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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3) 땅 끝까지 이르는 그 길 위에서(2)

성경이 말하는 CAS
D·I·G·I·T·A·L JOURNAL 19호 2019. 10

이 글은 김병선 선교사님이 그동안 진행해 오신 “선교의 성경적 관점” 강의를 본인 허락 하에 주제별로 발췌하여 설교문으로 재정리한 글입니다. 이는 목회자들의 ‘성경적인 선교 설교’를 돕기 위해 마련한 것이며, 설교문 작성을 위해 구성과 표현상의 각색은 다소 있으나, 최대한 원 강의의 관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성구 인용 : 개역개정판)

(CAS 18호, 사도행전(3)_땅 끝까지 이르는 그 길 위에서(1)편에 이어서)

0. 머물러 있었던 복음 : 이상 징후
1. 그러나 유대인에게만 : 동질문화권 선교(E-1)

2. 사마리아 사람에게 복음을 : 유사문화권 선교(E-2)
사도행전 8장 5절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빌립이 사마리아 땅에서 복음 전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빌립이 간 사마리아 성이 어떤 곳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 땅은 유대인들이 멸시하던 혼혈족의 땅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후, 앗수르의 강제이주와 혼혈정책 시행으로 인해 사마리아는 이스라엘과 이방족속의 혼혈족들로 채워지게 되었지요. 혼혈이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이스라엘의 하나님 섬기는 신앙 자체가 소멸되거나 변질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혈통뿐만 아니라, 종교문화적으로도 혼합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이 사마리아를 이방보다 더 못한 부정한 존재로 멸시하였고, 이는 초대교회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곳에서 빌립 집사가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박해 후 시작된 다른 지역 전도들과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초대교회 전도가 드디어 유대인만을 대상으로 한 전도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전도하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박해로 인해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지만, 그곳에서도 그들은 유대인들에게만 전도했지, 다른 족속의 사람들에게는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순수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이방인도 아니었고, 종교나 문화적으로도 정통 유대교는 아니지만, 또 완전히 이방 종교도 아닌,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즉 사마리아 성 전도는 이른바 “유사문화권 선교(Evangelism_1)”의 단계까지 진보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복음이 유대인들만의 것으로 묶여있지 않고, 드디어 다른 족속들에게도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전까지 다른 사람들은 못했는데 어떻게 빌립은 그 한계를 넘어서 전도할 수 있었을까요? 빌립은 그 이름으로 볼 때에 이방 땅에서 자란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배경을 전제로 생각해보면, 빌립 입장에서는 이방인에 대한 문화적 이질감이 훨씬 덜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이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거리낌도 본토에 살던 유대인들이 느끼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했던 것이죠.

그래서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가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사마리아 땅에서도 다른 곳에서의 전도와 동일하게 그 복음을 듣고, 한 마음으로 따르는 사람들이 나오고,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귀신이 쫓겨나고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들이 낫는 표적이 나타나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6-7절). 정통 본토 유대인에게는 어려웠을 유사 문화권(Evangelism_2), 사마리아 선교는 이미 타문화 훈련이 되어 있는 헬라파 유대인 빌립 집사를 통해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심산, 출처: biblia.co.il

자, 이제 이 소식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4절에, 사도들은 이를 확인하고자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냅니다. 무엇을 확인하는 것입니까? ‘과연 유대인 아닌 이 혼혈족 사마리아 사람들도 정말 예수 복음으로 구원 받은 것이 사실인가?’ 하는 것이었겠지요. 이른 바 ‘사마리아 구원 검증단’ 그런 것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검증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미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고백했기 때문에 결정적인 성령이 임하시는지를 확인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사마리아의 예수 믿는 사람들을 위해 성령이 임하시도록 간구합니다. 그리고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17)” 예수님의 이름으로 베푼 세례만 받았던 이들에게도 동일한 성령님의 임재와 그 증거들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 일로 사도들도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인정하고, 교회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5절에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 그들도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러 사마리아 마을들을 들러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를 통해 공식적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 중에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까지 왔습니다. 먼저 빌립을 시작으로 이후 베드로와 요한이 확인하고, 직접 전도하기 시작하여 유사문화권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사막, 출처: https://unsplash.com

3. 이방 족속을 위한 선교 : 타문화권 선교(E-3)
이제 사도행전 8장 26절 이하에서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내시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 예배드리러 온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은 사도행전 1장 8절의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중에서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류를 일반적으로 노아의 세 아들에서 비롯된 셈족, 함족, 야벳족 이렇게 세 종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우스갯 소리지만, 우리처럼 알맞게 구워지고 잘 생긴 사람들이 셈족, 아프리카나 태평양 군도에서 사시는 밤에는 전혀 안보이시는 분들이 함족, 얼굴 하얀 코카시안 백인들을 야벳족으로 분류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내시는 함족에 속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성경이 여기서 이 에티오피아 내시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 것은 교회가 동족 유대인과 유사 문화권인 사마리아를 넘어 완전히 다른 종족, 다른 문화권 선교를 어떻게 하게 되는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타문화권 선교(Evangelism_3)를 다루고 있는 것이죠.

