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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도 무슬림 속에서 일어난 사역의 상황과 전략

CAS 디스커버리
Web JOURNAL  24 2020. 11

들어가는 말
전 세계 무슬림 인구가 약 13억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 숫자는 해가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무슬림의 전파는 옛날에는 무력으로 되었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다출산과 돈으로 전 세계에 침입해오고 있다. 현대는 실제로 무슬림이 시작된 아랍 쪽보다도 이제는 비아랍권인 동·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권에서 더 많은 무슬림들을 볼 수가 있다. 그중 인도도 예외가 아니다.

인도는 전체 인구가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1)이면서, 무슬림 인구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이다. 많은 경우 인도하면 힌두교라고 생각을 한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인도는 전 인구의 80%인 힌두가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워낙 전체 인구가 많다보니 불과 16%밖에 되지 않는 무슬림 인구도 약 2억이 넘는다.

인도는 힌두교가 주 종교이지만 인도의 역사 속에서 보면, 지난 11세기부터 꾸준히 무슬림들이 침입해왔고 지역마다 무슬림들이 장악해 왕국을 이룬 적이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 급기야 14세기에는 북인도 쪽에 거대 무슬림 왕국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으며, 16세기 들어오면서 전국적인 무슬림 통일 왕국인 무굴 제국이 거의 300년 이상을 이 땅을 통치했던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힌두적인 성향이 워낙 강할 뿐 아니라, 수 천 년의 전통을 이어온 블랙홀 같은 힌두교가 과거 무슬림 왕국의 번성을 잠식해서 지금은 무슬림들이 힌두교인지 무슬림인지 구분이 잘 안 될 정도로 변질된 무슬림으로 남아 소수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인도의 무슬림 인구는 현재 약 2억 명에 달한다. 이는 중동의 20여개 무슬림 국가의 무슬림 인구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수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인도 무슬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증명된다.

인도의 영향권 아래 있는 무슬림들까지 확장해보자. 1947년 인도가 영국에서 분리, 독립하기 전까지 지금의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인도에 속해 있었다. 현재의 파키스탄 무슬림 인구는 2억에 육박하고 있고, 방글라데시의 무슬림 인구는 현재 1억 5천만 명이 넘어가고 있다. 이 두 나라 중 파키스탄은 인도 무슬림들과 같은 언어와 문화 풍습을 가지고 있고, 방글라데시는 언어만 다를 뿐 문화와 풍습은 역시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본다면 인도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무슬림들의 인구는 인도 2억, 파키스탄 2억, 방글라데시 1억 5천만, 도합 5억 5천만 명이다. 이 수는 전 세계 무슬림 인구의 약 40% 이상이 인도 영향권 아래 있는 무슬림이라는 말이다. 수적으로만 봐도 인도 무슬림에 대한 선교 전략과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인도하면 힌두교라는 선입관을 버리고, 인도에는 비교적 접근이 용이하고, 수용성이 강한 무슬림들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북인도 무슬림 지역에서의 사역 과정

1. 수피주의 델리 니자무딘에서의 사역
본인은 2000년 3월 14일 인도로 파송 받았다. 파송 받기 전 처음 인도를 방문한 것이 1999년 5월이었다. 그때는 인도의 상황과 인도 무슬림들에 대한 사역 여부 등을 묻기 위한 정탐 여행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지금 현재 우리가 사역하는 니자무딘이라는 지역을 방문하게 되었다. 니자무딘 지역(2)13세기 말에 인도에 정착한 페르시아 계통 수피 성자인 ‘하즈라뜨 니자무딘 아울리야(Hazrat Shaikh Khwaja Syed Muhammad Nizamuddin Auliya)(3)’라는 사람이 이지역에 처음 정착하면서 이루어진 인도에서 가장 큰 수피 무슬림 공동체이다.

처음 이 지역을 방문하면서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수피 무슬림들은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정통 무슬림들의 생활, 종교양식과 아주 판이하였다. 이들은 향을 피우고 수피 성자의 무덤에 붉은 끈을 묶으며 복을 빌고 무덤 자체를 섬기며 그곳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며 수피 성자의 무덤에 향수와 꽃, 짜달(무덤에 덮어주는 천)을 무덤에 덮어주면서 무덤을 열심히 섬겼다.

이들은 집회 때 신비스러운 전통 음악을 통하여 소위 신접하는 무아지경에 들어가곤 하였다. 처음 이 모습을 보면서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을 뿐 아니라 이 지역이 또한 지난 800여 년 동안 한 번도 기독교에 노출되지 않은 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마음 가운데 이곳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강한 도전을 주셨으며 그 후 2000년 3월 파송 후 이곳에서 정착하게 되었다.

