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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이주민을 향한 새생명의 비전_홍광표 목사(안산 새생명태국인교회)

업마가 만난 사람
Web JOURNAL  27 2021. 06

홍광표 목사(안산 새새명태국인교회)

Q. 일반적인 이주민 선교하시는 분들에 비해 상당히 젊은 편인데, 어떻게 처음 이주민 선교 사역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나?
A. 선교학을 하면서 이주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전에는 연기를 했었기 때문에 문화선교를 하고 싶었다. 집안내력으로 어렸을 때부터 초교파적인 신앙생활을 했다. 8살 때부터는 셋째이모의 영향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11살 때부터 연기훈련을 받고, 문화선교를 하겠다고 서원하고, 거의 10년 동안 사역자처럼 철야도 하고 맞아도 가면서 매년 4개씩 절기 작품을 공연했다. 그 후 1991년에 배우 최불암 선생님이 대표로 계신 ‘현대앙상블’이라는 극단에서 정단원으로 배우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문화선교를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2001년도에 선교학을 전공하면서 종족연구 프로젝트로 이주민 프로파일을 만들게 됐는데, 그때 안산 안디옥교회 무슬림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기회가 있었다. 그 중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이 거의 다 잘려 수술 받고 치료받는 과정에서 선교사님을 통해 회심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된 한 인도네시아 형제의 이야기를 접하고, 핍박받는 무슬림 사역을 다룬 “그들의 피가 부르짖는다.”라는 책을 희곡으로 각색해서 제가 모노드라마를 하고, 그 인도네시아 형제가 간증하는 무슬림 사역 초청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온 이주노동자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2002년 5월, 처음으로 해외를 나가게 됐는데 그것이 태국이었다. 태국을 다녀온 후 너무 좋았고 또 처음으로 밟은 땅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생겨 태국어도 배우고, 태국인 연합집회도 찾아다녔다. 당시 ‘재한 태국어권 선교협의회’에서 태국인 교회 6~7개가 모여 연합집회를 했었는데 아직 태국어를 잘 하지 못하던 때라 잡일을 하며 섬겼다. 그러면서 국내 태국인노동자 교회들의 연합구조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결속력이 강한 ‘선교회’ 구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안을 했는데, 그것이 협의회 총회에서 받아들여져 ‘타이미션네트워크’라는 선교회가 생겼고 제가 2004년~2007년 대표를 맡았다. 또 그 즈음 최성미 선교사가 사역하던 예장통합측 ‘뉴라이프교회’ 태국어예배부 도우미로 섬기면서 태국인 교회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발을 내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Q. 이주민선교 사역의 방식이 기존 한국교회 안에 이주민 부서로 자리를 잡거나, 독립적인 이주민교회를 개척하는 것인데, 개척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
A. 그 결심하게 된 이유는 이주민사역이 어떻게 가야할지에 대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이다. 뉴라이프교회 안에서 2년 동안 태국어예배부 사역을 하면서 ‘이렇게 가면 안되겠다. 개척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세계관 변화를 위한 절대적 시간과 공간의 확보
첫 번째는 (제자화였다.) 외국인 성도들이 한국교회 내 외국인 부서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귀국하는데, ‘과연 이들이 믿음을 지켜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에서 시작됐다. 제자화는 ‘세계관의 변화’를 본질로 한다. 세계관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더러 지키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렇게 태국인들을 제자화 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한국교회 안에서는 도무지 어려울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바로 한국교회 안에서는 외국인들을 위한 절대적인 ‘물리적 시간과 공간’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태국 성도들과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비자상태에 따라 짧게는 한두 달, 길면 10년 넘게 계시는 분도 있지만 평균 3년 정도 된다. 그런데 이 3년이 한국교회 안에서는 굉장히 무색한 시간이다. 대부분 교회에서 외국인만을 위한 공간이 확보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부서들 다 끝나고 하다보면 가능한 시간이 주일 늦은 오후에 2-3시간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주말 야근도 하고 다음날 일찍 출근해야 하는 등 사정이 녹녹치 않다. 그러다보니 일주일에 한 번, 겨우 2-3시간, 1년 52회면 3년 해봐야 156회 밖에 안 된다. 이들은 단 한 번도 예수를 들어본 적이 없고, 마을에 교회 십자가를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인데 이 시간으로 이들의 세계관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혹자는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고도 하지만 시간도 하나님께서 창조한 질서 중 하나이다. 하나님의 질서와 무관하게 무조건 성령으로 초월하려는 것은 무리수이다.

‘그러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 깊이 심겨져야 세계관이 변할까?’ 문화사역을 하다 보니 문화적 관점으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창세기 1장 28절부터 (문화명령에서) 말씀하는 문화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인간 학습에 의해 만들어진 유무형의 총체적인 산물’이다. 중요한 것은 문화는 자연발생하지 않고 반드시 학습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종교도 문화 속에 포함된다. 초자연적인 세계를 경험하거나 자연현상을 겪는 등 살아가는 삶 속에서 하나의 종교관이 만들어지는데, 태국은 불교로 2500년 이상, 힌두교와 많은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등 온갖 민속 신앙의 영향력을 받아 오면서, 그렇게 세워진 세계관을 어떻게 뚫고 들어가며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하나님이 포기할 수 없게 힌트를 주신 것이 ‘문화는 학습에 의해 변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필요한 학습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지속적으로 말씀이 심겨지고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은 말씀이 골수를 쪼개고 심령 깊은 곳을 뒤집어엎어 회복시키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태국인 교회다 보니 성도 중에 동성애 커플과 트랜스젠더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결국 말씀 안에서 완벽하게 변화되고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세계관이 변하면서 성적 정체성에까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인위적으로 동성애에 관한 어떤 말씀이나 비판을 통해 변화된 것이 아니라, 그저 매일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부딪치면서 차곡차곡 쌓이자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성도들이 언제든지 함께 모여서 지속적으로 말씀 그 자체를 깊이 묵상하는 훈련을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한국교회 안에서는 그런 환경을 갖추는 것이 불가능하다. 24시간 365일 내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게 너무 마음 아팠고, 그래서 결국 개척이라는 답을 내린 것이다. 개척도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동체 외에는 답이 없다고 보았다.

