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Overlay

사도행전(5) 안디옥 교회와 선교단,모달리티와 소달리티 (사도행전 11:19-26, 13:1-3)

성경이 말하는 CAS
D·I·G·I·T·A·L JOURNAL 21호 2020. 

이 글은 김병선 선교사님이 그동안 진행해 오신 “선교의 성경적 관점” 강의를 본인 허락 하에 주제별로 발췌하여 설교문으로 재정리한 글입니다. 이는 목회자들의 ‘성경적인 선교 설교’를 돕기 위해 마련한 것이며, 설교문 작성을 위해 구성과 표현상의 각색은 다소 있으나, 최대한 원 강의의 관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성구 인용 : 개역개정판)


성경에서 ‘안디옥’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사도행전 6장에서입니다. 거기서 초대교회 일곱 집사를 세우는데, 그 중 한 명이 “안디옥 사람 니골라”입니다. 그 후에 한참 언급이 없다가, 11장 19절에서 스데반 순교 후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제자들이 ‘안디옥’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때 제자들이 처음에는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다가 오늘 본문 20절에서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디아스포라 신자 몇 사람이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했고, 주의 손이 함께 하셔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에 22절에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파송하여 안디옥 교회를 개척하였고, 그렇게 사도행전 후반부에서 이 ‘안디옥’이 복음과 선교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안디옥교회 : 타문화 전도를 통해 처음 설립된 교회(행 11:19~21)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E-1; 동질문화권 전도)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E-2 ; 유사문화권 전도,E-3; 타문화권 선교)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안디옥 교회는 타문화 복음 전도를 통해서 세워진 첫 번째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다종족, 다문화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였기 때문에, 이제는 문화적으로 유대주의에 매이지 않고, 헬라문화를 배경으로 글로벌한 새로운 교회가 탄생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파송된 바나바는 이 헬라지역 교회 개척과 목회에는 최적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그 역시 헬라파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헬라문화에 익숙했고, 헬라 성도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24절에서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평하듯, 여러 다양한 출신과 배경의 성도들을 잘 아우르고 포용하며, 잘 목양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져 안디옥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나바, 출처: wikipedia

어쩌면 바나바는 이러한 자신의 강 점을 잘 살려서 혼자서도 안디옥 교회를 건강한 지역교회로 잘 성장시켰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하나님의 역사에서 이 안디옥교회가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잘 모이고, 크게 성장하는 잘 나가는 지역교회를 원하셨던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 안디옥교회를 세계복음화를 위한 전초기지로 삼으시고, 본격적인 이방 선교의 모판으로 쓰시기 위해 세우셨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바나바는 사람을 품고 모으는 목양 뿐 아니라, 진리로 양육할 수 있는 말씀 사역에 더 탁월한 동역자의 필요를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25절에 바나바는 자신보다 젊지만, 회심 후 3년 간 아라비아 광야에서 훈련을 받고, 무려 10년간 성경 연구에 매진하고 있던 바울을 발탁하기 위해 직접 다소로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겸손한 수고는 한 성령 안에서 부르심을 확인한 바울과 함께 안디옥 교회에서 일 년 간 큰 무리를 가르칠 수 있는 길을 열게 하였습니다.

당시 이 두 사람의 사역으로 인한 사람들의 변화와 그 열매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본문 26절에, “…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이방 땅에서조차 신앙의 정체성이 확연하게 드러나 자타가 인정하는 신앙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이 공동체는 ‘유대인’, ‘아랍인’처럼 족속으로 대변되지 않고, 그 따르는 신앙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공동체였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라고 하시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들을 ‘이스라엘 민족, 유대인’이라고 불렀지 ‘여호와인’, ‘하나님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명실상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컫는 그리스도의 사람들로 일컬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또한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 사람들의 종족과 출신이 다양하였기 때문에 어느 한 종족의 종교로 한정할 수 없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요즘 말로 ‘글로벌’ 종교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가 자신의 어떠함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전하고 가르쳤기 때문에 그 순전함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 출처: wikipedia

바나바가 자신보다 젊고, 아직 당시 교계에서 검증되지 않았던 바울을 발굴하여 함께 목회하기로 했던 것은 사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처럼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는 마음 없이 정말 하나님의 뜻만을 세우려는 겸손하고 온유한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신생 안디옥 교회가 선교 역사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로 발돋움 할 수 있었습니다.

행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구레네 사람 루기오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그러한 바나바를 통한 안디옥교회의 겸손한 리더십과 다양성에 열린 모습은 오늘 두 번째 본문 13장 1절에서 안디옥 교회를 섬기는 선지자와 교사들의 면면을 보면 더 잘 이해가 됩니다.

