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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선교의 뜨거운 감자 : 한인 선교사 수(數)와 교회 자립

이슈 인사이드
D·I·G·I·T·A·L JOURNAL 21호 2020. 4

앙코르왓(Angkor Wat), 출처: unsplash.com

캄보디아의 기본 토양 살피기
캄보디아를 연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앙코르 와트(Angkor Wat)’이다. 캄보디아 역사상 크메르 제국 혹은 앙코르 제국으로 불리며 인도차이나를 다스리던 때부터 지금까지 캄보디아의 정체성이 바로 앙코르 와트이기 때문이다.(1)

앙코르는 산스크리트 언어인데, ‘신들이 사는 마을’, ‘신들의 도시’를 의미한다. 그리고 와트는 사원, 절을 의미한다. 따라서 앙코르 와트는 신들의 성전(聖殿)이자 세계의 중심 사원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2) 

또 하나 캄보디아하면 ‘킬링필드(Killing Fields)’가 연상된다.(3)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의 군벌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Khmer Rouge) 무장 공산주의 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대학살로, 캄보디아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을 학살한 사건으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기 때문이다.(4)

이중 불교문화의 핵심 앙코르 와트는 현재까지도 캄보디아의 자긍심이자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불교와 크메르 민족주의’, ‘현대화’, ‘불교를 통한 국가와 국민 통합’에 중심적인 기제로 역할을 하고 있다.

킬링필드는 정반대로 캄보디아인에게 부끄러움과 수치심(羞恥心)의 기제로,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홀로 코스트(Holocaust)’처럼 전체주의 체제와 인간의 극단적인 야만성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앙코르 와트는 캄보디아 불교 세계관의 뿌리 깊은 근본적 토양을 형성해왔으며, 반면 킬링필드 사태는 80년대, 9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 선교사들에게 캄보디아 선교의 열린 기회로 2000년대 이후 수많은 선교사들이 캄보디아로 진입하는 중요한 환경을 제공했다.

씨엠립(Siem Reap) 시내

수(數)의 문제 : 캄보디아 국가 인구 규모 대비 최대의 한인 선교사 비율
우리 선교회가 인도차이나반도 권역을 태국 중심으로 연구 조사하던 때 필자는 캄보디아 선교가 인도차이나반도 권역 선교에서 다른 나라에 비하여 독특한 점이 무엇인지를 선교 전문가들에게 질문해보았다. 이들이 대답한 내용을 중심으로 캄보디아 한인 선교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가 된다.

“약 1600만 명(5)의 캄보디아 전체 인구에 대비해 보았을 때, 선교사 수가 제일 많은 나라(6)가 캄보디아에요. 그래서 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사실 그런 위험성이 있는 것도 현실이구요.” – 김창훈 선교사(캄보디아)

“현재 한국인 캄보디아 선교사들만 해도 자칭, 타칭 선교사라고 하는 분들까지 다 포함하면 2천명을 넘어섰습니다.(7)” – 전호진 박사(前 고신대 학장, 前 아시아연합신학대학원 원장, 前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학장)

“최근 10년 동안 한국선교사들이 가장 많이 파송되고 있는 국가가 바로 캄보디아에요. 이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지난 2000년 초반에는 캄보디아 한인 선교사 순위가 한국세계선교협의회 통계로 매년 10대 파송국가 중 9위에 해당했는데, 2천년 중반 이후 현재까지는 독립선교사까지 포함할 경우 실제로는 4~5위 규모에 이를 정도로 캄보디아 한인 선교사 수가 많아졌습니다.(8)” – 조명순 선교사(한국형선교개발원장)

이상의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캄보디아 선교는 현재 ‘양과 질의 불균형과 이로 인한 선교지 혼란과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큰 과제임을 시사한다. 캄보디아의 국가 전체 인구 규모에 비해서도 또한 인도차이나반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선교사(한국 이외의 아시아, 서구, 아프리카 선교사)와 한인 선교사의 양적 비율이 대단히 높다는 현상 이면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많이 지적된 부분은 선교사로서의 부르심이 확인이 안 된 선교사들과 선교사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선교사들이 대거 들어와 있다는 점이었다.