개척될 현지 교회를 위한 모델 제시
두 번째는 (현지 교회를 위한 모델이었다.) 우리 성도 중에 누군가가 하나님의 도전을 받아 목회의 비전을 갖게 되었을 때, (교회 내 부서사역만 경험해서) 교회와 목회에 대해서 무엇을 배우고 적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안정적인 기존 교회 안에서는 기안서 잘 써서 당회 통과되면 예산도 나오고, 차도 쓸 수 있고, 봉사단도 오고 너무 편하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이 돌아가야 할 태국은 반경 100km이내에 교회가 없다. 우리 성도들이 대부분 동북부 이산지역에서 오신 분들인데, 이 지역은 복음화율이 0.1%도 안 된다. 아직도 암퍼(Amphoe, 군 단위)에 교회 하나 없는 곳이 많고, 그렇다고 삶의 터전을 버리고 도심지 교회로 옮기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들에게 한국교회 안에서 내가 했던 사역 패턴을 적용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가서 하나님의 몸 된 교회가 바닥에서부터 세워지는 것을 직접 보여주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개척을 결심하게 되었다.

Q. 그렇게 두 가지 확실한 이유와 동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교회 개척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개척 과정은 어땠나?
A. 그때가 2006년으로 막 ACTS 선교학을 졸업한, 그냥 전도사였다. 정말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게 하시는 환경, 완전 무에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의왕 뉴라이프교회에 있다가 나와서 화성으로 지역을 옮겼다. 2006년 1월 1일부터 매일 화성시청 주변, 남양읍 지역 공장을 찾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났다. 낮에 들어가면 공장장님이나 한국분들이 싫어해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래서 밤교대 시간이나 기숙사로 돌아와 쉬는 시간에 주로 가서 음식 얻어먹으면서 같이 놀았다. 그러다가 이분들의 마음이 열리는 것이 보였고 이제 예배에 초청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화성 근방에 예배 처소를 찾아다녔다. 당시 아직 공동체를 할 형편이 아니어서, 여기저기 찾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보여주신 곳이 은혜의동산교회였다. 당돌하게 찾아가 장소만 빌리고 싶다고 했는데 당시 이규현 담임목사님께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허락해주셨다. 그곳에서 몇 달 지내고, 안산의 음향전시장으로 옮기고, 다시 48평 2층을 렌트했다가, 그리고 또 한 번 옮겨서 네 번째 장소로 이사했는데 이 기간이 총 1년 10개월이었다.

이 기간은 개척 이후 정착기로 성도들의 예배에 대한 진정성이 검증되는 시간이었다. 한국어교육이나 노무상담, 통역이 필요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배 자체를 통해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제대로 리더십을 배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네 번째 장소는 43평 두 개 층으로 인테리어를 새로 해서 방 5개, 거실, 주방, 예배실, 자모실, 사무실까지 갖춘 곳이었다. 화장실에 온수기도 달아 샤워실로도 쓰면서 일부 성도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성도들 대부분은 공장 기숙사에 살았지만, 안산에서 출퇴근이 가능하거나 요양이 필요한 분들, 출산한 산모들이 들어와 함께 살았다. 이렇게 계속 사람들이 로테이션 되는 수시 공동체가 시작됐다.

Q. 성도들의 세계관 변화가 핵심이라고 하셨고, 그 중심은 말씀이라고 하셨는데, 성도들의 말씀 양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A. 성도들이 이렇게 상황과 필요에 따라 수시로 공동체로 들어오는데 문제는 이 구조 안에서 어떻게 완벽하게 말씀에 깊이 빠져들게 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이제 네 번째 장소에서 현재 장소로 한 번 더 옮기고 8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여기 오면서 새벽예배 패턴을 완전히 바꿨다. 매일 5시 반에 모여 성경을 한절씩 돌아가며 읽고 30분 동안 개인 묵상 후에 다시 모여서 한명도 빠짐없이 나눈다. 마지막에 주해로 마무리를 하면 보통 2시간이 걸린다. 태국에 있는 성도들도 SNS를 통해 같은 말씀을 묵상해서 올린다. 우리 ‘새 생명 취윗마이’ 공동체 전체가 한 말씀을 읽고 계속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성도들은 365일 하루도 안 빠지고 말씀 묵상을 한다. 성경 전체를 하루 한 장씩 묵상하면 1189일이 걸린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 1189’라고 하는데 우리 제자훈련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다독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깊이 묵상하는 정독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새벽예배 설교를 내려놓았다. 설교로 듣는 예배만 경험하게 되면 설교자 없는 상황에서 평신도들은 예배를 못 드리게 된다. 스스로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나누는 것이 훈련되면, 당장 신학을 하지 않아도 가정이나 공장, 어디에서든지 예배를 이끌 수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부르셨다. 이것이 반경 100km 이내에 교회가 하나도 없는 지역에서 우리 성도들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교회가 되는 것. 그 훈련이 필요해서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나와 개척하게 하신 것이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을 다시 깨달았다.

새벽예배 설교를 내려놓고 좋은 점 또 한 가지는, 노동자로 있으면서 신학공부 하는 우리 리더들이 말씀을 읽고 어떻게 적용하는지 다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주해로 잡아주면서 엉뚱하게 흐르지 않도록 위험성을 최소화 할 수 있었다. YOUTUBE를 통해 태국 현지 목사 설교를 들어보면 이단들이 많다. 그렇게 될 우려를 계속 일상 속에서 잡아줄 수 있다.

교회에 처음 오는 성도 중에는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오갈 데 없어 찾아오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에게는 일자리를 찾아서 나가실 수 있도록 숙소를 무료로 내어드리고 본인들 식비만 부담하게 한다. 대신 유일한 조건은 모든 정규예배 의무 출석이다. 어떤 분들은 이 조건 때문에 다른 불교 쉼터나 사찰을 찾아가기도 한다. 남으신 분들은 알 수 없는 사로잡힘으로 머무르면서 새벽예배 2시간, 성경통독 2시간, 수요예배와 금요예배까지 매일 4~6시간을 말씀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예배 때 성경을 안 읽는 사람이 없도록 교독을 한다. 30분 동안 개인 묵상할 때는 반드시 노트에 쓰도록 하는데, 처음 하는 분들은 계속 읽으면서 씨름하다 그냥 성경구절 한 절씩 적어오기도 하고 나름 익숙해지면 느낀 점을 적어 온다. 그렇게 묵상한 것을 나눌 때 보면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걸 끊지 않고 다 경청하고 반응해준다. 나중에 성도들이 회심하고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내용이 이 공동체는 안전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태국도 상당히 권위적인 사회여서 나이, 형편, 학력 등으로 무시당하기 쉬운데, 여기서는 누구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존중해 주는 것이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성도 병원심방(쿤나이 수술)

