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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주류 종족 vs 소수 종족, 종교갈등과 기독교 유산

업마 생각
D·I·G·I·T·A·L JOURNAL  2017. 10

미얀마는 19세기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48년에 독립한다. 미얀마 독립에는 불교의 역할이 상당히 작용했다. 그래서 영국은 식민지배 기간 동안 주 종교인 불교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억불정책을 폈으며, 다수종족인 ‘버마족’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주변부의 소수종족인 친족, 까친족, 카렌족(꺼인족) 등을 통한 종족 분리정책을 사용하였다. 이는 미얀마 외에도 영국의 전형적인 식민지 지배 방식인 ‘분할 통치(divide & rule)’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문제는 식민제국주의가 기독교 선교와 상당 부분 오버랩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 정부는 미얀마의 공교육 부문에서 기독교 선교의 미명하에 1852년 불교 주도로 행해지던 교육체계를 폐지하고 미션스쿨과 공립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미션스쿨에서는 성경 교육이 의무화되었으며, 공립학교에서는 불교적 내용이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 때문에 15~16세에 행해지던 출가의식인 ‘신쀼(shinpyu-bwe)’의 시작 연령이 공립학교 교육과정에 저촉되지 않는 6세 이전으로 앞당겨졌다. 당시 기독교 선교사들은 버마족, 몬족, 샨족 등 주류 불교종족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시도했으나, 워낙 뿌리 깊은 불교 영향력으로 인해 개종자 수는 미미했다. 이 때문에 주류 불교종족들에 대해 개척선교로 돌파하기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주변부 소수종족들을 선교하는 병행 선교를 전개했다. 그 대표적인 종족이 친, 까친, 카렌 외에도 와, 아카, 라후 족 등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얀마에서는 불교신도들을 중심으로 반제국주의, 반기독교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906년 기독교 YMCA에 대항하기 위해 청년불교도연맹(YMBA; The Young Men’s Buddhist Association)이 결성됐다. 미얀마의 젊은 변호사들이 스리랑카 청년불교도연맹(YMBA)을 알게 되면서 만들어진 YMBA는 불교부흥과 불교학교 그리고 미얀마 전통문화보존을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1919년 이후, 점차 정치적인 성격을 띠며 그 이름을 ‘전국불교도평의회(GCBA)’, 다시 ’전 버마평의회(General Council of Burmese Associations)로 확대했다. 전 버마평의회는 영국상품 불매운동과 불교 민족주의 운동을 펼치며 불교 사찰이나 단체를 전국적으로 조직화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불교단체들은 중북부 만달레이의 불교협회(Buddhasasananugaha), 남부 몰레먀인의 불교수지회(Sasanadhara), 서부 뻬테인의 아쇼카 협회(Asoka Society) 등이다. 또한 반식민지 반영 투쟁 지도자는 옥뜨마(U Ottama) 승려였으며, 청년불교도연맹 YMBA에서 활동한 우 위자라 승려는 반영 설법과 반영 운동을 벌이다 세 번째 투옥으로 옥사하게 되는데, 이는 1920~30년대 미얀마 전체 농민봉기로 이어지게 된다.

미얀마 독립에는 학생들의 역할 또한 적지 않았다. 1930년 학생들을 주축으로 민족주의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당시 학생들은 자신들의 이름 앞에 ‘떠킹(Thakin)’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미얀마 말로 ‘주인’이란 뜻으로 카렌, 까친, 샨족 출신의 병사들이 당시 영국군 장교를 ‘떠킹’이라 부르며 마치 자기 주인처럼 여기는 것에 반대해 ‘미얀마는 미얀마인이 주인’이라는 의식개혁 차원에서 사용한 것이다.

이들은 전국에서 민족의식과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는데, 1940년경에는 청년 승려들도 이 운동에 참여하는 등 영향력을 키워나가다가, 1935년에는 정당으로 정식 출범했으며, 영국 교육정책 문제를 계기로 학생 파업을 주도하기도 한다. 당시 이 운동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마웅 아웅 산(Maung Aung San)과 마웅 누(Maung Nu)였다. 아웅 산은 후일 미얀마 독립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이며, 마웅 누는 미얀마 독립 후 초대 수상이 된다.

이렇듯 식민시대 미얀마에서 패망과 존립 사이의 국가적 위기에 대한 불교가 보여준 대응과 그 사회적 영향력은 상당히 적극적이고 변혁적이었다. 마치 19세기 우리나라 구한말 조선과 일제 식민시대 기독교 단체들과 지도자들이 주도했던 국채보상운동과 3.1 만세운동 등의 독립 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을 보는 듯하다. 양국 독립과 국가 건설의 근간에 있어서 미얀마는 불교의 영향력이, 대한민국은 기독교의 영향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미얀마 기독교 선교는 역사적인 과거 식민 시대 정부의 권력이 남긴 기독교 유산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소수종족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미얀마 선교의 현실 속에서 과연 ‘미얀마 전체 복음화’ 즉, 버마족, 샨족, 몬족, 라카인족 등 주요 불교 종족들에 대한 복음화 과제들은 어떻게 함께 돌파해야 할 것인가? 지금이야 말로 성령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실제적인 연합을 통한 전략적 돌파가 절실한 때이다다.  SIReNer 정보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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