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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야이의 “짜오라비얍” 이완균, 양란주 선교사

업마가 만난 사람
D·I·G·I·T·A·L JOURNAL 18호 2019. 8

2018년 8월, 보통 1,2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태국 최남단 핫야이에서 15년간 사역해 오신 이완균, 양란주 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태국인들로부터 “짜오라비얍(원칙주의자)”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처음 받은 비전을 치열하게 지켜온 부부의 모습을 보며,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필자의 게으른 모습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아가페 선교센터 안에는 자신들과 같이 복음과 타협하지 않는 행복한 크리스천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양란주선교사, 이완균선교사

Q. 잘 알려지지 않은 남쪽의 도시 핫야이(Hatyai)로 들어가게 된 계기는?
A. 올해로 남부에서 15년째 사역 중이다. 처음에는 방콕에서 신학교 사역을 계획하다가 당시 상황이 저희가 굳이 방콕에 머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선교사가 없는 지역이나 저희를 필요로 하는 지역을 찾다가 한 선교사님이 올린 자료를 보고 저희가 필요한 지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한 번 리서치를 와서 그 분을 만나면서 많이 동화가 되었고 저희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한창 테러가 아주 심각하던 때여서 저희가 소속 된 단체도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양란주 선교사가 간단하게 동의해주어서 언어훈련을 마치고 바로 내려오게 되었다.

당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쟁이(첫째)를 안고 이곳에 내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핫야이에는 큰 종교 기독교, 불교, 이슬람이 다툼이 없이 공존하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선교사는 없는 지역이었다. 치앙마이는 선교사가 포화상태였기 때문에 이곳이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니겠는가 생각해서 내려오긴 했는데, 처음에는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선교사는 무조건 교회개척을 해야 되는 줄 알고 오자마자부터 교회개척을 했다. 시작한지 몇 달 만에 30명 정도가 모여드니 교만함이 몰려오기도 했다. 2시간 거리의 가정을 심방해야 하는데 교통편이 없어서 문제가 자꾸 발생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현지 교회와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히려 차량문제로 인해 현지교회의 협력이 어렵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가진 모든 것을 다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 때 후원교회에서 차량구입비로 천만 원을 받았는데 결국 센터사역(AGAPE PLUS CENTER, 태국 기독교교육문화센터)을 시작하는데 써버렸다.

Q. 두 분의 사역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린다.
A. 저희는 태국감리교 교단 소속으로 사역하고 있고, 남부지역에서 사역하지만 무슬림 전문 사역자는 아니다. 이 지역이 워낙 종교가 다양하기 때문에 특정 종교를 대상으로 사역하지는 않고, 다만 현지인을 위한 사역을 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종교인들을 다 만나 사역한다. 물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나 성도 중에도 무슬림 출신들이 있지만 딱히 무슬림들만을 대상으로 사역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교회 개척을 돕는 일들은 했지만 교회 사역이 중심이 아니었고, 원래 교육문화사역이 주 사역이었다. 교육문화사역을 통해 무슬림 단체나 학교기관과 연결해서 교육하는 사역을 통해 접촉점을 찾고, 다른 교회나 다른 선교단체가 들어갈 때 연결해주는 사역을 계속해 왔다.

태국 사립학교에서 실시했던 한국문화 동아리 사역

13년 전, 교육문화 사역을 시작할 때 이곳은 이미 한류를 타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던 시기였다. 그래서 선교사들도 태도나 한국어 사역을 많이 했고, 우리는 핫야이에서 어떤 사역을 할지 고민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안하는 사역을 하고 싶었고, 단순히 우리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에게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학교를 돌아다니며 한국 문화 동아리사역을 만들어 나갔다. 당시에는 한국 선생님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어를 가르치고 동아리를 통해 접촉점을 만들어 나갔다. 물론 우리가 가진 자료들은 성경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것을 미리 밝히고 시작했다. 한국어 수업만으로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꼭 동아리 사역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학교마다 돌면서 한국 문화동아리 사역과 교사 강습회가 반복되다 보니 학교와 관계가 좋아지고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다.

그렇게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사역하다 보니, 남부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는 하지 못하는 불교 외의 다른 종교행사(이슬람 관련)가 가능한 것을 보게 되었다. 남부에 이슬람이 워낙 강하다보니 그들의 종교를 무시하고 불교만 강조할 수 없는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독교 행사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다. 그러자 국립학교는 어렵고 사립학교에서는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사립학교에 찾아가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교내에 한국 문화 동아리 모임을 만들어 이를 통해 접촉점을 찾고자 했다. 쌓아놓은 신뢰를 바탕으로 프로젝트 제안서와 운영계획서를 작성해서 학교에 제출하고, 학교에서 채플운영을 할 수 있도록 기회도 얻었다.