그러다 보니 문맹처럼 책을 못 읽던 사람이 성경을 읽게 되는 기적도 일어나고 성도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함께 붙들고 기도하면서 치유가 일어나게 된다. 한번은 우리 살림을 책임지는 리더십 자매에게 뇌종양이 생겼는데, 종양이 움직였을 때 3분 내로 치료가 시작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위급한 상황이었다. 저는 그때 태국에 사역이 있어서 태국에서 매일 새벽마다 리더십들과 기도를 했다. 수술 당일 마지막으로 위치파악을 위해 CT를 찍는데 기적같이 종양이 다 없어졌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일하신 것이다. 또 한 번은 4천만 원이 들어가는 큰 수술을 47만원으로 끝낸 일도 있었다. 성도들이 이런 경험을 하면서 삶 속에서 말씀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보니 믿음이 자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Q. 그러면 교회 공동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A. 현재 코로나 상황이라 주중에는 환자 3분이 계시고 주말에는 30~40명이 와서 숙식하며 쉬고 예배드리고 간다. 주말마다 명절이다. 토요일 오전, 오후 한 번씩 픽업을 해오고 다 같이 음식을 준비해서 저녁은 파티처럼 식사를 즐기고 기도모임을 한다. 주일에는 새벽 5시부터 움직여서 주방팀은 음식을 준비하고 예배팀은 예배를 준비하고 다른 팀은 대청소를 한다. 그러면서도 성도들은 계속 교제하고 말씀 나누면서 여기저기서 기도해주는 모습도 보인다. 주일날 아침에도 한 차례 성도들을 픽업 해온다. 지금은 코로나로 평균 40~50명 정도이고 이전에는 100여명 정도 예배를 드렸다. 남녀 성비는 반반인데 주로 부부이고 20대 젊은 부부도 많다. 태국에서 결혼을 해 들어온 경우도 있고 한국에서 하기도 하는데 지난주에도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지금까지 40~50커플 정도 결혼시키면서 주례도 많이 했다. 아이들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 조금 생기고 있다. 라오스 성도들도 있다. 라오스는 태국어와 비슷해서 70% 정도 소통이 되는데, 아직 한국에는 라오스교회가 없어 수소문해서 이곳으로 찾아와 예배를 드린다.

Q. 사역철학이 확실하다는 인상을 받는데, 이주민선교를 하면서 붙들고 있는 성경적 근거가 있다면?
A.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이주민 사역의 성경적 근거가 ‘나그네’에 관한 부분인데, 저는 그 부분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계속해서 나그네인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 목적이지 ‘나그네’ 자체가 포인트가 아니다. 우리 모두 이 땅에서 나그네고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다. 그러한 나그네 신학은 모든 믿는 이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육적인 나그네인 이주민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이 사역에 있어서 명백한 성경적인 배경, 우리가 지칠 때 일어날 수 있는 근간의 말씀을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이사야 66장 18-21절이다. 이 말씀은 사실 이주민 선교에 있어 역파송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주는데, 18절에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백성들이 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실제 하나님의 선교는 어떤 이들은 ‘가서 전하고’과 어떤 이들은 ‘와서 받게 되는’ 이것이 반복 순환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구약성경 전체 중 신학적으로 파격적인 말씀이다. 21절 맨 마지막에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스라엘에서 이방인을 제사장 삼는 경우가 없다. 신약도 아닌 구약에서 그런 이방인들을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삼겠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시는 매우 이례적인 부분이다. 그러면서 중간에 지중해와 유럽, 아프리카 연안 지명이 나오는데, 이들이 모든 세계로, 모든 열방을 향하여, 영광을 보지 못한 먼 섬들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이른바 ‘역파송’이 일어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하든 안하든 하나님이 그의 열심을 이루실 것이지만 여기에 반응해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이고, 그 주님이 하시는 일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게 되는 사역이 이주민 선교이다. 이 이사야 66장 말씀의 배경을 보면 종교 지도자들이 다 무너지는 ‘마지막 때’이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와서 복음을 듣게 되는 이방인들을 통해 하시겠다고 하는 선교는 세계 선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성도들 중 오스트레일리아 힐송 처치 스탭으로 가 있는 사람도 있고, 대만에서 태국인 교회 사역을 하고, 이스라엘에서 사역하는 지체도 있다.

Q. 사실 처음 목사님 사역을 주목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 ‘역파송’의 열매 때문인데,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신다면?
A. 말씀이 성도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경험하는 상황 속에서도 성도들이 태국만 가면 연락이 끊기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아픔을 겪었다.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께 가장 감사한 것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시는 ‘패밀리십’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족들이 태국으로 가서 연락이 끊긴다는 것은 가족이 실종되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실종된 가족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서 강단에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순이었다.

그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요한복음 13장 1절이다. 예수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 말씀에 무릎 꿇고 회개하면서 말로만 가족이라고 하지 말고, 길을 잃고 헤매는 양들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최소한의 액션을 취하기 위해 태국에 ‘방콕 헤드쿼터센터’를 세웠다. 이 교회의 1차 목표는 복음 전하고 성장하는 것보다 우선 안산에서 맺힌 이 열매들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매번 갈 수 없으니 태국의 이 헤드쿼터팀이 성도들을 찾아가 심방하고, 권면하고 위로해주는 역할을 해서 이탈을 최소화하면서 계속 교회 사역을 만들고 개척해나가도록 했다.

그렇게 1세대 리더 5가정과 함께 센터에서 살면서 공동체 사역을 시작했는데 자비량 사역이다 보니 월세를 내주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다. 애들을 겨우 먹이고 화장실에서 눈물 먹고 오는 날이 숱하게 많았던 극한 가난을 3년이나 겪었다. 매일 나가 길거리 음식을 만들어 팔아보고 중고 옷도 팔아보고 했는데 다 잘 안됐다. 그럼에도 이 5가정이 떠나지 않고 언약을 붙들고 기다렸는데, 하나님이 마음에 주신 것이 한국에 있을 때 배운 커피였다. 그러나 배웠다고 해도 경영도 모르는데 카페를 열기는 쉽지 않았다. 먼저 매뉴얼을 다듬고 길거리에 나무 부스를 세워 파는 서민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일 년 동안 매일 딱 2잔씩 밖에 팔리지 않기도 했는데 하나님이 이것을 포기하지 않게 하셨고, 우여곡절 끝에 센터설립 후 4년째 되던 해, 하나님께서 법인회사를 세우게 하셨다. 그때 매일 커피를 사가던 택시기사와 아내가 있었는데 나중에 이 아내가 회심을 했다.