니자무딘(Nizamuddin)에 있는 무덤 중 하나

(1) 첫 언어 사역과 관계 중심 접촉 사역
처음 이곳에서의 정착은 먼저 언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이곳 무슬림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공용어인 우르두어(URDU)(4)이다. 우르두어를 공부하기 위하여 이곳 델리 내에있는 무슬림 대학에도 등록하고, 개인 선생님을 불러서 공부도 하였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곳 무슬림 지역인 니자무딘에 자주 들어오는 것이었다. 니자무딘 지역은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인도 내에서 가장 유명한 수피 성자의 무덤이 있는 수피즘을 신봉하는 자들의 성지이다. 그렇다 보니 이곳은 인도 무슬림들에게 뿐만 아니라 외국 무슬림들에게도 꽤 알려진 유명한 성지 순례 장소이다. 중동이나 동남아 무슬림들이 이곳에 성지 순례를 꽤 많이 오고 있고 그렇다보니 이곳은 그냥 구경을 오는 관광객들도 꽤 많이 방문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은 나에게 이곳에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아주 좋은 조건이 되었다. 나는 처음부터 수피 성자의 무덤이 있는 중앙을 전략적으로 계속 들어가면서 그들에게 접근하였고 그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한국의 사업가이고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면 이곳이 유명한 관광지라서 이곳을 구경시켜주기 위해 자주 들어온다는 말로 접근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우르두어도 연습과 훈련을 하는 이중적인 이득을 누렸다. 이곳의 수피 무슬림들은 외국에서 오는 많은 관광객을 만나보았기 때문에 큰 거리낌 없이 나와 만나고 관계를 맺어갔다. 나는 그들 중에서 특별히 수피 무슬림 공동체의 가장 수장인 사람을 의도적으로 자주 만나고, 갈 때마다 그의 사무실에서 죽치고 앉아서 짜이를 마시면서 내가 궁금한 여러 가지를 지속해서 묻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그곳의 가장 수장인 ‘까심 니잠미’(Kasim Nizami)라는 지도자를 가장 친한 친구로 사귀게 되었다. 이 사람은 니자무딘 아울리야의 후손(5)로 니자무딘 다르가(Darga, 이제부터는 이 지역을 ‘다르가’ 지역이라고 부른다. 이 지역은 니자무딘 West 지역이다.)(6)를 중심으로 한 니자무딘 전체의 종교적인 지도자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종교적인 영향력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이 있어서 인도 중앙 정부의 많은 정치 지도자가 표를 얻기 위하여 까심을 만나러 오기도 한다(7). 그러면서 시작된 니자무딘 지역 안에서의 관계는 점차 더 좋은 관계를 맺어가기 시작했으며 까심 지도자는 나를 아주 좋은 형제로 인식하며 관계를 이어갔다.

그 후 3년째 계속해서 그곳을 일주일에 3~4번씩 들어가면서 그곳의 지역적인 정탐과 그곳 무슬림들의 생활, 문화 풍습들을 익혔으며 언어도 진보를 가져왔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의 전도는 지속하였으며 그때 복음을 듣고 예수 믿기로 한 자매 한 명과 형제 한 명은 이미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후 일 년 정도 지난 후에 나는 까심 형제에게 이 지역의 가난한 무슬림(8)아이들을 위하여 작은 학교를 시작하여 아이들을 돕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그가 자기 사촌 형의 건물을 지금 짓고 있는데 그곳에서 하면 좋겠다는 제안과 함께 그 건물을 얻어 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처음 니자무딘 지역에서의 작은 학교 사역의 시작이었다.

니자무딘(Nezamaldin)의 영묘, 출처: wikipedia


(2) 모하바트 스쿨의 시작
니자무딘 지역에서의 작은 학교를 시작으로 이 지역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였으며 학교는 처음부터 유치원부터 2학년까지 반을 나누어서 기독교 커리큘럼을 가지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교사들은 처음에 3명으로 시작을 했다. 앞서 전도되어서 준비된 사역자들을 교사로 채용하였으며 주중에는 학교사역을, 주말에는 니자무딘 East 지역인 깔레칸이라는 지역에서 어린이 교회 학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학교는 처음부터 100% 무슬림 아이들로 채워졌으며 아이들이 입학할 때 우리는 기독교 커리큘럼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약속을 받고 입학을 받아주었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으며 아이들은 매주 월요일 아침 예배를 드리고 수요일오후에는 성경 공부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나갔다.

