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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4)_같은 선물을 그들에게 주셨으니 : 베드로의 선교적 회심(행 10:1~48)

성경이 말하는 CAS
D·I·G·I·T·A·L JOURNAL 20호 2020. 2

이 글은 김병선 선교사님이 그동안 진행해 오신 “선교의 성경적 관점” 강의를 본인 허락 하에 주제별로 발췌하여 설교문으로 재정리한 글입니다. 이는 목회자들의 ‘성경적인 선교 설교’를 돕기 위해 마련한 것이며, 설교문 작성을 위해 구성과 표현상의 각색은 다소 있으나, 최대한 원 강의의 관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성구 인용 : 개역개정판)

 

오늘 본문 앞 사도행전 9장 31절에 보면,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에 따라 지금 어디까지 전해지고 있는지 그 진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그렇다면 이제 복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땅 끝”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선교학에서는 ‘문화를 고려하는’ 성경을 근거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로 대변되는 ‘동질문화권’인 M-1과 사마리아로 대변되는 ‘유사문화권’인 M-2 그리고, 땅 끝으로 대변되는 ‘타문화권’인 M-3로 구분합니다.

그런한 맥락에서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 집사를 통해 시작된 사마리아 전도(M-2)가 어느새 든든한 교회가 세워져가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타문화권 선교(M-3) 역시 사도행전 8장 26절 이하에서 빌립 집사가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시작되었고, 이제 9장을 거쳐 오늘 본문 10장에서 그 바통이 베드로에게 전해지면서 본격적인 타문화권 선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게 됩니다.

Edward J. Linkin이 촬영해서 펜실베니아 대학교에 기증한 무두장이 시몬의 집

1. 베드로의 선교적 회심의 과정
9장 마지막 절에 베드로가 욥바라는 곳에 있는 시몬이라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시몬의 직업이 무두장이, 곧 피장(皮匠, 짐승의 가죽을 다루어 물건을 만드는 장인)이어서 아주 불편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와 같은 유대인들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유대 율법의 정결규례에 따르면 죽은 사람이나 죽은 짐승을 접촉하면 부정한 사람이 되고, 그 부정한 사람이 무엇인가를 만지면 이것 역시 부정한 것이 되고, 이것을 또 누군가가 만지면 그 사람 또한 부정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무두장이 시몬이라는 사람은 그 직업상 죽은 동물의 가죽을 벗겨 소금물 같은 것에 무두질해서 가방과 같은 가죽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이 항상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집에 들어가려고 문손잡이를 잡으면 집 전체가 부정한 집이 되고, 그가 밥을 먹었던 그 식기까지도 다 부정하게 되니, 지금 그 집에 있는 유대인 베드로로서는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를 이러한 상황에 두신 것 또한 이제 보게 되는 선교역사상 중대한 사건을 위한 하나님의 상황 설정이었습니다.

베드로의 환상, 출처:https://blog.naver.com/hongyunpyo0141/221529024095

본문을 살짝 건너뛰어서 10장 9절에 보면, 베드로가 제 육시 즉 낮 12시가 되어 기도하러 지붕, 즉 옥상으로 올라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집 안에서 기도하려니 여기 저기 부정한 이 집 안이 마뜩치 않아 옥상으로 올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낮 12시라 배가 고플 때인데, 마침 환상 중에 위로부터 큰 보자기 같은 것에 무엇인가 싸여져 내려옵니다. 베드로가 그것을 보니 유대인의 정결규례 상 부정하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짐승들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13절)라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14절)라고 말합니다. 유대인 베드로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15절)라는 소리가 또 나는 것입니다. 이러기를 세 번 반복하더니 그 그릇이 올라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속으로 아마 ‘부정한 집에 와있으니 별 일이 다 있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누군가가 그 집에 찾아왔습니다. 19절에 가뜩이나 베드로는 지금 이상한 환상을 보고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성령께서는 베드로가 그들을 만나기도 전에 ‘내가 두 사람을 보냈으니 너는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나가보니 정말 자기를 찾는 사람들이 온 것이죠.

그 사람들은 ‘가이사랴에 사는 고넬료라는 사람의 명을 받고 베드로, 당신을 모셔가기 위해서 왔다.’라고 말합니다. 고넬료가 그렇게 베드로를 청하게 된 과정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건너 뛴 사도행전 10장 1-8절의 내용입니다.