그 과정에서 성도들이 떠나는 이유를 생각해본 결과, 문제는 경제적 자립이었다. 그래서 귀국 후에 그들이 그들의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정착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귀환정착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것이 말하자면 우리의 역파송 사역의 열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Q. 그러면 결국 역파송의 핵심은 이 ‘귀환정착프로그램’이라는 경제적 자립을 위한 비즈니스 사역과 연관이 있는데, 그 과정을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면?
A. 성도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게 되면 그들 땅으로 다시 돌아가 정착하지 못하고 또 다른 나라로 가게 된다. 이 부분은 유학생이나 이주노동자 사역에서 공통으로 안고 있는 아픔이다. 돈을 벌기위해 한국에 왔는데 돌아가도 똑같은 현상 혹은 더 빚이 쌓이는 상황이 되면 다시 나갈 수밖에 없다. 한국 다음으로 이스라엘, 일본, 대만으로 많이 나가는데 이들이 그곳에 가면 누가 그들을 돌봐줄 수 있는가? 결국 실족하게 된다. 하나님은 분명 이들을 통해 열방의 제사장과 레위인 삼겠다고 하셨는데 경제적 자립 문제가 해결 안 되면 그들의 땅에서 복음은커녕 살아갈 수도 없어 무너지게 된다. 전략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성도들과 살다보니 부딪치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고, 생존해야 했고 살아내야만 했다. (그것이 전략이라면 전략이 되었다.) 우리가 교회이고 우리가 무너지면 교회도 있을 수 없으니 경제적인 자립문제는 피할 수 없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업이다. 그래서 사실 ‘business as mission’도 맞겠지만, 우리는 초기에 이 과정을 부딪쳐봤기 때문에 ‘business is mission’이라고 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아낼 때 적어도 우리 가족은 책임질 수 있는 수준까지는 가야 한다. 그래서 1년에 두 번 전체 연합집회를 하는데 가끔 재정 강의를 한다. 부자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 2장, 4장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말한다. 지체의 결핍을 해결해 주기 위해 자기 소유를 줄이면서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는 그런 정신. 교회 밖의 구제가 아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구제가 먼저 일어나 결핍이 사라지고, 이 모습이 아름다워 칭송받는 공동체가 되고, 그것이 외부로도 영향력을 미치는 그런 역사이다. 정확히 4장에는 그 가운데 가난한 자가 없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국내 구정 집회사역
국내 추석 집회사역
태국 현지집회 사역

그래서 우리 성도들과 나눈 것이 공동체 비즈니스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그것이 자동적으로 교회의 자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번은 너무 신실하고 흠 없는 강도사가 있었는데 딱 하나, 빚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공동체에 마음을 주셔서 돈을 모아 빚 문제를 해결해 주었는데 공동체가 이 강도사의 간증으로 더 큰 시너지를 일으켰다. 또 지금 우리가 태국에 세운 교단의 교단장인 쏨밧 목사는 한국에 나와 있는 사이 가정에 문제가 생겨 아들이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그런데 절에서 오히려 마약도 하고 우울증에 빠져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절에서 나와 교회 공동체로 들어와 살게 됐다. 성도들이 공동체와 이 아들의 재활을 위해서 십시일반 모아 6개월 치 학원비를 일시불로 내주었다. 지금은 예배팀에서 섬기고 있는데, 이 아들이 아직까지도 그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았다고 간증한다. 이렇게 공동체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공동체 비즈니스를 함께 진행하게 되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12지파가 레위지파를 먹여 살린다. 이것을 적용해서 90% 넘는 성도들이 10% 되는 목회자를 섬긴다. 여기서도 중요한 이슈는 경제적인 자립 문제이다. 이스라엘 백성도 땅을 유업으로 받아 경작하고 그 열매를 가지고 성막 안에 있는 자들과 고아와 과부를 살폈다. 여기서 발전한 것이 우리 ‘business as mission’에 대한 구체적인 철학이다. 성도들이 함께 나누고 공동체를 세워가다 보니 교회의 자립으로 이어지면서 비즈니스를 잘하는 성도들은 계속해서 후원과 투자를 한다. 여기서 나온 수익은 또 각 교회 재정으로 지원되고 지금은 장학사역도 준비하고 있다. 커피 교육으로는 미얀마 선교사 내외분, 인도네시아 형제 8명이 받아서 미얀마와 인도네시아에 카페를 열었다.

Q. 태국 현지 개척된 교회와 비즈니스 사역의 구체적인 현황은?
A. 지금 태국에 개척된 교회는 6개이고, 기존 교회에서 담임사역을 하고 있는 곳을 포함해 총 7가정이 교회사역을 하고 있다. 또 보조 사역을 하는 7가정이 있어 총 14가정이 풀타임 사역을 하고 있다. 이중 개척한 5개 교회를 묶어 태국 현지 교단을 만들었다. ‘vision of new life church association’ 현지어로는 ‘옹껀 크리짝 니밋 취윗마이’. ‘옹껀’이 교단, ‘크리짝’이 교회, ‘니밋’이 비전, ‘취윗마이’가 새생명으로 ‘새생명비전 교단’이다. 그래서 교단 대표와 부대표가 다 우리 성도였던 태국인 목사님이다. 우리가 만든 교단이지만 한국인 선교사가 어떤 직함을 가지고 있지 않고 저도 자문으로만 있다. 방콕 빼고 대부분 이산 지역에 있는데 카페는 14개가 있고 중고 아울렛 매장이 하나 있다. 그 외에 예배처소에는 한국인 스탭은 한명도 없고 전부 한국에서 일했던 성도들이다. 해외로 나가 있는 성도들까지 하면 더 많다. 신학생도 50명 정도 배출했고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new life international foundation’이라는 NGO법인 설립을 위한 마지막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커피 프랜차이즈 1호점은 처음에 8평 정도의 조그만 가게로 시작해서 10개월 만에 8배로 확장하고, 지금은 3층짜리 건물과 두 개의 레스토랑을 가진 기적을 이룬 곳이다. 카페 4호점은 교회가 된 케이스이다. 여기 리더가 동성애에서 남자 역할을 하던 자매였는데 주님을 만나고 고통스러워하다가 공동체 안에서 계속 말씀을 나누면서 결국에 돌아왔다. 자신을 찌르는 말씀을 떠나는 것과 안전하고 존중해주는 공동체에 머무는 것 사이에서 많이들 고민하는데 떠난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자매가 귀국하기 전에 변화되기 전과 후 사진을 보여주면서 간증을 했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귀국 후에 원래 중국으로 가서 마사지를 하려고 했는데 우리 리더들이 말리고 주님이 주신 기회로 카페를 해보자 해서 열게 되었다. 여기도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로 매출이 엄청난 카페였는데 이 자매가 카페에 오는 청년들의 영혼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경영은 뒷전으로 하고 청년들을 붙들고 간증하기 시작하면서 화요일마다 모여서 셀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결국 자매가 신학을 하고 M.Div까지 해서 이제 목사 안수만 받으면 된다. 이제는 교회에 작은 카페가 붙어있는 형태로 바뀌었다.