학부모들은 우리 학교가 인도 학교들처럼 교사들이 아이들을 체벌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하며 가르친다는 것을 알고, 시설도 다른 어느 학교보다 더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독교 학교임에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학교 사역을 통하여 우리는 지역사회에 아주 확실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으며 지역사회에 인식도 좋아지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매년 학생들이 서로 입학하려고 줄을 서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기독교 복음에 대하여 전하고 기독교 정신을 가르쳤다. 그리고 부활절이나 성탄절이 되면 큰 행사를 준비해서 지역사회 지도자들과 주민들도 초청하여서 행사를 치르기도 하였다. 3년 정도 더 지난 2006년부터는 주일에 아이들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 하였다. 주일예배는 매주 더 많은 아이가 모이기 시작하였으며 약 200여 명의 아이들이 같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던 중 니자무딘 지역에서 학교를 시작한 지 4년째 되던 해인 2007년부터 한국의 국제기아대책기구와 공동으로 이지역에 지역사회 개발 프로그램인 어린이 개발 사역(CDP, Child Development Program)(9)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사역을 시작으로 니자무딘 지역에서의 우리들의 입지는 더욱 견고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3) 니자무딘 East 지역인 ‘깔레칸’에서의 사역
이 지역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슬림들과 힌두들이 어쩔 수 없이 함께 사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니자무딘 West 지역처럼 니자무딘 수피성자의 영향력 아래 있는 지역이 아니라 니자무딘 역(Nizamuddin Station)을 중심으로 다른 주의 무슬림들과 힌두들이 일자리를 찾아 들어와서 슬럼을 형성하면서 이루어진 지역이다. 그렇다보니 힌두와 무슬림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먹고 사는 것이 더 급하고 어려운 문제다보니 서로 관계를 거의 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현지 사역자, 한국 단기 선교사와 함께 문맹퇴치센터 사역을 시작하였다. 함께 했던 사역자들은 니자무딘 다르가 지역에서 사역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을 때 연결되었던 2명의 사역자와 그 당시 한국에서 들어온 단기 선교사 2명이었다. 이곳은 주중에는 가난한 아이들과 어른들을 가르치고 돕는 사역을 하였으며 주일에는 문맹퇴치센터에서 처음부터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이 예배에는 일부의 힌두들과 일부의 무슬림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차츰 복음이 전파 되면서 어른들도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곳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의 확신은 없었지만 우리들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문맹퇴치센터와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지역도 해가 갈수록 복음 전도와 나눔으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기 시작하였으며 지금은 주중의 4개의 문맹퇴치센터와 주일의 2개의 교회에서 200여 명 이상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특히 지난 10여 년을 지나면서 이 문맹퇴치센터 아이 중에 무슬림과 힌두에서 개종하여 침례를 받은 아이들이 나오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새로운 사역자들로 헌신되어서 나오고 있다. 무슬림들 가운데 어른들이 복음을 듣고 나오는 경우는 아주 적은데 아이 중에는 꽤 많은 아이가 복음에 반응하여 나오고 잘 자라고 있다. 특히 니자무딘 다르가 지역과 깔레칸 지역에서 새롭게 시작된 한국 국제기아대책의 어린이 개발 사역으로 인하여 아이들의 가정에 많은 혜택과 영향력을 미침으로 대부분의 가정들의 마음이 열려 있고 부모들도 교회와 센터에 나오고 있다.

(4) 니자무딘 다르가 지역과 깔레칸 지역에서의 어린이 개발 사역(CDP)
2007년 말부터 도입된 어린이 개발 사역(앞으로 CDP 사역이라고 한다.)은 학교로만 감당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들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았다. CDP 사역은 니자무딘 다르가 지역과 칼레칸 지역에 모두 합쳐서 800여 명의 아이들이 결연되었다. 이 아이들의 연령대는 5-15살 사이의 아이들이었다. CDP 사역은 우리 사역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결연된 800여 명의 아이들을 거의 매일 만나서 복음 전할 기회와 그 가정을 언제든지 심방을 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우리 사역에 있어서 정말 놀라운 일이였다.

이때부터 나는 거의 매일 가정 심방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으며 아이들을 돌보며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돌보는 아이들은 특별히 건강과 사회 정서적인 부분과 교육적인 분야, 그리고 영적인 분야에 대하여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돌봄을 받았고 2년 후부터는 거의 매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대학에 가거나 직장을 잡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사역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물론 모든 아이가 교회에 나오거나 믿게 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많은 아이들이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성경캠프와 주일 예배에 참석하였으며 가정마다 심방을 통하여 모든 가정의 부모들에게 구체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꽤 많은 어른이 관심자(seeker)가 되었으며 몇 명의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였다. 근본주의 무슬림을 제외한 대부분이 비슷하겠지만, 인도 무슬림의 경우 부모들에게 아이들은 앞날을 걱정하며 자신의 아이들은 자신들처럼 살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려는 마음이 더욱 강했다. 이것은 종교성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물론 핍박과 어려움은 있었다. 2010년 연초에 우리 센터로 들어온 협박편지는 우리를 향하여 그곳 니자무딘에서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살해 협박하기도 하였으며, 집회 때 난동을 부리기도 하였다. 또한 내 차를 알고 타이어를 터뜨려 놓는다던지, 사이드미러를 발로 차서 부셔 놓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더욱 용기를 주기에 충분할 만큼의 놀라운 말씀을 주시고 피할 길을 열어 주셔서 해결할 방법들을 만나게 해 주셨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능력이 있어서 서서히 아이들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 속에 퍼져나가고 있다. 지금도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무슬림들이 금요일마다 모스크에 모여서 변론하고 토론할 때면 꼭 우리 학교와 센터를 문 닫게 하겠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몇몇 급진주의자들의 주장이고 정작 니자무딘 다르가의 중앙의 사람들은 그렇게 크게 관여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학교를 염려하고 잘 되는지 등의 안부를 묻고 있다. 특히 처음부터 좋은 관계를 맺어서 자주 만나고 교제하여 형제처럼 지내는 지도자인 ‘까심 니잠미’ 형제는 늘 우리 편에서 변호를 해주고 도와주고 있다. 아이들 가운데 첫 졸업생이 나오기 시작한 후 현재 5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있는데, 그중 현재 신학교에 간 친구들이 나오고 사역을 하겠다는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2. 카슈미르 근본주의 무슬림 속에서의 사역 과정
인도의 최북단 잠무 카슈미르 주(Jammu and Kashmir)(10)는 무굴 제국시대부터 무슬림들이 장악을 하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힌두 세력에게 빼앗긴 적이 없는 근본주의 무슬림들의 땅이다. 이곳은 지금도 근본주의 무슬림들이 살고 있으며 지속해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영토분쟁으로 인하여 각종 테러와 사건 사고로 얼룩져 있는 땅이다. 카슈미르는 수도인 스리나가르(Srinagar)를 중심으로 히말라야 산맥이 지나가고 있어서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이 있어서 인도와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중국과 미국도 호시탐탐 노리는 지역이다.

