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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3) 행8:26, 땅 끝까지 이르는 그 길 위에서(1)

성경이 말하는 CAS
D·I·G·I·T·A·L JOURNAL 18호 2019. 8

이 글은 김병선 선교사님이 그동안 진행해 오신 “선교의 성경적 관점” 강의를 본인 허락 하에 주제별로 발췌하여 설교문으로 재정리한 글입니다. 이는 목회자들의 ‘성경적인 선교 설교’를 돕기 위해 마련한 것이며, 설교문 작성을 위해 구성과 표현상의 각색은 다소 있으나, 최대한 원 강의의 관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성구 인용 : 개역개정판)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라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과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게 하시는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이 땅에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성령강림의 역사로 용기와 능력의 사람들로 변화된 그들이 곧장 땅 끝까지 복음 들고 나아갈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성령강림 사건을 목격하고 베드로의 말씀을 들은 무리들 가운데는 회심하고 각자의 곳으로 흩어지며 그 사건의 증인으로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사실 그들이 처음에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것은 성령의 섭리 속에 이루어진 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죽으심을 목격했으며, 사흘 만에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일어난, 모두가 다 아는 그 무덤이, 또한 이 모든 일의 목격자들이 바로 이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십자가, 부활, 성령강림이라는 일련의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서, 이를 직접 목도한 목격자들에게, 이 사건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당시 예루살렘에서 증거된 복음의 핵심 진술이자 초대교회를 향한 자연스러운 시대적 요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과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야 했고, 또한 이 과정이 충분히 소화될만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 안에서 치열하게 복음의 싸움을 싸웠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나오면서도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행 5:41)”하였습니다. 또한 그 다음 절을 보면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오순절 날 삼천 명(행 2:41), 미문의 앉은뱅이가 고침 받던 날은 남자 어른만 오천 명(행 4:4)이 회개했으며,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행 5:28)”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예루살렘에 엄청난 부흥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 발 앞에 갖다놓고(행 4:37), 사람들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는(행 4:35) 헌신과 나눔의 공동체였으며,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그래서 이후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회복해야 할 모델이 될 특별한 공동체로 세워져갔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경험되고 증명되자 교회는 급속도로 부흥하고 커져갔지만, 복음은 거기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아직 이 복음을 들어야할 수많은 족속들과 열방이 기다리고 있었고, 복음은 그들을 향해 또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명령과 성령님이 지향하시는 바, 복음의 본질이었고, 역동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6장 이하에서 복음이 정체된 예루살렘 교회에 이상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0. 머물러 있었던 복음 : 이상 징후
사도행전 6장 1절은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많아진 것은 좋은 일인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어지는 내용은 좋은 내용이 아닙니다. 1절 후반절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지금 무슨 문제가 발생 했습니까? 쉽게 말해 헬라파 과부들이 교회로부터 도움 받는 구제에서 자꾸 누락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랑과 성령이 충만했던 교회였는데, 벌써 그 마음이 식어서 히브리파 성도들이 헬라파 과부들에게 소위 텃새를 부리며 차별하기 시작했다는 것일까요? 언뜻 보면 마치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원인을 찾을 수 있는 단초는 앞서 언급한 1절 처음에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입니다. 교회로 들어온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상식적으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나마 설교 들을 때는 좀 덜했겠지만 마이크 시스템도 없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아마도 광고시간에는 앞에서 하는 말이 전달이 잘 안되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광고시간에는 서로 담소도 나누고 그렇지 않습니까? 또한 지금 구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과부들인데, 통상 성경에서 말하는 과부는 나이 많은 여자들을 가리킵니다. 가뜩이나 연세가 있어 귀도 어두운데, 주변 상황도 소란스럽고 어수선하니 구제에 대한 광고를 잘 듣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게다가 당시 히브리 사람들이 보통 사용하던 언어는 아람어였는데, 외국에서 온 이 헬라파 과부들이 그 아람어를 잘 알아듣지 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해외 교포 2세, 3세만 되어도 한국어 잘 하지 못합니다. 이민 간지 50년이 채 되지 않아도 그런데, 이들은 많게는 700여 년 전에 강제 이주된 포로들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서로간의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이 다반사였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사단의 본질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추론이 가능합니까? 예루살렘 교회 한 곳에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 것에 있는 것이죠.