카페 비누벨(VIE NOUVELLE) 싸왕 4호점에 예배가 세워지다.


Q. 그렇게 ‘실제 사역 중에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살아있는 사역 전략이 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러한 살아있는 전략을 구체화한 사역 비전이나 계획이 있다면?
A. 2006년에 개척하고 거의 2년을 정착기로 보낸 후 그 다음부터 12년 마스터 플랜을 가지고 비전 선포를 했다. 개인적으로 한 텀이 6년은 짧아서 12년으로 정했다. 내년부터 다시 12년 마스터 플랜을 시작하는데 중요한 7대 사역을 계획 중이다.

기독교 장례 문화원에 대한 비전
그 중에 중요한 것이 기독교 장례 문화원이다. 이 비전도 전략을 구상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과 같이 살면서 고민을 얘기하다가 나온 것이다. “아짠(태국식 목사 호칭), 만약 지금 부모님 돌아가시면 장례나 화장은 어디서 해요?”라는 질문이었다. 한참 생각하다 한숨을 푹 쉬며 나온 대답은 ‘절’이었다. 너무 기가 막혔다. 태국에서 가족 심방하면서 어르신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나중에 죽으면 절에 가서 화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회심을 못한다. 자신의 내세에 대한 문제 때문에 회심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독교 장례 문화원을 만들기로 했다.

기회가 있을 때 태국인들을 오산리기도원에 데려가는데, 이곳은 기도원이지만 교인 묘지도 함께 있다. 태국인들은 귀신을 무서워해서 공동묘지를 굉장히 무서워한다. 그런데 오산리금식기도원에 가면 이분들 반응이 완전히 다르다. 이곳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에 예배를 4번, 일 년 내내 드리고 여기저기서 찬양과 기도소리가 들린다. 묘지도 공원같이 잘 되어 있어서 함께 간 태국인들이 이곳을 마치 천국 같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모델링해서 태국에 만들자고 했다.

우리의 모든 이름은 하나의 정체성 “새생명”이다. 공동묘지 이름도 ‘새생명’으로 하게 되면 정말 성경적인 공동묘지라고 생각된다.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문을 여는 것이다. ‘새새명 공동묘지’ 이름처럼 아름답게 조경해놓고 기도원을 세워 은퇴한 목사들이 그곳에서 섬기면서, 젊은 사역자가 지쳐서 오면 음식 해 먹이고 상담해서 보내고, 돌아가면서 설교하다 죽으면 거기 묻히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많은 태국 크리스천들이 죽음 이후가 두렵지 않은 새로운 기독교 장례문화를 세워가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도들이 너무 좋아하면서 여기저기서 땅을 기증한다고 한다.

2022년부터 시작하는 12년 마스터 플랜인 7대 사역을 이루기 위한New Life ission Resource Development Center 조감도

로운 양질의 교육 시스템 구축의 비전
자녀문제도 마찬가지이다. 7대 사역비전 안에 새로운 양질의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있다. 서구 선교사들이 태국에 인터내셔널 스쿨을 만들어 놨다. 초창기에는 선한 의도였겠지만 지금은 귀족학교로 전락해 복음의 영향력을 1%도 행사하지 못한다. 불특정 다수를 추구하는 것은 NGO단체들이 하고, 우리는 기도하는 크리스천 부모의 자녀에 집중해서 대안학교처럼 좋은 시스템을 구축해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50년 뒤, 100년 뒤 미래를 보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유학을 보내 나중에 자녀세대 때 빛을 볼 수 있도록 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복음의 리더들을 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역사가 말해준다.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 때 기독교가 1%도 안됐다. 그런데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사들의 70%가 크리스천이었다. 1%도 안됐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이 깨어 세계관이 변화된 사람들이 나서면서 그들에 의해 나라가 세워져 왔다.

진정한 성경적 세계관 변화를 위한 자신학화 비전
이것은 이주민 사역의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태국 현지 그리스도인들은 주일 몇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일상을 불교 사관, 힌두교, 온갖 민속종교가 즐비한 상황 속에서 보내야한다. 학교에서 하는 조회도 불교집례를 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니 세계관의 변화가 온전히 일어나기 힘들고 쉽게 혼합되며 뭔가 가시적인 현상에 끌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신비주의, 은사주의 집회를 좋아하고 많이 모인다. 또 이상한 이단이 한번 들어오면 교회들이 다 넘어간다. 제대로 신학공부를 안했기 때문에 이단인지 아닌지 모르고 돈으로 유혹당하는 것이다. 또 태국에서는 나라에서 종교지도자에게 ‘싸싸나 아짠’이라는 종교 직함을 준다. 학부 대충 하고 목사가 됐더니 갑자기 지위가 상승한 듯 거드름 피우면서 공부를 안 하게 된다. 말씀이 기반이 안 되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분별이 안 되고 상황에 안주해 버리고 만다. 자신학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립, 자치, 자전은 되지만 이것만 있다고 미래가 있지 않다. 반드시 자신학화가 되어야 한다.