스리나가르(Srinagar)는 동양의 알프스라고 불릴 만큼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데, 도시 한가운데에 달 레이크(Dal Lake)라는 아주 큰 호수가 있다. 영국통치 시대 때 스리나가르(Srinagar) 주민들이 영국인들에게 이곳의 땅을 내어주지 않자, 영국인들이 호수 한가운데에 특급호텔 급의 큰 배들을 수백 척 만들어 띄워서 한 여름에도 호수 한가운데서멀리 만년설의 설산을 바라보면서 지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지금은 최고의 관광 자원이 되어서 분쟁으로 정세가 불안하지 않으면 많은 인도 부자들이나 외국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스리나가르(Srinagar) 달 레이크(Dal Lake), 출처:unsplash.com

1) 카슈미르 지역에서의 초기 사역 연결점
스리나가르(Srinagar) 지역은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남침례교단의 국제선교부에서 의사 팀들을 보내어서 사역하고 있었다. 하지만 1999년 카슈미르 북쪽의 칼길(kargil) 지역에서 일어난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지전(11)으로 인하여 전면전의 긴장이 높아지자 미국 남침례교단의 국제선교부는 스리나가르(Srinagar)에 있는 모든 소속 선교사들을 철수시키게 된다. 그 와중에 의료 팀에 속해 사역하였던 미국 시민권자이자 한국인 간호사이셨던 연세 많으신 C. J. Cha 선교사님(12)만 홀로 남아 의료 팀들이 하던 사역을 그대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던 중 마침 델리에 들어왔던 한국 침례교 선교사인 나의 소식을 듣고, 2001년 5월 중순 연락을 해 왔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바로 스리나가르(Srinagar)로 가서 그 선교사님을 만나 뵙고 사역에 대한 상황을 듣고, 무슬림에서 개종한(MBB)(13)무함마드 A라는 형제를 만나게 되었다.

이 형제는 국제선교부 팀들에게 복음을 듣고 개종한 것이 아니라 1996년 여름 어느 날 독일에서 온 선교팀들이 마을을 다니며 가정마다 몰래 두고 간 성경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너무 궁금한 것이 많아서 누구에게 물어볼까 고민하다가 스리나가르(Srinagar)에 미국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의료 팀들에게 성경에 대하여 몇 번 듣고 스스로 성경을 읽으면서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했다. 그 후 Cha 선교사님과 교제하면서 신앙이 무엇인가를 듣고 공부하면서 자란 형제였다. 그래서 다른 어떤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형제였는데 우리가 델리로 데리고 내려와서 체계적인 신앙 훈련을 시켰고, 그 후 사역자로서 헌신하여 다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사역하게 되었다.

2) 카슈미르에서 사역의 활성화
그가 사역하였던 고향은 스리나가르(Srinagar)에서 약40여㎞ 떨어진 ‘유스마르그(Yusu Marg)’라는 지역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먼저 가까운 친구들에게 성경과 코란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코란에서 말하고 있는 ‘이사(Isa)’가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라고 전하기 시작하였다. 약 1년 동안 이렇게 한 결과 가까운 친구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몇 명 나오게 되었고, 관심자(Seeker)들도 꽤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금요일에는 모스크에 가서 나마즈(Namaz, 무슬림의 5번의 의무적인 기도)도 하고, 라마단 기간에 금식도 하며 무슬림들이 쓰는 같은 모자나 의복 등을 그대로 입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주일이 되면 몰래 A형제의 집에 모이거나 다른 인적이 드문 산 중턱 등에 모여서 성경 말씀에 대하여 듣고 공부하며 나갔다.

