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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선교, 선교사에 관한 단상 : 사스와 메르스 때 개인 경험

업마생각
D·I·G·I·T·A·L JOURNAL 21호 2020. 4

최근 코로나로 전 세계가 어려운 시국에 감염병 유행과 관련된 과거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첫 번째는 지난 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기억인데, 그때 나는 선교사로 중국에 있었다.

당시 아버지가 그 해 5월에 돌아가셨는데, 내가 살던 도시 북경은 집집마다 대대적인 방역작업에 소개령, 외출 자제령 등으로 집 앞이나 주요 건물마다 출입을 통제하는 바리케이트까지 설치된 상황이었다.

거의 모든 식료품 마트마저 극심한 라면, 휴지, 생필품 사재기 현상으로 도시 전체에 두려움과 공포가 만연했던 시절이었다. 한국에서 연락이 와서 아버지의 위독한 상황을 알았지만, 사스라는 중대한 사태가 정점이던 때라 외국인 출국 등 수속에 지연이 생기면서 임종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해서, 장례식장에서 사진으로 아버지를 뵈었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다.

두 번째는 메르스 일명 중동호흡기증후군과 관련된 기억이다. 지난 2015년 여름, 메르스가 한국을 강타하면서, 당시 집 근처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니와 우리 세 자매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는 안타까운 한 달 동안의 시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2003년 5월 아버지의 죽음, 같은 해 10월 추석 직전에 발생한 남동생의 불행한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죽음의 그림자와 삶의 무게가 남은 가족에게 이미 드리워져 있었기에, 네 명의 가족 구성원인 엄마와 세 딸들은 서로에게 더욱 소중하고 먹먹한 존재들이 되어 있었다. 상실하고 나서야 더 절감하게 되는 가족이라는 관계의 비밀!

그래서 우리 세 자매는 매일 순번을 정해 어머니를 뵙고 눈 맞추기, 손잡기, 포옹하기 등 어머니와 우리에게 남은 하루하루를 귀하게 여기며 일상에서 사랑하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게다가 난 선교사라는 사명 때문에 부모님과 남동생이라는 부분에 가슴 속 깊은 곳에 상처와 부채감까지 가지고 있던 터여서 매일 병원에 가는 것을 목숨처럼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었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살기 위해서 그런 우선순위를 선택했던 것 같다. 선교사로서의 여정에서 가족에게 소홀했던 무거운 짐을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어머니와 이별하는 삶의 과정은 ‘부재중’이 아니라, ‘함께’ 하며 그 여정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런데 메르스란 불가항력의 역병이 발생하면서 병원 내 감염 위험으로 외부인 출입이 완전 통제가 되면서, 이러한 소망과 바람마저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 이후 심신의 박약과 외로움, 주변 환자들의 상태가 주는 두려움 등 우리를 만나지 못하던 한 달 동안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되시더니, 다시 병원이 재 오픈되었을 때, 말을 못하는 실어증이 오고 치매가 심해져서 우리를 못 알아보시는 상황까지 되었다.

그 전까지 매일 식구들을 보면서 붙잡았던 삶의 소망과 끈을 완전히 놓아버린 것이었다. 그 후 2년 뒤인 2017년에 사랑하는 어머니는 주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셨다.

어머니를 여의고 난 후, 가족 중 세 명의 죽음에 함께 하지 못한 채 그 과정을 지나온 선교사로서의 나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심한 통증을 앓았다. 온 몸이 다 아팠다. 가족을 상실하고 떠나보내는 부분에서 내게 삶이란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란 우리가 잘 이별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하나님께 분노가 생겼다. 지금까지 선교사로서의 여정, 사역에 대한 회의와 좌절이란 깊은 웅덩이 속에 빠졌던 것이다.

지면의 한계상 이후의 회복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 나누지는 못할 것 같다. 이제 글을 맺으며 어머니의 상실 후, 현재 코로나라는 이 외풍(外風)의 시간에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자문해 보니 우선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예전보다 겸손해지고 통합되어 조금 더 성숙해진 것에 감사하게 된다. 특히 죽음 앞에 선 인생에 대하여!!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중국과 유럽의 이탈리아, 스페인, 중동의 이란 등 열방을 위한 골방에서의 기도가 매우 절절해졌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의 회복을 위한 기도! 이 때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된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또한 코로나 기간 중 매주 들려오는 내가 섬기는 참빛교회 성도 가족들의 장례 소식에 “내가 잘 준비하고 계획하고, 통제하는 이별과 상실”이란 현실적으로는 거의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 앞에, 여호와 샬롬의 주님만이 진정으로 위로와 평강, 새 생명을 주실 수 있다는 ‘진짜 실제’를 경험하고 고백하게 된다.

그래서 무력한 것 같지만, 미약한 것 같지만 ‘지금’, ‘바로’, ‘일상에서 사랑하기’, ‘섬기기’를 작은 행동으로 나누어서 실행해본다. 저 먼 ‘타문화권 거기(there)에서의 선교’가 아니라 거룩한 영적 습관처럼 ‘믿음은 행동’이라는 내 일상의 삶을 구속적으로 충실하게 기쁘게 감사하면서 살게 되니 코로나가 이런 점에서는 영적인 성숙을 주고 은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선교사님들 때문에 걱정이 되어 잠을 설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선교사였기 때문에 이후 선교지에 미칠 여파와 영향이 너무 두렵다. 솔직히 말하면 선교단체, 교단의 미래 방향도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도전과 재조정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하게 하실 것도 믿는다. 금번 코로나라는 계기를 통해, 이제 더 이상 선교지에서 선교센터, 교육관, 비전센터 등 건물, 물량주의의 퍼주기 식 선교가 아니라, 그 땅의 현지인 한 사람이 한 영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개인이나 한국교회 공동체, 선교 현장의 선교사들 모두가 절절하게 배우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선교지와 선교지 사람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우리 열심으로 선교하던 우리에게 이제 직접 코로나를 계기로 ‘우리를 선교하고 계시는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다. 한국교회와 한국 선교사들의 선교를 회복시키실 주님을 기대한다.   글 | 정보애(SIR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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