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 디스커버리
D·I·G·I·T·A·L JOURNAL 22호 2020. 6
들어 가는 말
서남아무슬림권역의 선교는 매우 중요하다. 이 글에서 서남아무슬림권역은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를 의미함을 밝힌다. 왜냐하면 전 세계 무슬림 인구의 ⅓이 서남아무슬림권역에 있기 때문이다. 서남아무슬림권역의 무슬림 인구는 2009년 ‘퓨 리서치’ (PEW Research)에 의하면 아래와 같다.
본고에서는 이처럼 많은 무슬림 인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슬람 선교의 시급성과 우선순위 면에서 늘 중동 등 여타 이슬람 국가들이나 지역들에 밀려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서남아무슬림권역의 이슬람과 선교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먼저 무슬림선교에 있어서 왜 서남아무슬림권역(서남아시아)이 중요한지에 대한 10가지 이유를 밝히고, 내일을 향한 한국적 제안을 하고자 한다.
필자는 최근에 「북 인도행 열차-인도 무슬림을 찾아서 (2012)」를 쓴 한국의 한 단체의 팀(1)의 큰 수고와 인도,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에서 사역하는 한국 사역자들과 국제단체의 영국 사역자에게 큰 감사를 드린다. 왜냐하면 그들의 글과 도움이 없었다면 이 제안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더 많은 교회, 선교 단체와 개인들이 서남아무슬림권역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는 무리들이 일어나길 간절히 간구 드린다.
1. 서남아무슬림권역이 중요한 10 가지 이유들
(1)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가 존재하는 무슬림 블록이므로(The World’s largest Block of Muslims)
세계의 무슬림 3명 중 1명이 서남아시아 무슬림이다. 아랍 무슬림보다 훨씬 더 많은 무슬림 인구가 인도 대륙에 산다. 아랍 무슬림은 산유국들이 있는 탓으로 상대적으로 부자이지만, 인도 대륙의 무슬림은 대부분 가난하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방글라데시는 매우 가난한 나라이다. 파키스탄 역시 가난한데 파키스탄 내 무슬림 인구는 2030년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도표 1 참조). 또, 인도, 방글라데시도 3위, 4위로 많은 무슬림 인구를 가진 나라가 될 전망이다.
(2) 여러 영향력 있는 무슬림 운동의 근원들이 있어서(The Source of several Influential Movements)
이 세 나라는 모두 다 영국이 지배한 나라들이었다. 이 나라들 내에 아래와 같은 무슬림 집단이 생겨났었다. 아하마디아(Ahmadiyas)(2), 자맛-이슬라미(Jamaat-i Islami)(3), 마울라나 마우두디(Maulana Mawdudi)는 자마티이슬라미(Jamaat-i Islami)의 창시자로서 서남아무슬림권역의 무슬림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
데오반디스(Deobandis)(4)운동-근본주의 운동, 알리가르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속주의 근대 운동(사이이드 아마드 중심으로), 이슬람식 근대주의 운동(사이이드 자말루딘 아프가니스탄 중심으로) 등이 서남아시아권에서 발생하였고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1889년 3월 23일에 현재의 인도 케이디언(Qadian) 지역에서 아흐마디 운동은 시작되었다. 창시자 미르자 굴람 아흐마드(Mirza Ghulam Ahmad, 1835–1908)은 자신이 약속된 메시아 ’마흐디(Mahdi)’라고 주장하였다. 즉 성경과 코란에 예언된 다시 오실 메시아인 마지막 구원자 메시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무슬림을 아흐마디 이슬람(Ahmadiyya Muslim Jama’at) 공동체라고 불렀다. 추종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를 예수의 모습으로 지상에 보내셔서 종교적인 전쟁을 없애고, 정의와 평화를 세우기 위해 보냈다고 믿는다.
아흐마디 운동은 창립된 지 25년인 1914년에 두 그룹으로 분리되었다. 한 그룹은 출발지인 인도의 케이디언(Qadian)에 남아서 아흐마디 운동(Ahmadiyya Movement in Islam, Jamaat-i Ahmadiyya) 그룹이 되었고, 다른 그룹은 현재의 파키스탄 도시인 라호르(Lahore)로 옮겨 가서 이슬람 부흥을 위한 라호르 아흐마디 운동(Lahore Ahmadiyya Movement for the Propagation of Islam, Ahmadiyya Anjuman Ishaat-i-Islam)(5)이 되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파키스탄이 인도와 1947년에 독립하면서 본부를 케이디언(Qadian)에서 라브와(Rabwah)로 옮겼다.
1970년에 정부를 지지하는 자마티 이슬라미(Jamaat-i Islami)가 선거에 나섰을 때, 반-아흐마디 운동이 파키스탄에 펴졌고, 마우두디(Maududi)는 그의 책 ‘Qadiani Problem’에서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이러한 반 아흐마디 운동은 1984년 4월 26일 지아 울 하끄 대통령 (General Zia-ul-Haq)때, 아흐마디는 무슬림이 아니고, 그들이 무슬림이라 말하거나, 보이는 형태로 쓰거나, 다른 무슬림처럼 기도(Call to Prayer)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감옥 형을 받는다는 법령 20조를 발표하게 되었다. 이런 핍박을 피하여 아흐마디 공동체의 본부를 런던으로 옮겼고 4대 칼리프 Mirza Tahir Ahmad도 함께 런던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파키스탄의 라브와(Rabwah)에는 현재 파키스탄 내의 아흐마디 본부로 사용 중이다.
이후, 라호르(Lahore)그룹은 장로와 같은 지도자 그룹들이 리더 그룹이 되어서 아흐마디(Ahmadiyya) 그룹을 인도하지만, 라브와(Rabwah) 그룹(6)은 칼리파(7)가 첫 창시자의 뒤를 이어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그룹이다. 이 리더십 구성이 이 두 그룹을 나누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지금은 5대 칼리파가 까디아니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 칼리파는 500~600명의 지역 지도자들이 모여서 투표로 다음 칼리파를 결정하고 그 칼리파는 죽을 때까지 칼리파이다. (현재 5대 칼리파는 Mirza Masroor Ahmad이다).
이러한 핍박은 무함마드 아브두스 살람(Mohammad Abdus Salam) 박사에게도 악영향을 끼쳤다. 그는 파키스탄의 최초, 그리고 유일한 노벨 수상자였다. 그러나 그는 아흐마디였으므로 파키스탄에서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1974년에 아흐마디가 무슬림이 아니라는 정부의 결정에 항거하며 같은 해에 파키스탄을 떠났다. 그가 안치된 라브와(Rabwah)의 그의 무덤 비석에서 ‘Muslim’이라는 단어를 삭제한 흔적이 지금도 아흐마디 공동체의 아픔을 증언하고 있다.