이러던 중 A 형제의 개종은 거의 모든 주위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며 그의 개종을 알고 그의 친형이 칼을 들고 한밤중에 형제의 집에 쳐들어와서 죽이겠다고 난동을 부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워낙 강건한 신앙의 소유자로 바로 선 형제는 그러한 위험을 모두 무릅쓰고 지속해서 가까운 다른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 결과 또 다른 형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개종의 사건들이 많이 나타났으며 그들도 역시 주위의 핍박과 어려움에 부닥치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러한 핍박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두 개의 모임이 이루어져 예배를 잘 드렸다. 처음에는 이러한 사역을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도 많았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이렇게 하는 사역이 소위 현재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내부자 운동(14)의 한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유스마르그(Yusu Marg), 출처:wikipedia

3) 카슈미르에서의 사역의 독립
사실 카슈미르 사역은 나에게 인도 근본주의 무슬림들을 잘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카슈미르의 인도 근본주의 무슬림들은 인도 내의 다른 지역의 수피즘적인 무슬림들과 아주 다른 형태의 신앙과 삶의 모습을 보였다. 인도 본토(15)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인도 본토의 양상이다. 이것은 무슬림들이 힌두들은 싫어하고 미워하지만, 반면에 기독교에 대하여는 그렇게 싫어하지 않고 관용적인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인도 무슬림들의 생각에는 힌두들은 모든 것이 정반대(16)이지만 기독교는 그래도 자신들과 비슷한 유일신교이며 코란과 성경이 비슷하며 무함마드 역시 우상숭배에 대하여 철저하게 죄악시했다는 이유를 들면서 힌두교도들보다는 기독교인들이 더 나은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한다.

또한, 무슬림과 기독교 두 종교 모두가 힌두교로부터 핍박당하고 어려움 당하는 종교로서의 동병상련의 마음이 있어서인지 기독교를 힌두교만큼 싫어하지 않았다(17). 하지만 카슈미르의 근본주의 무슬림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즉 카슈미르의 무슬림들은 힌두들도 싫어하지만, 기독교인들도 아주 싫어하고 적대적이라고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먼저 힌두교에 대하여 보면 그들은 힌두교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지역 자체의 인구 분포가 주류가 힌두가 아니라 무슬림들이기 때문에 힌두들의 핍박을 그렇게 당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경우 기독교인들은 영국의 통치시기에 영국인하면 모두가 기독교인이라는 인식이 있고 또한 영국의 통치시기에 영국인들이 중간 지주들을 통하여 카슈미르인 들을 굉장히 핍박하고 어렵게 했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기독교는 외국 종교이고 우리를 핍박했던 종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것이 나에게는 무슬림 근본주의를 경험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

스리나가르(Srinagar) 자마 마스지드(jamia masjid)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카슈미르에서 시작된 모임에 대한 나의 돌봄과 관심이 갈수록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 원인으로는 델리에서 시작된 사역이 너무 급격하게 커지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고 또한 카슈미르까지 워낙 거리가 멀어서 이 지역을 한번 오가려면 꼬박 48시간의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상당한 경비의 부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기도하면서 내렸던 결론이 이 모임을 독립시키자는 결론이었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A형제가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했다.

A 형제는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까지는 농사만 하는 농부였다. 하지만 사역을 시작하면서 농사는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많이 짓지 못하게 되어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염소를 분양해 주어서 자립을 시키자는 결론을 내고 염소 키우는 법을 가까운 지역에서 배우게 했고 처음에는 염소 4마리를 사 주면서 키워 보라고 했으며 그것을 가지고 지금은 염소 20여 마리를 키우게 되며 혼자 자립을 하면서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두 개의 모임은 아직도 잘 모이고 있으며 그 가운데 몇몇 형제들은 이제는 모스크에는 가지 않으며 라마단도 지키지 않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하면 또 다른 몇몇 형제들은 여전히 무슬림들의 여러 형태를 그대로 가지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 가운데 하나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던 몇몇 형제들 가운데도 가족과 친척들의 위협과 핍박으로 인하여 다시 무슬림으로 돌아간 경우가 몇 경우가 있었다. 이러할 때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기도와 대책을 더 깊게 생각하게 된다(18). 정말 어떠한 핍박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야 하는 일이 우리의 지상 최대의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스리나가르(Srinagar) 하즈라트발 바자르(Hazratbal bazzar)

나가는 말
북인도 무슬림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지난 15년간의 작은 경험을 가지고 글을 쓰려고 하니 정말 부끄러울 뿐이다. 그렇게 드러내 놓을 만한 열매도 없고 소위 우리 가운데 말하고있는 돌파도 못한 상황인데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 부담되는 시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작은 용기를 주셔서 글을 쓰게 하셨다. 이 글을 쓰면서 지난 15년간 북인도 무슬림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위로를 받는다.

