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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라이 그레이스 교회 싸이 묘민 목사

업마가 만난 사람
D·I·G·I·T·A·L JOURNAL  2017. 10

싸이 묘민(목사, 샨족, 40세), 느뽀시(사모, 카렌족, 37세), 치앙라이 그레이스교회

치앙라이 그레이스 교회가 위치한 Rimkok이라는 지역은 택시기사도 장소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상당히 시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예배 전인데도 교회 마당에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오토바이가 즐비했고, 예배당에서 예배준비가 한창이었다. 치앙라이 교회 개척을 위해 결혼한 지 3주 만에 이곳에 왔다는 싸이 묘민 목사 부부(Sai myo myint, 목사, 샨족, 40세/ Naw Phaw shee(사모, 카렌족, 37세)는 신분이나 재정적으로 불안정한 정착 초기에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가르치셨다고 고백한다. 이제 태국 치앙라이에서 미얀마 이주민교회 목회를 하게 되는 여정 가운데 만난 기쁨과 도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치앙라이 그레이스 교회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교회는 약 14년 전, 2003년 3월 23일 시작되었다. 나는 미얀마 따칠레익 출신으로 신성호 선교사(*신성호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CAS 6호의 태국내 미얀마 선교팀 사례글 참고)의 요청으로 치앙라이 그레이스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 크리스천 친족 여성을 포함한 7명이 함께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중 5명은 불교도였다. 그 중 2명의 불교도들이 교회를 세우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미얀마인을 만날 때마다 ‘미얀마에서 온 목사가 있다’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로부터 6개월 후에 20명 정도가 모였는데 당시 치앙라이 시내에 건물을 빌려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이 후 몇 명의 카렌인들을 만났는데 나를 정부군 스파이로 오해했는지 처음에는 잘 믿지 않더니 후에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석했다. 약 2년이 지난 즈음에 우리는 기도하면서 교회건물을 한국의 한 교회의 도움으로 지금의 장소에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방 한 개는 우리 부부가 사용했고 나머지 방은 예배 모임장소로 사용되었다. 신성호 선교사가 이곳을 처음 우리에게 소개했을 때 이곳은 허허벌판이었다. 산을 깎아서 만든 곳이어서 나무도 없고, 전기, 수도, 심지어 사람도 살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곳은 무덤 근처여서 아무도 오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때는 걱정이 앞섰고, 주변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것이 무모하다고 이야기했다. 심지어 태국인 목사도 그곳에서는 교회개척하기 어렵다고 말렸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한 이 교회가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 이 교회처럼 성도들도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깜깜한 어둠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나아가는 삶의 변화가 있게 되었다.

성도들의 헌금으로 지어진 신축건물

교회 건축을 준비할 때 모금된 헌금은 약 100여명이 모일 수 있는 정도의 아주 작은 예배당을 지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나에게는 교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200명의 성도와 함께 예배하는 비전이 있었다. 당시 선교부 리더인 신성호 선교사와 이 비전을 나누었을 때 이를 공감해주었고, 필요한 나머지 자금을 마련해 주면서 지금 크기의 교회가 지어질 수 있었다. 교회가 건축되고 2, 3년 동안은 이 비전을 잊고 5, 60명 정도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7년 이후에 이 비전을 생각나게 하셔서 나와 아내는 우리의 비전을 성취해 주시기를 기도하기 시작했다. 교회 성도들과도 함께 예배시간에 기도했지만 60명 이상이 모여지지 않고, 새로운 성도는 오지 않고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민에 휩싸여 예배당에 앉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기도할 때 내 눈에 예배당 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의자는 고작 60개 밖에 되지 않았다. 순간 주님이 내게 이렇게 이야기 하시는 듯 했다.

“의자가 60개 밖에 되지 않는데 200명을 보내 준들 어찌 이 교회가 그들을 수용할 수 있겠느냐?” 나는 당장 의자를 200개를 구입하겠다고 결심하고 성도들과 이 마음을 나누었다. 그러자 성도들이 “교회 성도는 60명밖에 되지 않는데 왜 의자를 200개나 구입하느냐, 교회가 재정적으로 넉넉하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구입해야 하는가?”물으며 불만이 속출했다. 기도하기를 권유했다. 성도들에게 여러분들이 이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의자를 더 살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의자를 구입했고 매 주일마다 새로 구입한 의자에 앉아가면서 기도했다. 그로부터 1년 후에 모든 의자가 가득 찼다.