또 다른 운동은 인도의 알리가르 운동이다. 알리가르 지역의 사이이드 아마드(1817-1898, Syed Ahmad Khan)가 19세기에 일으킨 세속 근대주의 이슬람 운동이다.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진심 어린 충성심과 영국 문화를 높이 인정하는 마음에 식민 영국인들의 존경을 갈망하는 욕구까지 더해진 서로 상반된 두 기질을 동시에 가지면서 1875년 알지가르 무슬림 대학교(Alighar Muslim University)를 세웠고 세속 근대화 운동의 씨앗을 뿌렸다(8).
이 학교를 ‘이슬람 세계의 케임브리지’로 만들고자 하는 비전을 가졌다. 이 학교에서는 서구의 모든 과학 분야, 예술, 문학, 철학을 가르쳤다(9). 보수주의자들은 사이이드의 계획에 반대했지만, 이 대학은 빠르게 발전했다. 1886년 사이이드는 전인도 무함마드 교육회를 조직하여 교육을 증진시키고, 이슬람교도에게 공통적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매년 다른 장소에서 모임을 가졌다. 1906년 이슬람 연맹이 설립될 때까지 이 조직은 인도 이슬람교의 주요한 전국 조직으로 활동했다(10).
이에 대해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소위 이슬람식 근대주의 운동이다. 19세기에 가장 유력했던 무슬림 개혁가, 화산처럼 폭발적인 영향력을 미친 사이이드 자말루딘 아프간(1836년)이다(11).
그는 영국에 대한 증오와 유럽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견고한 연대’ (The Firmest Bond)라는 중요한 학술지를 만들어서 범이슬람주의 신조의 핵심을 구축했다(12). 그의 지적(知的) 계보(系譜)에 오를 따르는 제자는 ‘하산 알 반나’가 있다. 그는 이집트에 ‘무슬림 형제단’을 설립했다. 강렬하고 민첩한 인물이었던 자말루딘은 무슬림 세계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큰 반영향을 끼치고 있다(13). 자말루딘 사후 22년이 지나서 아프가니스탄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던 것이다(14).
(3) 이슬람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이슬람 근대 국가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이 탄생하여서 (The World’s first modern nation-state in name of Islam)
무굴 제국은 서남아무슬림권역 전역을 약 600년간 지배하였다. 즉 힌두인, 불교인 등 서남아무슬림권역의 모든 대부분의 사람들(Majority)을 소수(Minority)인 무슬림이 지배하였다. 그 후 약 200년간 영국이 이들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과거 지배자였던 소수 무슬림은 힌두와 불교인들 대다수의 폭정(the tyranny of the majority)을 매우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함마드 알리 진나(Muhammad Ali Jinnah)는 대다수 무슬림이 지배하는 독립된 국가를 갖도록 노력하였다.
결국 1947년 영국과 인도로부터 독립하여 파키스탄이 동 파키스탄과 서 파키스탄으로 나뉘어 독립하였다. 그 후 1971년 그 당시 동 파키스탄은 서 파키스탄(현재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여 방글라데시를 만들었다. 즉, 파키스탄은 무슬림을 중심으로 탄생되었다. ‘파키스탄’의 이름은 ‘거룩한 땅’이라는 뜻이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의미는 ‘이슬람의 거주지(The dwelling-place of Islam)’라는 뜻이다. 이슬람을 중심으로 통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1947년 파키스탄이 형성되는 과정에 백만 명의 사람들이 살해되었고, 천만 명의 난민들이 발생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또한, 1971년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할 때에는 무슬림이 무슬림을 죽이는 참상이 벌어졌다.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God’s kingdom on earth)’을 이루려던 마울라나 마우두디(Maulana Mawdudi)의 꿈은 현대의 가장 처참한 피의 현장이 되고 만 것이다. 알라를 중심으로 하는 신정 정치를 한다면 누가 지상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통치할 것인가?
파키스탄의 독립 이후 지난 60여 년간의 파키스탄 역사는 ‘몰라나 마우두디’의 이슬람을 지상에 세워 보려는 ‘이상적인 이슬람 국가’와 ‘진나’ 초대 대통령의 ‘현대 세속 민주주의 국가’ 사이의 투쟁의 역사였다. 무하마드 알리 진나(Muhammad Ali Jinnah)는 초기부터 파키스탄을 세속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려 했다.
소수 종교인들의 자유도 보장하여 헌법에 그들의 종교 자유를 보장하였다, 오늘날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록색 바탕의 파키스탄 국기의 맨 왼편에 있는 하얀색은 소수 종교인들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 이념의 표현이었다. 지금도 파키스탄은 ‘세속화냐’ ‘이슬람화냐’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무슬림 나라를 원했던 알람마 이크발(Allama Iqbal)은 ‘국가 지배자들은 백성들과 알라신에게 모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파키스탄의 이러한 정치적 경험과 투쟁의 역사는 현대에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란, 아프가니스탄, 수단 정부는 이런 정치적 이슬람을 택하여 지금까지 계속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 부시도 미국적 민주주의를 무슬림 나라들 안에 소개했지만 실패하였다. 그러면 서남아무슬림권역에 어떤 정부 형태가 가장 바람직한 미래를 줄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어느 유명한 이슬람 학자는 크리스천들이 국가와(시저에게 속한 것들과) 종교를(하나님에게 속한 것들을) 나눈 것에 대해 비평하였다. ‘아니오, 시저와 그 외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에게 속해 있습니다!’ 서남아무슬림권역은 그의 비평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4)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들이 있어서(Arguably the World’s most dangerous geopolitical flashpoint)
세계 ¾의 가장 심각한 테러 음모는 파키스탄과 관련되어 있다. 즉 파키스탄 내 전투적인 무슬림인 탈레반이 있다. 파키스탄의 북서 도시 아보타바드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살해되었다. 마울라나 마우두디(Maulana Mawdudi)의 사망 이후 파키스탄과 인도에서는 더 이상적인 이슬람을 세우기 위해 폭력이 더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 이런 폭력적 이슬람을 대하는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의 일반 무슬림은 스스로 질문하며 무슬림 정체성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누가 진정한 무슬림인가?’ ‘무엇이 진정한 이슬람인가?’
1703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난 ‘압둘 와하브’는 와하비야 운동 (Wahhabism)을 일으켰다. 그의 꿈은 사우디아라비아 반도를 통합하는 것이었다. 코란을 중심으로 이슬람 근본주의로 복귀하는 운동이었다. 와하비야 운동의 사고방식과 열정은 아라비아 반도를 훨씬 넘어서까지 파급되었는데, 특히 이슬람 세계에서 아라비아 반대 끝에 있는 인도에서 번성했다(15). 이러한 사상은 이븐 타이미야(Ibn Tayymia) 사상을 이어받아 더 근본주의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등이 이런 사상을 전수받았다.