이유는 2000대 이후 캄보디아가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고 관광업이 발달하면서 다른 나라에 비해 비자 발급이 쉽고, 선교사들이 교회개척부터 교육, 고아원, 비즈니스 등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국가라는 점과 상대적으로 싼 물가환경이 선교사들이 캄보디아로 대거 유입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인터뷰 결과 선교단체나 교단 소속이 없는 독립 선교사들이 위에서 언급한 경우에 많이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현재 신생 선교지 캄보디아에서 이런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에 보고할 때 물량적인 성과와 보여 주기식 선교가 가능하기에 캄보디아 현장을 잘 알고 그에 필요한 적정(適正) 사역을 하기 보다 단기성과 위주의 프로젝트성 선교가 점점 더 많이 진행되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캄보디아 프놈펜 왕국, 출처: unsplash.com

캄보디아 한인 선교역사는?
한국인에 의한 캄보디아 개신교 선교는 거슬러 올라가면 1958년 처음 시작되었지만(9),  1993년 1월 1일, 캄보디아에 입국한 강창윤, 지주옥 선교사를 통하여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10).

2013년은 캄보디아 개신교 선교가 90주년이 되는 때(11) 였는데, 마침 한인 선교도 20주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이에 한인 선교사들은 ‘캄보디아 개신교 90주년 포럼(12)’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개최하고, 『캄보디아 선교역사』 라는 단행본을 발행하면서 캄보디아 기독교 선교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하는 계기를 가졌다.

그때로부터 다시 7년이 지난 지금 2020년에 한인 선교사들의 캄보디아 선교는 27년째를 맞고 있다. 캄보디아 한인선교 역사 27년. 이는 같은 인도차이나 권역 태국이나 베트남의 한인선교 역사와 비교하면 아직 그 기간이 짧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태국은 1956년 6.25 전쟁 직후 최찬영, 김순일 두 가정을 최초로 태국 선교사로 파송하여(13) 현재 64년 째 이르고 있고, 베트남도 공식 1호 한인 선교사가 베트남 전쟁 시기였던 1970년에 처음 파송되었으니 한인선교 역사가 50주년이 되었기 때문이다(14).

물론 선교역사가 얼마나 길고 짧은가 하는 것만으로 선교를 분석하거나 비교할 수는 없다. 선교지 현장이 가지고 있는 환경과 토양이 제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태국은 인도차이나에서 유일하게 식민지 경험을 하지 않고 국가가 발전하면서 전통적인 입헌군주제와 전통 종교인 불교가 상부상조하면서 태국을 현대화할 뿐 아니라 복음의 확산을 방해하는 기제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이라는 국가적인 큰 재난의 과정을 거치고, 도이모이 정책이라는 경제개발 정책을 통하여 국가가 부강하게 되면서, 점점 중국 방식의 종교정책을 채택하여 외국 종교라 여겨지는 특히 기독교 선교를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는 태국과 베트남 두 나라와 비교할 때, 현대화 경험뿐 아니라, 종교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매우 다르다. 캄보디아는 국가를 재건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내부에 인적, 물적 토대가 될 만한 자원이 없었기 때문에 외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제 원조와 인적 자원의 도움을 요청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들어서 더 적극적으로 해외 원조와 개발, 기독교 NGO에 문호를 전면적으로 개방했는데, 이와 같은 캄보디아 정부의 해외 원조에 기반한 정책이 수많은 기독교 관련 인사와 선교사들을 캄보디아로 불러들이는 요인이 되었다.

씨엠립 톤레삽 호수 근처 다일공동체

캄보디아 한인선교의 의미와 과제는?
그렇다면 캄보디아 한인선교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현재 어떤 의미가 있으며, 이후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캄보디아 선교, 특별히 한인 선교사에 의한 캄보디아 선교는 인도차이나반도 선교의 후발주자로서 태국이나 베트남 등 주변 국가들의 한인 선교의 성과와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건강한 캄보디아의 기독교 토양을 만들어나가는데 일조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 선교 역사가 환기시켜주는 필연적 당위성이기도 하고, 전략적 차원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보다 성경적이고 건강한 캄보디아의 기독교 토양을 조성하기 위해서 필자는 캄보디아의 한인 선교 현황을 통해 선교를 재고(再考)하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캄보디아의 선교현황을 비판적인 성찰을 통해 대안을 모색하려는 캄보디아 선교사들 또한 적지 않았다. 이들은 협력과 연합의 정신으로 캄보디아 영혼들을 사랑하면서 캄보디아의 미래를 위하여 많은 건강한 고민과 실천을 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개신교 선교사들은 특별히 지난 2013년 캄보디아선교 90주년을 전후하여 선교역사를 정리하여 인도차이나반도권역 나아가서 한국교회와 적극적으로 공유하기 시작하였다(15).