치앙라이그레이스교회 전경

Q. 교회사역을 하면서 받은 큰 도전이 있었다면?
앞에서 나눈 얘기처럼 200명의 성도가 되었을 때, 우리는 그레이스 선교부로부터 사역비 받는 것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선교부로부터 사역비를 받아오고 있었고, 다른 지역의 선교부 멤버들도 역시 모두 사역비를 지급받았다. 교회 멤버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들은 내가 한국 선교사로부터 급료를 받고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산다고 생각을 했다. 그것이 우리가 성도들과 더 친밀해질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가족과 같은 교회를 만들어가길 원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려움이 있고 도전이 있을 것이 예상되었지만 재정 지원을 받지 않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선교부에서도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고 허락해 주었다. 어려움에 대한 도전은 예상을 했지만 사역비를 받지 않기 시작한 1년은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 가족은 채소를 키워 내다 팔아 생활비에 쓰곤 했다. 교회 성도들이 이런 우리의 사정을 알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되었고, 목사가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돕고 교회를 도와야 한다고 그들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재정적인 독립은 우리 교회를 굉장히 가족적인 분위기의 교회가 되도록 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그때 내가 배운 교훈은 내가 선교사들과 가까울수록 교회 공동체와는 멀어지고 반대로 외부 선교사들과 멀어질수록 교회 공동체와는 더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지금 새로 세워진 건물도 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지어진 것들이다. 이것은 우리의 자립의 시작이었고, 가족 교회(family church)로의 출발점이었다.

치앙라이 그레이스교회 주일예배 후 식사교제(좌), 치앙라이 그레이스교회 어린이들(우)

우리 교회가 자립한 이후로 신성호 선교사는 우리 교회를 모델로 삼아서 그레이스 선교부의 원칙을 정했다. 우리 교회가 샘플이 되어서 교회 멤버들과 가까워지지기 위해 3년 안에 자립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많은 교회들이 자립을 두려워했지만 이는 그레이스 선교부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고 강화되었다.

Q. 현재 교회 성도들의 구성은?
지금은 주일학교에 70명, 장년 그룹이 200여명(주로 20,30대가 150명 정도)이며, 보통은 15~16년 정도 치앙라이에 거주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로 호텔이나 상점, 음식점, 가정부, 건축 노동에 종사한다. 대부분은 카렌주와 양곤시에서 온 사람들이다. 종족 구성은 카렌(꺼인), 버마, 샨, 친, 아카, 라후, 까야, 까친, 라카인, 와 등 다양하다.

치앙라이 그레이스교회 주일예배

현재 성도 200명 중 6명의 불교신자가 매주 예배 참석 중이다. 주일학교에는 5개 그룹으로 나누어 예배를 드리고, 평일에도 여러 셀그룹이 진행된다. 다음세대를 위한 태국어 수업도 진행 중이다. 아이들이 태국 학교를 다니는데 부모들이 태국어를 잘 몰라서 언어를 잘 못한다. 다행히도 난 따칠레익(미얀마 국경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태국어를 할 수 있어서 직접 가르칠 수 있을 정도다. 매 주일에는 오전 10시 30분에 아침예배, 오후 8시에 저녁예배로 2번씩 예배를 드린다. 현재 주일 낮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 10~15명은 밤새도록 일하고 참석하는 사람들이다. 예배가 끝난 후에 집에 가서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한다. 그 만큼 주일예배를 중요시한다. 또한 매 주일 2가정이 자원해서 점심식사 섬김을 하고 있다. 이에 필요한 재정은 교회 헌금이 아니라 성도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복음으로 변화된 후 교회 섬김을 도맡기 시작했다. 섬김에 행복해하는 모습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면서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했다. 주변에 불교도인 친구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 “왜 주일에 예배를 드리나? 주일에 쉬면 돈을 벌지 못하는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러나 성도들이 변화된 모습으로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증명해 냈다. 이들은 지금 안정된 직업, 교육, 집과 차량도 가지고 있다. 주변 친구들이 놀라 혹시 교회가 도와주는지 아니면 한국의 누군가가 도와주는 거라 생각할 정도였다. 왜냐면 불교도 태국 이주 미얀마인들은 여전히 술에 취해 있고 차도 없이 자전거를 끌고 다닌다. 15년 전 태국에 왔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