최근에 ISIS(The 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 테러 조직)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칼리프 제도를 부활시켜 세계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파키스탄 탈레반은 2014년 10월 4일 이드 알아드하(Id ul Azha) 개막에 맞춰 성명을 내어 이슬람 국가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고 파키스탄 일간 ‘Dawn’이 보도했다. 파키스탄 탈레반의 대변인 샤히둘라 샤히드는 이날 성명을 통해 “형제여, 당신들의 승리가 자랑스럽다. 행복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당신들과 함께 하겠다.”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전 세계를 아우르는 이슬람 칼리프 국가 설립을 위해 모두 나서라”고 강조했다(16).
(5) 다른 종류의 이슬람(민중 이슬람-Popular Islam)이 주된 이슬람이므로(A Different Type of Islam)
지난 여러 시기 동안 서남아무슬림권역에는 이슬람 수피즘이 매우 큰 영향력을 끼쳤다. 이런 이유로 민속 무슬림 (Folk Muslims-Folk Islam)이 인구의 약 70%를 차지한다. 이는 정통 이슬람이 금지하는 것들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이런 금지된 일들을 실천하고 있다. 브렐비 전통(the Brelwi tradition)을 가진 무슬림은 ‘신당의 사람들’, ‘모스크의 사람들’이라고 불려 지는데 그들은 목요일에는 성자의 무덤을 찾아가서 경배하고 금요일은 모스크에 가서 기도한다.
이런 반대되는 실천을 동시에 하지만 이런 행위에 대해 모순을 느끼지 않고 실천하고 있다. 이슬람의 신비주의를 따르는 이들은 시와 노래와 춤을 좋아한다. 그리고 아픈 자들을 위한 치료, 기적들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과 임재를 갈구하며 남들을 정죄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강조한다. 이는 정통 이슬람과 매우 다른 이슬람이다.
(6) 영국과 한국의 이슬람에 지배적인 영향을 주었으므로(The Dominant Influence in British Islam)
영국 내 7명 무슬림 중 6명은 서남아무슬림권역 출신 무슬림이다. 이들은 벌써 제2대, 3대 자손들을 두고서 영국화된 무슬림 세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슬림 공동체와 영국 사회 내에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영국에서의 그들의 정체성 문제가 매우 큰 이슈가 된 것이다.
현재 영국에 와서 정착한 서남아시아권 무슬림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젊은 무슬림 이슈이다. 이들은 영국에서 태어났고 공부했으나 집 밖에서는 영국인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차별 대우를 받고 산다. 집안에서는 부모들이 서남아무슬림권역 출신이어서 대부분 보수적이고 무슬림 전통을 지키도록 강요한다. 그래서 이 젊은이들이 정체성이 매우 혼란스럽다. 이때 근본주의 과격 무슬림 단체들이 이들을 자신의 단체에 끌어 들여서 지하드를 가르치고 이슬람의 이상을 실현하도록 이들을 교육해서 과격 무슬림이 되고 있다.
그리고 2010년 12월 현재, 한국 여인과 결혼한 파키스탄인은 654명, 방글라데시 인들은 412명이다. 현재 파키스탄 내 한국 대사관에서 가장 골치 아픈 민원 중의 하나가 파키스탄 무슬림과 결혼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사는 한국 여성들의 이슈이다. 2014년 8월 31일 현재 한국 내에 체류하는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인들은 아래와 같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자국 내에서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지만, 대부분 코리안 드림(Korean Dream)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와서 노동, 사업 등을 통하여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방글라데시 무슬림은 상대적으로 유순한 편이지만, 파키스탄 무슬림은 방글라데시 무슬림에 비하면 과격한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이 다문화 가족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무슬림과의 관계에 있어서 한국 정부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나라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여러 다른 나라들로부터 배워서, 가장 적절한 모델을 만드는데 전력해야 할 것이다.
(7) 가장 큰 미전도 무슬림 종족들이 있으므로(The largest Unreached Muslim Peoples)
서남아무슬림권역에는 거대한 미전도종족들이 산재해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북부와 인도의 북부에 사는 파탄(Pathan 혹은 Pashtum) 종족은 세계에서 가장 전도가 안된 미전도 무슬림 종족이다. 약 3천만 명의 파탄족 중에서 예수님을 믿는 이는 매우 극소수이다. 이들 안에 탈레반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 지역들은 지구 상에서 가장 영적으로 어두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여호수아 프로젝트’에 서남아무슬림권역에 있는 미전도종족들에 대해 귀중한 정보들이 있다. 특히 인도의 북쪽 지역들은 대부분 무슬림이다. 그러나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무슬림은 서로 다른 종류의 무슬림으로 발전해 왔다.
(8) 가장 무슬림이 많은 나라들이지만(무슬림 전인구의 ⅓), 가장 적게 기독교 선교를 지원하므로(The Muslim Mega-region perhaps least resourced for Christian Mission)
지구 상에서 가장 복음화가 안된 무슬림 종족들은 우르드어를 사용하는 서남아무슬림권역의 무슬림이다. 그러나 그들을 위하여 사용되는 재정은 매우 미약하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에 사용되는 기독교 재정은 상대적으로 엄청나지만 서남아무슬림권역에 살고있는 무슬림을 위해 사용되는 재정은 대단히 미약하다.
예를 들면 중동에 10개의 TV채널을 통하여 매일 200시간 아랍인들이 가정에 크리스천 방송이 들어 간다. 그러나 전 무슬림 인구의 ⅓을 차지하는 서남아무슬림권역의 무슬림 언어인 우르두어로 방송하는 크리스천 TV 채널은하나도 없다(아마 현재는 작은 규모의 크리스천 TV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을듯하다). 우리는 아랍어보다는 우르두어를 이해하는 무슬림이 이 지구 상에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지원은 매우 미약하다. TV,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넷, 그리고 이러한 사역들을 위한 선교사들이 더 필요하다.
(9) 현지 크리스천들을 위한 독특한 기회들이 있음과 동시에 독특한 어려움이 있으므로(Unusual Opportunities and Constraints for Indigenous Mission)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에는 모두 하나님의 교회들이 흩어져 산재한다. 사도 도마로부터 시작된 교회들이 있었으나 매우 미약하였다. 그러나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부흥을 맞이하고, 또, 쭈르하(불가촉천민 종족)의 집단 개종으로 작은 믿음의 공동체들이 생겼다. 많은 무슬림 나라들은 이러한 토착화된 지교회들이 없지만 서남아무슬림권역에는 지역 교회들이 존재한다.
파키스탄은 전 인구의 약 2%, 인도는 4-5%, 방글라데시는 많은 지교회들이 새롭게 형성 중이다. 이 지역교회들은 많은 이슈들을 가지고 있다. 무슬림으로부터 차별 대우, 가난 문제, 교회 내정치 싸움, 문화적으로 무슬림이 그들을 천민으로 취급하여 개인적·사회적 접촉을 피하는 경향 등의 도전들이 있지만, 외국 사역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이들이 하고 있고 또 앞으로 할 수 있을 것이며 하도록 격려와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다.
