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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 행 2:1~8, 증인되게 하는 성령강림

성경이 말하는 CAS
D·I·G·I·T·A·L JOURNAL 17호 2019. 6

이 글은 김병선 선교사님이 그동안 진행해 오신 “선교의 성경적 관점” 강의를 본인 허락 하에 주제별로 발췌하여 설교문으로 재정리한 글입니다. 이는 목회자들의 ‘성경적인 선교 설교’를 돕기 위해 마련한 것이며, 설교문 작성을 위해 구성과 표현상의 각색은 다소 있으나, 최대한 원 강의의 관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성구 인용 : 개역개정판)

 

1.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사역을 담은 책이라는 의미에서 사도행전이라는 제목이 붙여졌지만, 사실 성령님께서 사도들보다 높은 권위로 그들을 통해 일하신 사도행전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시라는 관점에서 ‘성령행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는 사도행전 1장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에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세계선교의 명령을 주셨지만, 한편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절)”, “성령으로 세례 받(5절)”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8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자들은 그 말씀대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열심히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선교명령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즉 반드시 성령강림이 선행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의 핵심은 성령님께서 사도들과 초대교회 가운데 임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이 복음을 가지고 어떻게 “예루살렘과 온 유대”로 대변되는 이스라엘 유대주의 문화를 넘어서 유사문화권인 “사마리아”와 완전히 타문화권인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게 하셨는지 보여주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흔히 ‘사도행전 29장’을 산다고 말하는 오늘날 우리 성도와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성경적 인식입니다. 회심하고 성령이 내주하시는 증인으로서의 우리 삶과 사역은 바로 동일하게 성령님께서 우리를 증인되게 하시는 이야기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1장 8절대로 성령이 거듭나게 하시고 내주하시는 성도가 맞다면, 또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증인되는 삶을 살아야 하고 또 살고자 한다면, 우리의 삶은 성령행전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

2. 열방을 향하게 하는 오순절 방언 사건
이제 사도행전 2장에서 드디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1절)’ 약속하신대로 성령님께서 강림하십니다. 그날 성령이 강림하시자, 각 사람 위에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있고(3절), 각 사람이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합니다(4절). 그때 예루살렘에는 유대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경건한 유대인들이 많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제자들이 말하는 소리들을 듣고 깜짝 놀랍니다.

왜요? 8절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가봤더니 거기 모인 사람들이 자기들이 나서 살고 있는 나라 방언으로 다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나타난 “방언” 사건은 우리가 소위 ‘방언 받았다.’라고 하는 그러한 단순한 은사 체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를 단지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한 제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성경의 이야기 전개 방식, 문맥의 흐름을 보면 성령이 임하셔서 제자들이 “방언”을 말하고, 곧장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말을 알아듣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연이어 배치해 보여줌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이 “방언”사건이 지향하는 방향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합니다. 즉, 제자들의 방언 말함이 제자들 자신의 영적 체험 차원이 아니라, 이제 명하신대로 그들이 전해야 할 복음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바로 자신들이 성령의 임재 가운데 말한 언어를 알아듣고 말하는 세계 열방의 사람들에게로 향하도록 되어 있음을 그 자리에서 즉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 방언은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던 사도행전 1장 8절의 응답으로서 주어진 것이며, 이는 제자들이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문화권에서 증인이 되리라’라고 하신 그 명령이 임하신 성령과 함께 성취될 것에 대한 증거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아니고, 이것이 단지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이라면, 그와 함께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제자들 중에서 그 방언을 통역하는 현상이 제시되는 것이 더 개연성 있는 전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즉시로 그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제자들이 하는 자기네 말을 알아듣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문맥적으로도 선교적 관점에서 이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3. 차세대 선교의 주역, 디아스포라
다음으로 생각해볼 것은 오순절 날에 그 현장에서 성령 강림을 목격했던 이 사람들이 앞서 언급한 ‘디아스포라(Diaspora)’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들은 바로 해외에서 나서 살다가 유대인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있던 유대인들입니다. 이것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디아스포라’는 원래 헬라어 ‘διασπορά(씨를 뿌리다)’에서 온 것으로 이 사람들의 기원을 생각해보면, 주전 722년경에 앗수르에 의하여 북조 이스라엘이 망했을 때, 혹은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남조 유다가 망했을 때, 포로로 잡혀가 세계 각지로 흩어진 사람들의 후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전 320년경 알렉산더 대왕이 지중해 연안을 완전히 제패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자기 이름을 따서 점령한 지역마다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했는데, 그는 이곳에 자기가 점령한 나라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켜서 살게 했습니다. 그 중에는 유대인들도 있었고, 특별히 서기관, 제사장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강제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당시에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코이네 헬라어’로 번역시켜서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판이 마련되었던 것이죠. 이것이 70명의 유대 학자들에 의해 번역했다고 해서 ‘70인역(Septuagint)’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주의적 관점에서는 결코 다른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어떤 의미에서는 비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지만 그렇게 성경은 세계적으로 통용될 준비를 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누가 하셨겠습니까?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자, 이렇게 예수님 당시와 사도행전 시대에는 과거 이 시대에 걸쳐서 강제 이주된 사람들의 후손들이 본토를 떠나 지중해 연안 각 처에 많이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헬라어를 주로 사용하는 헬라 문화권에 속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살던 유대 후손들을 ‘헬라파 유대인’이라고 불렀고, 이들을 두고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토에 남아 여전히 히브리 문화권에 속해 살고 있는 사람들을 ‘히브리파 유대인’이라고 불렀던 것이죠.