필자 역시 캄보디아 선교 역사와 선교 관련 자료, 더 나아가서는 인도차이나반도 선교사들의 선교대회 관련 자료 및 연구성과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16).

이 자료들은 현재 캄보디아 선교의 현황과 과제, 캄보디아 선교의 미래에 대한 조망까지 다루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에 비하여 길지 않은 선교역사인데도 한국교회와 선교단체 사역자들이 함께 현장의 이슈를 가지고 대안을 공동으로 모색할 수 있게 해주신 선교사님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를 드린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기존 연구된 자료들이 캄보디아에 있는 2천 명 모든 한인 선교사들과 더 나아가 국내에서 캄보디아 선교를 지원하고 동역하는 한국교회와 공유되기를 바란다.

그 동안 주로 프놈펜 포럼, 인도차이나반도 대회 등 중견 이상의 선교사 전문가 그룹이 연구역할을 해왔다면, 이제는 보다 광범위하게 실제적인 역할들이 더 요구된다.

이를테면 캄보디아에 지속적으로 단기선교로 가고 있는 한국교회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실제와 필요를 계속적으로 알리고, 함께 미래 대안을 모색하는 단기선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선교지에서 수많은 단기 팀을 받아서 활동과 행사 위주로 진행되는 단기선교로 그쳐서는 안된다. 부정적인 필리핀 선교의 재현이기 때문이다.

중장기 선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시니어 선교사들, 소속과 정체감이 없는 많은 독립 선교사들 문제를 도외시하거나 간과하기에는 그 위험성이 너무나 크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한국교회와 선교현장이 하루 빨리 협력하여 가능한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교회 자립
다음으로 캄보디아 선교의 두 번째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는 현지 교회 자립이라는 과제를 한 번 살펴보자.

보통 선교지 교회의 자립 문제를 논할 때는 우선적으로 성경에 근거한다. 모든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과 현지 지역의 교인들이기 때문이다. 바울을 비롯한 선교사들은 현지 지역교회가 세워지도록 초기 전도와 지도자 양육 등 선교적인 돌파의 역할을 하거나 선교지가 꼭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사역을 섬기고 돕는 역할을 했다.

또한 19세기 이후 기독교 개신교 선교 실제에서는 성경적 원리를 심화 발전시킨 ‘삼자(三者)원리(17)’, 혹은 ‘사자(四者)원리’가 중요한 선교 현지 교회의 자립 기준이 된다.

삼자원리란 구체적으로 자립(自立), 자치(自治), 자전(自傳)하는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 목표이며, 여기에 ‘자신학화(自神學化)’라는 현지인에 의한 신학적인 자립까지 고려한 것이 사자(四者) 원리이다(18).

이에 근거하여 캄보디아 현지교회를 살펴보면 캄보디아 개신교회는 아직 온전히 자립된 교회(19) 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또한 교회의 지도력을 스스로 발휘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현지 선교사들의 말이다. 선교사들의 말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 캄보디아 선교사들과 현지 교단은 지난 2013년 캄보디아 선교 90년을 기념하면서 캄보디아 교회를 진단하고 교회 자립에 대해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한 해 전인 2012년에 먼저 캄보디아 현지 복음주의의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인 EFC(Evangelical Fellowship of Cambodia)가 2012년 말까지의 캄보디아 개신교회 통계를 발표하면서 전국에 2,697개의 교회와 168,887명의 신자가 있는데 이는 전 국민의 1.19%에 해당하는 비율이다(20).

이 단체는 캄보디아 전국의 무(無)교회 지역에 교회를 세우기 위한 목표로 ‘MK(Mission Kampuchea) 2021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EFC는 1995년에 설립되었으며, 캄보디아 개신교회와 선교단체의 70% 이상 소속되어있는 복음주의 배경을 가진 연합단체이다.