최근 ‘어떻게 예수님을 알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파키스탄 내의 무슬림 회심자들은 자신들의 파키스탄 크리스천 친구들과 동료들의 증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고 답했다.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의 현지의 평범한 평신도 크리스천들을 훈련 시켜서 그들 이웃과 친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도록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긴급하다. 그래서 그들 안에서 예수를 위한 자원 군대(a volunteer army for Jesus)가 일어 나야 한다. 이들을 위해 서남아무슬림권역의 세 나라에 있는 신학 연장 교육 운동(TEE: 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을 통하여 풀뿌리 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10) 최대의 종족 회심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므로(주로 방글라데시에서) (The largest present day People Movement to Christ, Bangladesh only)
방글라데시에 많은 무슬림이 예수께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 1970년 이래 대략 400,000명으로 추산한다. 최근 들어 이란에서도 많은 이들이 예수께로 돌아 오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회심이 일어나고 있는가?
1970년대에 필파샬(PhilipL.Parshall)이 ‘무슬림 전도를 위한 새 길(New Paths in Muslim Evangelism)’ 을 제시했다. 그로 인해 상황화에 대해 논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에 방글라데시에 맛살마니 신약성경(the Mussalmani New Testament)이 출판되었고, 무슬림이 자기들의 언어와 문화적 관점에서 복음을 이해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에 존 트라비스(John Travis)가 C1-C6(17)을 가지고 상황화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였다. 최근에 파키스탄에도 친 무슬림 성경이 출판되어 큰 논쟁 중이다. 그러나 이슬람 언어와 문화를 충분히 감안한 친 무슬림 성경을 읽은 무슬림이 이전보다도 더 복음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이러한 성경과 여러 기독교 문서들이 친 무슬림 언어로 번역될 경우, 더 많은 무슬림이 복음을 이해하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 올 것을 기대한다.
2. 한국적 무슬림 선교 제안 서남아무슬림권역이 중요한 이유
10가지를 살펴보았다. 이제 이런 배경들을 감안하면서 앞으로의 선교를 위한 한국적 제안을 하고자 한다. 서남아무슬림권역의 무슬림 선교의 시급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시기를 원하신다’ (디모데전서 2:4)
(1) 서남아권(서남아무슬림권역내)의 이슬람 선교에 대한 건강한 신학적 틀을 제공하자
‘좋은 신학이 늘 좋은 선교를 낳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학이 없거나 나쁜 신학은 확실히 나쁜 선교를 낳을 것이다(18)’라는 짐 테베(Jim Tebbe)의 말은 한국교회의 이슬람 선교를 위하여 매우 의미 있는 말이다. 한국 선교는 필자의 리서치에 의하면 전도, 제자 양육, 교회개척이 중심이 된 선교이다. 이러한 사역적 실천은 건강한 신학에서 나와야 한다.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는 ‘세계화된 기독교’를 인정하면서 남반구(비서구 교회)의 신학적 기여를 기대하였다. 다국적 교회와 다방향 선교 시대에는 서구 신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필자는 이점에서 특별히 비서구 교회에서 무슬림과 관련하여 서구적 신학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한다고 믿는다. 서구 신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과 서구 기독교가 부딪쳐 오면서 발전된 그들의 신학의 부족한 부분을 비서구가 보완해야 한다는 말이다.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12세기경 아랍세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도미니칸 수도사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s)가(19) 그 당시 동료 도미니칸들을 위해 이슬람에 대해서 ‘이방인들에 대한 비판적 정리(Summary against the Gentiles)’를 쓸 때 동료 크리스천들을 위해 보충적으로 그 글을 쓴 것처럼(20) 오늘날 비서구가 성경적 관점에서 동료 크리스천들을 위해 이슬람 선교를 위한 신학을 보충해야 하다.
예를 들면,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하갈(창16:8, 11)과 이스마엘(창 17:20-축복/25,26-할례)을 축복하신 점, 갈라디아서 4:21-31에 사라-이삭과 하갈-이스마엘에 대해 ‘비유’라고 분명히 밝히면서 바울 사도가 그 뜻을 분명히 재해석하는 점(즉 이비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의 차이를 뜻함), 이집트와 시리아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그를 경배하며, 세계 중에 복이 되리라는 약속(이사야 19:21-25), 팔레스타인들이 유다의 한 종족같이 되리라는 약속(슥9:7)(21)등에 대해 서남아무슬림권역의 무슬림을 의도적으로 의식하면서 ‘보완적인 신학’이 형성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무슬림을 바라본다는 것은 산상 수훈을 통해 무슬림을 바라보고 관계해야 함을 의미한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는 그리스도의 명령이 무슬림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뜻하는가를 마땅히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구약을 해석하시면서 ‘너희가 …라고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마5:21,22,27,28,31-34,38,39,43,44)라고 구약을 그 당시에 재해석해 주신 것처럼, 신약이 완성되고 코란이 완성된 이후, 그리고 서남아무슬림권역처럼 다원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는 지역들에, 무슬림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한 건강한 신학을 현지의 사역자들이 시급히 재정립되어야 한다.
(2) 무슬림권내에서 ‘하나님의 공동체’(교회)가 무엇인지 다시 살펴보자
필자의 설문조사에서 한국 선교의가장 강한 강점의 순서로 희생적인 헌신, 기도생활, 전도, 제자 양육, 교회개척 순으로 나타났다(22). 그러나 무슬림권에서의 교회 개척에 있어서는 수많은 도전들이 있다. 그 중에 재정비되어야 할 과제가 교회론이다. ‘무슬림권에서 교회가 무엇이냐?’라는 것이다. 핍박이 가세되는 서남아무슬림권역의 현황에서 한국적인 제도적 교회를 발전시키기에는많은 문제가 생긴다. 사무엘 즈웸머도 1912년에 ‘크리스천이 크리스천이라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무슬림도 물론 그가 무슬림이라고 구원받을 수 없다. 그들이 (현존하는) 기독교와 공식적 가시적 관계 밖에 있어도 그리스도와 살아있는 불가시적인 관계가 있는 모든 이들은 구원받을 것이다’라고 했다(23).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지상 교회의 최소 단위를 두세 명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도적인 교회에 익숙한 한국과 서구 교회들이 무슬림권에서 사도행전적인 가정 교회를 격려하면서, 1세기적인 교회의 모습에 더 충실할것을 제안해 본다. 사도행전 16장에 나타난 루디아 가정 모임, 빌립보 간수 가정모임을 무슬림권 내 최소 교회 형태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당시 잠정적으로 빌립보에서 머물러 누가가 가정 교회들을 돌보았고, 바울은 순회하며 섬겼듯이, 박해와 도전이 심한 이슬람권에서 가정 교회(모임)들이 많이 생겨나면 1세기적 가정 교회처럼, 성숙한 현지 지도자들을 장로와 목사로 세워서 순회하며여러 흩어진 가정 교회들을 돌보게 함도매우 좋은 대안으로 보인다.
