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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 사태 팩트 체크

카스 디스커버리
D·I·G·I·T·A·L JOURNAL 
 2017. 12

1. 로힝야 사태 개요
로힝야족은 미얀마 북서부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으로, 미얀마, 방글라데시,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지에 거주한다. 미얀마의 로힝야족은 약 110만명 정도이며, 방글라데시와 접경 지역인 라카인(옛 아라칸)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온 불법 이민자라는 의미에서 ‘벵갈리’라고 불린다. 미얀마 정부도 이들을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대다수가 무슬림인 탓에 불교국가 미얀마에서 차별과 심각한 인권침해가 이어져오고 있다. 2012년 UN은 로힝야족을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종족’ 중 하나로 규정했다. 또한 2017년 9월 로힝야 마을 약 204곳이 초토화된 위성사진이 공개되면서 미얀마 정부의 인종청소에 대한 국제적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런데 이 사태는 단순히 미얀마 정부의 자국 내 소수종족 로힝야족에 대한 일방적인 인권탄압으로 보기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이슈들이 깔려 있다.

2. 로힝야 족 사태 핵심 이슈
1)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오늘날 이 사태의 시작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대체로 19세기 영국의 미얀마 식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1). 1824년 영국-버마(현 미얀마)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버마의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식민지를 세웠다. 그리고 1885년 영국은 시쳇말로 “손 안대고 코 풀기” 방식의 식민지에 대한 분할통치정책으로 역시 식민지였던 방글라데시의 사람들을 강제로 미얀마 라카인 주로 강제이주시켜 버마족을 지배하는 앞잡이로 삼고 식민 지배를 강화하려고 하였다. 자연히 그 과정에서 영국이 의도한대로 로힝야족에 의한 원주민인 버마족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었고, 이로 인해 라카인 주를 중심으로 두 종족 간의 인종, 종교, 계층적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 후 독립과 함께 버마족이 다시 실권을 잡으면서 반대로 로힝야족이 열세가 되어 계층적 우열이 역전된 상황으로 그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1) 라카인 주와 로힝야족에 대한 더 자세한 역사적 연원은 본 호의 기획특집 참조
미얀마에서의 폭력 사태 이후 로힝야족 난민 비공식 정착촌인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캠프(출처: 유엔난민기구(UNHCR)

2) 누구의 책임인가?
이것이 생각보다 단순하지가 않다. 앞서 간략히 살펴본 로힝야 사태의 역사적 연원을 따져보면 둘 사이의 씻을 수 없는 민족감정이 개입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해당 라카인 주에서는 그러한 민족감정이 엄청나다. 이것은 비단 주종족인 버마족 뿐 아니라 미얀마 국민으로서의 여타 소수종족들도 동일한 입장에 있다. 지금 미얀마인들의 로힝야족에 대한 폭행, 살해, 강간 사태가 거의 ‘인종청소’ 수준으로 비화되고 있지만, 이보다 더 한 일들을 식민시대 당시 미얀마인들도 로힝야족에게 당했다(2).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그들이 무장반군단체(3)를 창설하여 라카인 주 안에서 자치독립을 주장하며 버마족은 물론 다른 소수종족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피해를 입혀왔다는 사실이 선행되어 있어, 이것이 미얀마 내부에서 로힝야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에 다분히 깔려 있다. 실제로 미얀마 정부가 상당기간 미얀마 땅에 거주하여 왔던 로힝야족을 정식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불법이민자 취급(벵갈리)해 온 것 역시 이해가는 부분이 있다. 만약 일제치하 우리 민족을 압제했던 일본인들이나 그 앞잡이 노릇 했던 친일파 매국노들이 우리나라가 독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나라 어느 일정한 지역에 집단으로 거주하며 자치권을 달라고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따지고 보면 미얀마 내부의 관점에서는 그와 동일한 상황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이와 같은 사태, 무려 60만 명 이상의 로힝야 난민이 발생했고, 그들의 입에서 증언되는 미얀마 군부에 의한 아비규환 같이 잔혹한 인권 유린과 지금도 미얀마 접경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의 끝이 보이지 않는 난민캠프의 참상은 단지 로힝야족이 과거 저지른 만행에 대한 자업자득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이 사태의 해결이 어렵고 결국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2) 아라칸(라카인) 학살 : 1942년에는 무장한 로힝야족이 라카인 지방에서 미얀마 원주민 25,000여명을 학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3)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 Arakan Rohingya Salvation Army)

 

 


3)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아웅산 수 치는 왜 이 사태에 대해 미온적인가?

지난 8월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과 그로 인한 대규모 난민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자 국제사회는 일제히 미얀마 정부를 비난했다. 특히 2015년 총선 승리와 함께 정권교체를 이끈 아웅산 수 치의 미온적 반응에 대한 비난이 거셌다. 더욱이 아웅산 수 치 여사는 미얀마 민주화와 인권 투쟁에 앞장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인물이어서 그 노벨상 박탈 여론까지 일어난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민주인권투사였던 아웅산 수 치는 권력을 잡고난 후 변절한 것인가? 여기에도 역시 복잡한 미얀마 내부의 정치 역학이 얽히고설켜 있다.
미얀마는 1988년 이래 오랜 민주화 투쟁 끝에 드디어 2015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 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전체 의석의 59%를 확보하면서 미얀마 민주화의 결정적 교두보를 마련하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때문에 항간에서는 이제 미얀마의 군부 독재가 종식되고 완전히 민주화되었다고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직 미얀마의 민주화는 넘어야 할 산이 산적한 것 같다. 

