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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다(우.리 교회 다.문화 이주민선교 이렇게 한다.) : 서울, 수도권 편_2.열방선교네트워크

CAS 디스커버리(2)
Web Journal  27호 2021. 09

0. 우.다.다.
이 땅에 다문화이주민선교가 시작된 지 3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공교롭게도 이는 한국교회가 해외선교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그 사이 ‘나가는 선교’로서 해외선교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모든 종족은 아니지만)에 선교사를 파송해 ‘3만 선교사’ 시대를 거의 눈앞에 두고 있다. 규모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교회마다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단기선교팀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사역이 되었다. 그에 비해 ‘들어온 선교’로서의 국내 다문화이주민선교는 지나온 세월에 비해 여전히 일반 교회의 관심이 적고, 다문화이주민이 늘어나면서 이 사역에 손을 대고 있는 중견 이상의 지역 교회들이 많지만, 대부분 전문성 없이 외국어 예배를 운영하거나 구제사역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물론 전문화된 사역자들도 있지만 ‘국내 목회와 선교’ 사이의 애매한 인식 속에 이른바 ‘각개전투’하듯 고군분투하며 사역을 이어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앞으로 시대는 다문화이주민 수가 더욱 증가하여 현재 총 인구 대비 5% 선을 넘어서서 10년 내 10% 선까지 다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으로 이는 점차 한국교회에 주어진 ‘기회’를 넘어서, 반드시 감당해야 할 ‘책임’으로 주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마땅히 이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고, 그 준비는 섣불리 사역에 뛰어드는 것보다, 우선 찬찬히 살피고 배우고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부터 이 시기에 본 선교회를 국내 다문화이주민선교리서치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하면서 주신 기대와 소망은 결코 거창하지 않고 소박했다. 그것은 그저 ‘다문화이주민선교를 알고 알리자.’라는 것이었다. 우리도 잘 모르니, 우리가 먼저 배우고 공부한다는 자세로 이곳저곳 부지런히 보고 들으며 만나왔는데, 그 가운데 모델이 될 만한 좋은 사례와 전략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이번 CAS 27호에서는 서울 및 수도권 지역 리서치의 몇 사례를 추려 소개한다.

2. 열방선교네트워크
# 경기북부 중심의 다문화이주민 선교 네트워크

# 정보제공 : 임광순 장로(인터뷰), 안정호 선교사(자문), 이용웅 선교사(자문)

1) 의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말이 있다. 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교사역에도 곱씹어 보아야 할 말이다. 개별 사역도 구슬처럼 귀하고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지체로서 동일한 목표를 지향하는 사역주체들이 서로 연합하고 동역하며 서로 꿰어질 때, 보다 더 보배로운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항간에서 “개신교 사역은 각개전투”라는 약간은 조소 섞인 말을 종종 듣는다. 가톨릭처럼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적인 단일조직일 필요는 없지만, 사역주체들이 각기 자기 사역 살리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멀지도 않은 인근의 동역자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경우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교회는 교단이 있고, 지역 기독교연합체가 있어서 어느 정도 연합이 이루어지지만, 다문화이주민 사역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이 연합의 끈들이 매우 느슨하거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들이 일반인 것 같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존 교회들은 자체 재정과 인력으로 개별교회 사역으로서 다문화이주민사역을 진행하고 있지만, 현재 상당수 이주민사역이 소규모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역 이주민사역자들 간은 물론 기존 지역교회들과의 연합을 통해 적지 않은 사역적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데, 현실의 연합과 동역의 부재는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문화이주민사역 역사를 살펴보면, 소위 ‘전국단위’의 연합체는 지난 30년 남짓 세월동안 간헐적으로 계속 시도되어 왔지만, 그마저도 알 수 없는 사역주체간의 이해관계나 주도권 문제 등으로 여러 번 고비를 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지역 연합체는 역사가 오랜 일부 도시 단위 연합모임1) 외에는 조직과 전체적인 사역현황을 공유할 만한 연합체를 찾기 힘들었다. 그 중에 다문화이주민사역 지역연합의 본이 된다고 할 만한 “경기북부 이주민선교 포럼(이하, 경기북부포럼)”과 “열방선교네트워크(이하, 열선넷)”을 소개하고자 한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본 글은 경기북부포럼 시작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임광순 장로의 인터뷰와 제공 자료들을 토대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2) 태동, 과정: 찬양음악회가 이주민사역으로
2014년 온누리교회 찬양공동체 대표장로였던 임광순 장로는 여름 아웃리치 지역을 물색하던 중 경기도 양주 지역 이주민교회 선교사들로부터 다문화이주민을 위한 선교음악회를 열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마침 라오스 아웃리치를 준비하다가 현지 사정으로 가지 못하게 된 찬양사역팀이 있었고, 이 팀을 통해 자비량으로 음악회를 추진하게 되었다.