폴 히버트가 그의 저서 ‘21세기 선교와 세계관의 변화’에서 철저하게 파헤친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가진 교회는 1세기 모습에서 매우 멀리 멀어진 모습인데 현재 한국의 제도적 교회가 진정성있는 교회 모습인양 무슬림권에 복제하려는 시도는 끝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DNA를 무슬림 안에 복제하려는 진정성 있는 예수 복제는 환영하지만, 다른 나라의 제도적 교회를 무슬림권에 복제하려는 시도는 첫 단추를 잘못 꿰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1세기 교회의 모습을 성경에서 배우고, 한국 교회가 탈 서구교회, 탈 한국 교회 작업을 거쳐서 교회의 성경적 모습을 찾아 서남아무슬림권역의 무슬림권에서 교회를 형성하는시도를 한다면 건강한 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본다.
단, 제도적 교회와 새롭게 탄생되는 무슬림권 내의 신생 교회들 간에 많은 충돌과 긴장이 생기고 있는데, 이를 위해 제도적 교회의 전통적인 신학과 전통적인 권위와 무슬림 배경에서 생겨나는 신생 교회의 지도자들 간에 진정한 교제와 대화, 서로 배움을 통하여 서로 존중하고 배우는 과정이 성숙되어야 할것이다.
(3) 건강한 제자 양육을 통해 현지에 적합한 현지 교회가 형성되도록 하자
무슬림 회심자들을 제자 양육하는 방식과 공동체인 교회로 모이게 하는 방식도 성경적이면서 서남아무슬림권역의 현지 무슬림에게 적합한 방식은 없을까? 이에는 ‘교회가 무엇인가?’, ‘복음이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작업부터 해야 함을 뜻한다.
무슬림 회심자들에게 성경을 직접 읽게 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문화와 말로 표현하게 하며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우기도 하고, 또 그들과 쌍방으로 상호 의사소통 함으로써 함께 배우는 방식 등 현지 문화에 적합한 여러 가지 방식들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서남아무슬림권역은 영국의 기독교 제국주의를 경험한 무슬림 나라들인 만큼, 일방적 주입식보다는 겸손히 새로운 시도를 함이 더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최소한 ‘오만과 식민주의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적으로 ‘가지지 못한 자들’-지옥의 형벌을 받은 집단-과 대조되는 ‘가진자들’-지복을 소유한 자들-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똑같이 자비에 참여하는 자요 똑같이 자비를 받은 자들이다(보쉬1991,484)’(24)
“많은 사람들이 나를 제자양육하고 훈련해주길 원했지만 어느 누구도 나의 친구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라는 현지 무슬림 회심자의 말을 기억하면서 제자화는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어 가는(25)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계 중심적이며 가족적인 접근은 서남아무슬림권역에 매우 요긴하다.
또한, 무슬림을 위한 전도지와 크리스천 책들이 재개발되어야 한다. 무슬림은 구약에 있는 문화와 가치관들을 많이 공유한다. 명예와 수치, 대접, 가족과 공동체와의 결속 등이 그런 것들이다(26). 의와 죄(Right or Wrong)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4영리’를 무슬림 문화에 더 친숙한 ‘명예와 부끄러움’을 기초로 달리 만들어 사용해 보는 것도 좋은 시도로 본다. 한편 무슬림 사역 자체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무슬림과 관련한 우리의 사역이 ‘기독교’와 ‘이슬람’사이의 전투관계로 보지 말고, 무슬림이나 크리스천들이나 상관없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사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27).
18-20세기에 무슬림권에서 교회 개척을 성공적으로 했던 대표적인 선교사들의 예를 들면, 인도의 헨리 마틴(1411-1812), 토마스 발피 프랑스인-파키스탄의 최초의 라호르 비숍(1825-1891), 루이스 베반 존스-인도의 헨리 마틴 학교의 초대 교장(1880-1960), 그리고, 이집트의 템플 가드너(1873-1928), 특히 알제리에서 사역한 프랑스 선교사 샤를르 드 포고 등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공통된 교훈들을 그 선교사 들의 삶과 사역으로부터 배우게 된다.
1)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의 중요성, 2) 총체적 방식으로 현지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일, 3) 지역 언어를 잘 하도록 배우며 코란 아랍어를 잘 배울 필요성(28), 4)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글로벌 협력(파트너십)을 잘 하는 일(29)등, 이러한 교회개척과 제자양육은 성경적 세계관으로 회심자들과 사역자들이 함께 양방향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전통적으로 사역자들이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세계관 변화를 촉구하는 일방적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서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변화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4) 기도와 성령의 역사를 통한 상황화 적용을 강조하자
최근 들어 무슬림 선교에 있어서 선교 단체들과 선교사들 내에서 무슬림 선교 상황화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있다. 무슬림권 교회 개척시 ‘상황화’ 이슈와 ‘인사이더 운동’(30)그리고 ‘C1-C6’ 등은 현재 논의 중이지만, 무슬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는 다각적인 노력과 시도는 조심스럽게 격려되어야 한다. 상황화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함부로 매우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사역하는 그들을 폄하하고 비방하는 일은 앞으로의 건강한 무슬림 교회 개척에있어서 부메랑 효과를 내어 우리들 모두가 더 낙심되는 결과를 낳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의와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같은 동료들과 대화하고 충고하며 서로 배우는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 특별히 서남아무슬림권역에 현존하는 지역 교회들과의 관계에서 매우 민감하고 지혜로운 교회론적 그리고 선교론적 통찰력을 가지고 상황화 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31).
필자는 여기서 타문화권 사역자들이 직면한 상황화 이슈 자체를 다루려는 것이 아니다, 다루어지지 않은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다루려 한다. 즉, 상황화 작업에 있어서 하나님 편에서 성령의 역할과 우리 편에서 간절한 기도의 필요성이다. 상황화 과정에서(선교사이건 현지인이건) 사람들이 상황화 작업을 하지만,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와 역사의 정황에서 성경적 세계관으로 평가하고 적용하고 변화하는 일은 결국 성령께서 빛을 각 사람에서 비추어서 깨닫게 하시고, 적용할 힘을 주실 때 적용 가능하고, 적절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믿는다.
현대 선교의 상황화 신학을 정리한 스티븐 베반스의 상황화에 관련된 책들에서, 상황화를 결정적으로 결정케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라는 점을 저자 자신도 빠뜨린 점은 큰 과실이라고 본다. 상황화의 작업에서 ‘성령의 역할’이 가장 결정적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스티븐 베반스 교수는 ‘Constants in Context(한글 번역 판: 「예언자적 대화의 선교」’에서 지난 2000년간의 선교에서 변하지 않는 요소 6가지를 1) 기독론, 2) 교회론, 3) 종말론, 4) 구원론, 5) 인간론, 6) 문화라 보았다.