느헤미야가 성벽재건을 하지만 에스라가 없었다면 실패했다. 위기 때 백성들을 이끌고 에스라를 찾아가 명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 받고서야 비로소 과업을 마무리하게 된다. 에스라는 신학자이다. 태국에 카톨릭이 600년, 개신교는 200년 전부터 들어왔는데 아직도 복음화율이 1%를 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학화해서 말씀의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 세우고 10년, 20년 지나면 사역자들 다 도망가는 일이 200년 동안 반복되었던 것이다. 태국 복음주의 연맹 안에서 가장 큰 신학교인 ‘Bangkok Bible Seminary(BBS)’가 있는데, 안타까운 것은 이곳에 박사 과정이 목회학 하나 밖에 없다. 신약학, 구약학, 조직신학, 선교신학 이런 것이 아예 없다. 목회학도 실천신학이지 학문적으로 깊지 않다. 교수는 현지 교수가 반, 외국인 강사 반인데 매 학기마다 채우는 형태이다. 50%는 영어로 하는데 영어가 안 되는 분들은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힘들다. 현지 교수들로 전체 과정을 채우지 못하는 것은 학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신학이 뿌리를 내리겠나.

여기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관이 바뀌어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한 사람들이다. 이것은 그 땅에 있어서는 발견하지 못한다. 다 똑같으니까 나와서 깨인 사람들이 들어가 현장을 보고 다른 것을 느끼는 거다. 제자화는 세계관의 변화인데, 세계관의 변화를 위한 최적의 장소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낮선 땅이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끌어내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그를 새롭게 하기 위해, 그의 세계관을 바꿔놓기 위해 모든 우상의 영향력으로부터 분리시킨 것이다. 여기에 거룩함의 의미가 담겨있다. 거룩함은 히브리어로 ‘카도슈’인데 ‘카도’는 분리, 나누어 놓는 거다. 우리 성도들, 이주민들은 현재 원 문화 토양으로부터 분리된, 아브람같이 세계관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인도함을 받은 열방의 제사장, 열방의 레위인들이다. 처음에는 우리도 현지 교단 들어갔다가 이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교단을 만들어서 학부 4년, M.Div 3년 총 7년을 신학 해야 목사 안수를 주는 것으로 내규를 정했다. 이전에 목사 된 사람들은 M.Div 과정을 다시 채우는 것으로 정해 교단장인 쏨밧 목사부터 이번 8월에 7년을 채우고 졸업한다.

지금 M.Div 졸업하는 사람이 7명이고 나머지 43명은 학부를 마치고 있거나 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내규가 세워지고 전통이 되니 지금 학부하는 지체들도 다 M.Div를 준비하고 있다. 학부는 태국 EFT교단 산하에서 학문적 교류가 있어서 BBS(Bangkok Bible Seminary)와 Pentecost 신학교 과정으로 우리가 학사과정을 진행한다. 한국에서도 통신과정처럼 학부과정이 가능하다. 다만 M.Div는 방콕 BBS에서 모든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Q. 지금 말씀하신 ‘자신학화’는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고, 보통 이런 비전은 자체 신학교 설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신학교보다는 신학자 양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어떤가?
A. 맞다. 신학교 자체에 대한 비전이 있었지만 신학교를 세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먼저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연수 프로그램이자 직원들의 역량을 강화시켜주는 ‘Human Resources Development, HRD’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우리는 ‘Mission Resources Development’, MRD를 한다. 선교자원개발인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선교자원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니 일단 영적으로 견고한,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 내려진 목회자를 배출하는데 집중했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12년 마스터 플랜에는 스무 명의 신학자를 배출하는 비전을 선포하고 간다.

태국 목회자가 된 성도들 목회자 연장교육

BBS도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이 제대로 된 교수진이 없어 학문적 체계가 잡히지 않는 것이다. 건물을 세워 이것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이 제대로 된 학자가 되어 BBS에서 교수를 하게 되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태국 교회의 미래를 풀어가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 비전을 처음 나눴을 때 쏨밧 목사와 또노 전도사가 코로나로 해외에 나갈 수 없으니 목회학 박사부터 도전하기로 했다. 코로나 상황이 끝나고 필요하면 유학을 갈 수 있으니 일단 그렇게 시작하기로 한 것인데, 성도들이 반응을 해주는 것과 하나님이 정말 시작하시려고 하는 것에 감사했다.

학부는 본인들이 학비를 감당하지만 M.Div 경우 개인이 감당할 수 없어 장학금을 지급한다. 또 박사과정은 학비가 더 올라가니 장학재단을 준비해야 한다. 계속 말했듯이 성도들이 ‘business as mission’을 하는 이유는 개인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교회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이다. 우선은 영적 기둥인 신학자들을 배출하는 장학사역과 성도들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 장학사역에 대한 비전들을 제시하고 있다.

Q. 앞서 사역과 비즈니스와 관련해서, 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당대에는 그 정신이 지켜질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다음 대로 내려갔을 때 희석되거나 변질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떤 복안이 있는지?
A. 충분히 그럴 여지가 있고 우리도 많이 우려를 하는데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권위를 계속해서 분산시키는 것이다. 권위가 집중되면 권력이 되고 통치하려고 하는 경향이 일어난다. 재정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위도 재정도 집중되지 않게 계속 흩어야 한다. ‘New life Corporation’이라는 법인회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 회사는 거대기업이 되지 않기 위해 돈을 계속 지출한다. 돈이 쌓이면 욕심이 날 수 있어서 끊임없이 일을 만드는 것이다. 이 회사는 재정이 들어오면 80~90% 거의 사용하고 조금씩만 성장을 하고 있다. 모든 재정은 계속해서 교회 사역으로 들어가는데 현재 방콕 교회 같은 경우 캄보디아 근로자들을 섬기는 사역을 한다. 한국에서 근로자로 있던 분들이라 근로자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Q. 다음세대 사역 이양과 관련해서 태국인은 물론 한국인 사역자도 양성하고 있으신가요?
A. 한국인 사역자를 키우는 일에 대해서는 아직 마음의 정리가 안됐다. 여기도 현지인 목회자에게 이양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다. 아까 말씀드린 또노 부부가 신학을 했는데 그 부부에게 이곳을 맡기고 싶은 마음이 많다. 또노 와이프가 뇌종양이 있다가 기도로 살아난 자매인데 한국 사정을 잘 알아서 우선 부교역자로 두어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이양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물론 한국적인 특색이 있어서 현지 목회자가 100% 목회가 가능한지에 대해 걱정이 있지만 이제는 다문화 여성들의 역할이 많아지면서 그 부분도 잘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저희 성도 중에 쿰판이란 자매가 있는데 법무법인에서 태국인 파트 사무장을 해서 더 이상 법률 관련해서 한국 사람과 협력하지 않아도 된다. 또 노무 관련해서는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다문화 여성들이 파트별로 상담을 하고 있어서 우리가 했던 파트는 다 내려놓고 있다. 초기에는 이걸 다 병행했고 계속해서 사회통합프로그램 유혹도 받았지만 우리는 교회로만 가기로 하고 다 자르고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 잘한 것 같다. 프로그램을 했으면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었겠지만 보다 많은 네트워크를 갖지 못하고 오히려 고립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많은 변호사, 병원, 노무사, 센터 등 네트워크가 구축됐고 또 태국 이주, 결혼 이주 여성들의 포지션이 격상되어 향후 태국인 목회자가 100%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지인 목회자들이 한국 안에서만 너무 정착하려고 해서 정작 현지에 대한 사역을 그려내지 못해서 성도들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지만, 이제는 국내에서 현지인 목회자가 결혼이주여성과의 네트워크를 갖추고 어떤 문제든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가고 있으니, 현지 사역에 대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훈련만 된다면 정말 좋은 그림이 될 것이다.