백부장 고넬료, 출처: http://pukwang.pe.kr

자, 고넬료는 누구이며, 무슨 일이 있었기에 베드로의 말씀을 듣겠다고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사람을 모셔가려고 하는 것일까요? 1절에서 소개하고 있듯이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사는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로마 군대 그것도 이달리야 인들로 구성된 부대의 백부장인 사람인데, 성경은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게다가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소개는 지금 기도 중에 환상을 보고 하루 꼬박 걸리는 길을 사람을 보내서 베드로를 모셔오게 한 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께 경건했고 기도 중에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이렇게 실행할만한 신실함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역으로 그가 본 환상이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 맞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상이 하루 길 떨어진 욥바의 베드로에게도 임하신 환상과 서로 통하고 있음을 성경은 의도적으로 연결된 이 사건을 통해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넬료는 기도 중 환상대로 지금 가이사랴에서 욥바까지 사람들을 보내서 베드로를 모셔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 역시 성령께서 그들을 따라가라는 환상을 보았으니,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0장 24절을 보면 그들이 그 이튿날 가이사랴에 도착했는데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넬료가 누구입니까? 야벳족으로 분류되는 로마 사람입니다. 고넬료가 로마 사람이니 그의 친척과 그의 친구들도 다 로마 사람, 이방인들입니다. 성령께서 셈족인 유대인들을 통해 함족(에티오피아 내시)을 넘어 이제 야벳족 사람들에게까지 ‘타문화권 선교(M-3)가 이루어지는 현장으로 강권적으로 몰아가시는 것입니다.

25절에, 베드로가 그 집으로 들어갈 때에 고넬료는 베드로가 천사나 하나님의 사자 쯤 되는 줄 알았는지 그 발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환상 중에 명하셔서 모셔온 이 베드로에게 엄청난 경외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26절에, 베드로가 그를 일으키면서 “나도 사람이라”라고 말하면서 모인 사람들에게 말씀하는데, 이 28절 말씀이 오늘 본문의 열쇠가 되는 구절입니다. 중요하니 잘 보시기 바랍니다.

행 10: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말라 하시기로


자, 이 28절 말씀에 보면, 베드로를 비롯한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선교 위임령을 받았고 성령충만하고 사랑이 충만하며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위법”, 즉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까이 교제하는 것조차 위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베드로가 처한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성령께서 명하셔서 일단 가이사랴 고넬료라는 이방인의 집까지 오긴 했는데, 여기는 집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다 이방인들입니다.

28절 말씀에 따르면, 그들 속에 초대받아 들어가는 것조차 어쩌면 위법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지금 베드로가 그들 중에 서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베드로를 비롯한 유대인 성도들에게는 가능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 28절 중간에 베드로는 “…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즉, ‘그것이 위법이기는 하지만’이라고 말하면서 이어서,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 앞부분에서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아무도(any man)’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15절의 영어 번역에 봐도 ‘anything’이라고 하셨지, 사람을 지칭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28절에서 베드로는 ‘아무도’라는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즉 베드로는 환상 중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들었는데, 그 환상은 짐승 또는 음식에 대한 것이었지만, 아마도 고넬료 집으로 오는 과정에서 또 고넬료의 집에 들어서 기대에 찬 얼굴로 모여 있는 그 이방인들을 대하면서, 그것이 바로 이제 만나게 될 ‘이방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셨다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와 백부장 고넬료 , Bernardo Cavallino, 출처: http://romapedia.blogspot.com

특히 30절부터 이어지는 베드로를 모시게 된 고넬료의 사정을 듣고서 34-35절에, “…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베드로가 당시 초대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서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차별 없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를 처음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베드로는 곧장 36절부터 십자가 대속의 복음을 증거하였고, 43절에 “…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라는 죄사함의 말씀이 증거될 때, 44절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시고, 46절에 “..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에 베드로는 47절에서 성령이 임한 그들에게 “…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라고 하며 주저함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말씀을 증거한 베드로는 물론 그 자리에 함께 한 기존 유대인 신자들도 모두 이 광경을 보고 놀랍니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


놀랄 일이지요. 아니 놀람 이상의 충격과 설명할 수 없는 감격이 이들에게 가득했을 것입니다. 이 사건 이전에도 빌립 집사 등을 통해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는 일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유대인 신자들은 전통적인 관념대로 이 천국 복음이 유대인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예외적으로 일어나던, 그래서 어쩌면 다들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체하던 수준을 넘어서서 초대교회의 핵심 지도자에게 하나님이 직접 환상으로 계시하시고, 또 역시 직접 환상을 통해 후대에도 그 이름과 소속, 지역까지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는 고넬료 같은 사람을 지정하셔서,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해지고, 성령이 임하시고, 구원의 세례가 베풀어질 수 있다는, 아니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너무나 드라마틱한 방식과 과정으로 확증하시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동안 복음 전하느라 애썼지만, 애들아, 그동안 너희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정도에만 머물지 말고 이 복음은 이처럼 너희가 속되다 하던 완전한 이방인들에게까지 향해야 하는 것이란다.’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이자, ‘땅 끝까지 증인되라’고 하셨던 지상명령의 재연(revival)이자 세계비전 부흥(revival)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출처: https://biblia.co.il