태국 사립학교 한국문화 동아리 사역을 통해 만난 교회 멤버들과 함께

태국에서는 원칙대로 절차를 밟아 문서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 채플에 참석하는 아이들이 3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30명 정도로 늘어났다.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불교도, 무슬림들도 모여들었다. 프로그램이 재미있다 보니 자신들의 종교시간을 빼서 우리 채플에 참여한 것이다. 채플시간은 20~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짧은 시간 최대한 성경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도구를 만들고 최선을 다했다.

핫야이의 학교에서는 1년에 한번 종교별로 캠프를 해야 하는데 국립이든 사립이든 마찬가지로 이것이 패스가 안 되면 사회과목에 점수가 안 나기 때문에 꼭 참석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캠프를 이용해서 집중적으로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짰다. 이게 참 중요한데 우리교회에 처음 나오기 시작한 아이들이 100% 이 동아리 출신들이다.

이 한국문화 동아리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가능하지만, 대학교는 어느 정도의 절차가 필요하다. 태국의 학교제도 특성상 한 학교에서 6년 동안 중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니 동아리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 청소년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된다. 경험 상 중고등학생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Q. 계속해서 교육문화 사역만 약 13년 하시다가 교회를 시작하신지는 얼마 되지 않으셨다.
A. 교회사역(직접 목회)은 2017년부터 시작했다. 처음 핫야이에서 현지 교회와 협력이 어그러졌을 때 교회사역이 우리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교회사역을 하게 된 걸 보면 우리의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우리교회 멤버들은 학교에서 동아리사역으로 만난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연령층이 젊다. 대부분은 청년층으로 25살을 넘는 이가 거의 없고, 30대 넘어가는 사람들이 10여 명 정도 있다. 지금 현재 예배 참석인원만 50명 된다. 우리교회는 5년 안에 자립하는 게 목표다.

이들의 목표는 숫자적인 부흥이 목표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전도해서 오는 청년들로 매주 정신이 없다. 처음에는 우리부부가 전도한 아이들이지만 최근에 50%정도는 우리 성도들이 전도해서 온 사람들이다. 우리는 기본을 가르쳤는데 아이들은 응용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우리 교회 아이들이 예수 믿은 지 거의 1년 반 정도 되었는데 처음부터 기도훈련부터 하나씩 가르치니 이들이 자라는 속도가 정말 빠르다. 한번 힘들게 기초를 닦아놓으면 그 다음엔 가속도가 붙어서 우리를 능가한다. 요즘엔 자발적 헌금도 가르쳤다. 지금은 현재 썽태우(픽업 트럭)를 사기 위해 모금을 시작했다. 지금 임대로 빌려서 운행하고 있는데 사용해보니 편한 것을 알고는 썽태우를 사기위해 직접 모금을 시작했다. 지난달에 헌금된 게 610바트였다. 지금은 적지만 자신들이 원하기 때문에 기쁘게 하고 있다(지금은 이미 1대의 썽태우를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고 또 다른 썽태우를 위해 모금 중이다).

핫야이 감리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구입한 썽태우(픽업 트럭)

사역 면에서 양란주 선교사와의 사역 공유가 지금의 가장 큰 힘이다. 나는 방향제시 정도의 역할만 하지 실무와 현지 사역자들과의 관계는 모두 양란주 선교사가 한다. 사실 처음에는 남부에 오려는 현지인 사역자를 찾기가 어려웠고, 현지인 사역자를 두기에 재정적 부담도 컸다. 특히 남부지역은 사역자가 귀하다 보니 교회가 떠받들어 모셔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부 교회에 오는 북쪽 출신 사역자들도 있지만 사역자를 두는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드니까 아예 사역자를 두지 않는 곳도 있고, 사례비로 생활비 해결이 안 되어 다른 일을 겸해서 하는 사역자도 있는데 그러다가 힘들어서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우리 센터도 우리가 직접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센터사역 특성상 학교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데 남성 사역자보다는 여성이 더 유리한 부분이 많다. 교회 성도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기도해주는 일은 양 선교사가 감당하고 있다. 이전에는 교회사역을 하다가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센터사역을 통해 또 다시 교회와 함께 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교육문화센터 사역은 지금의 우리 교회가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고, 우리 교회 성도들 대부분이 초신자로 모일 수 있었던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점점 양선교사의 사역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 하는 일이 많다. 누군가는 24시간 붙어 있어서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시간만 있다면 더 많은 시간을 같이 하고 싶다. 