미국에 있는 한국인 이민교회들이 실제로 많은 선교를 하는 것처럼 한국에도 그러한 이주민교회가 세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런 꿈을 꾼다. 후임으로 한국인 사역자가 오는 것보다 말씀드린 명확한 비전을 가진 현지인 목회자가 세워지는 것이 태국교회와 미래를 위해 더 큰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고 본다. 또 태국 선교를 한국에 있는 태국 교회들이 이끌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타국 생활을 경험한 이들이 또 다른 나라로 선교사를 보내는 데까지 성장하게 되는 게 저희의 바람이기도 하다.

Q. 기존 한국교회들과의 연대해서 태국 현지로 확장한 사역 사례를 소개한다면?
A. 이주민사역은 세계선교이다. 태국선교이지만 세계선교이고 한국교회와의 관계가 한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태국까지 이어져 간다. 여기에 굉장한 시너지가 있고 한국 청년들이나 성도 분들에게 안주하던 마음을 일깨워줄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가장 적중했던 것이 한국 청년들의 아웃리치이다. 모교회인 신향교회 청년들을 데리고 개척할 지역인 태국 동북부 우돈타니로 가서 학교 사역을 7년간 했다. 처음에 그 지역의 한 학교를 선정해 한국-태국문화교류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테니 일주일 정도 정규수업시간을 우리에게 할애해 달라고 요청했다. 두 학교가 후보였는데, 1,500명 되는 큰 학교와 280명 되는 작은 학교였다. 우리는 물리적 시간과 공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교류할 수 있는 작은 학교를 택했다. 교장 선생님 입장에서는 외국인들이 와서 한-태 문화교류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하니 자기 점수가 올라가는 좋은 일이기 때문에 흔쾌히 받아 주었다. 그래서 청년들이 자기 전공 영역들로 커리큘럼을 짜서 초등 4,5,6학년과 중등 1,2,3학년에게 일주일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마지막 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7년을 했는데 해가 지날수록 선생님들도 변화하였다. 처음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나중에는 저녁마다 드리는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렇게 깊은 관계가 만들어지고 교회를 개척했는데 아이들이 교회로 저절로 유입이 됐다.

또 다른 사례는 앞선 모델을 ‘춤푸앙’이라는 다른 지역에 적용한 것이다. 이곳에서 사역하는 아난 목사는 평소에 시장을 다니면 ‘야’ 혹은 그 이름으로 불렸다. 성도들은 “아짠”이라고 부르는데 동네사람들은 계속 “야, 야”해서 굉장히 민망한 상황이었다. 그곳에 전문가 아티스트들인 아트 코리아팀이 들어가서 학교사역을 했다. 그래서 우리가 의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마이크 잡거나 앞에 나서야 하는 모든 순서에 아난 목사가 나가도록 했다. 처음에는 어른들이 “재 누구냐” 이런 분위기였는데 해가 지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학교 발표회 때마다 육성회 이사부터 지역 유지, 학부모들이 다 참석해서 아이들이나 학교 분위기가 좋아지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전문가팀과 사역하는 아난 목사를 보는 눈들이 달라졌다. 4년쯤 지났을 때는 아난 목사가 시장을 다니면 다들 “아짠”이라고 불렀다. 이제는 아난 목사가 얘기하면 사람들이 다 경청한다. 지역사회 청소년 아이들이 이 목사 때문에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목회자가 사역할 수 있는 역량과 배경이 마련된 것은 한국 청년들과 전문가팀들이 몇 년간 자신들의 시간을 투자해서 동역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태국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여러 사역들을 진행하며 자리를 잡아야하는데 젊은 목회자들에게는 이것이 쉽지 않았다. 나이가 사회적 권위가 되다 보니 젊은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귀 담아 듣지 않기 때문이었다. 현지인 목회자를 세우고 나서 그들이 현지 교회를 개척했을 때, 그가 목회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 배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또 산울교회 중고등부 아이들이 한국 태국인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그 다음 해에 현지로 나갔는데, 한국에서 이어진 교류가 태국까지 이어지는 감동이 있었다. 신향교회 청년 셋은 7년 동안 아웃리치를 하고 장기선교사로 나갈 준비를 한다. 비전트립을 통해 얻는 큰 열매이다. 처음에 청년들에게 프로그램을 잘하는 것보다 평생 가슴에 품고 기도할 영혼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했었다. 요즘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SNS와 번역기를 통해 교제할 수 있으니, 마음에 감동이 오는 친구, 그런 한 영혼을 품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이 청년들이 자신이 품은 아이를 놓고 기도하다보니 다음 해에 안갈 수가 없었고 그렇게 7년을 이어져 온 것이다. 아직도 이 친구들은 교류를 하면서 기도제목을 나눈다. 함께 사역했던 아트코리아 작가님들은 이전에 전 세계를 다니면서 문화사역을 했던 분들이다. 그런데 이분들의 고백이 30년을 선교해도 추억은 가득했지만 마음에 새겨진 영혼이 없어 공허했다는 것이다. 가슴에 품고 있는 나라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아주 다르다. 한국에서 이주민교회와의 관계가 비전트립이나 선교사역으로 이어져 나간다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현지 목회자에게는 사역할 수 있는 사회적 입지를 만들어 줄 수 있고, 한국 성도들에게는 평생 기도할 영혼을 만나는 큰 도전인 것이다.

