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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강’에서 진짜 ‘라오스’를 발견하다 라오스 남부 중심도시 빡세(Pakse)

도시와 사람들(1)
D·I·G·I·T·A·L JOURNAL 20호 2020. 2

메콩강을 바라보는 푸 살라오 사원(Wat Phousalao)의 황금 부처

‘강어귀(mouth of the river)’라는 이름과 딱 들어맞는 풍경 앞에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다. 세돈(Xe Don)강이 메콩(Mekong)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세워진 빡세(Pakse)는 진한 황토빛 강물이 굽이쳐 일렁이는 비현실적인 풍경을 품고 존재한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독점하고 있는 이가 있으니 바로 푸 살라오 사원(Wat Phousalao)의 황금 부처다. 높이 23m, 너비 13m의 대불상과 함께 세워진 301개의 크고 작은 불상들은 하나같이 메콩강을 향해 있다. ‘어머니 강’의 범람을 막아주고 빡세 지역에 안전을 약속이나 하는 듯 온화한 표정으로 …

푸 살라오 사원(Wat Phousalao)에서 바라 본 빡세 시내

빡세는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남쪽으로 600km 이상 떨어져 있으며, 라오스 남부 참빠삭(Champasak) 주의 주도이다. 라오스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도시이나 유명 관광지가 있는 참빠삭이나 시판돈(Si Phan Don)(1)혹은 태국이나 캄보디아 국경을 넘기 위해 드나드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편리한 지리적 위치 덕분에 프랑스 식민지배 시기에 집중적으로 개발되었지만 특별한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캄보디아,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라오스 남부 지방의 상업 중심지 역할을 위한 교통편은 잘 구비되어 있는 편이다. 빡세 국제공항은 시엠립, 비엔티안 및 방콕과 같은 주변 도시와 연결하고, 빡세 버스 터미널에서는 태국을 비롯해 캄보디아의 관문도시 스퉁트렝(Stung Treng), 시엠립(Siem Reap), 프놈펜(Phnom Penh)까지 여행이 가능하다.

빡세 중심에서 동쪽으로 8Km 지점의 터미널인 ‘까우롯 락 뻿(8Km 터미널)’

빡세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태국 우본 라차타니에서 국제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우본 버스 터미널에서 오전 9시 반, 오후 3시 반, 하루 두 번만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하여 태국 국경 마을인 총멕(ChongMek)을 지나 빡세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당일 예매만 가능하므로 일찍 서둘러야 표를 구할 수 있다.

우리 일행은 국제버스를 놓쳐서 국경까지 이동하는 ‘롯뚜(미니밴)’을 이용하여 몇 번씩 갈아타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라오스에서는 빡세 중심에서 동쪽으로 8Km 지점의 터미널인 ‘까우롯 락 뻿(8Km 터미널)’에서 이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현지인들이 이 곳 지명을 주로 거리로 표현하는 것을 자주 듣게 되는데, 예를 들면 8km, 2km 터미널, 13km 마을 등과 같은 것이다. 특이하면서 실용적인 표현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거리 감각이 둔한 내게는 너무 어려운 지역명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라오스 남부 마지막 왕이었던 Jao Boon Oum을 위해 지어졌던 궁을 개조한 참빠삭 팰리스 호텔(Champasak Palace Hotel)

빡세는 참빠삭 주의 주도이지만 약 68,093명(2015년 인구센서스) 인구로 도시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으로 구시가는 걸어서 한 바퀴 돌 수 있는 정도의 규모이다. 라오스와 통일될 때까지 참빠삭 왕국의 수도로 사용되었지만 1946년 라오스 왕국이 세워지면서 참빠삭 왕국의 왕실과 궁전은 파괴되었으며 남은 유적이 많지 않다. 1905년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설립된 도시의 모습이 시내 곳곳에서 간간히 발견되는 정도이다.

빡세는 세돈강 어귀 근처에 구(舊) 시가지가 있으며 도시를 가로 지르는 13번 국도를 따라 양쪽으로 신(新)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시내를 조금만 돌아다니면 오래된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건물, 베트남 지구, 중국 사원 및 오래된 가톨릭 교회를 발견하게 된다. 특이한 점은 가게마다 베트남어, 중국어, 라오어가 함께 표기된 보이는 간판이 쉽게 발견된다는 점이다. 중국과 베트남 여행객들이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빡세는 도시의 인구 중 중국인과 베트남인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라오스가 프랑스의 보호국이었을 때 프랑스 식민지 정부는 많은 베트남인들이 라오스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도록 이주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이 문제는 라오스 왕국으로부터 격렬한 지탄을 받았으나 이들을 라오스 사람들로 대체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1943년까지 베트남 인구는 거의 40,000명으로 증가했고, 라오스의 주요 도시에서 베트남인은 대다수의 인구를 구성하고 자신들의 지도자를 선출할 권리를 누렸다.