이 요소들 중에서 성령론은 빠져있다. 신약 시대의 선교의 주인이 ‘성령’이라고 우리 모두 믿지만, 선교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6가지 요인 중에 성령님의 자리가 없다는 점은 인간 중심의 선교와 상황화를 뜻하는 것은 아닌지! 동시에 한국 교회의 열정적 기도는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다.한국 교회들과 선교사들을 통하여 무슬림 여성 회심자들 안에서도 열매를 맺고 있다(32).
세속화가 진행되는 최근에 들어와서 종교가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다시 등장했다. 이슬람교에 바탕을 둔 위대한 문명들, 중국, 그리고 갈수록 미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33). 세속화되어 가는 세계에서 이슬람은 더 종교적이 되고 있는 마당에 기독교 선교가더 합리적이고 현대적이고 경영적인 방법론을 택하기보다는, 성령님의 능력과 기도를 통한 영성과 종교성을 건강하게 잘 보존하고 개발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롬9:1-3의 바울의 간절한 기도처럼)역사하시길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기도를 통하여 일하시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제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 하고, 우리가 기도할 때 무슬림권 안에 성령님의 역사가 있을 것을 믿는 것이다. 경건의 모습뿐만 아니라 경건의 능력도 회복되어야 한다(딤후 3:1-5).
(5) 삼자 파트너십(한국과 현지와 국제 협력)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하자
오늘날 1) 비서구 교회(Global South) 의 급성장과 세계선교 참여-지역 교회 강조, 2) 총체적 선교의 절대적 필요성에 의한 평신도 전문인 선교 시대 도래, 3) 해외.국내 디아스포라(Diaspora) 공동체를 통한 새로운 선교형태의 등장, 4) 국가 간, 선교 단체 간파트너십 선교가 확장되고 있는 것을 본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선교 대회에 참여하면 비서구 지도자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을 본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현지교회 시대’가 도래한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한국 선교가 서남아무슬림권역에있는 현지 교회들과 그리고 무슬림 회심자들(MBBs: Muslim Background Believers)과 협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들과 협력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사실, 서남아무슬림권역 내의 현지교회들과 협력하는 일은 서구 선교사들이 이미 노력했었다. 그런데 중동,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자국 무슬림 전도를 위해 현지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들에 대해 현지인들이 침묵하거나 또는 방어적인 결과를 보여왔다(34).
그러나 서구가 아닌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더 근접 문화권인 한국교회가 그들을 접촉하여 협력하고자 할 때, 한국교회는 지난 약 30년의 한국 선교의 장단점을 심각히 통찰하면서 특별히 최근의 ‘이슬람 파트너십’에서 통찰들을 통해 얻은 지혜와 진정한 겸손으로 협력해야 한다. 즉, 현지인들과 국제단체들과 한국 교회, 선교가 삼자 협력(Triangular Partnership)을 해야 한다. 무슬림권 선교는 어느 한 사람, 한 단체, 한 나라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교회가 성령님의 인도 아래 추진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삼자 글로벌 협력이 이루어질 때, 현지인들과 함께 선교사들의 문제가 되어 있는 상황화 문제도 서로 의논할 수 있고, 현지 교회 개척에 대한 최선의 대안도 이러한 파트너십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과 협력을 하기보다는 적은 수로 성실히 시작하여 실제적인 열매를 맺도록 함으로써 사역을 위한 목표 중심의 협력보다는 무슬림권 현지인들과 그리스도안에서 친교를 맺고, 좋은 신뢰를 쌓아 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여 진다.
로잔 주최 이슬람 선교 컨설테이션(2013.12.4-5)이 옥스포드에서 22명이 참석하여 개최되었다. 목적은 대다수 비서구 교회를 어떻게 강화 무장하여 무슬림 선교를 하도록 도울 것인가였다. 2030년에는 무슬림이 전 세계 인구의 23.4%가 될 전망이다. 즉 가장 큰 미전도 종족 그룹이 될 것이다. 그 때에, 전세계 비서구 기독교인의 65%가 사는 곳에 무슬림 전 인구의 97%가 사는 셈이될 전망이다. 그러므로 비서구권(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있는) 교회를 어떻게 무장 강화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한 어젠다가 될 것이다.
옥스포드에서 전문가들이 소그룹으로 만나서 2014년 4월 가나(Ghana) Accra에서 열릴 컨설테이션(약50여 명의 확대 전략 컨설테이션)을 준비하기 위하여 모였다. 그후 2014년 4월 6-11일에도 가나의 수도 Accra에서 40여 명이 모여서 구체적인 전략들을 논의하였다. 요약하자면, 무슬림 선교는 이제 무슬림권 내의 현지 교회들이 하도록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무슬림 선교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무엇 ‘What’은 정해졌는데 어떻게 ‘How’ 그들을 섬길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전략과 실천에 대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파키스탄 경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120년 된 GTS신학교에 서 조만간 ‘파키스탄 신학생들에게(목회자가 될 신학생들에게) 이슬람과 무슬림선교 과목을 개설하여 가르칠 것이다’는 고무적인 발표를 듣게 되었다. 이런 방향으로 비서구 교회가 무슬림 선교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각자가 훈련·교육을 시키면 충분히 가능하고 또 마땅히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되어 격려가 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파키스탄에서 정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GTS신학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실력 있는 현지 교수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교수의 연구비, 가족의 생활비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등등 실제적인 도전이 있다는 뜻이다.
(6) 차 세대 크리스천을 시급히 준비해야 한다
필자는 소속 선교부 한국 본부의 갑작스러운 필요에 의해 2007년에 한국에 귀국하여 본부 사역을 하게 되었다. 지난 5년간 국내 대표 사역을 하면서 한국의 모국 교회의 현실을 점점 더 알게되었다. 필자는 요한 계시록 2장 5절 말씀이 두렵게 다가왔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나 자신부터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살펴보며 회개하였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현실, 특히 주일 학교, 중 고등부, 청년부 학생들을 생각할 때 매우 마음이 아프다. 이들을 어떻게 섬겨서 다음 세대를 맡을 선교사로 키울 것인가? 다음 세대를 이어갈 교회 지도자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선교의 출발은 지역교회에서부터다. 무슬림 선교를 이야기하기 전에 내 가정과 내 교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가정과 교회가 중요한 모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촛대를 우리 교회에서 옮겨 가신다면 우리는 유럽 교회처럼 껍질만 남는 교회로 전락하게 될 것은 뻔하다. 우리 자녀들이 믿음이 없는 세대가 된다면 그다음 우리 손자의 세대는 매우 무서운 세대가 될 것이며, 급격하게 불신 사회가 될 것이다. 많이 지어진 큰 교회 건물에 누가 올 것인가? 경쟁을 다투었던 많은 신학교는 어떻게 될까? 우선 나와 우리 가정과 교회가 살아야 한다.