Q. 기존 교회들이 이주민교회와 함께 동역하려고 할 때,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A. 프로그램 이전에 영적인 소통이 일어나는 예배를 함께 드리면 좋겠다. 제발 한국교회가 이주민교회를 초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멀리 사는 것도 아닌데 오지 않고 동네 원숭이처럼 부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이주민교회에 직접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산본에 있는 산울교회도 중고등부가 와서 예배를 드렸고, 분당만나교회 청년, 장로님들, 오륜교회에서도 와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이런 교회들이 좋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못 오시지만 남서울은혜교회 분들이 시니어 선교를 하시면서 매주 두세 분씩 팀을 꾸려 오셨었다. 처음에 선교헌금 하시면서 할 수 있는 것을 물어보셔서 그저 매주 함께 예배드려주시는 것만으로도 유익하다 했는데 감사하게도 매주 와주셨다. 우리 성도들은 믿음의 어른들을 보지 못한 세대이다. 믿음의 어른들이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 함께 보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도움이 된다. 또 젊은 세대들은 여러 활동들을 만들어갈 수 있다. 신향교회 한 청년은 매 주일에 서울에서 화성공장을 돌아 성도들을 픽업해서 교회로 온다. 마침 그 집에 스타렉스가 있어서 그렇게 섬기는데 이것도 굉장히 큰 섬김이다. 보통 차 운행을 하게 되면 6~7시간 정도 걸리는데 여기서 성도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다 나온다. 작은 그룹이 장시간 시간을 보내니까 여러 이슈들이 나오면서 언어공부도 되고 관계도 더 친밀해진다. 이 청년은 태국에 선교사로 나갈 형제라 이 시간들이 매우 중요하고 본인이 나중에 함께 할 자원을 얻는 것이다.

와서 함께 하면 좋은 것은 자연스럽게 태국어와 태국 문화를 익히게 된다. 우리는 교회에서 태국음식을 많이 먹는데, 그렇게 함께 먹으면서 성도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다보면 태국 현지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태국으로 선교 나갈 젊은 세대 사역자들이라면 미리 1년 정도 배우고 나가면 시간을 절약할 수가 있다. 특히 그렇게 교제하면서 이곳에서 태국에서 함께 사역할 신실한 현지인 팀을 꾸려서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함께 나갈 수도 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현지 사역의 절반 이상은 다 준비한 셈이다. 그러나 우선은 먼저 그들의 예배 안으로 들어가려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Q.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의 이주민선교에 대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A. 조금 우려되는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다. 한국교회가 이주민교회를 소속 기관으로 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형제교회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바라봐주는 그런 관점, 마음이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로 내려다보고 도와줘야만 하는 강박감 속에서 이주민교회를 바라보니 오히려 그 교회들이 더 성장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형제교회로 바라봐주고, 가능하면 교회 안에 두지 말고 다 내보내 주면 한다.

몇 만이 넘어가는 대형교회에서 태국어 예배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규모와 풍성한 자원이 있다고 그 안에 외국인 예배가 다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대형교회들이 많은 나라를 품을 수 있겠지만, 어떠한 경우 한 예배실을 여러 나라가 나눠서 쓰다 보니 훈련하고 교제할 수 있는 시간, 공간이 제한적이다. 각 공동체가 제대로 성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

이주민 선교는 철저히 물리적 시간과 물리적 공간 철학이 중요하다. 교회들이 주방부터 먼저 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늘 음식을 얻어먹으니 그들이 손님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공간을 분리해서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그 구조 안에서 이주민들은 언제나 손님이다. 본인들이 주인이 될 수 없고 결국 성장에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가 머리되시고 자녀들이 맘껏 누리며 사는 그런 교회 공동체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현재 한국교회 구조에서는 그것이 어렵다. 흩어서 내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은 흩어야 하는 시점이다.

이주민사역에 투입되는 재정으로 한 건물 상가 월세와 사역자들 사례비만 부담해주어도 얼마나 좋겠는가. 저는 9년 동안 사례비 없이 살았다. 외부 설교와 강의를 통해 생활비를 충당했는데 그런 시간들도 성도들과 함께 나누면서 오히려 교회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고난을 같이 하면서 진짜 가족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모든 사역자들도 고생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월세와 사례비만 감당해주고 나머지는 성도들 헌금으로 한다 해도 큰 힘이 된다. 그래서 성도들이 주인의식을 갖도록 할 수 있다면 교회 외부에 독립된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밖에 교회 이름을 지을 때도, 너무 지원하는 한국교회 이름 고집하지 말고, 태국인들의 어감과 의미에 맞는 교회이름을 지을 수 있도록 존중하면 좋겠다. 그리고 반드시 쉼터가 필요하다. 쉼터가 있는 이주민교회와 없는 교회의 차이는 크다. 아프고 직장을 잃어버려 오갈 데 없는 분들을 교회가 품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럴 때 교회의 성장이 있다. 쉬운 일은 아니나 선교가 원래 쉽지 않은 일이니 강조하고 싶은 중요한 부분이다.

기도제목
① 우연히 우리 교회와 연결된 타나컨(뱅) 형제의 심장 수술과 회복이 잘 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한국에서 하나님 더 깊이 교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② 유어프렌즈라는 단체에서 타나컨 형제의 수술비용을 돕고 있는데 만만치는 않은 비용이다. 돕는 손길들을 통해 재정이 채워지도록

③ 저희 세 자녀들이 믿음 흔들리지 않고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이들로 잘 자라서 하나님 주시는 우리 아이들 각자의 영역들을 하나님 앞에 삶을 드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될 수 있도록

④ 저희 아버지가 폐암 4기 투병중이신데 처음에 4개월 살거라고 했는데, 감사하게도 현재 2년째 살고 계신다. 암덩어리가 절반으로 줄기는 했는데 계속 위태로운 상황이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굉장히 외로워하시는데, 아버지가 건강 회복하셔서 조금 더 함께 계셔 주시도록

⑤ 코로나 상황이지만 한국과 태국에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과 교회들이 이 상황에 침체되지 않고, 그 속에서 오히려 성령의 기름을 부으셔서 충만함으로 복음을 전할 길들을 찾아내고, 돌파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흘러가도록   기획/정리| 강호세아(SIReNer) / 황혜진

* 본 원고에 삽입된 사진들은 코로나19 발생 전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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