그런데 유대인 성인 남자라면 적어도 일 년에 세 차례씩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에 와서 하나님 앞에 경배해야 하는 구약 율법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비록 해외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유대 율법을 따르며 살아가던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그 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경배하러 왔는데, 바로 그 때 성령강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9절-11절에 보면, 그들은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당시 세계 공용어인 헬라어도 사용했을 것이고, 또 각 지방 특유의 방언들도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 자리에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네 방언으로 하는 “하나님의 큰 일”에 관한 것을 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는 그 상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기 때문에(12-13절), 성령님께서는 곧이어 14절 이하에서 베드로를 통해 바로 그 성령강림과 관련된 제 사건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특히 그 자기네 말로 들은 “하나님의 큰 일”에 관한 것이 무엇인지를 구약을 잘 아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 맞게 구약 선지자 “요엘” 말씀으로부터 시작해서 선명하게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38-39절에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라는 이 말씀을 듣고, 그 날에 무려 3,000여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 중에 상당수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이 대목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성령강림 이후 이제 복음이 향해야 할 타문화권에 이미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성령강림 사건을 목도한 그들은 하나님 믿는 신앙을 지켰던, 그것도 대충이 아니라 그 먼 곳에서부터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 만큼 독실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성령강림 사건과 베드로의 복음 설교까지 듣고 회심해버린 것입니다.

이제 이들이 자기네 살던 나라로 돌아가서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 회심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들은 아마도 자기 살던 곳으로 가서 자기와 동일한 주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자기가 보고 들은 바, 즉 복음을 증거했을 것입니다. 그뿐이었을까요? 그들이 살고 있는 곳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보다 훨씬 더 많은 이방인인 그 땅 거민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사건의 증거와 함께 자연스럽게 그들에게도 복음은 증거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그 즉시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바로 선교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명령하셨던 이미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를 넘어서 땅 끝까지 복음이 삽시간에 전파되고 증거되는 일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복음의 근원지였던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사도행전 15장에 가서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되지만, 사실 그것을 결의한 예루살렘 공의회 역시 이미 세계 전역에 증거되어 믿게 된 이방인 성도들에 관한 논란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사실상 사도들과 제자들을 통해 공식적인 선교가 시작된 것 같지만,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통해 지극히 비공식적으로 이미 복음은 놀랍도록 확산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성경의 중심인물들 대부분이 디아스포라였습니다. 구약에는 아브라함, 야곱, 모세, 다니엘, 예레미야, 에스겔, 에스더, 느헤미야, 에스라 등이 있고, 신약에서도 바울, 바나바, 디모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이들에게 주효했던 것은 바로 그들이 유대문화도 알고, 타문화도 아는 소위 ‘이중문화(Bi-culture)’의 강점,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된 ‘타문화 적응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는 이미 그 속에 복음이 유대문화에서 타문화로 건너가는 가교(架橋)가 내재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선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각지의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세계선교의 주역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미 선교지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한 그들은 선교적으로 잘 훈련된다면 훨씬 수월하게 선교 현장에서 훌륭한 선교사로 사역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금은 다른 관점이지만,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이주민들 역시 한국에서 복음을 듣고 잘 훈련되면 고국으로 돌아가서 동족에게 효과적으로 전도하는 사역자로 세워질 수 있기 때문에 디아스포라 개념의 한 범주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며 약속하셨던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셨다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 사건의 결과로 나타난 향후 ‘성령행전으로서의 복음전도와 선교의 역사’, 그리고 ‘방언’ 사건이 지시하는바 ‘열방으로 향하는 복음의 방향성’, 또 그 방언을 듣고 즉각적으로 반응했던 ‘디아스포라가 갖는 중요한 선교적 의미’ 등 시사하는 바가 큰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여전히 성령행전의 연장선상에 살고 사역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의미와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이 의미를 되새기고, 되살려서 성령행전의 주역으로 쓰임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원 강의 | 김 병선 선교사 , 정리 | 강 호석(SIReNer)

※ 본문 중 이탤릭체 부분은 편집자의 이음글; 설교문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원본 취지를 유지하면서 편집자가 첨언한 부분입니다.

위 자료의 저작권은 UPMA에 있으므로, 인용하여 사용하실 경우 반드시 출처를 남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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