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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의 미얀마 사람들

도시와 사람들
D·I·G·I·T·A·L JOURNAL  2017. 6

치앙마이 건설현장 샨족 집단거주지

최근 태국의 이민자는 400만에 이른다.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이주자들을 포함하여 325만 명이 태국에 이주한 근로자들이다(2014, IOM Thailand). 이들은 주로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어업, 수산가공, 건축업, 의류공장, 호텔 등 의 단순 노동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중 미얀마 사람을 많게는 200만으로 보는데 이는 이주근로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 하는 숫자다. 태국과 2,401㎞에 걸쳐 국경이 맞닿아 있기 때문에 미얀마로부터의 광범위한 집단의 대규모 이주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에서는 미얀마 이주근로자가 90% 이상(34%가 건설 현장, 30%는 농업, 20%는 일반 노동)을 차지한다. 실제로도 미얀마에서 유입되는 그룹들의 흐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다양한 미얀마의 종족들이 치 앙마이에 거주하고 있지만 특히 눈에 띄는 그룹이 샨(Shan)종족이다(샨 종족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다루어 보겠다).

예를 들어, 복합주택단지 건설현장 집단 거주지에 10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이들 모두가 샨족이었다. 이런 현 상은 각 건축현장의 집단 거주지마다 나타난다. 최근에는 도시에 살고 있는 샨 이민자가 늘어나 치앙마이 내에 샨 제품의 상점, 샨 주(州)로 송금하는 은행, 샨족 인쇄소 등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 될 정도라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태국 북부의 타이족과 샨족은 뿌리가 같고 언어나 신체적 특징이 유사한 모습이어서 다른 종족에 비해 적응이 빠르고 태국어도 쉽게 배우는 편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Tai Yai(Great Thai)’로 부르며 타이족과 같은 종족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얀마 이주 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된 치앙마이 나이트바자르

1990년대 이전에는 계절성향의 이주노동이나 무역, 혹은 내전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되면서 과거의 저항세력들과 함 께 했던 지식인들이 유입되었던 반면, 1990년대 이후부터는 미얀마의 경제적, 정치적 상황과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에 대한 태국 내 수요 증가로 샨족의 대규모 이주가 진행되었다. 그 외 자녀들에게 양질의 교육 기회를 주기 위한 비중도 증 가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국경 근처의 시골에서 일을 하다가 점차 건설노동이나 서비스업에서 정착기회를 잡 기를 희망하여 치앙마이 같은 도시로 이주한다.

이들은 한 달에 약 3천~6천 바트(한화 10~20만원)를 번다. 가정부나 종업원으로 일하는 사람의 평균 월수입은 3 천 바트(한화 10만원)정도이며 건축 노동은 그에 비해 더 나은 임금을 받는 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충분한 돈을 모으기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하며 돈을 모은다. 미얀마 본국 내에서는 직업의 기회가 적고 거의 4배에 달하는 두 나라간의 임금차이가 샨족을 비롯한 미얀마 사람들의 광범위한 이주를 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로 들 수 있다.

노동허가증이 없는 이들의 ‘불안정한 신분’이라는 지속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치앙마이에는 계속적으로 이주민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이 자신의 종족, 친척 공동체가 있는 국경근처의 농촌에서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도시로, 도시로 희망 을 찾아가는 그들의 이동은 계속된다.

탓탓(Htat htat, 카친주, 버마족, 34세)
액세서리 가게 점원치앙마이 나이트 바자르 입구에 들어서자마 자 만난 탓탓(Htat Htat)은 악세서리 가게 점 원이다. 버마족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 에서 태어난 그녀는 미얀마 카친(Kachin)주 가 고향이다. 맨 처음 시작했던 일은 방콕의 한 공사현장, 하지만 그 일이 너무 힘들어 치앙마 이로 옮겨와 시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이제 8 년이 되어간다.

밤에만 열리는 시장에서의 벌 이로는 충분한 수입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낮에는 가정부로, 밤에는 나이트 바자르에서 점원 으로 일을 한다. 한 달에 이틀 정도를 쉴 수 있 는데 그 날을 쉬지 않고 일을 하면 600바트(한 화 약 2만원)를 벌 수 있다며 쉬는 날을 반납하 고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9천 바트(한화 약 30~35만원)이상의 비용이 드는 고향방문은 쉬는 날을 반납하고 그녀가 한 달 꼬박 벌어들 인 수입과 맞먹는 금액이다. 쉽사리 고향에 가 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투(Zar thu, 양곤, 버마족, 38세)
여행사 사장 나이트 바자르 중앙에 자리 잡은 여행사가 있 어 잠시 발길을 멈추고 이야기를 나눈다. 곧 그 녀가 미얀마 양곤에서 온 버마족이라는 사실 을 알게 되었다.

15살에 매사이(Mae Sai) 국경시장에서 보석장사를 하던 그녀가 이제는 자 신의 점포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연을 이야기한다. 치앙마이에 와서 여행사 점원으 로 일하다가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점포 를 마련한 것이다. 태국에 온 지 23년이 되었 다는 그녀는 태국인 남편과 함께 여행사를 운 영하며 당당하고 제법 여유로운 모습이다

아부(Abu, 까친주, 르왕족, 26세), 피터(Peter aishwe, 리수족) 부부
옷 가게 점원

나이트 바자르 안에는 옷을 파는 점포들이 꽤 많이 있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 사이로 ‘START WITH JESUS, STAY WITH JESUS, END WITH JESUS’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 를 입은 커플이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치앙마이
에서 열린 미얀마 청년 컨퍼런스의 기념 티셔 츠였다.

이들도 미얀마 사람들로 치앙마이의 같은 교회에서 만나 결혼한 지 1개월 밖에 안 된 신혼부부였다. 치앙마이에 거주한 지 4년, 9년차라는 이 부부는 남편이 신학교를 마치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며 어린 이 사역을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믿음을 당당히 선포하며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 의 열정에 미얀마의 희망을 본다.

빨롱(Patlong, 샨주 라시오, 샨족, 40세) 복합 주택단지 건축 노동
치앙마이의 대규모 건축현장에서 미얀마의 샨족 들을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치앙마이 센사란 교회의 샨족 사역자 나자루와 전진영 선교사와 함께 방문한 깐따녹 마을에서 한 가정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빨롱이라는 이름의 이 샨족 여 인은 점심식사를 위해 잠시 집에 돌아가는 길이 었다. 치앙마이에 온 지 5년째 접어들었다는 그 녀는 남편과 4명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20 대 청년인 큰 아들도 부모님과 함께 건축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총 50여 가구 이상이 모여 사 는 이 마을에는 고용주가 전기, 수도 등을 제공 하고, 비자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신 하루 임금이 조금 저렴한 편인 270바트 정도를 받고 있었다. 건축 단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임금과 조건을 제시한다. 마을에는 공동생활을 위 한 상점, 우물, 화장실, 어린이 탁아소 등이 구비 되어 있다. 주택단지가 완공되면 이들은 또 다른 건축현장으로 옮겨 갈 것이다. 이들이 다른 곳으 로 옮겨 가기 전 구원의 기쁜 소식이 이들에게 전달되어지길 기도한다.   글 | 채형림(SIReNer)

 *위 자료의 저작권은 UPMA에 있으므로, 인용하여 사용하실 경우 반드시 출처를 남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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