Q. 무슬림 청소년도 이 교회 출석하는데 부모들이 반대하지는 않는가?
A. 지금까지는 없었다. 축구를 통해서, 친구 따라서, 어떤 아이는 꿈속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며 찾아온 아이도 있다. 현재까지 다섯 명의 무슬림이 우리 교회에 나온다. 모두 자발적으로 오기로 결정한 아이들이고, 부모들이 허락했는지를 꼭 확인한 후에 받아들였다. 여기서 우리가 돼지고기 많이 먹는데, 그 아이는 아직 돼지고기 먹지를 못한다. 그 아이만을 위한 요리를 따로 준비하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식사준비 하면서 불만이 있다. 그 한 사람을 위해서 나머지 50명이 섬기는 것이 예수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다독였다. 그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배워가고 있다. 

태국 성도들이 직접 헌금해서 만든 새로운 센터(교회)간판과 현관문

Q. 핫야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설명해 주신다면?
A. 남부에서는 핫야이가 가장 큰 도시이고 항공, 철도, 수산, 항만, 문화, 정치적으로 다 몰려있다. 정계에도 핫야이 출신들이 많다. 핫야이 아래 빠따니, 얄라, 나라티왓은 경제사정이 안 좋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동북부 이산 지역보다는 나은 편이다. 한국에 들어온 사람들은 동북부 출신이 대부분인데 허드렛일은 모두 동북부 사람들이 하고 남부 사람들은 그들보다 높은 자리에 위치한다. 남쪽지역은 자연적인 환경이나 천연가스, 고무농장, 수산자원이 풍부하고 과일도 풍부하고 산업기반시설도 핫야이를 중심으로 잘 되어 있다.

동북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서 여기저기 다니지만 여기 사람들은 아니다. 여기 자체에서 수급하기도 바쁘다. 여기는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사람들은 자녀들을 호주, 필리핀, 영국 등으로 유학을 보낸다. 교회 자매 중 1명도 대학 진학 대신 말레이시아로 언어연수를 갔다. 아주 어려운 가정만 현지학교에 보내지 일반적으로 남부의 많은 사람들은 자녀들을 해외로 유학 보낸다. 기본 근로소득도 차이가 난다. 동북부 지역은 하루 일당이 300~320바트 정도인데, 남쪽지역은 350~400바트 정도 된다. 교회 사역자도 월 사역비가 5천~8천 바트 정도도 괜찮은 수준인데, 남쪽은 15,000바트는 주어야 한다.

핫야이의 상권은 화교들이 잡고 있다. 시내중심에 있는 김영 시장이 아주 유명한데, 오래전에 우따파오 강을 따라 중국인들이 이곳에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김영 시장을 중심으로 화교들이 밀집되어 있는데 길 맞은편으로 크고 작은 중국 사원들이 있다. 해마다 중국 화교들의 채식주의 축제인 “낀쩨”기간이면 이곳이 북새통을 이룬다. 매년 10월 쯤 되면 1~2주 정도 사원에 들어가서 금식을 하고 영적인 체험을 하곤 한다. 핫야이 경제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김영 시장과 최근에 생긴 센트럴 페스티벌 근처다. 김영 시장을 중심으로 리가든 프라자 호텔 쪽으로 상권이 밀집되어 있는데 센트럴이 생기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핫야이의 큰 행사는 대부분 센트럴에서 이뤄진다.

핫야이는 무엇이라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매우 복잡하게 집약된 곳이다. 태국인들 스스로 “Amazing Thailand”라고 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가능성도 많다.

태국 선교가 시작된 지 200년 이상 되었지만, 복음화는 0.5%밖에 되지 않았다. 종교적으로도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는 숙제다. 15년 넘게 여기서 살았지만 매일 또 다른 것들을 배워가는 중이다.

선교사 부부가 직접 제작한 전도지

Q. 핫야이를 포함한 태국 남부는 테러의 도시로 알려져 관광조차 꺼리는 곳이 되었다. 사역하시면서 위험을 느끼지는 않는가?
A. 우리도 선교편지에 그런 내용을 썼었다. 그랬더니 이곳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 여기는 늘 불안하고, 한국에 한 번 씩 다녀오면 이곳에 오자마자 철수권고 문자가 뜬다. 예전에 테러가 크게 났을 때는 돌아가야 되나 고민을 한 적도 있다. 이제는 여기 오기를 꺼려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살아있는 것을 보라고 한다. 태국 남부 실제로 테러가 있지만 너무 과장된 부분도 있다. 굳이 안 알려도 되는 부분을 알려서 두려움을 준 것도 있다.

송클라를 포함한 핫야이 아래 지역은 말레이 지역에 속한 빠따니 왕국이었다. 지금은 태국 땅이 되어 분리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위협까지 있던 곳이다.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예전에는 자유롭게 넘나들었는데 테러 문제로 국가 간의 정치적인 문제와 외교문제가 일어나고, 또 아세안 경제협력체로 묶어가면서 민감하게 반응한다. 국가 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경계하고 국가 간 이동을 많이 간섭하고 있다. 무단 월경, 이중 국적자에 대한 간섭이 심해졌다.