다시 교회자립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사실은 2013년 캄보디아 선교 90년, 한인선교 20년을 계기로 한국 선교사들이 자립 교회와 이양을 분명한 선교 목표로 선정하고 선교사의 역할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캄보디아 선교 10년 내지 15년 이상 된 한인 중견 선교사들 중심으로 사역의 전환이나 사역지 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한편 현지 교회들은 전도와 민족복음화를 통한 캄보디아 교회 개척과 확장 운동에 더욱 매진할 것을 촉구하는 각성이 있었다. 캄보디아 선교에서 2013년은 대단히 중요한 한 해였다.

각 교단/단체의 교회 자립 정도
지금까지는 교회자립과 관련하여 총론적인 부분을 다루어 보았는데, 이제부터는 구체적인 각론으로 캄보디아의 주요한 5개 교단/단체의 교회 자립 정도를 살펴보겠다.

캄보디아에서의 현지 교회자립을 보다 더 실제적으로 이해하는데 각 교단/단체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교회자립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비교 분석,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C&MA 교회

1. C&MA/KEC: 1923년부터 그 후 약 50년 동안 캄보디아 선교를 주도하였으며, 전도와 교회개척 사역을 주로 하였다. 처음 1923년에 두 선교사가 들어왔는데 먼저 입경한 선교사는 프놈펜 중심으로 성경번역 사역을 하였으며, 후에 들어온 선교사는 바탐방을 중심으로 성경학교와 교회개척 사역을 시작하였다.

C&MA 사역은 “우리는 우리의 가진 모든 노력과 자원을 역동적이며, 건강한 지역 교회를 세우는데 초점을 맞춘다.”에서 볼 수 있듯이 전도와 교회개척을 강조하면서 자체 교단을 세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 단체이다(21).

1948년에는 C&MA의 영적인 양육을 받은 현지 목회자들 중심으로 최초의 현지 교단 KEC(Khmer Evangelical Church, 크메르복음교회)가 조직되었으며, 현재 선교단체인 C&MA와 협력하고 있다. 참고로 2012년 KEC 교단 산하의 지 교회는 205개이며, 이중 크메르족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가 155개, 소수종족 대상 교회가 50개이다(22).

2. OMF(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캄보디아: 1973년에 캄보디아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청년 학생 대상 사역과 교회개척 사역, 현지교단 KEC 소속 지역교회 리더들과 성도들에게 성경을 교육하는 사역을 전개했다.

캄보디아가 공산화된 이후에는 태국 국경의 난민 캠프에서 구제선교 및 제자 양육사역을 통해 현재 캄보디아 교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재를 양성하였다.

90년대 이후에는 OMF 캄보디아 내 한인 선교사(23) 들이 교회 설립과 함께 교회 자립과 지도력 이양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를 마련하였다. 특별히 OMF의 경우는 교회 개척 이론을 실천하면서 오는 시행착오를 선교사들이 직접 경험하고 그 노하우를 축적 공유하였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바탐방에 있는 캄보디아 최초 교회(Chhke Kaun Baptist Church)

3. CBU(Cambodia Baptist Union): 캄보디아 종교부에 등록된 캄보디아 침례교회(교단)의 현재 명칭이다. 그 전신은 KBC(Khmer Baptist Convention), CBC(Cambodia Baptist Convention)이다.

미국 남침례교단 중심으로 농촌 위주로 1993년부터 시작된 현지인 사역자 중심의 교회개척운동(CPM)을 통해 한때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개신교단인 CBC(Cambodia Baptist Convention, 캄보디아 침례교회)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10년 뒤 2004년 미국 남침례교단이 완전히 철수한 이후, 선교사들에게 의존했던 재정, 선교사들의 캄보디아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이 전개된 빠른 지도자 이양, 도시에서 거주하면서 농촌마을 중심의 현지인들과 함께하지 못한 행정적인 선교, 제도적 조직적 교회로 발전하지 못하고 가정교회 형태로의 교회개척운동이 지닌 한계 문제 등으로 결국 캄보디아 내에서 체계적인 교회 자립과 지도력 이양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24).

