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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혁•우종복 선교사

업마가 만난 사람
D·I·G·I·T·A·L JOURNAL 16호 2019. 3

2018년 8월 태국 나콘 시탐마랏의 사역센터(한태문화센터)에서 태국 남부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역을 해오고 계신 권오혁, 우종복 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당시 모두가 꺼려하던 남부에 와서 기적적으로 2자녀를 얻게 하시고 인생의 영적 멘토를 만나는 축복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선교지에서의 희노애락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시인이자 화가이기도 한 권오혁 선교사님을 소개한다.

 

권오혁•우종복 선교사

Q. 선교사님 직접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태국에서 사역한지 27년 된 GMS 파송 권오혁 선교사다. 이곳은 방콕에서 850km떨어진 나콘 시 탐마랏(이하, 나콘)이다. 처음 나콘에 왔을 때는 워낙 열악한 곳이라 한국 선교사가 한명도 없었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가신 분도 계시고, 이후 선교사들이 방콕으로 철수하면서 많은 분들이 나콘을 떠났다. 현재 나콘에는 10년, 15년 정도 사역 중인 분들이 몇 분계시고, 내가 가장 오래된 선교사가 되었다. 사역지 환경도 어렵고 열매를 얻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자녀교육문제로 인해 사역지를 방콕이나 다른 대도시로 옮긴 분도 여러 명이다.

처음에는 젊은이(대학생) 사역을 하면서 공동체 사역을 했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가 핫야이인데, 이곳에 미션홈을 세웠다. 태국에는 대표적 교단이 CCT(Church of Christ in Thailand, 태국기독교총회)와 EFT(Evangelical Fellowship of Thailand, 태국복음주의연맹)가 있는데, CCT교단은 태국교회 노회들의 연합이고 EFT는 선교단체가 연합된 교회개척을 자유롭게 하는 단체이다. CCT의 정책은 건물 세우는 사역보다는 제자훈련, 사람 세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처음 11년 동안 CCT에 속해 사역하다가 이후 교회개척과 신학교 사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EFT에 속하게 되었다.

당시 CCT교단에서 사역할 때는 정책상 선교사가 교회개척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주로 젊은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했다. 심지어 10여년은 집에서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이후 사역이 커져 시내에 건물을 빌려서 아이들에게 제자훈련을 했고, EFT교단에 들어가서 교회개척을 하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태국에서 가장 큰 두 교단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개척을 하면서 교회가 성장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신학교에 대한 필요도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성경학교 단계지만 신학교를 시작으로 그들을 제자화해서 지역을 복음화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제자훈련이 진행되는 센터의 내부 모습

Q. 나콘 시 탐마랏은 어떤 곳인가요?
이곳은 태국 남부의 중심도시라 할 수 있다. 짱왓(Changwat, state 개념의 도에 해당함)의 인구는 160만으로 제2의 도시인 치앙마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시 인구는 2,30만 정도 된다. 나콘 시는 남부에서 불교가 처음 발원된 곳으로, 부처의 치아가 안치되어 있다고 전하는 1700년 된 “왓 쁘라 마하탓(Wat Phra Mahathat)”이 있다. 이곳은 불교도들의 마음의 성지로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방문한다는 명소이기도 하다.

기독교 측면에서는 약 120여 년 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가 세운 교회와 병원, 학교들이 있다. 장로교의 영향으로 한국 교회와 매우 비슷하다. 예배의식과 찬송가도 동일하다.

110년 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가 세운 베들레헴교회

Q. 태국 남부의 기독교 현황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태국 남부는 황금어장이다. 누구를 만나든 무슬림 아니면 불교도가 99%이므로 아무에게나 전해도 된다. 남부 기독교 교세가 태국 전체의 1/10도 안될 것이다. 교회 평균 출석이 20-30명, 10년 이상을 해도 50명이 안 넘는 열악한 곳이다. CCT교단에서 같이 일했던 현지인 목회자들도 위험하고 열매가 없고, 매너리즘에 빠져 남부를 떠났다. 아무래도 방콕이 생활이나 자녀교육이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5년 사이에는 증가한 편이다.

지금 태국 남부의 한국선교사는 대략 23단위 정도 된다. 남부에는 14개 짱왓이 있는데 약 400만 명 정도가 말레이(빠따니Pattani, 얄라Yala, 나라티왓Narathiwat, 사뚠Satun, 송클라Songkhla)지역에 거주한다고 본다. 사실 이곳은 과거 말레이시아 영토였다. 2차 대전 후에 태국으로 귀속되고 난 후, 말레이 왕조의 영향이 남아있는 빠따니 말레이 지역(빠따니, 얄라, 나라티왓)은 계속적으로 분리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공공시설, 경찰서, 학교 등에 불을 지르는 등의 테러가 일어나고 1년에 500명 이상이 죽기도 했다. 남부에 대형 백화점이 없는 이유가 테러의 위험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빠따니 지역에서 제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역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찬양 반주나 제자훈련을 도와 다년간 사역을 했었다. 한 번은 제자인 사역자가 얄라의 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장로님들과의 첫 만남에서 절대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말고 조용히 자신의 일만 하고 가라는 당부를 했다는 것이다. 왜냐면 교회에 폭탄이 터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남부의 상황이 이 정도로 어려웠다.