그때까지 북쪽의 루앙 프라방 만이 라오인이 다수를 차지했고, 위앙짠(비엔티안, Vientian) 인구의 53%, 빡세 인구의 62%가 베트남인이 차지했다. 현재 라오스의 베트남 공동체 규모는 약 3만 여명(2012년, Voice of Vietnam)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베트남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은 8만 여명(2009, Ethnologue)에 달한다고 보고되었다(2).

1940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라오스 남부의 중요한 상업 중심지로의 역할을 했던 곳으로 중국인들 또한 베트남을 거쳐 빡세로 이주해 온 하카(Hakka)와 차오 저우(潮州) 출신으로 당시 약 4천여 명에 달했다(3).

빡세의 경제 활동은 급성장하고 세돈 강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중국 시장이 있었는데 시장의 대부분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이었다. 그 숫자가 1959년까지 중국인이 소유한 사업체가 370개에 달했으니 그 규모가 상당했다. 계속적인 중국인들의 이주로 인해 1975년에는 베트남의 호치민, 캄보디아, 태국에 이미 만여 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있었다(4).

그러나 1975년 라오스 사회주의 해방운동단체인 ‘빠텟 라오(Pathet Lao)’가 정권을 잡고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이 세워진 이후 경제적으로 성공한 중국인들은 공격대상이 되었다. 또한 1980년대까지 이어진 베트남과 중국과의 갈등은 이를 부추겼고, 한때 1,500명 이상의 학생이 넘쳐났던 중국인 학교의 학생 수는 겨우 몇 백 명 정도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1900년대 이후로 경제가 회복되어 300-400여명이 빡세로 다시 돌아왔고, 현재 참빠삭 지역의 가장 큰 건축 자재 상점과 메콩강 모래 준설 독점권, 정미소와 금은방을 소유한 거대 상인은 중국인이다. 빡세에서 가장 유명한 재래시장 다오 흐엉(Dao Heuang) 시장의 소유자 또한 중국계 라오인이다.

이 시장은 빡세 인근 마을에서 각종 먹거리와 생필품을 사고 파는 중심 시장으로, 전체를 다 둘러보려면 한두 시간으로는 부족할 만큼 큰 규모로 활기찬 라오스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니 오가는 길에 한 번쯤 둘러 볼만하다. 다오 흐엉(Dao Heuang) 그룹은 소규모 무역회사로 시작하여 현재 라오스 최대 커피와 차를 생산하는 대기업이 되었다.

빡세와 인접한 태국의 우본에도 다오 커피가 진출해 있다.

커피 애호가라면 라오스도 커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남부 참빠삭(Champasak) 지방의 볼라벤 고원(Bolaven Plateau)은 연중 서늘한 기후와 비옥한 화산토, 풍부한 강수량으로 커피 재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라오스 전체 17개 주 중에서 절반 이상인 10개 주에서 커피가 생산되고 있고, 그 중 참빠삭 주의 빡송(Paksong), 세콩 주의 통엥(Tongeng), 사라완 주의 라오응암(Laongam) 지역은 라오스 전체 생산량의 95%이상(커피 생산면적 7만 헥타르)을 차지하는 3대 생산지로 모두 볼라벤 고원에 위치한다.

다행히 커피 3대 생산지 중 한 곳인 빡송은 빡세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의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어 방문해 볼 기회를 가졌다. 커피 운송을 위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빡송으로 향하는 도로는 라오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곧고 넓은 포장도로다. 빡세로부터 21km 지점에 이르면 라오스 최대 커피기업인 Dao Heuang 그룹의 대형 커피 공장이 들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팍송 지역의 80%이상을 다오 그룹에서 매입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질 만큼 라오스에서 다오 그룹의 세력은 대단하다. 최근 중국의 한 무역업체와 계약 체결을 하는 등 라오스 커피 수출의 60-70%를 차지할 정도로 그 규모가 어마하다.

해발 약 1,000~1,350m 높이의 약 3,000ha에 이르는 대규모 커피농장 팍송 하이랜드(Paksong Highland)

그러면 어떻게 라오스에 이토록 커피 산업이 왕성해진 것일까?

라오스는 커피 생산 강국인 베트남 못지않은 커피 생산국으로 많은 양의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라오스의 커피산업은 100여 년 전 프랑스 지배당시 도입되어, 베트남 전쟁으로 경제적 위기도 겪어야 했지만 여전히 생산량이 적지 않아 현재 라오스의 가장 큰 수출품 중 하나가 되었다. 라오스 인들 사이에서는 프랑스 식민 이후 그들이 남긴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 중 ‘유일하게 쓸 만한 것’이 커피라고 말할 만큼 현재 라오스의 중요 경작물이 되었다.