이에 한인 침례교 선교사들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보완된 교회개척사역에 주력하고 있다. 2010년 자체 통계에 의하면 캄보디아 14개 시도에 232명이 목회자가 304개의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전체 교인이 12,914명이라고 한다(25).

4. MMC(Methodist Mission in Cambodia): 캄보디아 감리교회는 다른 교단 교회에 비하여 비교적 늦게 캄보디아 사역을 시작하였다. 첫 캄보디아 선교사는 한국에서 1993년 파송된 송진섭 선교사였다.

송진섭 선교사는 1993년 프놈펜에서 감리교선교센터를 마련하여 한국감리교선교부(KMC)를 조직하고 교회개척 사역을 중점적으로 추진하였으며, 1997년에는 캄보디아감리교신학교를 창립,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후 캄보디아에 들어와서 선교활동을 해오던 4개의 외국선교부 곧 한국감리교선교부(KMC), 미국감리교회세계선교부(UMC), 싱가포르감리교회(SMC), 세계중국인감리교회연합회(WEFCMC)가 지난 2003년에 하나의 통합된 선교조직체로 MMC로 통합되면서 본격적으로 감리교단 사역을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특별히 2005년에는 제 2회 연례회의를 통해 전국 지방회를 조직하여 당시 152개 교회를 7개 지방회 조직으로 구성하고 감리사를 통해 지도 관리하도록 함으로, 이때부터 하나의 캄보디아 감리교 연합선교부 MMC로만 존재하게 된 것이다.

2011년까지 교세 통계는 11개 지방 150개 교회로 성장했으며, 매 주일 평균 출석인원은 어린이를 포함하여 6,200명 정도라고 발표했다(26).

당시 이들은 2016년까지 캄보디아 내에 감리교회가 자치, 자립, 자전하는 건강한 토착교회로 성장하여 다른 외국의 감리교회와 같은 정식 자립 연회가 조직되고, 캄보디아인 감독이 세워지며, 다른 외국의 감리교회들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동역하게 되는 목표를 수립하였다(27).

이후 근황을 보면 지난 2018년 9월에 캄보디아 감리교회가 제 10회 선교연회(선교사연회), 제 1회 (임시)자치연회를 개최하여 캄보디아 첫 감리교 감독이자 연회장으로 룬 소피 목사를 선출하였다(28).

한편, 현재 KMC는 40가정, 72명의 선교사를 캄보디아에 파송하고 있으며, 이 중 23가정이 MCC와 직접적인 선교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캄보디이감리교신학교(CMBS)에서 사역하는 소수의 선교사 가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선교사가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개척 및 목회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MCC가 창립된 이후, 위의 4개의 창립멤버 교회(UMC, SMC, WFCM, KMC)들은 MCC를 위해 분담금을 책정하여 돕고 있으며, 연간 MCC를 위한 본부 부담금으로 UMC가 $18,000, KMC $9,000, SMC $9,000, WFCM $9,000을 돕고 있으며 이외에도 목회자 사례비를 한국(감리교 아시아선교회)과 미국(UMC 버지니아연회)에서 각각 연간 약 $36,000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29).

한국교회의 협력으로 세워진 바탐방 지역의 감리교회

5. PCC(Presbyterian Church in Cambodia): 캄보디아 장로교회(PCC)는 위의 감리교 MMC와 동일한 해 2003년에 연합체로 첫 출범을 하게 된다.

장로교의 경우 1993년 처음으로 캄보디아에 들어온 강창윤 선교사를 비롯하여 이후에 들어와 사역을 하던 7개의 한국 장로교단 선교사들이 개신교 선교 80주년, 한국 장로교 선교 10주년이 되는 2003년에 캄보디아 장로교 공희회(약자로 캄장공)를 조직하면서 처음 기틀을 마련했다(30)

곧 합동, 통합, 고신, 대신, 고려, 개혁, 합신 교단 등 7개 교단 소속 선교사 23명에 의해 캄장공이 설립되었는데 당시 개척된 교회는 모두 32개였다.