음악회를 준비하는데, 정작 요청한 이주민교회들이 주인공이 될 다문화이주민들을 모시는 동원능력이 부족해서 지역교회의 큰 공간을 장소로 빌렸는데, 100명도 채우지 못할 형편이었다. 게다가 인근 이주민교회들의 참여마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미 음악회 준비는 하고 있는데 이 행사의 좋은 취지가 무색하게 될 상황이 되자, 다급한 마음에 임 장로는 다른 동역자 한 명과 함께 양주, 의정부, 포천, 동두천 등 인근 경기북부 주요 도시의 이주민교회들을 찾아다니며 참여를 호소하고, 인근 지역교회들의 한국인 성도들의 참여도 권유했다. 심지어 이주민교회들과 온누리교회 북누리공동체(경기북부 지역 모임) 협조를 받아 거리전도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이주민을 위한 선교음악회 “Blessing Yangju”가 열렸고, 지역 5개 이주민교회에서 다문화이주민 200여 명과 장소를 제공한 예향교회 성도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음악회를 통해 도전을 받은 예향교회에서 3년 동안 이주민을 위한 음악회를 열어주면, 그 후부터는 자신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해보겠다고 요청했다고 한다.2)

Blessing Miglants in 양주(2015년 11월), 예향교회

그래서 온누리교회에 사역지원을 건의하여 허락을 받고, 3년 동안 이주민을 위한 음악회를 열기로 하고, 2015년 1월부터 이를 위한 정기기도회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처음 함께 했던 선교사들이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기도회에 모인 사람은 이주민선교사 2명, 임 장로와 함께 동역하던 온누리교회 전도사 등 고작 4명이었다고 한다. 아무런 성과 없이 2-3개월이 지나고, 유일한 동역자였던 전도사가 목사 안수 후 부목사 청빙을 받고 떠나면서 임 장로는 위기의식과 후회로 가득 찼다고 한다.

임 장로는 답답한 마음에 선교 세미나에 참석해 강사에게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그때 그 강사로부터 그동안 큰 교회로서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해주는 “For Church”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With Church 즉 ‘교회와 함께 하는 선교’를 하면 이주민교회 선교사들도 장로님의 진정성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그날 이후 임 장로는 이 “With Church”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지역 이주민교회들을 찾아다니며 함께 예배하고, 함께 식사교제를 나누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이주민교회의 현실과 그들의 필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장 음악회 날짜는 다가오는데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음악회를 포기할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쯤 임 장로가 섬기고 있던 성가대의 한 지체로부터 온누리 순장사관학교에서 아웃리치 갈 곳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듣고, 급히 순장사관학교 팀장 집사를 만나 이주민교회 명단을 내밀면서 이주민교회 아웃리치를 가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이 일이 성사되어 순장사관학교에서 5개 팀이 5개 이주민교회를 아웃리치사역으로 섬겼는데, 예배 섬김은 물론, 교회시설(전기 등) 문제나, 이주민 커플 2쌍의 결혼, 여행 프로젝트 등 이주민교회의 실제적인 필요들을 채우고 지극히 잘 섬겨 주어서, 이주민교회에서도 감동을 받고, 이 사역의 진정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는 반응을 얻게 되었다. 이후에 2015년 하반기에도 온누리 순장사관학교에서 파주, 일산지역 이주민교회 5곳, 동두천, 의정부 각 1곳을 방문해서 아웃리치사역을 섬겨 그 지경이 더 확장되어 갔다.