국경에 가보면 큰 국경도 있지만, 외진 곳에 작은 출입구 같은 국경도 있다. 그런 지역으로 테러리스트들이 넘나들었다. 테러는 다 무슬림이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정치세력과 마약세력이다. 마약세력이 북부지역에 많았는데 최근에는 남쪽으로 이동해서 핫야이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밀입국자들을 태국 국경을 통해 말레이시아로 보내는 일들이 많고, 이 지역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이 지역이 무엇인가 문제가 되고 이슈가 되도록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이들이 일부러 조장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마약, 밀입국, 인신매매가 많아졌다. 이것을 역으로 종교적 문제로 자꾸 부풀려서 정부에서 이용하는 것도 있다. 

핫야이 감리교회 주일예배

Q. 핫야이의 교회 상황은 어떠한가?
A. 핫야이에는 나콘시탐마랏과 같은 기독학교나 병원은 없다. 초창기 선교사들이 교육이나 의료사역을 시작하려 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쳤다고 한다. 하지만 핫야이에는 침례교회, 중국인교회, 방콕 소망교회와 같은 계열의 HIM교회, 오순절계통의 쌈판교회 등 생각보다 규모가 있는 교회들이 있다. 태국의 규모가 있는 교회들은 오순절 계통이다. 열심인 교회들도 있지만 여전히 전도하는 일에는 무관심한 교회도 상당하다.

선교사들은 한 10년 전후로 해서 상당수 철수하거나 위쪽 지역으로 후퇴했다. 서양 선교사들이 1차 철수를 많이 했고, 그리고 한국 선교사들이 철수해서 현재는 선교사가 새로 들어가는 분들은 거의 없다. 과거에는 빠따니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고 이 지역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사역하던 선교사들이 이미 다 철수하고 후퇴한 상태다.

과거에는 빠따니 지역으로 들어가서 여행사 하시는 분도 있고 그랬는데, 지금은 대개 안전지역에 있으면서 오가는 방식으로 사역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남부 3개 짱왓(빠따니, 얄라, 나랏티왓)에는 서양이든 한국 선교사는 없다고 보지만, 이 지역과 가장 근접 송클라, 핫야이에 거주하면서 사역한다. 물론 그곳에도 교회가 있고, 태국 지역교회도 그곳으로 전도를 나가지만 아직은 미약한 편이다. 

제1회 전교인 체육대회

Q. 그럼 핫야이에서 단기로든 장기로든 가장 필요한 영역이 있다면?
A. 태국에서는 다양한 전문인 사역이 필요하다. 특히 축구 같은 경우는 태국에서 아주 인기가 많기 때문에 축구를 가르쳐주고 코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태국은 시마다 축구팀이 있어서 선수로 와서 가르치는 일을 한다거나 전문 클럽에서 사역하면 좋을 것 같다. 학교 내에서 스포츠나 문화 동아리 사역도 좋을 것 같다. 스포츠 팀이 좋은 것은 이들은 단합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제자훈련이나 기도훈련을 할 때 매우 좋다.

악기를 가르치는 것도 좋다. 하지만 태국은 장시간 레슨보다는 단기간에 성취를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좋다. 2~3개월 안에 무언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센터에서도 코드와 클래식을 적당히 믹스한 것으로 악보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그 외 학원사역도 좋을 것 같다. 태국에는 구몬이 일찌감치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다. 수학, 과학, 영어 등 학원이 인기가 많다. 핫야이에서 학원은 비자 제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 미용사역도 괜찮다. 직접 사업을 하기는 어렵지만 현지인에게 미용 기술을 가르치거나 뒤에서 돕는 사역을 하면 좋다.

많은 선교사들이 관계형성을 위해서 강습회를 많이 시도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단회성 이벤트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목적이 교육에 있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심방도 하고 그 이상의 자료도 주고, 그들의 마음을 터치해주는 데까지 가야만 그들의 마음을 살 수 있다. 태국인들은 지나친 관심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너무 지나친 것은 피해야 한다. 지혜롭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태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지만, 모임에 대해서 민감하다. 현명하게 공식적인 범위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어떤 경우는 확실한 증명서를 보여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현재 태국교단은 그동안 남발되었던 비자를 회수하고 남부 사역자들을 위한 비자로 전환시키고, 교단들이 각 지역에 지회를 만들어 사역을 시작하고 있다. 예전에는 태국남부하면 빠따니 무슬림만을 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많이 상황이 변했다. 무슬림 대상으로 한 사역뿐만 아니라 태국인 불교도들을 위한 사역, 태국 현지교회와 협력하는 사역 등 다방면에서 사역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리 | 채형림(SIR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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