북인도에는 정말 많은 무슬림들이 살고 있다. 또 이 많은 무슬림들에게는 복음의 수용성이 강하여 복음으로 변화 될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열매도 노력만 한다면 볼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북인도 무슬림을 향한 선교전략이라면 너무 거창하고, 다만 그들을 향한 복음을 좀 더 쉽게 전달할 방법들을 몇 가지 나름대로 적어 본다면 아래와 같다.

스리나가르(Srinagar) 다르가 하즈라트발 모스크(Dargah hazratbal Mosque)

첫째, 직접적이며 적극적이며 공격적이고 분명한 복음전도가 필요하다. 북인도 무슬림들은 그렇게 강력한 근본주의 성향을 나타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배타적인 부분이 적기때문에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정확한 복음을 직접적으로 전한다면 열매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무슬림들이기에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면 어떤 어려움이나 핍박을 당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북인도 무슬림들에게는 더 많이 뿌릴수록 더 많은 열매를 거둔다는 자연의 법칙이 딱 맞아 들어간다. 그러므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더 많이 복음을 직접적으로 전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전략이다. 좀 더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전도지나 성경과 코란에 동시에 나타나는 이야기를 가지고 스토리를 만들어서 복음을 전하는 방법도 효과적이다.

둘째, 어린이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 북인도에도 무슬림이 들어온 지 1,00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어른들은 자손 대대로 무슬림의 전통 속에서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의 개종은 무슬림 공동체로부터 완전 분리와 핍박,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는 경향이 있기에 어른들보다는 어린이들에게 복음으로 접근하는 것은 수용성이 훨씬 높으며 변화되기가 아주 쉽다. 또한, 현재의 북인도 무슬림들은 자신의 종교성을 지키는 것보다 자신의 자녀들이 좀 더 나은 직장과 지위를 가지기를 더 많이 원하기 때문에 이 전략은 더욱 효과적이다.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4/14 window movement(19)는 북인도 무슬림들에게 아주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가족 단위나 씨족, 공동체 단위로 접근해야 한다. 북인도 무슬림들은 개개인이 복음을 듣고 나오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한 개인이 작은 관계를 통하여 복음에 대하여 듣게 될 때 그 가족에게 찾아가서 가족 전체에게 구체적인 복음을 전할 때 가족 전체가 복음을 믿을 확률이 높으며, 또한 그렇게 믿을 때 다른 주위의 눈들과 무관하게 온 가족이 복음으로 변화될 수 있는 길이 있다. 이것이 확장된다면 그 가족이 소속된 씨족 단위나 공동체 전체도 변화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인도는 힌두뿐만 아니라 무슬림 속에서도 집단 개종이 일어났던 사례가 있다.

넷째, 지역사회 개발 사역을 통하여 무슬림들에게 접근하는 길이 있다. 인도의 무슬림은 힌두의 소외와 핍박으로 인하여 늘 약자의 편에 서 있고 가난하며, 교육과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수자로 서 있다. 또 이들은 교육에 대해 목마름이 있다. 그러므로 무슬림 공동체 안에서 NGO 등을 통한 지역사회 전체를 개발해나가는 사역을 통하여 무슬림 공동체 모두가 변화되어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있다. 이들은 가난과 교육의 부재 등을 타파하려고 무던한 애를 쓰는데 그것이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다양한 개발 프로그램을 통하여 그들에게 교육의 혜택과 직업 창출 등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이상으로 북인도 무슬림 속에서 해왔으며 또 해오고 있는 여러 가지 사역들을 소개하였지만 여전히 부족하며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앞서 행했던 여러 믿음의 선배 선교사들의 시행착오를 가능하면 적게 겪으면서 그것들을 벤치마킹하여 더 좋고 많은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  글| 김바울 선교사(인도)

– 참고문헌 –
• Aijazuddin Ahmad., Muslims in India VolumeⅠ., Inter-India Publication. New Delhi. 1994.
• Bihar Out-reach Network. Reaching Our Neighbours., Chennai: Mission Educational Books 1999.
• Educating Muslim Women in Modern India: Problems and Perspectives, by Rakhshanda Jalil.
• http://www.southasiaanalysis.org/%5Cpapers10%5Cpaper924.html
• http://www.ummid.com/news/2011/June/26.06.2011/educating_muslim_women.htm
• J. D. Anderson., The People of India., Bimla Publishing House. New Delhi. 1982.
• J. K. Banthia.(Registrar General & Census Commissioner) Provisional