치앙라이 그레이스교회 젊은이들

Q.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변화가 있었나?
5,60명 정도가 주일에 모였는데 태국인 사장이 낮 시간에 예배드리러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2-3년 동안은 주일 저녁예배만 가능했다. 낮 예배에는 10-15명 정도만 예배에 참석했다. 그래서 그들이 주일 낮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먼저는 사장의 허락이 필요하고, 만약 그들이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게 되면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 치의 급료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어느 순간 그들이 교회에 나와 성경 읽고 예배하기를 즐겨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재정을 포기하기로 결단하며 주일 예배를 참석하기로 했다. 주일 예배를 참석하되 이틀 치의 급료를 포기하기로 결단한 것이다. 그 후로 2개월 만에 사장도 변화되어 주일날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었다. 이유인즉, 이전에는 술에 취해 도둑질하고, 싸우는 등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지 못했던 이들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수님을 알게 되면서 삶이 변화된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큰 충격을 받았고 어떤 이유로 이들이 이렇게 변화 되었는가 궁금해 했다. 그만큼 성도들의 삶이 변화되고, 직장에서도 성실함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어떤 사장은 우리 교회에 찾아와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직원들에게 예배를 드리게 해 주는 대신, 다른 직장을 얻지 말고 계속 일해주기를 부탁까지 하고 갔다.

치앙라이 그레이스교회 주일예배

Q. 앞으로의 비전?
미얀마 본토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올해 처음으로 미얀마 양곤에 교회를 개척했다. 더 많은 교회를 미얀마 본토에 세우기를 원한다. 그리고 많은 목사를 지원하고 싶다. 어떤 이들은 미얀마에서 사례비도 없이 어렵게 사역한다. 지금은 따칠레익에 있는 한 목사를 후원하지만 적은 비용이라도 더 많은 사역자를 지원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다음세대를 위한 선교센터를 세우는 것이다. 특히 2년에 1번씩 태국의 치앙마이, 매사이, 미얀마의 짜이퉁, 따칠레익, 따웅우 지역에서 온 300명의 청소년이 모여 캠프를 한다. 교회 장소와 섬김 모두 성도들의 몫이다. 그리고 성도들이 그것을 즐겨한다. 앞으로 이렇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미션센터를 세우고 싶다. 미얀마 본토에서는 어렵지만 여기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싸이묘민 목사 가족

Q. 기도제목이 있다면?
1. 먼저는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해 달라. 지금의 부모세대는 예수님을 알고 신앙도 가졌는데, 다음 세대는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기를 원한다. 이곳에서의 삶의 질은 좋아질지 몰라도 그만큼 도전이 많이 생길 것이다. 지금의 신앙이 다음세대로 잘 흘러가길 바란다. 매주 이것을 위해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2. 다음으로 교회의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해 달라. 규모의 성장이 아닌 내면의 성숙한 믿음을 가진 교회로 성장하길 원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3. 개인적으로는 둘째 아이가 아토피가 심해서 2개월에 한 번씩 치앙마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잘 치료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한다.

4. 마지막으로 그레이스 선교부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선교부를 통해 치앙라이 그레이스 교회를 세우시고 성장하도록 일하셨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 해준 한국의 교회에도 감사를 전한다.

주일예배 중에도 삶의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며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한 미얀마의 목회자와 이를 집중해서 듣고 적용해 보려는 성도들을 보면서 치앙마이의 미얀마인들뿐만 아니라 미얀마 본토의 모든 종족들이 어두움에서 주님의 빛 가운데로 나아오는 꿈을 꾸어본다.  정리 | 채형림(SIReNer)

 *위 자료의 저작권은 UPMA에 있으므로, 인용하여 사용하실 경우 반드시 출처를 남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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