2004년 4월28일 정부군의 추격에 쫓겨 크루세 모스크로 들어가게 된 37명의 무슬림 저항군들이 정부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전원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부에는 제대로 된 신학교가 없다. 복음화를 위해서는 신학교를 통해 젊은이를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그들 교단에 신학교가 있지만 학생들을 주로 방콕이나 치앙마이의 신학교로 보낸다. 선교사들도 꺼리는 남부인데, 현지인들도 자녀교육에 대한 보장도 없는 이곳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나콘에서 11년 사역하는 동안 북부나 방콕에서 내려온 목회자는 총 5가정 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금은 다 철수하고 2가정만 남았다. 현지인들도 안 오지만, 거의 천 여 명 되는 태국에 온 한국 선교사들 중 남쪽에 내려온 사람은 10%미만일 정도로 남부의 상황이 심각하다. 주로 8,90%가 방콕과 치앙마이에 정착한다. 그래도 요즘은 이산(Isan, 태국 동북부)지역으로도 들어가고 있다. 남부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곳이어서인지 가장 늦게 들어오는 지역이다. 지금 들어온 사람들도 최근에 들어온 사람들이지 지난 7년 동안은 우리 한 가정밖에 없었다. 그래서 현지인들하고만 사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좋은 현지인들과 사역하게 되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특히 나콘 CCT교단에서 사역할 때 만난 노회장은 나의 영적인 아버지 같은 분이다. 40년 동안 이곳에서 사역하시고 은퇴하셨는데 한국에서도 만나기 힘든 분을 이곳에서 만나 많은 부분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분의 딸을 양육할 수 있었는데 그 딸이 지금은 캄보디아 선교사로 나가 있다. 이처럼 좋은 제자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태국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남부 사역이 어렵지만 현지인들이 이 어려운 곳에 와서 고생한다고 아주 존경을 표한다. 감사하게 최근 변화가 생겨 남부지역에 자녀교육문제, 환경문제를 넘어선 사역자들이 점점 더 들어오고 있다. 이들 중에는 태국 내에서 가장 복음이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인가를 고민하며 이동해 온 이들도 있다.

태국에서 선교사 재배치 이슈는 아주 오래되었는데, 힘들지만 우리 시대에 해결해야 될 과제이다. 이제 앞으로 남부는 황금어장이 될 것이다. 교단들도 방콕이나 치앙마이는 정책적으로 배치를 금하고 있고 태국의 교단도 남부로 오는 것을 환영한다.

나콘 CCT교단 전노회총회장 텅무안쑥빤, 까룬쑥빤 목사 부부

Q. 남부가 황금어장이라고 하셨지만 어려운 환경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불교도, 무슬림, 외국인 노동자 등 사역 대상 면에서 남부는 황금어장이다. 외부 환경은 어려울 수 있지만 반면 장점도 많다. 우선 물가가 싸다. 푸켓이나 끄라비는 관광지라 물가가 비싸지만 나콘은 그렇지 않다. 나콘에 온 지 20여 년 되었지만 그 동안 집값이 오르지 않았다.

두 번째, 남부에 해산물과 과일이 풍성하다는 점이다. 내가 남부로 사역지를 정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세 번째, 남부 사람들의 기질이다. 사람들이 싹싹하고 호탕하다. 아주 조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기를 싫어하는 전형적인 방콕 사람들은 남부사람들을 무서워한다. 큰 목소리 때문인지 사람을 물어뜯는 사람으로 여기는 선입견이 있다.

네 번째, 남부 사람들은 대체로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없다. 남부는 1년 내내 가뭄이 없는 비가 자주 오는 곳이어서 과일, 쌀 등이 풍부하다. 방콕다음으로 잘 사는 사람이 남부사람들일 것이다. 남부는 예부터 주석, 고무나무, 야자나무 주산지로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좀 부유한 사람들은 자녀들을 유럽이나 캐나다로 보낼 정도이고, 방콕의 경제, 예술계 쪽에 남부 출신들이 많다.

하지만 빠따니 말레이 3개 짱왓(빠따니, 얄라, 나라티왓)은 사정이 좀 다르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재정적인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빠따니 지역은 열악하다.

나콘은 과일, 쌀 등이 풍부하고 석, 고무나무, 야자나무 주산지로 자원이 풍부하다.

Q. 태국에 전략적 재배치 지역으로 추천한다면?
나콘, 핫야이, 수라타니 이 3곳을 추천하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주변지역을 돌아보면 좋겠다. 수라타니에는 통합측 선교사들이 팀사역을 잘 하고 있다. 통합측은 재배치에 성공한 경우가 많은데 특히 태국 남부의 경우가 그렇다. 푸껫에 한인교회, 라농, 핫야이에 선교사가 있고, 나콘에는 없지만 수라타니에 재배치를 한 경우다.