[각주]
(1) 인도의 인구는 2014년 현재 12억 5천 만명이다. 미래학자들에 의하면 저 출산을 하는 중국을 2020년이 되면 앞질러서 세계 제일의 인구 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2) 니자무딘 지역은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의 가장 중심에 자리 잡은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야무나 강을 접하고 있으며 East(‘깔레칸’ 지역이라고 한다.)와 West(‘다르가’ 지역이라고 한다.)로 나누어져 있고, 전체 인구는 약 20만명 정도이다. 종교별 인구 분포는 East 지역은 무슬림 80%이지만 니자무딘 수피 성자의 무덤이 있는 West 지역은 98%의 무슬림들이 모여 살고 있다.
(3) 니자무딘 아울리아는 1238년 인도 UP주의 바다윤(Badayun)이라는 지역에서 태어나서 20살 때 파키스탄의 아조단(Ajodan)이라는 지역으로 가서 그 당시 치쉬티(Chishti)파의 가장 유명한 수피 성자였던 파리두딘 간즈샤칼(Fariduddin Ganjshakar)의 제자가 되면서 수피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는 그 후 지금의 인도 델리의 니자무딘이라는 곳에 정착하여 자신의 수피 정신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가 시작한 수피 종파는 치쉬티 니잠미 종파(Chisti Nizami order)라는 이름으로 현재 전 인도에 퍼져 있으며 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제자는 600여명이었으며 그 중에 유명한 제자로는 최초의 제자이며 가장 오랫동안 니자무딘과 함께 지냈던 아키 시라즈 아니네 힌드(Akhi Siraj Aaninae Hind)로 그의 무덤은 웨스트 벵골주의 가울(Gaur)에 있으며, 일반적으로 아이네 힌드(Āainae Hind, ‘인도의 거울’이라는 뜻)라고 불리는 사람과 우르두어를 만들었으며 인도의 가장 유명한 전통악기인 따블라(Tabla)와 시따르(Sitar)를 만든 아미르 쿠스로(Amīr Khusro, 그의 무덤은 니자무딘 무덤 바로 옆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니자무딘 다음으로 섬기고 있다)가 있다. 그는 델리에 건국되었던 두 번째 무슬림 왕국이었던 킬지 왕조의 마지막 왕인 꾸틉 우디띤 무바라크 샤하 (Qutbud din Mubarak Shah)와의 갈등에 “딜리 두르 아시”(Dilli dur Asi)라는 말로 그의 죽음을 정확하게 예언하였던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가 되고 있다.
(4) 우르두어는 인도에서 사용되고 있는 18개 공용어 가운데 한 언어이고 파키스탄에서는 법적으로는 국어라고 되어 있는 언어로서 서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우르두어를 사용하고 있는 인구는 약 2억 여 명이다.
(5) 하즈라뜨 니자무딘 아울리아는 결혼을 하지 않고 죽었기에 혈통을 이어가는 직접적인 후손은 없다. 하지만 그의 친 누나인 비비 루까야(Bibi Ruqayya)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서 지금까지 그 지역의 모든 종교적인 대소사를 주관해 오고 있으며 이 “까심 니잠미”도 니자무딘 아울리야의 친 누나의 직계 후손이다.
(6) 다르가(Darga)는 우루두어로 수피 성자의 무덤을 말한다.
(7) 그의 사무실에는 그의 아버지와 인도 수상이었던 라지브 간디와 같이 찍은 사진과 대통령들과 같이 찍은 사진, 그리고 자기와 인도 실세인 라지브 간디의 부인인 쏘냐 간디 등 유명한 사람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걸어 놓고 있다.
(8) 인도의 무슬림들은 힌두의 핍박과 소외로 인하여 대체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인도가 파키스탄과 분리 독립을 할 때 정책적으로 인도에 사는 모든 무슬림들은 파키스탄으로 가고 파키스탄 지역에 사는 힌두들은 모두 인도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부자인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을 버리고 각자의 지역을 찾아갈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지역을 떠나지 못하고 남을 수 밖에 없었디. 특히 인도는 정부 자체가 힌두 정책을 쓰는 정권(이번 5월 총선에 극렬 힌두 정당인 BJP가 집권을 하였다)이다 보니 인도에 남아 있는 무슬림들은 모두 낮은 계층의 가난한 사람들만 남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문맹률을 보면 알 수 있다. 힌두들의 문맹률 보다 무슬림들의 문맹률은 10%정도 더 높다. 그리고 정책적으로 무슬림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인 우르두어 미디엄 학교를 차츰 폐쇄해 나가는 것으로 인하여 현대 젊은 무슬림 청년들과 어린아이들은 모어인 우르두어를 말할 줄은알지만 읽고 쓸 줄 모르는 현상까지 아주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9) 어린이개발 사역은 한국의 국제기아대책기구의 주요 사역으로 후진국들의 어린아이들을 한국의 개인 후원자들과 결연을 통하여 아이들이 좋은 그리스도인들로서 자라 갈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체계적인 운영방식을 통하여 아이들을 성장시키며 좀 더 넓게 지역사회 전체의 VOC(Vision Of Community 지역전체가 지도자와 가족과 교회가 하나의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서로 공존하면서 기독교 공동체로서 개발 발전해 나간다는 개념)를 이루는 것 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본인은 2006년 초에 기아대책 훈련을 받고 멤버십을 얻어서 현재 침례교단과 기아대책의 이중 멤버십을 가지고 있다.
