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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화교

이슈 인사이드
D·I·G·I·T·A·L JOURNAL 17호 2019. 6

태국 핫야이, 중국에서 이주해 온 김용(金容, Jin rong)에 의해 세워진 ‘김용 마켓’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국인 거리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차이나타운은 꼭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지난 2년 간 우리 UPMA선교회에서 태국 북부 미얀마 국경 지역에서부터 말레이시아와 접한 남부 지역까지 주요 도시들을 현지 조사하면서도 재확인된 사실이다. 최근 위키피디아 영문판 자료를 보니 태국 화교는 공식 통계로 705만 명으로 태국 전체 인구의 약 14%라고 한다.

‘태국 화교(Thai Chinese)’는 태국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Overseas Chinese)를 의미하는데, 화교(華僑)들을 출신지별 사용언어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56%가 중국 광동성(廣東省)의 조주어(潮州語), 16%는 복건성(福建省) 객가어(客家語), 11%는 해남성(海南省) 해남어(海南語), 기타 7%가 광동성 광동어(廣東語), 3%가 복건어(福建語)=민남어(閔南語) 사용자들이다. 이 중 최대 사용 언어인 복건성 조주 사람들은 대부분 방콕의 짜오프라야 강 주변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태국 정부에서 일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

딱신 대왕(Somdet Phrachao Taksin Maharaj, 출처 위키피디아

톤부리 왕조 딱신 왕 시대에는 조주어 사용 화교 상인들이 특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이들 화교 상인들을 ‘왕실 화교(Royal Chinese)라는 의미의 태국어 ‘찐 루웡(Jin-Luang)’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딱신 왕은 자기 아버지가 조주(潮州) 화교였을 뿐 아니라, 당시 아유타야 왕조를 무너뜨렸던 강력한 미얀마(버마) 군대를 자신의 동향(同鄕) 조주(潮州)계 사람들 중심의 중국인 부대를 통해 제압한 인물이다. 이후 딱신은 중국계 군대의 힘과 영향력을 빌려 태국 톤부리 왕조를 개국하고 방콕 짜오프라야 강변 일대에 화교들이 대거 모여 살 수 있도록 거주 구역을 조성해주었다.

방콕 차오프라야강(Chao Phraya River)의 아름다운 저녁 풍경, 이 강의 수많은 운하를 중국 화교들이 건설

태국과 중국과의 관계 역사는 태국 수코타이 왕조가 성립된 13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미 말레이 반도의 춤폰, 수랏타니, 나콘 시 탐마랏 지역에는 중국인 항구가 있어서, 상호 교역 및 무역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후 16세기 중반에는 광동, 복건을 휩쓸고 다녔던 해적왕 린따오껀(林道乾)이 태국 남부의 빠따니를 침공하여 그 땅의 통치자로 다스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19세기 전반부터 중국 남부지방에서 급격하게 인구가 증가하고 천재지변과 기근의 발생까지 겹치게 되면서 수많은 중국인 이민자들이 태국으로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특별히 짜끄리왕조 라마 3세 때에는 중국인들이 방콕의 운하 건설에 많이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태국의 당시 농업 노비들은 지역 제한으로 국내 이동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태국인들에 비해 중국인들이 훨씬 더 근면하고 처신에 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 한 통계를 보면 방콕의 총인구 7만 명 가운데 심지어 ¾이 중국인이었다고 한다.

태국 최초 다국적기업인 CP 그룹이 운영하는 CP Fresh Mart

한편 복건어 사용 화교들은 태국 남부지역 송클라와 푸껫 지역에서 최대의 화교 방언 그룹을 이루며 살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인구 규모로는 현재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 중남부 푸껫과 서부 지역 중심 도시들에 더 많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객가어 사용 화교들은 태국 내에서 특히 민영은행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까시꼰 은행(Kasikorn Bank, 泰華農民銀行, 태국농민은행)이다.