이런저런 상황이긴 하지만, 구제에 대한 광고를 듣지 못한 헬라파 과부들이 나중에야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일단은 마음이 섭섭하고, 소위 시험에 들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그 불만이 누적되다가 헬라파 유대인 대 히브리파 유대인 간의 갈등으로 증폭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사도들이 기도하며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6장 3절에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이와 같은 일을 나누어 맡을 사람들, 일곱 집사들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5절에 그 이름들이 소개되는데, 그 이름이 다 헬라식 이름입니다.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 안디옥 사람 니골라”였습니다. 이들 모두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것이죠. 이제 이 일곱 집사들을 통해 교회 내부적으로 공평한 사무처리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교회가 한 고비를 넘기는 것 같았습니다.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성경은 예루살렘에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가만히 보시면,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많아졌는데, 뒤이어 좋은 일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이는 앞선 교회 내부적인 갈등과는 비교도 안 될 외부적인 큰 박해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복음과 박해의 역설이 나타납니다. 이 박해의 위기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복음이 말씀대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 그러나 유대인에게만 : 동질문화권 선교(E-1)
일곱 집사가 세워지고 그 중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8절)” 어떤 사람들이 스데반과 논쟁을 하게 됩니다. 9절에 보면, 그들은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야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 즉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는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것에 따른 반작용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같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한 스데반은 마지막까지 복음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이 사태가 거기서 끝나지 않고, 8장 1절에, “…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성령강림 이후 부흥하던 교회가 처음으로 엄청난 시련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1절 하반절 말씀에,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이 박해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흩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1절의 진술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에 불어 닥친 큰 박해와 시련에 대해 그 참상의 현실을 상세히 보도하기보다, 이 박해에 대한 해석적 관점을 먼저 제시하고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박해의 의의는 교회와 성도가 ‘고통을 당했다.’가 아니라, 교회를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진술은 지금 성경이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지금 왜 이 사안을 다루고 있는지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드디어 흩어지기 시작했다.’라고 말씀하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한 성경의 의도를 추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진술과 함께 사용하는 “유대와 사마리아의 모든 땅으로”라는 구절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으십니까? 바로 사도행전 1장 8절의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 박해의 사건은 바로 열방을 향해 나아가야 할 복음의 본질과 닿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4절에,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그저 박해를 피해 도망간 것이 아니라, 두루 다니며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비록 교회가 박해를 당하게 되지만, 그로 인해 성령의 의도하심대로 복음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역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성령님의 섭리였음을 인정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여기에도 여전히 한계가 있었습니다. 언뜻 보면 이제 말씀대로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전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이죠. 잠깐 훌쩍 건너 뛰어, 사도행전 11장 19절을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어디에 주목해야 합니까? 바로 “유대인에게만”, 스데반의 순교와 뒤이은 박해로 인해 성도들이 다 이방인의 땅, 열방으로 흩어지긴 했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누구에게만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까? 같은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다는 말입니다.

이들의 전도는 아직까지 동질문화권 선교(Evangelism_1), 즉 같은 유대 민족, 같은 유대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 전도’에서, 베드로가 가진 이방인 전도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볼 수 있듯이, 그전까지는 베드로마저도 아직 성령과 복음이 지향하는 타문화권, 다른 족속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할 당사자들의 인식과 상황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성령과 복음은 계속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모든 상황을 통해 섭리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땅 끝까지 이르는 그 길 위에서(2)는 CAS19호로 이어집니다.) 원 강의 | 김 병선 선교사 , 정리 | 강 호석(SIReNer)

※ 본문 중 이탤릭체 부분은 편집자의 이음글; 설교문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원본 취지를 유지하면서 편집자가 첨언한 부분입니다.

위 자료의 저작권은 UPMA에 있으므로, 인용하여 사용하실 경우 반드시 출처를 남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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