해발 약 1,000~1,350m 높이의 약 3,000ha에 이르는 대규모 커피농장 팍송 하이랜드(Paksong Highland)

빡송(Paksong)에서는 커피 재배 및 판매뿐만 아니라 커피 농장에서 직접 수확해 보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커피 투어가 진행 되고 있어 빡세에 온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해발 1,200미터의 빡송은 토양, 날씨, 물 등 삼박자를 갖춰 커피 재배에 최적인 곳이다. 우리 일행은 빡송의 커피 농장이 보이는 커피숍에서 질 좋은 커피 한 잔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을 만큼 그 맛과 향이 달콤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왓푸

여러 경로를 통해 빡세에 도착한 여행자들의 최종 목적지는 대부분 참빠삭 주의 왓 푸(Wat Phou)일 확률이 높다. 라오스 참빠삭 주에 위치한 왓 푸 사원은 천년이 넘는 유적지로서,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이다. 참빠삭 주의 카오산(Phou Kao, 해발 1,408m)에 있는 크메르 제국의 힌두사원의 유적이지만 15세기에 시암인(Siam)이 불교를 전파하면서 불교사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17세기 무렵 대지진으로 지금은 비록 폐허 상태이지만 5세기 경에 지어진 왓 푸는 12세기에 지어진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Angkor Wat)보다 오래된 사원이다.

건축 양식, 조각 문양 등을 보면 가히 ‘앙코르 와트의 전신’이라 불릴 만하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왓 푸는 구역 면적이 390㎢에 달하여 캄보디아 시엠립(Siem Reap)의 앙코르 와트 유적(401㎢)과 거의 맞먹는 규모이지만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 규모는 앙코르 와트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폐허 상태의 유적을 복원하기 위해 인도와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해외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현재도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런 왓푸 유적 복원에 라오스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직접 보존 복원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하니 더욱 관심 있게 유적을 바라보게 된다.

라오스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직접 왓푸 보존 복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원 입구부터 시바(Shiva)신을 모셔놓았다는 신전까지 꽤 멀고 고된 77개의 폭이 좁고 가파른 길을 올라야만 한다. 천상의 세계에 오기 전 허리를 꼿꼿이 세우지 말고 네발로 걸어 낮은 자세로 오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니 ‘신의 세계로 이르는 길’이 참으로 고달프기만 하다. 그 고달품을 견디고 신전이 위치한 곳에 이르면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니 ‘천상의 풍경’을 놓치는 일이 없길 바란다.

“빡세가 어디야? 거기 특별한 게 있어?”

빡세에 다녀왔다는 말에 수많은 사람들이 물었던 질문이다.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질문에 선뜻 ‘빡세는 이런 곳이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내겐 너무도 아름답고 선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에세이에서도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노라고 고백한 것을 보면 우린 항상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만 관심을 가지는 버릇이 있는 것같다. 라오스에는 라오스만의 것이 있었다고 답한 하루키의 대답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라오스 빡세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빡세’가 있었다. 우린 그것을 경험하기도 전에 다른 이의 평가와 정보에 의해 그 지역을 판단해 버린다. 민수기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정탐꾼처럼 하나님이 보여주신 소망의 땅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으로 라오스를 본다면 하나님이 보여주신 약속의 땅 ‘진짜’ 라오스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글 | 채형림(SIReNer)

어머니 강으로 불리는 메콩강
[각주]
(1) 메콩강은 라오스 영토를 따라 흐르다가 최남단에 이르러 삼각주를 이루는 시판돈(Si Phan Don)이다. 시판돈은 ‘4,000개의 섬’이라는 의미로, 강에서 흘러와 쌓인 토사가 이룬 섬이 약 4,000개에 이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건기 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던 섬들이 우기가 되면 그 모습이 사라지기도 해서 방문 시기에 따라 다른 섬들을 볼 수 있다. 빡세는 볼라벤 고원, Si Phan Don(4,000개 섬), Xe Pian National Protected Area 및 Tat Lo 및 Lao Ngam과 같은 작은 마을과 같은 자연 경관으로 여행객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2) Martin Stuart-Fox, A History of Laos, University of Queensland(1997)
(3) 팍세에서 중국 공동체의 역사는 중국 광동성(동관)을 떠나 베트남에 정착한 하카(Hakka) 중국인 Liu Tian Xiu(劉天秀)로부터 시작된다. Liu Tian Xiu는 베트남인의 라오스 이주를 격려하던 프랑스의 권유에 베트남인과 결혼하여 1906년 빡세로 이주해 왔다. 당시 팍세의 인구는 매우 적었고, 빡세에서의 기회를 보고 Liu Tian Xiu는 자신의 고향인 광동에 있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이주를 권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 이후 주로 중국인의 수가 점차 증가해 1930년까지 중국 공동체는 크게 성장했다.
(4) Yos Santasombat, Chinese Capitalism in Southeast Asia: Cultures and Practices, Palgrave Macmillan(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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