이를 계기로 마음이 열리자 이주민 음악회에 대한 이야기도 급물살을 타기 시작해서, 임 장로는 “나는 온누리교회 찬양사역 담당 장로로서 이주민선교음악회를 열기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돕지 않는다면 나는 음악회를 포기하고 돌아가겠습니다.”라고 하자, 이주민교회 선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앞장서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음악회 이름도 “Blessing Migrant Concert”로 정하고, 음악회 추진위원장도 세우고, 그 자리에 모인 5개 언어권 교회들이 음악회에 모두 참여하기로 결의하게 되었다. 임 장로는 “이 과정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회고했다.

이주민선교음악회(2018) 나라별 발표, 송우교회

3) 경기북부이주민포럼: 최초의 지역 기반 이주민선교포럼의 시작
이주민을 위한 음악회라는 산을 넘자,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큰 그림을 보여 주셨다. 음악회 추진위원장이 음악회에 앞서서 이주민선교포럼을 먼저 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었다. 이에 주로 경기북부 현장 이주민 선교사들이 각 주제의 발제를 맡고, 그동안 직접 경기북부 지역 여러 이주민교회들을 방문하고, 사역자들을 만나 교제했던 임 장로가 ‘경기북부 이주민교회 현황과 실태’ 라는 주제의 발제를 맡게 되었다.

특히 그때까지 지역교회 연합회에서도 이주민교회 현황에 관한 자료는 물론, 대략적인 파악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던 상황에서 임 장로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심정으로 직접 경기북부 지역 내 다문화이주민을 섬기는 32개 이주민교회와 사역현장을 찾아다니며 그 현황과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정리해서 경기북부 지역 이주민선교 지도가 나온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제1회 경기북부 이주민선교 포럼

이렇게 시작된 ‘경기북부 이주민선교 포럼’은 2015년을 시작으로 해마다 열려 지난 2020년 6회 포럼까지 내실 있는 이주민선교 현장 이슈와 동역자들 간의 연합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 1회부터 제 6회까지의 포럼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4) 이주민을 위한 선교음악회, 그 후

2015년 11월 22일,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여러 과정을 통해 이주민을 위한 선교음악회 ‘Blessing Migrant Concert’와 ‘제 1회 경기북부 이주민선교 포럼’이 열렸다. 이주민을 위한 음악회이지만, 이주민들이 관객으로만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주체가 되어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참여하는 음악회였다. 당초 300명을 예상한 좌석도 그 이상이 참석해서 추가 좌석을 배치해야 할 정도로 성황리에 치러졌다.

Blessing Miglants Concert(2015년 11월), 예향교회

이 음악회를 계기로 경기북부 이주민교회들의 연합모임이 만들어져서, 이주민 선교사들의 정기 기도회, 포럼, 체육대회 등이 이루어졌고, 그것이 지금까지 경기북부 이주민선교의 구심점 역할은 물론, 한국 이주민선교계의 좋은 귀감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열방선교네트워크 정기총회 및 기도회(2020년 1월)
열방기도회-엘림소망아프리카교회 예정부지 기도회(2019년 4월)