현재 태국에서 유명한 화교 경제 그룹으로는 CP 그룹, Bangkok Bank Group, Lamsamm Group, Saha Group외에도 많은 중국 재벌 그룹들이 있다. 사실 태국에는 약 20 여개의 재벌이 1, 000개 이상의 자회사들을 산하에 두고 있는데, 그 중 80%가 화교 그룹이라고 한다. 왕실계 The Siam Cement Group, 맥주 Boon Rawd Brewery, 정부계 Krung Thai Bank Group, TMB Bank 등 몇몇 그룹을 제외하고 재벌의 오너는 대부분이 다 화교(국적은 물론 태국)이다.

이 가운데 CP 그룹은 태국 최대라기보다 사실 동남아시아 최대 그룹으로 원명은 ‘Charoen Pikphand Group’ 이다. 이 회사는 1921년에 태국으로 이주 해 온 시에 이추(謝易初)에 의해 설립된 식품 무역회사「正大莊行」으로 부터 시작되었으며, 4대 째 아들인 시에 구어민(謝國民) 때에 급성장하게 된다. 이 그룹은 사료, 육계용 닭 브로일러, 옥수수, 양계, 양돈. 식품가공까지 아우르는 종합 시스템과 태국 최초 다국적기업으로 중국대륙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유럽 ‘길드 형태’의 중화총상회 산하 태국 동북부 이산지역 우돈타니의 중국화교 기업 간판

이렇게 현재 태국의 지배층까지 파고든 태국의 화교들은 다른 나라 화교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중국인이라기보다 태국어를 쓰고 태국 이름을 가진 태국인에 가까운 면모를 보인다. 태국 화교 그룹들의 총 조정 역할을 하는 중화총상회(中華總商會) 대표는 자신들은 명함에 태국어와 중국어 이름을 같이 새겨 다닌다고 했다. 이들 중에는 중국어를 구사하거나 다시 배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유는 중국 대륙과의 사업과 유대 강화를 위한 목적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자신들은 이미 태국인으로 태국에 대한 조국애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정착한 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를 더 우선시하며 태국 사회에 더 잘 흡수되기 위한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한 중화총상회를 중심으로 태국 화교들을 조금 더 내부적으로 살펴보자. 이 상조조직은 조주 협회 등 모두 7개 협회로 구성되어 산하 태국 화교 회원 각각의 이익을 옹호하고 같은 고향 사람들에게 직업을 알선하는 유럽의 ‘길드’와 유사한 성격의 전문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체적 일례로 정미업자의 97%는 조주계, 피혁 사업자의 98%는 객가계, 양복점의 90%는 객가계, 레스토랑의 50%는 광동계라고 한다. 이처럼 동향별(同鄕別) 직업군(職業群)으로 자기 동향인에 의한 강한 결집력과 상호 협조가 태국에서 화교들의 강력한 힘이 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태국 화교를 연구하는 사회학자에 따르면 라마 5세 쭐라롱꼰 대왕 재위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인들의 집단 이주와 상호 결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근대화 작업으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던 라마 5세는 ‘태국 말을 하고 태국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태국인이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화교 수용에 호의적이었고, 화교 또한 태국 말을 배우고 자기의 중국 이름까지 바꿔가며 태국 사회에 스며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는데, 현재 이 시기에 유입된 화교들의 3-4세들이 태국 지배층을 구성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빠따니 중국인 거리

결론적으로 태국이 인도차이나반도 지역에서 타이족 중심의 패권을 장악해가던 수코타이, 아유타야, 톤부리 시대부터 현재 짜끄리 왕조 라마 10세 때까지 태국의 국가건설은 실제 내면을 들어가 보면 순수 타이족만의 것이라기보다 태국 화교와 함께 이룬 공동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둘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 방면에서 대단히 밀접한 불가분의 공생 관계이다. 이것이 태국 사회의 가장 큰 특성이다. “타이족과 태국 화교는 현대 태국을 구성하는 쌍두마차이다”.   글 | 정보애(SIReNer)
위 자료의 저작권은 UPMA에 있으므로, 인용하여 사용하실 경우 반드시 출처를 남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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