그 외 도시 중에 뜨랑과 라농이 있다. 뜨랑은 나콘 다음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나콘에서 110년 전에 9노회가 있었는데, 20년 후 17노회로 분가한 노회가 있는 곳이다. 뜨랑에는 태국에서 가장 큰 교회(뜨랑장로교회, 천여명 성도)와 센터가 있다. 신학교까지 해서 5층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에 지역 선택을 한다면 수라타니보다 뜨랑지역을 가보는 것이 좋겠다.

라농은 태국인보다 미얀마 사람이 더 많은 곳이다. 영어에 자신 있거나 미얀마 사역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매력이 있다. 왜냐면 지역적으로 낙후되어 있어 꼭 복음이 들어갈 필요가 있고 미얀마 노동자들이 굉장히 많은데 사역자들이 이들을 잘 케어하지 못한다. 여기에 교회 문만 열면 수많은 사람들이 올수 있다. 이곳에는 한국 선교사가 딱 한명이 있다.

비오는 뜨랑 시내

Q. 나콘에 빠따니 말레이 무슬림들이 많은 편인가요?
눈에 띄게 많지는 않다. 그러나 이미 수십 년 전에 자리를 잡고 사는 사람도 있다. 이곳에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불교도, 다른 한쪽은 무슬림들이 구분지어 산다. 이들은 정착한지 4,50년 정도 된 오래된 사람들로 자연스럽게 태국화가 되었고 아주 유해졌다.

그리고 빠따니에 사는 사람들이 나콘이나 핫야이에 집을 사는 경우가 많다. 빠따니 3개 주(빠따니, 얄라, 나라티왓)와 사뚠에 폭탄테러 같은 범죄가 많이 일어나 안전을 위해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무슬림의 비율이 증가했다.

수상이 바뀔 때마다 정책도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은 4개 주에 어느 정도 자유가 있어서 자신들의 술탄이 존재할 정도다. 태국정부도 유화정책을 쓰면서 변화를 맞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세대들은 말레이방언인 “자위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이주를 결정하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다. 푸껫에도 그러한 이유로 이주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 지역에는 미얀마 이주 노동자들이 더 많을 것이다.

나콘 시 탐마랏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

Q. 빠따니 무슬림들의 확산이 남부에서 어느 정도라고 보시나요?
관광지 중심의 안다만해 지역은 무슬림의 비율이 (비공식적으로)50%가 넘었고 이미 이슬람화 되었다. 핫야이도 그런 추세고, 나콘같은 경우도 20%가 무슬림이다. 나콘이 무너지면 방콕까지 확산될 수 있다. 방콕에도 대단위 무슬림 공동체가 많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서 남부를 사수해야 한다. 교회를 세우고, 개종자가 나오도록 힘쓰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

태국 남부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함께 동남아 무슬림 권역으로 보아야 한다. 이 권역이 무슬림의 분포가 가장 많은 권역이다. 중동의 아랍권에는 필요가 있지만 선교사가 갈 수 있는 현장이 상당히 제한적이지만 태국 남부는 열려있다.

전 세계 다양한 국가의 무슬림들을 만나 볼 수 있는 방콕의 이슬람총회

Q. 태국이라는 불교사회에서 무슬림들은 오랜 시간 함께 살아왔다. 방콕을 비롯한 태국 내 무슬림 혹은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인가요?
태국 사회에서는 이슬람의 테러로 인해서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여기에 기회가 있다. 이슬람을 부정적인 종교로 보는 반면 기독교에 대해서는 평화의 종교라며 함께 손잡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독교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불교의 부패정치에 반대하는 젊은 세대들이 교회로 나오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선교사들이 교회 개척에 열심인 것도 한몫 했다. 태국 전역의 ⅓이 한국선교사가 개척한 교회일 것이다. K-POP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이를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종종 한국선교사들이 연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태국 교회 내에서 한국선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기도 하다. 이것만 개선한다면 한국 선교사에 대한 이미지는 점점 더 좋아지고 함께 협력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권오혁 선교사가 새로이 개척한 새비전교회

Q. 후임선교사가 태국으로 들어갈 때 먼저 준비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1. 신뢰할 만한 교단이나 선교단체를 먼저 선정하라.

2. 태국에 들어와서는 태국 현지인들을 존경하고 존중해야 한다. 한국선교사들이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하다보면 태국인들의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습성 상 앞에서는 잘 도와주는 것 같아도 뒤에서는 욕한다. 가능한 한 CCT나 EFT 등 현지교단으로 들어가서 그들이 못하는 일을 발견해서 집중적으로 사역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청소년사역, 찬양사역, 대학생사역, 제자훈련사역과 태국 현지인들 문화사역(한국의 문화만 고집하지 말고)을 같이 하라.

3. 기본적으로 언어를 잘 구사해야 하고 대인관계를 잘해야 한다. 남부에서 사역을 하려면 남부에서 언어를 배워야 한다. 현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유하고 배려심이 있는 사역을 하면 열매가 있을 것이다. 인터뷰 정리 | 채형림(SIReNer)

권오혁 선교사가 그린 권오혁 선교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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