이렇게 구슬같이 귀한 사역자들을 꿰어 보배와 같은 연합사역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본인 스스로도 전혀 의도하지도 계획하지도 않았지만, 누구도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물심양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구슬 꿰는 바늘 역할을 해 준 임광순 장로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북부 이주민교회연합’, 지금의 ‘열방선교네트워크’의 주요 관계자들은, ‘이 모든 일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현장 선교사들의 복잡한 관계를 넘어서, 조금의 이해관계도 없이, 어떤 기득권과 주도권의 주장도 없이 그저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몸소 희생과 헌신으로 겸손하게 묵묵히, 그리고 꾸준하게 실천으로 보여준 임광순 장로의 공이 가장 크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주민선교는 지난 30여년 세월 동안 국내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특수성 때문에, 각 사역자들이 국내 목회와 해외 선교의 서로 엇갈린 시선 속에서 어렵게 일군 사역과 섬기는 다문화이주민 영혼들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눈물겨운 희생과 헌신이 있어왔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해외선교 현장과는 또 다른 정서와 그 이상의 힘겨운 고충이 이주민선교 현장 사역자들에게 드리워져 있고, 그러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과 실망과 좌절의 시간을 겪어오면서 자연히 자리 잡은 불신과 경계의 쓴 뿌리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같은 이주민선교 사역자들 안에서도, 또 같은 지역을 공유하며 사역하는 인근 사역자들 안에서도 깊은 연합의 관계가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나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서로를 대하면, 사실 같은 고민들을 하고 있고, 같은 상처와 어려움들을 겪었기에 그 누구보다 더 깊은 공감과 유대를 누릴 수 있는 관계들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전국 단위의 큰 연합체를 구성하는 것에는 관심이 그나마 조금 더 있는 것 같은데, 처음부터 규모가 커지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것들이 그만큼 많아서 조금만 생각이 어긋나도 일을 그르치게 된다. 그래서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각 지역 단위 연합이 먼저 이루어져서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조직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각 지역의 기본적인 정서적 토양, 대상이 되는 다문화이주민들의 유사성에서 비롯된 공동의 이슈와 필요, 고민들을 가지고 허심탄회한 만남과 교제의 장에서 시작되면 좋겠다. 이것을 잘 꾸려가기 위해서 경기북부 사례의 이주민을 위한 음악회(혹은 문화공연) 모델이 좋은 구심점과 씨앗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공동의 관심사를 다루는 포럼의 형태로 발전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열방선교네트워크 제6회 포럼(2020년 9월 24.일)

그러나 이와 같은 시도와 노력들이 다른 지역들에서 왜 없었겠는가? 두루 다니며, 그와 같은 실제 연합모임에 대한 사례들을 많이 접하고 들었다. 그 중에는 내실 있게 잘 연합하고 동역하는 지역도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필자의 어쩌면 그저 다 아는, 이상적일 수도 있는 생각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구슬을 꿰는 바늘’이다.

글의 모두에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을 했듯이, 이주민선교의 연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렇게 각기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며 귀한 사역을 이루어낸 ‘진주구슬’ 같은 귀한 이주민교회와 사역자들을 순전하게 하나로 꿰어줄 임광순 장로와 같은 ‘바늘’이었던 것이다.

이 경기북부 사례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유심히 묵상?하고 분석해보면서, 이 ‘구슬을 꿰는 바늘’ 역할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기존 지역교회(이주민 전문사역 교회가 아닌), 그것도 콕 찝어 이주민선교의 가치를 알고, 여기에 헌신된 장로님들이 아닐까 한다.

우선 ‘지역교회’여야 하는 것은 이주민선교 현장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어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어느 정도 재정적, 인적 지원이 가능하면서,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교회라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또 ‘장로님’으로 특정한 것은 물론 중요한 것은 직분이 아니라, 이주민선교에 헌신된 분이라면, 안수 집사님이나 권사님이나 서리 집사님이라도 무관하겠지만, 앞서 언급한 영향력 있는 교회의 장로라는 직분이 갖는 일반 정서적 중량감이 관계를 엮는 이 일에는 상당한 이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교회가 충분한 재정과 인력으로 직접 이주민선교를 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안정적인 지역교회의 영향력을 선용하여 각 지역별로 이러한 교회와 장로님이 준비되고, 지역 이주민선교 연합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면 제 2, 제 3의 경기북부 사례가 전국적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기대해 본다. 아울러 그러한 튼튼한 지역 연합구조가 뿌리를 내린다면, bottom-up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기성 교회와 이주민선교 주체들이 연합하는 전국적인 연합도 훨씬 수월하게, 보다 건강하고 내실 있게 뒷받침하는 힘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해본다.  글| 강호세아(SIReNer)

[각주]
1) 안산 이주민사역연합은 내실 있게 잘 진행되고 있어서 향후 리서치를 생각하고 있다.
2) 
임 장로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나는 그 말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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