캄장공이 조직된 이후에는 바로 캄보디아 장로교 신학교(약자로 캄장신)를 개교하여, 본격적으로 목회자 양성과 함께 장로교 교단 교회개척사역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9년에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기독교 교단으로 정식 허락을 받게 되었으며, 이후 2013년 7월에는 캄보디아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첫 장로교 독노회를 설립하였다. 당시 캄보디아 전국 7개 시찰의 176개 지교회와 84개의 기도처를 배경으로 한 65명의 목사, 8명의 장로 및 32명의 언권회원 선교사가 참여하였다(31).

독노회 예배 후 첫 회무회의에서는 캄장신을 졸업하고 목사고시에 합격한 6명의 캄보디아인 목사를 안수함으로 캄보디아 장로교회의 첫 캄보디아인 목사를 배출하여, 캄보디아 장로교 독노회 목사 회원이 71명이 되었다.

이후 보다 더 온전한 교회의 자립과 지도력 이양의 시점은 2020년 총회를 조직하는 때로 보고 있는데, 현재 캄장신과 캄보디아 장로교회가 당면한 과제는 이 사역이 정체와 소강상태에 처할 위험에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캄보디아에서 갈수록 장로교 소속의 선교사들이 수적으로도 가장 많을 뿐 아니라, 각각 하는 사역들도 교육, 문화, 사회개발 등 다양화하면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캄보디아에서 여러 사역 부분의 하나로 되면서 선택과 집중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32).

여기에 초기 선교사들의 이탈과 사역 전환, 후임 선교사들의 새로운 유입도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사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을 마무리하며
글의 분량이 예상보다 많이 늘어 났다. 그래서 글을 마무리하면서 제목을 다시 상기해본다. ‘캄보디아 선교의 뜨거운 감자 : 한인 선교사 수(數)와 교회 자립’, 이 주제로 캄보디아 선교현장의 이슈를 들여다보았다.

여기서 필자는 먼저 한인 선교사 2000명이라는 숫자가 말하는 기회와 위험요인을 언급했는데, 이는 교회자립 문제와도 맞물려 캄보디아 선교를 좌초시키는 암초와도 같아서 빠른 해결책 모색이 필요하다.

2000명 선교사들이 모두 각자 자기와 관련된 교회들에서 개별적인 사역을 전개한다면 캄보디아 전체 복음화는 과연 제대로 진척될 수 있을지 의구심마저 들기도 한다.

더 심각한 것은 한편에서는 캄보디아의 교회자립을 위하여 눈물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헌신을 하고 있지만 이미 각 교단별로 신학교, 지도자, 교회개척사역에 있어서 중복과 경쟁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캄보디아 현지인지도자들이 외국선교사들에게 더욱 더 의존하도록 하는 고질적인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다가오는 ‘2023년 캄보디아 선교 100주년! 한인선교 30주년!’에는 캄보디아 현지교회 자립은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져있을까?

그 때에는 외국인 선교사의 역할은 어떻게 한계가 지어지고 선교사 주도적인 선교에서 사역은 어느 정도 이양되어질 것인가?

그 끝이 올 수 있는가? 함께 지켜보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풀어야할 과제이다.

마침 코로나로 전 세계가 변동과 대전환을 겪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더욱 더 자립선교가 필수불가결하게 대두되고 있다. 글을 마치면서 캄보디아 현장선교사들의 안위와 건투를 기도한다.  글 | 정보애(SIReNer)

