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CAS
D·I·G·I·T·A·L JOURNAL 16호 2019. 3
이 글은 김병선 선교사님이 그동안 진행해 오신 “선교의 성경적 관점” 강의를 본인 허락 하에 주제별로 발췌하여 설교문으로 재정리한 글입니다. 이는 목회자들의 ‘성경적인 선교 설교’를 돕기 위해 마련한 것이며, 설교문 작성을 위해 구성과 표현상의 각색은 다소 있으나, 최대한 원 강의의 관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성구 인용 : 개역개정판) |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처음에는 율법주의로 고립된 유대 문화에 담겼지만, 사도와 제자들을 통해 지중해 연안의 헬라 문화권으로 복음이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순교의 피로 말미암아 로마가 복음화 되면서 이후 라틴 문화권으로 기독교의 복음이 흘러가게 됩니다. 또한 이 복음이 유럽에 있던 게르만족들과 앵글로색슨족으로 흘러가고 그들을 통해 이제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 복음이 증거 되었습니다.
사실 복음이 흘러간 경로도 그렇지만 복음 전파자로서 역할을 했던 사람들도 처음 예수님이 제자훈련을 하실 때는 유대인 중심이었다가 그 다음에 헬라, 라틴, 게르만, 앵글로색슨 사람들로 흘러 이제 우리 한국인들, 또 중국계의 많은 분들이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쓰임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사도행전은 그러한 복음 선교 역사의 첫 번째 책이며, 사도행전에 나오는 인물들이 곧 복음시대의 첫 ‘선교사’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에 기록된 ‘수리아, 에베소, 로마’ 등과 같은 수많은 지명들이 당시의 ‘선교지’들이었고, 사도행전의 내용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라는 동질 문화권으로부터 타 문화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가 전파된 복음전파의 확장 곧 ‘선교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행전 1장 8절을 통해 볼 수 있는 문화와 관련된 선교적 원리들을 함께 짚어보도록 합시다.
처음에 복음이 유대주의 문화에서 시작되었다가 헬라, 라틴, 게르만, 앵글로색슨, 그리고 세계 모든 문화 속으로 점차 퍼져나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장애가 되었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문화적인 거리감이었습니다. 모든 문화는 공유할 수 있는 유사성이 있는 반면 서로 교차할 수 없는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속한 문화와 복음을 받는 사람이 속한 문화 간의 ‘문화적인 거리감’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립적인 유대주의 토양에서 시작된 복음이 어떻게 이 문화적인 거리감을 극복하고 타 문화권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순차적인 과정을 우리는 이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이 어떻게 문화의 벽을 넘어서 세계로 흘러가게 되었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유대 문화에서 헬라 문화로 가는 그 과정이 가장 중요하고 힘든 때였습니다. 왜냐하면 문화를 초월하여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야 복음의 소위 색깔(color)이 처음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의 요절은 역시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아멘.
이 말씀을 요절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한 절의 말씀 속에 앞으로 펼쳐질 선교역사와 복음행진의 청사진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복음의 시작이 당신께서 지금 서 계신 이 예루살렘이며 그 이후 복음이 전파되기를 희망하는 지역들을 거리 순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비단 지리적인 개념뿐 아니라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복음이 전해져야 할 사람들이 속한 ‘문화’에 대한 개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근거해서 보면 본문에 등장하는 지역들은 여기입니다. 지도상으로 볼 때, 예루살렘은 유대 지역에 속한 동일한 지역으로 볼 수 있고, 사마리아는 같은 이스라엘에 속하였으나 지리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도 널리 사용된 ‘퍼스펙티브스(Perspectives)’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구상하고 지도하셨던 랄프 윈터 박사는 사도행전 1장 8절을 근거해서 복음 증거자와 복음 받는 사람의 문화적인 거리감 정도에 따라 ‘Mission1-3’ 개념으로 정의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과 온 유대’는 자기와 언어가 같고 문화적 정서(mentality)도 같은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니, 이러한 복음 증거를 가리켜 ‘Mission1’, 즉 ‘동질 문화권 선교’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사마리아’라고 했는데, 사마리아는 구약 열왕기하 17장을 읽어보면 솔로몬 시대 이후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 두지파의 남 유다로, 북쪽은 다른 열 지파로 구성된 북 이스라엘로 분단됩니다. 그래서 남 유다는 르호보암 이후 솔로몬의 자손들로 이어지고, 북 이스라엘은 왕조가 여러 번 바뀌면서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패망하였습니다. 열왕기하 17장 6절에 보면 앗수르 왕이 북 이스라엘 사마리아 사람들을 대거 앗수르로 잡아가고, 24절에는 대규모의 앗수르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켜 살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순수혈통과 민족성 자체를 파멸시키겠다는 의도였고, 이른바 앗수르에 의한 이스라엘 혼혈정책이 시작된 것입니다.
호세아 제 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왕하 17:6)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왕하 17:24)
그 후 예수님이나 초대교회 바울의 시대는 무려 700여 년 이상 세월이 흘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 앗수르의 혼혈정책 이후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미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이방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혼혈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서를 통해서 보듯이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처음 복음을 받은 유대인들과는 혈통적으로나 외형적으로 비슷했겠지만, 이들 간에는 민족적, 문화적인 면에서 이질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확실히 구분되지만, 완전히 다르지 않는 정도의 ‘비슷한’ 문화권이었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문화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Mission2’, ‘유사문화권 선교’라고 합니다.
그 다음 ‘땅 끝까지’라고 할 때, 이 ‘땅 끝’은 언어도 다르고 문화적 정서도 완전히 이질적인 문화권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인데 이것을 가리켜 ‘Mission3’, ‘타문화권 선교’라고 합니다. 이것은 지리적인 거리감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문화적인 거리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나와 같은 언어와 같은 문화에 속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Mission1’, ‘동질문화권 선교’, 비슷한 문화에 속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Mission2’, ‘유사문화권 선교’, 완전히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Mission3’, ‘타문화권 선교’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라는 이 말씀은 단지 당시 사역 대상에 대한 지역적 구분이 아니라, 동질문화권 사람, 유사문화권 사람, 타문화권 사람들에게까지 이르러 복음이 증거되게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선교 전략적 청사진을 제시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친히 선포하신 문화를 고려한 선교전략 청사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도행전은 그 자체로 선교행전입니다. 예수님 승천 이후 초대교회 선교이야기로 집약된 이 성경 말씀을 살펴보는 것은 새로운 선교적 돌파의 필요성과 함께 선교의 본질적 가치를 되새겨야 하는 이 시대에 참으로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과 함께 다시 한 번 함께 선교를 꿈꾸는 시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글 | 강호석(SIReNer)
※ 본문 중 이탤릭체 부분은 편집자의 이음글; 설교문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원본 취지를 유지하면서 편집자가 첨언한 부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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