첫째는, 바나바 자신이고, 둘째,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입니다. 니게르는 흑인을 의미하는 니그로와 같은 어원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피부가 검은 아프리카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셋째, 구레네 사람 루기오입니다. 구레네는 리비아의 행정수도인 트리폴리의 고대 지명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도 아프리카 지역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넷째,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입니다. 젖동생이란 ‘유모의 자녀’를 가리키는 말이니, 마나엔은 헤롯왕과 가까운 사회적으로 높은 계급에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이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길리기야 다소 출신으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당대 최고 율법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 했던 성경 지식이 탁월한 인물이었습니다.

이처럼 안디옥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들 자체가 출신과 신분이 다양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그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다양성 가운데서 하나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안디옥교회를 통해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쳐진 유대인들만의 민족종교가 아닌, 다양한 인종, 출신, 사회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완전히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디옥(Antioch), 출처:wikipedia

안디옥교회는 부흥하는 교회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앞서 언급한대로 하나님께서 이 안디옥교회를 세우신 역사적인 목적, 그 사명을 실행하게 됩니다. 13장 2절에 보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언제 금식을 합니까?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 그 간절함으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죠. 여기에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주를 섬겨”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일을 섬김에 있어서 어떠한 중요한 결정이나 간구의 제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2절에 성령께서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성령께서 이 안디옥교회를 세우신 목적, 그 사명과 관련해서 중요한 명령을 하시는 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이 함께 금식까지 하면서 그 뜻을 구하는 것이죠.

그 간구의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2절,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먼저 안디옥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지도자인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3절에, 교회는 다시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라고 합니다. 어디로 보냅니까? 4절,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거기서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자, 성령께서 안디옥교회의 중대한 사명을 위해 금식까지 하게 하시면서 주신 명령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구브로 지역 ‘선교’를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까 앞에서 이 안디옥교회의 사명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 교회를 세계복음화를 위한 전초기지로 삼으시고, 본격적인 이방 선교의 모판으로 쓰시기 위함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그 일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문화적으로 고정관념에 묶여 있지 않았던 안디옥교회는 성령께서 선교를 위하여 자유롭게 쓰실 수 있는 교회였습니다. 다양성 가운데 하나됨이 있던 교회로서 첫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안디옥교회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들은 모두 다문화에서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자기들은 예수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자기들이 살던 동네와 종족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예수 믿는 사람은커녕 복음을 전해 준 이도 없는 이 상황이 얼마나 마음에 부담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를 섬겨 금식할 때 구브로 출신인 바나바는 ‘내가 어릴 때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셨던 그 옆집 뚱순이 아줌마와 그 아들딸들, 아직도 예수님 알지 못하고 살고 있는데 나 그 사람들한테 복음 전해야 한다.’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소의 고대 로마 도로, 출처 wikipedia

또 바울 같으면, ‘길리기야 다소에서 나랑 공부하고 뛰놀던 그 친구들, 아직도 복음을 모르는데 내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이런 마음이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분명히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사도들에게 들었겠지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전해라.’ 이런 말씀을 생각하면서 ‘오, 나도, 우리 안디옥교회도 그 말씀에 순종해야 되는데 어떻게 하지?’라며 고민했을 것이고, 그 고민이 간절하니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교회의 이중 구조 (The Double Structure of the Church)
① 모달리티 (Modality): 양육 중심의 목양적 구조한 지역에서 지역 성도들을 양육하는데 효과적인 구조E-1에 적합한 구조
소달리티 (Sodality) : 과업 중심의 선교구조 – 전투적 교회로 타문화권 선교에 필요한 적응력과 기동성에 특화된 구조E-2, E-3에 적합한 구조 


바로 그 때 성령께서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동기와 함께 더 중요한 것은 여기부터입니다. 여기 “따로 세우라.” 영어로 ‘Set apart for~’. 이 말은 ‘따로따로 뚝뚝 띄어 놓으라.’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선교운동을 위해서 따로 세워진 사람들을 가리켜서 선교학적으로 우리가 ‘소달리티’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원래 안디옥 교회는 목양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소달리티의 반대 개념인 ‘모달리티’입니다. 모달리티를 쉽게 설명하면 온누리교회, 내수동교회, 지구촌교회와 같은 지역교회(local church)를 생각하면 됩니다.