[각주]
(1) EBS TV, 앙코르와트 3부작 다큐멘터리중, ‘신들의 땅 앙코르’, 1부 ‘앙코르와트’, 2011년.
(2) 관련된 더 자세한 내용은 우리 선교회 홈페이지나 어플에서 CAS19호 이슈인사이드 ‘두 왕국이야기’를 참고하라.
(3) 킬링필드(វាលពិឃាត, The Killing Fields)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캄보디아 민주 캄푸치아시기에 폴 포트가 이끄는 민주 캄푸치아의 준군사 조직 크메르 루즈가 자행한 학살로 죽은 시체들을 한꺼번에 묻은 집단매장지이다. 현재까지 20,000개 이상의 킬링필드가 발굴되었다.
(4) 위키 백과, 캄보디아 편.
(5) KOTRA 국가 지역 정보 캄보디아, 2018년 통계인구, 정확하게는 16,449,519 명.(자료원 출처: CIA world fact book, 2018 기준)
(6) 현 캄보디아 선교사인 장완익선교사는 캄보디아에 주재하는 개신교 선교사들을 3,000 여 명이라고 말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영문 자료를 참고하라.
Steve Hyde, “A Critique of Unnecessary Yoke article and iincluding the related book ‘We are Not the Hero: A Missionary’s Guide for Sharing Christ, Not a Culture of Dependency‘, by Jean Johnson’, 『Cambodia Mission Forum』, 2014.
(7) 전호진 박사, 인터뷰 자료, 미간행물, 2018.
(8) 조명순 선교사, 인터뷰 자료, 미간행물, 2019.
(9) 958년과 1975년 당시 태국에서 사역하고 있던 최찬영 선교사가 캄보디아를 방문하여 부흥집회를 인도했는데, 이것이 처음 한국인에 의한 캄보디아 사역의 시작이다. 이후 1974년부터 1979년 까지 임세종 태권도 교관의 고아원과 학교 및 난민 캠프에서의 사역, 1992년부터 1995년 차연미 선교사의 난민 캠프에서의 사역 등도 본격적이 사역 이전 시기 초기 사역에 포함된다.
자료 출처: 주캄한인선교사회, 선교역사연구분과, 『캄보디아 선교역사』, 서울: 도서출판 첨탑, 2013, pp. 185-195.
(10) 주캄한인선교사회, 선교역사연구분과, p. 198.
(11) 캄보디아에 첫 개신교 선교사를 파송한 단체는 C&MA(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이다. 1887년 알버트 심슨(Albert B. Simpson)목사에 의해 미국에서 설립된 복음주의 배경의 선교단체 및 교단이다.
(12) 2013년 5월 28일~31일 까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열렸으며, 주캄한인선교사회와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공동 주최하였다.
(13) 손승호, “한국교회 태국선교의 역사”, 『한국 기독교와 역사』, 제28호, 2008년 3월.
(14) 임도마, “베트남선교의 역사와 미래”, 『2012년 마닐라포럼 자료집』, 2012.
“한국교회가 처음 베트남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4년 한국군을 월남전에 파병하면서부터이다. 당시 베트남전쟁에서의 사기 진작을 위해 조직된 군목과 군종을 통해 베트남교회와 소수민족들과 만남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구제와 봉사, 선교가 시작되었다. 1968년 한국 국방부가 파월 4년 동안에 한국군 사상자가 4천 91명이 넘었다고 발표하면서 이때부터 교계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피가 뿌려진 월남땅에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면서, 드디어 1970년 1월 7일에 예장통합 교단 파송으로 박상준 선교사가 베트남에 제1호 한인선교사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인용문은 임도마의 베트남선교의 역사와 미래 글 가운데, 2. 한인선교사의 베트남 선교역사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부분적으로 발췌 인용한 것이다.
(15) 구체적으로 주캄보디아한인선교사회에서는 2012년 3월부터 선교역사분과를 구성하여 일 년 이상, 캄보디아 선교역사를 연구하고 공동 집필하였으며, 다음 해 2013년 5월에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와 공동으로 ‘캄보디아 개신교 90주년 선교포럼’을 개최하고, 『캄보디아 선교역사』를 출판하였다. 이후 이 책은 캄보디아한인선교사회 모든 회원에게 배부되고, 한국교회와 선교단체에도 공유되어 캄보디아 선교 현황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제공하였다.
