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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 건축에 감춰진 선교적 비밀(1)

성경이 말하는 CAS
D·I·G·I·T·A·L JOURNAL  2018. 2

이 글은 김병선 선교사님의 “선교의 성경적 관점” 강의 내용을 설교문으로 재정리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건축 속에 담긴 선교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강단에서의 선교적 설교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본고에서 사용된 성구 인용은 개역개정판을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성경은 분명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선교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살펴볼 예루살렘 성전 건축 기사 속에도 역시 동일한 맥락의 놀라운 선교적 메시지들이 숨어 있습니다.

1. 성전건축의 목적(대상22:5)
먼저 살펴볼 것은 이 성전건축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큰일의 목적은 그 일을 처음 기획한 사람에게 물어야 가장 정확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흔히 그 건축을 실행한 솔로몬의 이름을 따서 솔로몬 성전이라고들 하지만, 이 성전 건축을 처음 기획한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결국 이 성전건축의 목적은 최초 기획자 다윗에게서 찾아야 합당할 것입니다. 그 답이 역대상 22장 5절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다윗은 자신이 준비하고 장차 자신의 아들 솔로몬이 건축하게 될 성전을 두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이 성전에 대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의식이 분명했습니다. 이는 다윗 자신이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이룰 것 다 이루었으니 이제 자기 왕권의 종교적 근거를 위해서나 자기 이름을 위해서 성전도 건축하려 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역사에 처음 등장했던 골리앗과의 싸움 장면에서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라고 선포했던 것처럼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진정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던 것이죠.

두 번째로 다윗은 이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국 사람들이 이 성전을 바라 볼 때, 성전의 그 웅장함 때문에 그 자체로 하나님의 명성과 영광을 보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성전건축을 준비하면서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처음부터 누구를 의식하고 있는 것입니까? “만국”, 바로 열방의 모든 종족들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의 눈에 이 성전이 과연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어쩌면 앞서 성전건축의 목적으로 나타난 “여호와를 위하여”의 구체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의 평생에 그 마음을   지배했던 가장 중심적인 정체성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것’인데, 그 중심이 바로 열방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108편 5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선포하는데, 여기서도 그는 오직 주의 영광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 영광이 다름 아닌 “온 땅에서” 드러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성전건축의 목적과 일치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며, 바로 이 목적과 동기로 그는 하나님의 성전 건축의 대 사업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다윗의 성전건축의 목적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성전
성전의 그 웅장함 그 자체로 열방의 모든 종족들에게 하나님의 명성과 영광이 드러나야 한다

2. 성전건축을 위해 동원된 이방인들
다음으로 예루살렘 성전건축 이야기에서 주목할 사실은 이 성전 건축에 동원된 사람들입니다. 성전건축에서는 대체로 다윗 아니면 솔로몬이 부각되기 때문에 건축에 동원된 사람들의 면면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이를 잘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들이 있습니다.

    (1) 성전건축 준비에 동원된 이방인들
먼저 이 예루살렘 성전건축의 총 지휘자의 이력이 특별합니다. 그는 “히람”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열왕기상 7장 13, 14절에 보면, “13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14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사람은 그 모친이 이스라엘 납달리 지파의 사람으로 이스라엘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 부친은 이방 두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그 모친은 레바논 지역에 이주해서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이방인 레바논 사람과 결혼해서 이 히람이라는 아들을 낳은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민족의 상징으로 높이는 이 거룩하고 엄청난 대 사업의 총 책임자가 순혈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이방인과 이스라엘 자손의 혼혈족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관습상 사실상 이방인, 그것도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 땅에 살던 사람을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모든 사람들이 다 보게 될 이 성경 기록에 그 이름과 출신이력까지 상세히 밝히고 계신 것이죠. 여기에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히람은 그래도 이스라엘의 피가 반은 섞인 사람이었지만, 이제 역대상 22장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성전건축에 참여케 하신 또 다른 무리들이 있는데, “다윗이 명령하여 이스라엘 땅에 거류하는 이방 사람을 모으고 석수를 시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땅에 거류하는 이방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우선 이들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을 따라 나왔던 이방 사람들입니다. 출애굽기 12장 38절에 보면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라고 하는데, 여기 “잡족”이라는 번역은 참 아쉬운 번역입니다. 영어 성경에 “many other people”을 이렇게 번역한 것인데, 선교적인 안목이 없는 사람들이 번역을 하다보니까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닌 이방인들인 ‘많은 다른 족속들’이 출애굽 당시부터 가나안 땅에까지 함께 와서 섞여 살았던 것이고, 후에 예루살렘 성전 건축에 이렇게 참여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전경

다음으로 이스라엘 땅에 거류하는 이방 사람들에는 가나안 정복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섞여 살았던 가나안 족속들도 있었습니다. 역대상 22장 18절에 보면 “··· 이 땅 주민을 내 손에 넘기사 이 땅으로 여호와와 그의 백성 앞에 복종하게 하셨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래 가나안 원주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 때문에 완전히 멸족시키라고 명령하셨던 족속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듯이 여러 가지 사유로 그 중 일부는 멸족되지 않고 남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종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함께 거류하였지만, 혈통상 이방인들이었던 이런 사람들을 동원해서 다윗은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못 만드는데 쓸 철이며,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놋 등의 성전건축 재료를 준비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이들이 이스라엘의 노예 신분에 있던 자들이었기 때문에 성전건축 노동에 동원된 것이라고 볼 여지도 있지만, 단지 그런 이유라면 성경에 이들에 대해 이처럼 구체적으로 기록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비록 신분은 그러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룩한 하나님의 사업에 동참케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히 있는 것이죠.

이상의 두 경우는 이방인들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피가 섞였거나 신분상 이스라엘에 거주하던 거주민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런데 역대상 22장 4절에 보면 또다른 경우의 이방인들이 등장합니다. “또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다윗에게로 많이 수운하여 왔음이라” 바로 레바논과 두로와 시돈의 이방인들이 오늘날도 최고급 목재로 손꼽히는 백향목을 그것도 무수히 준비한 것입니다. 이들은 피도 안 섞였고,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지도 않은 사실상 이스라엘과는 상관없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조차 이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준비케 하셨습니다. 이렇듯 예루살렘 성전은 더 이상 이스라엘만의 성전이라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이방인들이 성전건축 준비에 동원되었으니 말입니다.   글 | 김병선 선교사,  정리 | 강호석(SIReNer)    (계속해서 CAS(카스) 12호에 이어서 연재됩니다.)

* *위 자료의 저작권은 UPMA에 있으므로, 인용하여 사용하실 경우 반드시 출처를 남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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