2. 예루살렘 교회의 선교적 회심
그런데 진정 차별 없는 복음증거가 역사적으로 공인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이제 11장 이하의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령이 임하신 사건은 베드로와 함께 목격한 여섯 명의 유대인 신자들에게는 성령의 인도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율법주의에 묶여있는 예루살렘의 교인들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안에는 베드로가 이방인(무할례자)의 집에 가서 같이 먹고 지낸다는 소문이 먼저 돌았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말했듯이 그것이 ‘위법,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행위’라고 생각했고, 베드로가 돌아오면 따져봐야 한다고 벼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베드로가 11장 4절 이하에서 이 일을 욥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서 임했던 ‘속된 음식 환상’부터 시작해서 직접 겪은 일들을 차례로 소상히 예루살렘 교회 앞에 설명하기에 이릅니다. 그 설명 말미에서 베드로는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결정적인 깨달음과 결론을 말씀합니다. 바로 15절에서 17절 말씀입니다.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여기서 베드로의 요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셨던 성령의 선물을 이방인, 그들이 믿을 때에도 주시는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것을 사람인들, 율법인들 누가 막겠는가? 그러므로 이제 복음과 구원은 이방인에게도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예루살렘 교회 앞에 선 베드로의 증언은 증언 이상의 하나님의 뜻, 말씀의 선포였습니다.

바로 이 순간 예루살렘 교회가 드디어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18절 말씀대로,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자, 한 번 생각해봅시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얼마나 놀라운 교회입니까?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사도라는 훌륭한 리더십이 인도하는, 온 교회가 성령이 충만하고, 사랑이 충만해 자기 소유를 팔아 서로 나누어주는 교회입니다. 핍박이 와도 견디며, 흩어져 더욱 복음을 잘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사도적인 가르침을 그대로 가르치고 따르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완벽한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유대적 관념대로 이방인과 교제하며 사귀는 것,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 전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 동안 선교, 타문화 복음 전도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전통과 문화, 이것이 신념 또는 신앙과 결합될 때, 그 힘은 강력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 안에 살아가던 그들로서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장벽과 같은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강권하심으로 빌립을 통해서 유사문화권 선교(M-2)를, 다음 역시 빌립을 통해서 함족을 위한 타문화권 선교(M-3)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쐐기를 박기라도 하시듯, 예루살렘 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도, 베드로에게 환상이라는 비상한 방법을 통해 결국 당시 로마 세계의 주류 종족이었던 야벳족을 위한 선교를 직접 수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이제 온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을 향한 복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19절과 20절은 이 사건의 결과로 나타난 안디옥을 중심으로 한 선교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9절에 “… 흩어진 자들이 …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이전에는 유대인인 동질문화권(M-1) 사람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는데, 20절에서는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유사문화권(M-2), 타문화권(M-3) 사람들에게도 복음 전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21절에 이 안디옥에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납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이 주께 돌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겠습니까? 문맥상 동질문화권은 물론, 유사문화권, 타문화권을 막론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일 것입니다. 차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22절에서는 이제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선교를 위해서 바나바라는 구브로 출신의 헬라 문화에 익숙한 헬라파 유대인을 파송하게 되고, 헬라 문화권인 안디옥에서는 더욱 교회가 부흥됩니다. 이로써 문화를 고려한 복음의 진보는 베드로의 선교적 회심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확장력을 가지게 되고, 이제 유대문화권인 예루살렘에서 헬라문화권인 안디옥을 중심으로 헬라 문화 전역에 모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증거되게 됩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복음이 증거되고,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또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우리말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교회 공동체를 누릴 수 있게 된 복이 바로 오늘 나눈 베드로의 드라마틱한 선교적 회심을 기점으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 복을 우리가 소유했으니, 감사함으로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겠습니까? 베드로 당시 복음이 초대 교회의 전통적 유대 관념 안에 결코 머물 수 없어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환상까지 동원된 비상한 방법으로 복음이 그 관념의 벽을 뚫고 이방인에게로 나아갔던 것처럼, 오늘 여러분에게 도달하여 누리고 있는 이 복음 역시 우리에게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땅 끝까지 나아가려고 꿈틀대고 있지 않습니까? 복음은 필연적으로 복음이 없어 복음이 필요하지만 전하는 이 없는 미전도종족과 미전도지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나아갈 방향은 지금 여기가 아니라, 땅 끝인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에게 이 놀라운 선교적 회심이 일어났듯이 오늘 이 시대를 사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복음이 필요한 미전도종족들에게로, 그렇게 복음이 복음되도록 하는 선교적 회심이 일어나기 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원 저| 김병선 선교사 , 설교편집 | 강 호세아(SIReNer)

※ 본문 중 이탤릭체 부분은 편집자의 이음글; 설교문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원본 취지를 유지하면서 편집자가 첨언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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