이러한 미얀마의 정치적 변화는 아세안(ASEA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미얀마 군부가 한걸음 물러나 2008년 신헌법을 제정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신(新) 헌법을 통해 아웅산 수 치와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총선에서 압승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고 보는데, 그러나 이 헌법은 태생적으로 몇 가지 결정적 맹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전체 연방의회 의석의 25%는 총선과 관계없이 군부에 할당되도록 하고 있으며, 미얀마 군 통수권 역시 민선 대통령이 아닌 군 총사령관에게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미얀마 현실은 여전히 결코 군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비록 아웅산 수 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의회 과반수를 넘긴 상황이어서 여러 가지 개혁입법은 가능해졌지만, 이것으로 국가의 권력체계 자체가 민주화 세력에게 이양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실상 군통수권을 가진 군부가 결정적인 국가 권력은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설명이 로힝야 사태 논의에서 할애되어야 하는 이유는 결국 로힝야 사태 책임의 주체가 미얀마 군부이고, 로힝야족 사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군부는 사실상 미얀마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정 연설에서 아웅산 수 치는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 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며 모든 인권 침해와 불법 폭력을 규탄한다. 이에 대한 처벌은 확실한 증거를 토대로 결정하겠다.”라고 말했지만, 군 통수권조차 없는 이들이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을 금지할 실권은 없다고 봐야 한다. “법대로 하겠다.” 이것이 현재로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인 것이다. 또한 앞서 지적했듯이 로힝야 사태를 바라보는 미얀마 내부 여론은 버마족은 차치하고 주요 소수종족들마저도 로힝야의 인권보다는 그들 간의 역사적 원한 관계에 더 치우쳐 있음이 사실이고, 이들 소수종족의 지지에 기반하여 정권을 탄생시킨 아웅산 수 치로서는 다가올 총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로힝야 사태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어 가까스로 일군 민주화의 여망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를 정치적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그러니 이러한 미얀마 내부의 복잡한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아웅산 수 치를 비롯한 미얀마 정부가로힝야 사태에 대해 불가피하게 미온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로힝야 사태 전망과 기도제목
이로 인하여 현실적으로 미얀마 로힝야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미얀마 내외의 상황이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당장에 로힝야족 난민 구호를 위한 기부에 참여하는 것도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들의 책무를 다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함께 이 사태를 바라보며 한 손은 하나님을 향해 그 도우심을 구하며, 또 한 손은 그들을 향해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품고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1) 우선 회개하자.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직접적인 책임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비록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두 민족 간에 없었어도 될 이 갈등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기독교 국가인 영국의 책임을 간과할 수 없다. 그들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함께 회개하자는 것이다.

그 과오는 비단 로힝야 사태 뿐 아니라, 지금은 다소 수면 아래에 있지만, 여전한 갈등의 불씨를 지니고 있는 주종족 버마족과 여타 소수종족들 간의 갈등과도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이미 복음화된 일부 소수종족들에게서 버마족으로 복음이 흘러가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특별히 영국교회와 선교사들의 암묵적 동조가 작용한 결과이다. 우리가 이를 품고 함께 회개하고, 이 땅을 섬기는 한국 선교사들이 다시 복음으로 이를 위로하고 서로 화평케 하는 사역을 위해 헌신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2) 아웅산 수 치와 미얀마 정부가 생존과 인권 문제에 대한 대승적 결단을 하도록 기도하자.
정치적으로는 안팎으로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져 있지만, 단순히 한 사람 한 사람의 무고한 생명이 사느냐 죽느냐, 또 그들에게 부여된 고귀한 인격이 존중을 받느냐의 문제는 냉철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이것이 당장의 참혹한 문제를 현실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아웅산 수 치가 국정연설에서 언급한 내용이 그저 미봉책이 아니라, 인권과 생존의 문제만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개입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 또한 미얀마 인들의 마음에 정치적, 종족적 갈등의 차원을 넘어서서 생존과 인권의 문제에 대해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주셔서 그러한 정부의 결단이 실행될 수 있는 여론적 지지가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하자. 더불어 국제 사회 역시 아웅산 수 치와 미얀마 정부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자제하고 생존과 인권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힘을 실어줄 수 있도록 기도하자.

3) 무엇보다 로힝야 난민들을 위로해 주시도록 기도하자.
지금 무엇보다 기도가 필요한 것은 바로 로힝야 난민들일 것이다. 눈앞에서 부모가 죽고, 자녀가 죽고, 아내가, 그 딸이 강간당하는 것을 목격한 그들의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을 오직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위로해 주시고, 그 고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소망과 회복의 자리로 나아오도록 기도하자. 이를 위해 그들을 섬길 자, 특별히 그 십자가 사랑으로 보듬어줄 하나님의 사람들을 많이 보내주시도록 기도하자. 그들에게 필요한 생존 물자들과 환경 역시 넉넉히 공급되어 영육 간에 위로를 누리도록 기도하자.  글 |  강호석(SIReNer)

 *위 자료의 저작권은 UPMA에 있으므로, 인용하여 사용하실 경우 반드시 출처를 남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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