은 기회를 선용하는 데 힘썼으면 좋겠습니다.
UPMA : 이제는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 최근 몇 년간 베트남 선교사님들이 본국에 보낸 기도 편지와 보고서 중 많은 내용이 베트남의 신종교법 제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베트남 북부 하노이에서 만난 한인 선교사 중에 저희와 인터뷰를 할 때도 선교 보완 문제를 거론하면서 선교 환경이 자유롭지 못한 것에 두려움이 있는데, 베트남 개신교 선교가 종교법, 신종교법 제정으로 더 어려워지는 것일까요?
윤한열M : 하하. 아닙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각종 기독교 선교 관련 언론매체와 선교사들의 보고서에서 ‘신종교법’ 혹은 ‘종교법 개정’이란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서구 특히 미국의 언론은 지금까지 베트남을 종교의 자유와 인권이 침해받는 나라로 관련 기사들을 게재하는데, 다시 이것을 한국의 개신교 관련 언론매체들이 인용하여 게재하는 양태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베트남이 종교법을 개정한 이유 중 하나는 대내외적으로 보여줄 말한 법리적 근거가 없었거나 취약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것입니다.
베트남 정부는 개방화와 더불어 갈수록 다양하게 발전하는 국제 관계 속에서 신앙과 종교에 관한 자유와 활동을 보장하는 법리적 근거의 마련과 인민들의 종교의 자유를 보다 더 합법적으로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법령을 제정한 것입니다. 곧 대내외적으로 베트남의 신인도 향상과 이를 통한 안정적인 국가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 종교법을 제정한 근본적 이유입니다.
또한 종교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베트남 정부가 제도권 안에서의 종교 활동 양성화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종교단체는 보다 더 합법적으로 활동을 보장하겠다는 표현이며, 제도권 밖의 종교단체들은 엄중하게 단속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곧 종교단체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하여 종교법을 제정한 것이며 이는 베트남의 개신교뿐 아니라 6대 합법적인 종교에 모두 적용 해당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이단 사이비 집단은 엄중히 단속하겠다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다만 주의가 필요한 것은 개신교와 관련해서 베트남 정부가 가장 싫어하는 반정부활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선교사 중 추방된 선교사들이 왜 추방되었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면, 들어가지 말아야 할 소수민족 지역에 들어가서 그들을 접촉하고 실제로 사역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의 소수민족 지역은 정부에 의해 3개로 구분되어 관리해오고 있는데 오픈된 지역, 허가를 받고 들어가야 하는 지역, 정말 들어가면 안 되는 금지 지역입니다. 한국 선교사 중 자기가 비자를 허락받은 해당 비자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기 때문에 추방되었는데, 예를 든다면 위의 소수민족 사역,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허가받지 않은 곳에서 강의, 집회를 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소수민족 문제와 관련해서 과거 베트남 전쟁 전후의 실제적인 이유로 베트남 정부는 개신교가 미국 종교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듯합니다. 베트남 개신교 인구의 60% 이상이 중부 산간 지역의 소수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과거에 미국 편에서 베트남 공산당과 전쟁을 한 사람들이고, 지금도 또한 유일하게 반정부활동이 일어나는 지역이기도 한데, 반정부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 대부분이 개신교도들이어서 정부의 감시와 경계를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반정부활동의 실제 배후 조정자가 미국 선교사로 밝혀진 사례도 있었습니다. 반정부활동을 하는 중부 산간 지역의 소수민족 기독교 지도자들의 합법적인 색출과 처벌을 위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 종교법 관련한 한국 언론의 반응과 베트남 한인 선교사들의 보고는 베트남의 종교법 제정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부족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베트남이라는 창의적 접근지역으로 불리는 이곳이 점점 도시화하면서 도시로 유입되는 다양한 소수민족, 사회 경제가 발전하면서 필요들이 다양해지고 선교적인 기회가 생성되고 있는데, 사역적인 시도나 선교적인 돌파를 통한 노력보다 ‘선교 보완’ 문제에 숨을 수 있는 것이 종교법, 신종교법 카드인 것 같습니다. 과장되거나 왜곡된 부분이 많습니다. 베트남 선교 환경이 종교법 제정으로 더 어려워지는 것은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다만 종교법이 위에서 말한 외국인 선교사의 체포와 추방 및 교회폐쇄 등에 활용될 수 있기에 지혜롭게 사역하고, 열린 환경을 선용하는 베트남 선교를 해야 할 것입니다.
UPMA : 바쁘신 가운데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기도 제목을 말씀해 주십시오.
윤한열M : 감사합니다. 저희 가정과 CEM선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CEM선교회가 베트남 대학생 선교의 대안 공동체로 계속해서 든든히 서 가도록
- CEMer라 부르는 선교회 회원들이 ‘캠퍼스 제자운동, 기독 전문가 운동, 하나님 나라 운동’을 잘 펼쳐가도록
- 운한열/임시연 선교사 부부가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열정과 감각으로 청년 대학생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 캠퍼스 강의실에서 일반 대학생들을 만날 때 복음의 영향력을 지혜롭게 드러낼 수 있도록
- 한인교회 주일예배, 베트남 교회, 베트남 한인기업 모임에 초대되어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할 때가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위로하고 새롭게 세워갈 수 있도록
정리 | 정보애(SIR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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