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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의 나라 ‘미얀마’

도시와 사람들
D·I·G·I·T·A·L JOURNAL  2017. 8

살윈강을 따라 흐르는 작은 배

태국의 국경도시 매솟(Mae Sot)과 접해있는 미얀마 카렌/꺼인(Karen/Kayin)주는 1940년대부터 미얀마 군사정부와 중앙통제권을 놓고 갈등을 벌이던 지역으로 한동안 외국인에게도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최근 차츰 안정화 되면서 외국인 출입뿐만 아니라 아세안경제공동체가 구축됨으로 물류의 흐름이 활발해지고 그 개발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카렌/꺼인주와 접해있는 몬(Mon)주의 몰레먀인(Mawlamyine)은 살윈 강(Salween River)과 안다만(Andaman)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동서경제회랑 건설의 중요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태국의 매솟을 방문해 볼 기회가 있다면 각각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파안(Hpa-an)과 몰레먀인(Mawlamyine)을 함께 가 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파안 근교의 아이들

미소의 나라 ‘미얀마’
매솟에서 차선을 넘너들며 3시간만에 도착한 파안은 카렌/꺼인주의 주도이지만, 여느 미얀마의 도시들에 비해서는 현저히 개발이 덜 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삶은 풍요롭진 않지만 낯선 이방인을 향해 웃어주며 반기던 이들이 참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물질의 풍요가 아닌 마음의 풍요가 주는 여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숙소에서 가까운 쉐인먀우 파야(Shweyinhmyaw Paya)에는 해가 지는 모습을 보려는 국내외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먹거리를 찾던 중 사원안에서 과일을 팔고 있던 한 가족을 만났다. 한 눈에 봐도 인도인으로 보이는 남성에게 어느 종족인지를 묻자 자신을 ‘힌두’라고 소개한다. 파안 시내에서 인도 계열의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가 있는데 이는 1886년 당시 영국이 미얀마를 영국령 인도에 편입시키고 인도인들을 미얀마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이때 인도에서 이주해온 인도인들을 가리켜 ‘껄라’라고 하는데 원래 껄라라는 용어는 ‘검은색’을 의미하는 것으로 미얀마 원주민들이 경제적 우위에 있었던 인도인들을 비하하여 부르는 용어로 사용했다.

인도인은 자신의 종족 명칭을 종교에 따라 ‘무슬림’, ‘힌두’, ‘시크’ 등으로 답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분명히 미얀마 국적을 지니고 있고 대부분이 인도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미얀마에서 태어나 미얀마 국적을 가진 힌두라는 의미로 인도인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카렌족 어머니와 인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큰 딸은 부모님을 함께 도우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자신의 딸이 공부를 잘 한다며 자랑을 한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다 똑같은 모양이다.

  • 파안의 Thit Sar 거리에서 만난 꽃파는 힌두 여인
파안의 짜욱깔랍 (Kyauk Kalap)수도원 풍경

다시 찾아온 평화의 시기
카렌족은 1940년대부터 미얀마 군사정부와 중앙통제권을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 상태여서 한동안 외국인에게는 출입이 제한되었지만 최근, 정부와 여러차례 협상을 거치며 차츰 안정화되어 이제 외국인도 출입이 가능해졌다. 그 때문인지 파안은 산과 호수, 강으로 둘러싸인 미얀마 남부의 전형적인 평화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대중교통이 원활치 않아 게스트하우스의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지만 파안 근교에는 석회암 산기슭에 조성된 멋진 동굴들이 가득하다. 물론 단순한 동굴이 아니라 7세기 따톤 왕국 시기에 조성된 동굴부터 불상과 벽화, 불상들이 즐비하다. 4~5개의 동굴이 있는데 이곳에서 과거 이들의 신심이 어떠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짜욱 칼랍(Kyauk Kalap)은 작은 인공호수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수도원인데 유난히 깍아지른 긴 바위 위에 세워져있어 그 모습이 진기하기까지 하다. 특히 계단을 따라 바위 정상으로 올라가면 그림 같은 시골 풍경이 발 아래 펼쳐진다.

  • 파안 짜욱칼랍(Kyauk Kalap) 수도원에서 바라본 파안의 전원적인 풍경

무소유의 수행자 행렬 ‘탁발’
미얀마 내에서 불교신자의 인구(불교 76.2%)는 압도적이다. 미얀마에서는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지만 헌법 제 21조 1항에 ‘국가는 연방의 최대 다수가 신봉하는 종교로서 불교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미얀마에서 승려는 종교지도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 존경의 대상이자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미얀마에서는 이른 아침 동이 트기 전에 거리로 나가면 어디서나 탁발을 하는 승려들을 볼 수 있다. 이때 여자 승려들의 모습은 볼 수 없다. 미얀마에서 남자 승려는 ‘폰지’, 여자 승려는 여성 수도자라는 뜻의 ‘띨라신’이라고 부르는데, 띨라신이라 불리는 이들도 삭박을 하고 가사를 입고 있지만 승단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폰지와는 같은 시간에 탁발을 나갈 수 없다. 그래서 띨라신은 이른 아침을 제외하고 보통 한낮이나 오후에 탁발해 생활해 간다. 폰지에게는 밥이나 반찬 등을 보시하는 반면, 띨라신에게는 생쌀이나 채소등을 보시하는 것도 색다르다.