소달리티는 GP선교회, WEC, OMF, UPMA 등과 같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교회라고 말하는 기관들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모달리티라는 목양적 구조를 가진 교회에서 전적으로 선교사역을 위해 성령께서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따로 떼어 놓으라, 따로 세우라, ‘Set apart for~’이라고 해서 세운 소달리티가 오늘 본문의 바나바와 바울의 선교단이었던 것입니다.

모달리티와 소달리티 모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교회’입니다. 모달리티는 한 지역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문화를 가진 동질문화권(E-1) 안에서 효과적인 조직입니다.

특히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양육해야 하는 교회의 목양 사역에 적합하기 때문에 신분, 출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누리게 하고, 제자로 양육하고, 또 그 안에서 재생산을 위한 전도와 선교 자원을 길러내는 하나님이 세우신 귀한 교회입니다.

반면에 소달리티는 사역적 기동성과 문화 적응력을 바탕으로 타문화권 선교사역에 효과적인 조직입니다. 모달리티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공급받아 유사문화권(E-2)과 타문화권(E-3)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역시 하나님이 세우신 귀한 교회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달리티로서의 지역교회에서 열심히 목양과 제자양육을 통해 헌신된 주의 일꾼들을 길러내고 선교자원을 마련하는 선교의 모판과 같은 역할을 감당해내면, 이를 바탕으로 소달리티로서의 선교단체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역, 종족, 종교, 사역에 전문화된 사역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모달리티와 소달리티의 교회는 함께 하나님의 목적이신 선교를 이루어가는 동역관계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이 안디옥교회의 선교를 위해 세워지는 바나바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바나바는 말하자면 안디옥교회를 개척한 사람이었고, 가장 리더십이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울 즉 바울은 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복음적인 성경해석 분야에서는 아마 당대 최고였을 것이며, 안디옥교회에서도 바나바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다른 여러 지도자들 중에서 굳이 바울과 바나바 이 두 사람을 따로 빼내어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한 지역교회에서 담임 목사님과 그에 버금가는 수석 부목사님을 따로 빼내어 선교사로 보내라고 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로 최고의 실력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을 모달리티에서 빼내어 소달리티를 이끌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습니다. 교회와 선교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계속해서 복음이 없는 곳, 교회가 없는 곳,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없는 곳으로 최상의 자원을 투입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전장의 관점과 동일합니다. 평시에는 각 지역별로 고루 자원을 배분하겠지만, 전시에는 전쟁을 신속하게 끝내고, 승리하기 위해 아직 아군이 점령하지 못한 적지에 최상의 전력과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죠.

선교는 그야말로 ‘in operation in the enemy’ 곧 적진 한 가운데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하나님은 계속해서 적지와 같은 선교현장에서 싸워야 하는 소달리티에 우선적으로 탁월하고 헌신된 일꾼들을 배치하시는 전략적 선택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직 복음이 점령하지 못한 타문화권 속에 가서 그곳을 복음화하고, 세계선교를 완성해야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calling leading calling’, 곧 ‘부름 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부름 받은 사람’으로 더 큰 희생을 각오할 수 있는 특별히 헌신된 사람들을 선발하여 보내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 나타난 안디옥 교회와 바나바와 바울의 선교단이 세워지는 모습들에서 하나님의 이방을 향한 선교의 열정과 이를 위한 매우 전략적이고 계획적인 역사의 진행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역사는 비단 그 때 당시에만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시대에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이는 모달리티로서의 지역교회보다 소달리티로서의 선교단체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둘이 하나로 연합하여 보다 효율적이고 신속한 세계 복음화의 과업을 이루어가는 상호 동역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지역교회는 지역교회로서 지역사회 속에서 사랑과 관용의 덕을 나누며, 더욱 탁월하게 말씀을 증거하고, 끊임없이 새 생명을 생산해내며 제자와 헌신된 일꾼들을 재생산하고 파송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선교단체들은 이와 같은 건강하고 힘 있는 지역교회들을 바탕으로 더욱 전문적인 전략과 탁월한 헌신으로 남은 선교적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전 세계 곳곳마다 복음 전하며 또 새로운 모달리티로서의 지역교회를 세워 가는데 매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충성을 다하여 주님 오실 그 날을 앞당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원 저| 김병선 선교사 , 설교편집 | 강 호세아(SIReNer)

※ 본문 중 이탤릭체 부분은 편집자의 이음글; 설교문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원본 취지를 유지하면서 편집자가 첨언한 부분입니다.

위 자료의 저작권은 UPMA에 있으므로, 인용하여 사용하실 경우 반드시 출처를 남겨 주십시오. 

디지털 저널
C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