앞으로 20-30년이 지난 한국을 상상해 보자. 노인들이 많아지고, 청년들은 별로 없는 교회를 상상해 보라. 이런 교회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심각히 회개하여 다음 세대를 위한 대대적인 회개와 기도를 통하여 교회의 정체성을 되찾자. 그리고 대안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성령님의 예언대로 바울이 개척한 에베소 교회는 역사적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셔도(계 2:1-7)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어질 것이다. 파키스탄 교회를 통하여, 인도 교회, 방글라데시 교회, 아프리카 교회를 통하여 이슬람권을 향하여 하나님 의 선교를 이루실 것이다.
그러나 촛대가 옮겨진 그 나라에는 과연 무엇이 찾아올 것인지 심히 두렵다. 우리 모두 두려움으로 깊은 회개와 기도와 구체적인 대안으로 먼저는 한국 교회를 위해 그리고 서남아무슬림권역의 이슬람권 선교를 위하여 다음 세대를 준비하자. 위기는 항상 기회를 동반하였다. 이럴 때 낙심하지 말고, 희망과 믿음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간구하고 지도자과 차세대들이 만나서 지혜를 모아, 차세대 크리스천들을 준비하여 위에서 필자가 제안한 내용과 방향으로 이슬람권 선교가 이루어지도록 하자. 지금은 한국 교회가 미래 이슬람 선교를 위해 대전환을 해야 할 중요한 시점(Critical Moment)이다.
(7) 더욱 많은 선교사들과 더 많은 기도와 더 많은 사랑과 인내가 필요하다
인구 비례에 볼 때 매우 적은 사역자들이 서남아무슬림권역에서 사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의 무슬림 가운데 상당한 수의 무슬림이 회심하고 있으므로, 선교의 문이 세 나라들 가운데 열려 있다. 이 세 나라에 더욱 많은 선교사가 필요하다. 특별히 서양 선교사들보다는 아시아 선교사들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 인도 무슬림 선교 사역은 사실 초기단계에 있다. 서남아무슬림권역에 무슬림 사역의 열매가 맺혀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도가 심어져야 하고 더 많은 헌신자가 있어야 하며, 더 많은 사랑과 인내로 준비된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전문성을 가진 사역자들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서남아권의 이슬람과 각 나라별, 지역별로 분포된 독특한 이슬람과 무슬림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즉, 이를 위해 현지어는 말할 것 없고, 그 지역의 이슬람을 이해해야 한다.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한국인의 장점을 최대한 실리고 단점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현지에서 성육신적으로 현지인들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사역자들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절실히 필요하다. 영국 등 서구 제국주의의 얼굴을 쓰고 기독교가 들어 온나라들이므로 복음에 대한 오해와 정치적인 오해가 쌓여 있으므로 이러한 불필요한 잡음이 섞이지 않은 한국 사역자들이 복음의 전정성을 4 Ws(Word,Works, Wonder and Weaknesses-하나님의 말씀, 삶, 하나님의 기적, 우리의 연약함들)에 담아 그 복음을 전달해야 할 중요한 역사적 시점에 서 있다.
ISIS(35)가 인도에 지부를 설치하였다. 탈레반은 ISIS를 지원하기 위해 약 1,000-1,500명을 시리아에 보냈다고 보도되었다(36). 과격 무슬림이 한국 사역자들을 주목하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만큼 사역자들이 여러모로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교회는 깨어 기도하고 무슬림권 사역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전략적으로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번에 추진하는 ‘서남아전략회의’와 같은 컨설테이션을 통하여 교회와 사역자들과 사역자 후보자들이 전략적인 유대가 이루어지고 지속적인 연합과 교류와 격려가 있어지길 기대한다. 그리고 UPMA나 이슬람파트너십 같은 연합 사역 단체들이 이러한 일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결론
사무엘 즈웸머의 무슬림 선교 이후 약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 교회는 이슬람을 향한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명을 받았다. 지난 100년의 실수들은 과감히 버리고 좋은 교훈들을 배우는 동시에 한국이 감당해야 할 짐을 지고서 한국은 먼 지평을 바라보며(앞으로 100년을 바라보며) 무슬림과 새로운 관계 형성을 통하여 이슬람을 향한 새로운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의 이슬람 선교를 위한 대안으로, 한국 교회는 승리주의 등을 기초로 했던 과거 선교방식으로부터 탈 서구화 해야하며(37)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시고, 사도행전에서 사도들께서 보여 주신 모본과 선교 원칙을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선교 신학적 틀과 교회론이 재 형성되어야 한다. 서구 신학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이러한 보완적인 신학적 틀을 중심으로 기도와 성령의 역사를 통한 구원의 역사와 건강한 제자양육, 그리고 현지에 적합한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 또한 글로벌 세계에서 글로벌 교회와 더불어 삼자 파트너십(한국과 현지와 국제 협력)이 긴밀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슬람의 통합적 성격을 감안하여 한국 정부는 자신의 중요한 역할을 심각히 자각하여 이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좋은 국가적 관계 모델을 만들어 가야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깊은 영성으로 한국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여, 이슬람을 향한 균형 잡힌 선교의 본과 관점으로 차세대 크리스천을 시급히 준비하고 전수해야 한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둘 다 유일신을 믿는다. 둘 다 선교적이다. 둘 다 종 말을 향한 달음질하고 있다. 두 종교의 사람들은 책의 사람들이다. 기도와 예배의 사람들이다. ‘종교적인 사람들’이다. 앞으로 크리스천 인구가 더 많아질까? 무슬림 인구가 더 많아질까? 염려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사실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진실한 관계를 맺은 자만이 종국에 구원을 받을 것이다.
사무엘 즈웸머가 1912년에 한 말을 다시 기억하자. ‘크리스천이 크리스천이라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무슬림도 물론 그가 무슬림이라고 구원받을 수없다. 그들이 (현존하는) 기독교와 공식적 가시적 관계 밖에 있어도 그리스도와살아 있는 불가시적인 관계가 있는 모든 이들은 구원받을 것이다(38)(이 표현이 제도적 교회를 부인하는 것이 아님에 주의하라). 그리고 세계교회와 더불어 서남아무슬림권역의 무슬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거룩한 제사장들과 거룩한 나라로 사용하시길 간절히 간구 드린다. 그리하여 이 세 나라 내 무슬림의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계5:7)’ 셀 수 없는 무리들이 나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그들을 지극히 사랑하신 하나님을 함께 경배하는 그날이 속히 오길 간절히 바라본다. 아멘.