탁발 수행 중인 폰지들(좌) 파안 거리에서 탁발하는 여자 승려 ‘띨라신’들(우)
몰레먀인 근교 세계 최대의 크기의 윈세인또야(Win Sein Taw Ya) 와불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몰레먀인(Mawlamyine)
미얀마에서 몰레먀인(Mawlamyine)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도 드물 것이다. 몰레먀인은 1827년부터 1852년까지 영국의 식민지 수도 역할을 했던 곳으로 강변을 따라 늘어선 1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영국풍의 가옥들 사이로 교회와 이슬람사원, 불교사원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종교만큼 인구 구성도 다양하다.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몬족 외에 까친족과 버마족, 인도인과 중국인이 한데 어울려 살아간다.

몰레먀인에는 유난히 오래된 교회가 많다.이 중에서 1827년 미얀마에서 최초로 세워진 제1침례교회(First Baptist Church)와 함께 1827년에서 1954년까지 지어진 교회가 중심도로에 모여 있다. 중심 도로인 보족(Bogyke Road)를 따라 가다보면 이 길에만 모스크가 3개나 있다. 미얀마를 식민지화한 영국은 식민 지배하던 인도인들을 미얀마로 이주시켰는데 당시 이주해 온 인도인들은 대부분 무슬림이었다. 이 모스크들은 그 당시에 지어진 것들이다.

  • 중국인들 커뮤니티 장소로 사용되는 회관건물

아도니람 저드슨의 흔적
미얀마의 기독교는 주류민족인 버마족이 아닌 카렌, 까친, 친 등의 애니미즘을 섬기는 소수민족 사이에서 주로 성장했다. 그러나 미얀마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인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이 노력을 기울인 남 버마는 구(舊) 몬 왕조의 경계로 선교보고에서 버마라고 명시된 곳은 사실상 버마화된 몬족을 의미했다. 저드슨이 버마에 온 지 6년(1919년)만에 얻은 첫번째 개종자인 우 나우(U Naw)도 순수혈통의 몬족이었다.

이곳 몰레먀인은 두번째 부인인 사라와 Nai Mehm Boke이 함께 몬족어 신약성경 번역을 시작한 곳이고, 후에 저드슨이 1862년 버마로 다시 돌아와 죽을 때까지 사역한 곳이기도 하다. Nai가 번역한 찬송가는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1827년 11월 25일 몬-버마족 교회로 불리웠던 제 1침례교회(First Baptist Church)를 중심으로 학교, 병원, 교회 등 초기 미얀마 선교사들의 흔적을 광범위하게 발견할 수 있다. 몬 침례교회(Mon Baptist Church)안쪽에는 몬족을 위해 사역했던 초기 선교사들의 묘지가 작게 조성되어 있다. 몬족은 노회가 결성되어 있었고 신학교도 있지만, 인구대비 2%미만의 기독교 인구와 극히 교세가 미약한 상황 가운데 있어 미전도종족으로 분류되어 있다. 한국의 서울남교회는 유일하게 몬족을 입양한 교회로 공식적인 몬족 교단 본부와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협력함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꾀하고 있다.

  • 몰레먀인의 제1침례교회 전경
짜익딴란 사원에서 바라본 살윈강의 일몰

살윈강(Salween River)위로 흐르는 미얀마의 미래
파안에서 작은 배로 살윈강을 3시간정도 따라 내려가면 몰레먀인까지 다다를 수 있다. 살윈강에서 바라보는 몰레미얀의 스카이라인은 언덕위에 세워진 불교사원의 스투파로 가득하다. 몬족은 미얀마 역사에서 한따와디 왕조와 꼰바웅 왕조 등 화려한 왕조들이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민족이다. 현재 양곤에 있는 쉐다곤 파야도 몬족의 전성기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당시 불교 문화가 어떠했는지 가늠해볼만 하다. 해질 무렵이면 언덕위에 세워진 사원에 지나던 사람들이 일찌감치 하나 둘 자리를 차지하곤 앉는다. 식민지 시절의 건물을 배경으로 흐르는 살윈 강의 석양을 감상하노라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몰레먀인에 빠져들고 만다.

몰레먀인은 영국 식민지시절 티크 나무를 운반하는 항구도시로 발전했고 현재까지도 연안 운송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베트남 동부해안에서 출발하여 라오스-태국을 거쳐 몰레미얀으로 이어지는 ‘동서경제회랑’은 미얀마 경제에 새로운 물류 흐름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글 | 채형림(SIReNer)

  • 몰레먀인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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