(16) 이 글을 쓰는데 도움을 받은 참고자료는 다음과 같다. 캄보디아 선교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 인도차이나한인선교사대회 신학분과, 『인도차이나 지역의 교회자립』, 2011.
– 주캄한인선교사회, 선교역사연구분과, 『캄보디아 선교역사』, 서울: 도서출판 첨탑, 2013.
– 이교욱, “인도차이나 선교 상황과 핵심 이슈들, 『인도차이나 지역의 교회자립』, 20011, pp. 16-33.
– 김정호 외 18인, “캄보디아의 교회 자립”, 『인도차이나 지역의 교회자립』, 2011. pp. 152-307.
– 백신종, “북미 주에서 본 캄보디아 선교의 과제와 전망”, 『캄보디아 선교 90주년 및 한인선교 20주년 기념대회 자료』,  2013.
– 장완익, “캄보디아 개신교 90년사에 나타난 교회 자립과 지도력 이양“, 『한국교회사학회지』, 제37집, 2014.
– 장완익, “캄보디아 장로교회 자신학화의 현실과 미래”, 제1차 권역별선교전략회의자료집(2014 RCOWEⅠ), 서울: KWMA/KWMF, 2014.
– 장완익, “종교개혁의 정신 아래에서 본 한국인의 캄보디아 선교의 내일”,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움』, 미간행물, 2018.
– 장완익, “21세기 캄보디아 질서 변화에 따른 선교적 대응”, 『프놈펜 포럼 2019연구자료집』, 2019.
– 공베드로, “캄보디아선교특강 및 인터뷰자료(UPMA)”, 미간행물, 2019.
– 김창옥, 캄보디아 선교현황 시엠립 현장 인터뷰자료(UPMA), 미간행물, 2019.
– 함윤정, “캄보디아 한인선교 현황과 선교의 재고”, 『한국선교KMQ』, 2014, 통권 52호, 겨울호.
(17) 삼자원리는 19세기 영국 국교회의 헨리 벤(Henry Venn)과 미국 회중교회파인 루퍼스 앤더슨(R ufus Anderson)에 의해 그 개념이 정립되었으며, 이후 중국 선교사 출신인 존 네비우스(John Nevius) 및 존 로스(John Ross)등이 한국 선교사들에게 와서 이 삼자원리를 전하고 실행한 계기를 통하여 한국에서 자립적이고 토착적인 교회 형성에 기여하게 된다. 배안호, 『한국교회와 자립선교』, 서울: 한국학술정보, 2008.
(18) 윌리엄 D. 테일러, 김동화 외 4인 옮김, 『21세기 글로벌 선교학』, 서울: CLC(기독교문서선교회), 2004.
(19) 자립된 교회, 자립교회는 경제적인 면을 포함하여 스스로 조직하고, 다스리며, 전도하는, 특별히 외국 교회나 외국인 선교사로부터 별도의 지원이나 간섭을 받지 않는 상태의 교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장완익,“캄보디아 개신교 90년사에 나타난 교회 자립과 지도력 이양”, 『한국교회사학회지』, 제37집, 2014. p. 4.
(20) MK 2012 Cambodian Churches Presentation, 2012년; 장완익(2014), p.2에서 재인용.
(21) 장완익(2014), p. 5
(22)  MK 2012 Cambodian Churches Presentation, 2012년; 장완익(2014), p.7.
(23) 대표적인 사례는 OMF한인선교사로 조학현 선교사, 공베드로 선교사를 들 수 있다. 공선교사는 캄보디아 농촌지역에서 지난 25년 간 교회개척사역을 해오다, 현재 한국 OMF대표로 사역하고 있다. 관련된 문헌자료는 『인도차이나 지역의 교회자립』에 사례로 발표된 공베드로의 “캄보디아 농촌지역의 교회개척과 자립(콤뽕쫌롱/꼼뽕뽀벌 지역을 중심으로)”를 참조하면 된다.
(24) 안희열, “캄보디아의 교회개척운동(CPM)에 관한 평가와 전략적 제안”, 『복음과 선교』, 제6집, 2006.
(25) 장완익(2014), p. 10.
(26) 송진섭, “캄보디아 감리교회의 토착교회로의 성장 방안”, 『인도차이나 지역의 교회 자립』, 2011, p. 174.
(27) 송진섭(2011),p. 175.
(28) 송양현기자,“캄보디아 감리교회 자치연회로 성장”, 2011. 9. 11. KMC뉴스(http://www.kmcnews.kr)
(29) 송양현 기자
(30) 장완익(2014), p. 14.
(31) 장완익(2014), p. 14.
(32) 이에 대해 장완익 선교사는 2014년에 발표했던 자신의 글 “캄보디아 장로교회 자신학화의 현실과 미래”부분에서 외국인 선교사들의 올바른 역할은 현지 자립교회를 위해 제자양성, 지도자양육, 신학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장완익, “캄보디아 장로교회 자신학화의 현실과 미래”, 제1차 권역별선교전략회의자료집(2014 RCOWEⅠ), 서울: KWMA/KWMF,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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