(10) 잠무 카슈미르 주는 큰 히말리야 산맥을 중심으로 두 개의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겨울 수도인 잠무시를 중심으로는 힌두와 무슬림들이 65:35로 인구분포를 이루고 있으며, 히말리야 산맥 너어 산 중턱에 있는 여름 수도인 스리나가르 지역은 무슬림이 98%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특히 스리나가르과 그 외 주의 작은 도시들은 근본주의 무슬림들이 장악하고 있어서 그들 중에 카슈미르 독립반군들과 인도 군인들과의 잦은 충돌과 인도 정부에 대한 시위 등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11) 이 전투를 칼길(Kargil) 전투라고 하며 칼길은 카슈미르의 북쪽 지역인 파키스탄과 국경인LOC(Line Of Control.1971년에 있었던 인도 파키스탄 전쟁을 마치고 1972년에 이 전쟁 이후 맺은 인도 파키스탄의 평화 협정 조약인 심라(Simla) 조약에 의하여 이루어진 인도 파키스탄의 잠정적인 국경)근방에 있는 작은 도시로 그 도시를 중심으로 1999년 5월에서 7월까지 있었던 전투로 인도 파키스탄 모두 합쳐서 2,500명 이상의 사망자와 4,000명 가까운 중상자를 내고 끝낸 전투를 말한다. 인도는 이 전투에서 Operation Vijay 라는 작전명으로 승리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12) 이분은 싱글 선교사님으로서 현재 은퇴하셔서 미국의 L.A에서 살고 계신다.
(13) MBB는 무슬림에서 개종한 사람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Muslim Background Believers 의 약자이다.
(14) 위키 피디어에 나타난 내부자 운동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http://en.wikipedia.org/wiki/Insider_movement#cite_
note-1 “내부자운동이란 자신들이 태어난 종교적 공동체의 일부로서 관계적 측면이나 문화 및 사회적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성경에 묘사된 바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포용하는 비기독교인 집단이나 네트워크를 묘사하기 위하여 선교학 영역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들은 이러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예수와성경을 따를 때에 개인적으로는 자신들이 속한 종교공동체 내에서 발견되는 비성경적인 신앙요소들에 대해서 거부하기도 하고 재해석을 하거나 수정을 가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다른 함께하는 종교인들과는 어떤 면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만 자신들의 종교 공동체로부터 분리됨이 없이 신실하게 예수를 따를 수 있을 때에 내부자 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 그와 같은 운동들이 여러 종교집단들 가운데에서 관찰되는데, 유대인, 무슬림 및 힌두 가운데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15) 여기서 인도 본토라 함은 카슈미르와 동북부의 기독교 지역을 제외한 역 삼각형 모양의 인도 아 대륙을 의미한다. 본필자가 이것을 인도 본토라고 말한 이유는 인도는 워낙 다양한 종교와 종족으로 분포 되어 있는데 특히 그 중에서 북쪽의 카슈미르 주는 거의 모든 지역이 무슬림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방글라데시 위쪽의 동북부 지역은 거의 많은 주가 기독교로 복음화률이 높아서 전혀 다른 나라와 같은 이질적인 성향이 높아서 그렇게 말하였다.
(16) 무슬림들은 힌두교인들을 정말 싫어하는데 그 싫어하는 이유에 대하여 물어보면 힌두들은 모든 부분에서 우리 무슬림들과 정 반대라고 대답하면서 결혼 풍습(무슬림들은 가까운 친인척 간에 결혼을 하지만 힌두들은 자신들의 카스트 내에서만 결혼을 하지만 가까운 친척 간에의 결혼을 죄악시 여긴다)이나 살아가는 모습, 심지어는 글자를 쓰는 방향까지 반대(힌두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지만 무슬림 공용어인 우르두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라고 말을 하면서 미워한다.
(17) 이러한 성향은 인도 무슬림들의 두드러진 특이성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인도 본토 내에서의 무슬림 사역은 다른 지역의 무슬림 사역보다 훨씬 용이하며 또한 무슬림들 자체도 자신들과 비슷한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수용성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18) 무슬림 가운데 사역하는 어떤 한 기독교 사역자는 극단적으로 이렇게 까지 말하고 있다. “기독교로 개종한 무슬림들의 거의 100%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가 충족 되던지 아니면 가족이나 친척들의 핍박이 있으면 다시 무슬림으로 돌아간다.”
(19) 이 운동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는 http://www.4to14window.com/ 사이트에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운동의 기본 정신은 전 세계의 4살부터 14살 사이의 어린이들에게 소망이 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기독교의 미래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운동이다.


위 자료의 저작권은 UPMA에 있으므로, 인용하여 사용하실 경우 반드시 출처를 남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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