글| 정마태선교사(Interserver)
[각주] (1) 2012년 리서치를 참조; ‘북 인도행 열차-인도 무슬림을 찾아서’. (2) 파키스탄 내 최대 무슬림 이단 집단. (3) 서남아무슬림권역 내 주된 무슬림 집단. (4) 서남아무슬림권역 내 근본주의 이슬람. (5) 현재 숫자로는 라호르(Lahori) 그룹이 열세하다. (6) 이 그룹은 Qadiani Group이라고도 불린다. 사실 Qadiani라는 호칭은 아흐마디 그룹을 멸시하는 나쁜 칭호이다. (7) (아랍어: خليفة, khalīfa)는 ‘뒤따르는 자’라는 뜻의 아랍어로 무함마드가 죽은 후 움마(이슬람 공동체)•이슬람 국가의 지도자•최고 종교 권위자의 칭호이다. (8) 타밈 안사리, 류한원 옮김,「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서울: 뿌리와 이파리, 2011, p409-p414 (9) 타밈 안사리, 류한원 옮김,「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p414 (10) http://timeline.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14a1261a&ref=5#ID5 (2014.10.7일 확인) (11) 타밈 안사리, 류한원 옮김,「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p415-p425 (12) 타밈 안사리, 류한원 옮김,「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p420 (13) 타밈 안사리, 류한원 옮김,「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p425 (14) 타밈 안사리, 류한원 옮김,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p425. (15) 타밈 안사리, 류한원 옮김,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p400~p408. (16)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658383.html (2014.10.7. 확인) (17) C1~C6 스펙트럼은 무슬림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도중심 공동체’(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그룹) 유형을 비교하고 대조하는 것이다. C1: 주변 무슬림 공동체의 일상 언어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전통적 교회, C2: 주변 무슬림 공동체의 일상 언어를 사용하는 전통적 교회, C3: 주변 무슬림 공동체의 일상 언어를 쓰면서 일부 무슬림 지역 문화 형식을 사용하는 상황화된 공동체, C4: 일상 언어와 성경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이슬람 형식을 사용하는 상황화된 무슬림, C5: 예수님을 따르지만 문화적으로, 공식적으로 여전히 무슬림으로 남아 있는 공동체, C6: 보이는 공동체 없이 비밀 신자 혹은 지하신자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무슬림 (18) 데이빗 그린리 편저, 김요한, 백재현, 전병희 공역, ‘곧은 길에서 좁은 길로(From the Straight Path To the Narrow Road)’, 서울: 예영, 2010, p107 (19) 김영재. 「기독교 교리사」, 수원: 합신대학원 출판부, 2009,p39. (20) Hugh Goddard, A History of Christian- Muslim Relations, Chicago: New Amsterdam Books, 2000, p102-103, 116, 157,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적인 논리와 방법론에 있어서는 기독교 신학을 풍성하게 하였으나, 종교개혁 입장에서 그러한 시도가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에 사람이 접근하는데 오히려 그 만큼 방해가 되는 것이다’ 김영재. 기독교 교리사. p.31 김영재의 언급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전반적인 면을 두고 한 평가이고, 무슬림 관계를 특별히 한정하여 한 말은 아니라 본다. (21) Christopher J.H. Wright,「The Mission of God, Downers Grove」IVP, 2006, p498. (22) (Matthew) Jeong, Keung-Chul, “Toward Best Practice concerning Partnership between Koreans and other nationalities: A model for Interserve, Dissertation of Doctor of Ministry”,(Pasadena: Fuller Theological Seminary, 2009), p86-90. (23) Samuel M. Zwemer, The Muslim Christ (Edinburgh and London: Oliphant, Anderson and Ferrier, 1912), pp. 178-179. ‘The Christian is not saved because he is a Christian. The Moslem, of course, cannot be saved because he is a Moslem.All who may be saved outside of formal and visible connection with Christianity will be saved because of a real and invisible connection with Christ.’ (24) 폴 히버트, 홍병룡 옮김, 「21세기 선교와 세계관의 변화 (Transforming worldview)」, 서울: 복있는 사람, 2010, p551. (25) 폴 히버트, 홍병룡 옮김, 「21세기 선교와 세계관의 변화 (Transforming worldview)」, p127. (26) 폴 히버트, 홍병룡 옮김, 「21세기 선교와 세계관의 변화 (Transforming worldview)」,p45. (27) J. Dudley Woodberry, From Seed To Fruit, (Pasadena,William Carey Library, 2008), p106. (28) Ali Merad, Christian Hermit in an Islamic World: A Muslim’s View of Charles de Foucauld, (New Jersey, USA: Paulist Press, 1999), P6. (29) Matthew Keung-Chul, “Jeong Toward Best Practice concerning Partnership between Koreans and other nationalities” , p109. (30) 인사이더스운동 : 내부자운동, 위키피디어에 나타난 내부자 운동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http://en.wikipedia.org/wiki/Insider_movement#cite_note-1 “내부자운동이란 자신들이 태어난 종교적 공동체의 일부로서 관계적 측면이나 문화 및 사회적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성경에 묘사된 바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포용하는 비기독교인 집단이나 네트워크를 묘사하기 위하여 선교학 영역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들은 이러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예수와 성경을 따를 때에 개인적으로는 자신들이 속한 종교공동체 내에서 발견되는 비 성경적인 신앙요소들에 대해서 거부하기도하고 재해석을 하거나 수정을 가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다른 함께하는 종교인들과는 어떤 면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만 자신들의 종교 공동체로부터 분리됨이 없이 신실하게 예수를 따를 수 있을 때에 내부자 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 그와 같은 운동들이 여러 종교집단들 가운데에서 관찰되는데, 유대인, 무슬림 및 힌두 가운데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31) John Stringer, Contextualization: Transformational Trialogue’ presented at International Council of Interserve on 23 Nov 2011 in London (32) J. Dudley Woodberry, From Seed To Fruit, pp. 70,76. (33) 폴 히버트, 홍병룡 옮김, 「21세기 선교와 세계관의 변화 (Transforming worldview)」, p485. (34) J. Dudley Woodberry, From Seed To Fruit, p56. (35) ISLAMIC STATE OF IRAQ AND THE LEVANT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 테러 조직 (36)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 141006_0013213812&cID=10102&pID=10100 (2014.10.7 확인) (37) 이문장, 앤드류 월즈외 지음, 이문장 옮김, 「기독교의 미래」, 파주: 청림 출판, 2006, pp. 89-107, 224-243. (38) Samuel M. Zwemer, The Muslim Christ (Edinburgh and London: Oliphant, Anderson and Ferrier, 1912) pp. 178-179 ‘The Christian is not saved because he is a Christian. The Moslem, of course, cannot be saved because he is a Moslem. All who may be saved outside of formal and visible connection with Christianity will be saved because of a real and invisible connection with Chri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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