성경은 이 에티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드리러 왔다고 했습니다. 내시라고 해서 좀 우습게 볼지 모르지만, 당시에 내시는 상당히 막강한 권세를 누리는 고급관리였습니다. 그는 에디오피아에서 병거를 타고 출발해서 애굽과 가사, 유대 광야를 거쳐 예루살렘까지 와서 예배를 드리고 다시 왔던 경로로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이 지체 높은 에티오피아 사람이 예루살렘까지 와서 예배드리러 와서 한동안 머물렀다는 것인데, 지금 예루살렘에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등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 그룹이 있었습니다. 기왕에 복음이 전해져야 했다면, 이 사람에게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사도들은 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첫째,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대부분 많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에티오피아 말은 당연하고, 당시 지중해 연안의 공용어인 헬라어도 유창하게 구사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외국인인 에티오피아 사람이 예배드리러 왔지만, 전도할 마음이 있었어도 그에게 쉽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사람이 한국에 왔는데, 우리 중에 인도네시아어나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마음은 있어도, 그 인도네시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인도네시아어를 배웠고 익숙한 인도네시아 선교사가 한 명 있다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의 상황도 사도들 가운데 에티오피아어나 적어도 헬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어야 그에게 제대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이것이 더 근본적인 이유였을텐데, 사도행전 10장 28절,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그것은 사도들이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접촉하고 교제하는 것을 율법을 어기는 행위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훈련을 3년씩이나 받았고 예수님의 선교 위임령을 직접 받은 사도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커녕, 이방인과 접촉하는 것조차 꺼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먼저 시범조교처럼 사마리아에서 일 잘하고 있던 빌립 집사에게 유대광야로 내려가서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리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에디오피아 사람을 만나라고 지시하신 것입니다.

출처: https://unsplash.com

그 내려가는 길에 이 에디오피아 사람이 병거 타고 가면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는 두루마리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가 히브리어를 잘 알지는 못했을 것이니, 그가 읽고 있는 것은 아마도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Septuagint) 성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읽고 있던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대한 예언이 담긴 구약 이사야 53장이었습니다. 그가 어떠한 연유로 하나님을 알고 믿게는 되었지만, 이사야 53장을 읽으며 이것이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지 그 말씀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었을텐데, 바로 그 때 빌립이 나타난 것입니다.

빌립이 “여보시오 읽는 것을 깨달으시오?”, 그는 아마도 유창한 헬라어로 물었겠지요? 그러자 에티오피아 사람이 “아니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압니까?”, 빌립이 “그럼 내가 좀 가르쳐줄까요?”, 에티오피아 사람이 “오, 성경을 아는 사람입니까? 이리로 올라와서 가르쳐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빌립은 함께 병거를 타고 가면서 말씀을 풀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 사람은 예수님을 알게 되어 즉시 믿고 영접하게 되었고, 마침 가는 길에 물이 있어 내려가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완전히 타문화권 이방인인 함족 사람을 위한 복음 증거 역시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이미 타문화에 대해 익숙했던 빌립 집사에 의해서 처음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이 최초의 타문화권 선교 사건이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빌립은 유사문화권(E-2)인 사마리아 선교에 이어 타문화권 선교(E-3)에 있어서도 성령강림과 초대교회 설립 이후, 공식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첫 번째 선교사라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성경은 예루살렘 교회의 공식적인 직분자인 빌립 집사를 통해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 땅도, 사마리아 땅도 아닌, 이방 나라로 가는 노중에서 타문화권 사람, 그것도 에티오피아의 고관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건을 비교적 짧지 않은 분량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비록 복음이 진행해가는 여러 과정 중 하나이지만, 이 장면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상 전혀 복음을 알지 못하던(에티오피아 사람은 유대교 신앙은 있었던 것으로 추정) 이방인들에게 차별 없는 복음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은 몇 차례 과정을 더 겪어야 했지만, 바로 이 사건이 공식적인 타문화권 선교의 시작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26절에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에서 보듯, 빌립이 이 이방인을 만나 전도한 곳이 ‘이방 나라로 가는 노중(路中)’이었습니다. 이처럼 그 순간 복음과 선교도 사도행전 1장 8절의 주님의 명령대로 “땅 끝까지 이르러” 나아가는 노중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 5장부터 8장에서 기록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성령님께서 어떻게 사도행전 1장 8절의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령님께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가진 배경과 특성들을 적절히 사용하시며 복음이 나아갈 길에 쓰임 받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오늘도 변함없이 자격없는 우리를 부르셔서 그 복음이 없는 곳, 복음이 필요한 바로 그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케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 길 위에서 끝까지 주님과 함께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땅 끝까지 이르는 그 길 위에서(1)은 CAS18호 입니다.) 원 강의 | 김 병선 선교사 , 설교편집 | 강 호석(SIReNer)

※ 본문 중 이탤릭체 부분은 편집자의 이음글; 설교문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원본 취지를 유지하면서 편집자가 첨언한 부분입니다.

위 자료의 저작권은 UPMA에 있으므로, 인용하여 사용하실 경우 반드시 출처를 남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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