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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본 신속한 세계 복음화

업마 생각
D·I·G·I·T·A·L JOURNAL 16호 2019. 3

마가복음 4장에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온다. 여기서 씨를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이고, 씨는 말씀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씨를 뿌릴 때에 대상을 차별하지 않으셨다. 좋은 마음 밭, 좋지 않은 마음 밭을 구별하지 않으셨다. 미전도종족선교/전방개척선교 입장에서 본다면 ‘모든 종족에게 복음을’에 해당한다. 이는 효율과 생산성, 결과가 중시되는 이 시대에 다시금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아주 명확하게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주님은 살아있는 영혼을 차별하지 않으셨다. 편애하지도 않으셨다.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불교도, 공산주의자, 정령숭배자들이라고해서 이들을 나쁜 땅이라 폄하하지 않으셨다. 수용성이 좋은 대상만을 선별하여 시간과 자원을 아끼면서 말씀의 씨앗을 뿌리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애초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12제자들은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다. 말씀 자체가 살리는 능력이기에 말씀의 씨앗을 부지런히 골고루 뿌리신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¼만이 결실을 거두었다. 좋은 땅으로 표현된 준비된 영혼. 나머지 ¾은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성경의 비유와 그 해석에 근거하면 첫째, 길가에 뿌려진 말씀으로 그 씨앗을 새들이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길가는 세상적인 지식과 경험으로 가득 차있는 마음 토양을 말한다. 새는 사단을 의미한다. 곧 사단이 생명이 살아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즉시로 와서 쪼아 먹어 버려서 아예 뿌리조차 생성되지 못한 사람이다.

둘째, 돌밭에 뿌려진 말씀의 씨는 감정의 상처와 기복이 많아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 기쁘다가도 환경과 상황, 관계에서 어려움이 올 때 넘어지는 사람들이다.

셋째, 가시떨기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은 세상 염려, 재물의 유혹, 세상의 욕심이라는 가시떨기 나무에 막혀 자라다가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만다. 세상의 유혹과 두려움에 실패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우리 성도들, 나아가 소위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갖는 생각의 오류를 하나 언급하고 싶다. 이는 바로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곧 자기 자신을 이미 좋은 땅으로 간주하는 생각의 편향(bias)이다. 이 때문에 지금, 다시 말씀하시는 ‘말씀의 씨앗’이 때로는 세상의 지식과 경험으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에, 때로는 내 감정적인 상처 때문에, 때로는 돈과 가족, 직업과 성공 욕심 때문에 그 말씀이 들리지 않고, 그 말씀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순종과 실행도 바르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쇠귀에 경 읽기’라고나 할까.

다시 말씀의 엄중한 무게와 중요성에 근거하여 씨 뿌리는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성경적인 본질을 회복하자. 주님이 우리를 보내셔서 위임받은 사명! 생명을 살리는 일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시급성의 문제이다. ‘모두’에게 뿌려야 한다. ‘신속한 세계 복음화’가 중요하다.

씨 뿌리는 자로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라고 하신 것처럼 주님보다 세상을 사랑한 것을 회개하고, 죽도록 충성하고 죽도록 복음을 모든 열방과 족속, 모든 세대에게 골고루 전하는 한국교회와 선교사들 되길 소망한다.   글 | 정보애(SIR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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