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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전도종족 입양선교로 고찰해본 한국교회 미전도종족선교②

이슈 인사이드(2)
Web Journal    29호 2024. 3

미전도종족 입양선교로 고찰해본
한국교회 미전도종족선교

Ⅲ. 2000년대 이후 선교 환경의 변화와 미전도종족입양선교 정체
2000년이 되자, ‘AD 2000 And Beyond Movement’ 곧 AD 2000년까지 모든 민족에게 교회를(A Church for Every People by the Year 2000) 이라는 기치로 90년대와 90년 대 말을 주도하던 ‘미전도종족을 통한 선교종결운동’은 대 위기를 직면해야 했다. 특히 2001년 9·11사태 이후의 세계는 테러와 전쟁에 직면하면서, 2024년 현재까지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가 그 영향을 받고 있다. 누가 21세기가 전쟁으로 시작되고 아직도 그 영향아래 놓일 줄 알았겠는가? 일찍이 저명한 교회사가인 케네스 라투렛은 19세기를 ‘위대한 세기(the Great Century)라고 했는데13), 일부 낙관적인 사람들은 20세기는 ’더욱 위대한 세기‘가 될 것이며, 21세기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세계가 더욱 연결되면서 ’더더욱 위대한 세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었는데 현실은 전혀 달랐다.

지구촌의 2000년대는 전쟁, 특히 미국본토에 대한 911테러, 아라비아 걸프전쟁, 중동의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이슬람권과 기독교권의 전면적인 충돌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21세기의 전반(前半) 24년은 또 다른 선교 역사가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선교사 출신으로 성경신학자이자 선교역사가인 스티븐 니일이다. 스티븐 니일은 “지난 19세기가 1789년에 시작되었고, 20세기는 1917년에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물리적으로 19세기는 1801년에, 20세기는 1901년에 시작되었지만, 19세기를 특징짓는 프랑스 혁명과 20세기를 특징짓는 볼셰비기 혁명이 일어난 1917년 이야말로 새로운 세기를 연 해이기 때문이다14)”라고 그는 주장했다. 세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 프랑스 혁명은 절대권력이 일인 내지 소수 엘리트 계층에 편중되어 있던 봉건왕조 체제와 시대를 종결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시대를 연 상징적 사건으로 19세기에 수많은 평신도 선교사들을 배출하는 사상적 기조를 제공했다는 의미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15).

한편 러시아에서 시작된 볼세비키 혁명은 20세기를 냉전(冷戰)이라는 극단적인 양분화된 체제로 전 세계를 변화시키고 말았다. 20세기에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자유민주주의 혹은 공산주의 체제 둘 중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어떤 국적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양분화된 세상가운데 살아야 했는데, 선교적인 입지도 확연히 달라지게 되면서 선교란 자연스럽게 공산주의권역의 국가에 집중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16).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21세기 세계선교를 전망하면서 “21세기는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에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17).

그 이유는 근대 세계사의 70 여 년을 풍미하던 공산 이데올로기가 붕괴하면서 하루 아침에 냉전이 끝나고 전혀 새로운 시대가 갑자기 다가왔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테러와의 전쟁, 공산주의 지영의 붕괴라는 21세기 선교환경의 대변화는 특히 남한과 북한의 체제로 양분된 채 남아있던 그러면서도 선교적 남은 과업을 순종하려는 한국교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런 가운데 한국교회는 90년대 본격적인 해외선교가 시작되던 중 지난 20세기 10년간의 선교 수행 평가와 함께 21세기 변화라는 이중적인 과제를 풀어나가야했다. 새로운 2000년,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고 조망해야 하는 큰 책임 아래 잠시 주제를 선교역사학자들의 시대 담론에 할애했다면 다시 2천년 대 미전도종족 선교와 관련해서 아래 세가지로 집약하여 고찰해보겠다.

1) 시작: 대규모 선교대회 개최로 선교한국으로의 재도약 움직임
한국교회는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을 맞아 한국교회 선교 전반을 점검하고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대규모 선교대회를 열었는데, 바로 2000년 8월에 10일 동안 진행된 2000년 세계선교대회였다18). 주제는 ‘한국교회의 21세기 선교활성화와 재도약’으로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대표회장 박종순 목사)가 주최하면서, 당시 국내 12개 교단선교부와 60여 개 해외선교단체, 해외 한인교회 지도자와 선교사들이 참여하여 진행되었다.

2000년 8월 선교대회의 특징으로는 (1) 목회지도자선교대회(명성교회, 8.15일~18일) (2) 21세기선교전략회의(사랑의교회,8.14일~15일, NCOWE Ⅲ대회)19) (3) 평신도/전문인선교대회(온누리교회, 8.16일~17일), (4) 기독교교육자선교대회(영락교회, 8.16일~17일), (5) 세계직장인선교대회(산성교회, 8.14일~15일), (6) 스포츠선교대회(할렐루야교회(8.16일~17일)로 주제별, 영역별로 대회를 진행하였다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2000선교대회는 한국의 지역교회 구조상 목회자들이야 말로 선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따로 구분하여 이들을 집중적으로 도전했을뿐 아니라, 본격적인 창의적 접근지역 선교를 위해 평신도/전문인선교대회를 별도로 개최하여 이후 한국에 ‘전문인선교’ 동원과 훈련, 파송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영역별 선교’로 교육선교, 직장선교, 스포츠선교라는 세가지 영역의 지평을 넓히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이 대회에서 결의한 한국선교의 미래를 위한 8개의 공동선언문을 보면 한국교회와 선교의 문제점이 잘 드러나는데, 그때부터 24년이 지난 지금도 동일한 평가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8개의 내용을 간단히 핵심만 살펴보겠다. (1) 과시적인 선교성과에 대한 강조/현지문화에 대한 둔감성 (2) 선교훈련의 부족/선교연구와 전략의 부재 (3) 국내외 협력의 부족으로 한국 선교 내에 낡은 패러다임, (4) 경쟁과 갈등/중복투자와 비효율성을 지양하고 선교사의 전략적 재배치 (5) 개별 선교사간/교단 선교부와 초교파 선교단체간/한국 선교사와 외국선교사간/현지교회 및 국내외 교회간에 긴밀한 협력 (6) 교회와 교단/선교단체/현장 선교사 등 모든 선교주체들을 포함하는 국가적 선교협의체 구성 (7) 선교환경 대처/선교전략의 개발과 협력을 통한 선교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선교정보센터 설립 운영 (8) 선교사와 교회는 선교사역의 공동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달성하도록 최선을 다한 노력 경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단락을 마무리하면서 2000년 세계선교대회 의의가 어떤 것인지 정리해보면 우선 21세기를 시작하면서 한국선교가 주님의 지상명령에 보다 적극적으로 순종하기 위한 우리 나름의 개선점을 모색하는 방항에서 선교대회가 우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또한 미완성 과업인 미전종족선교 사역에 역점을 두고, 세계 복음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책임을 다시 한번 이번 계기를 통해 인식하며, 한국교회가 21세기에 이 책임을 각성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세계 선교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었다는 점에 그 의미가 크다.

2) 퇴조: 지역교회 미전도종족입양, 2000년 합동교단 GMS 입양교회 현황 사례
위에서 지면의 두 페이지를 90년 대 말부터 시작된 거대한 선교환경의 변화와 그로 인한 한국교회의 대응을 잠시 고찰해보았다면, 다시 이 글의 주요 주제 한국교회의 미전도종족입양선교로 내용을 전환해보겠다. 우선 국내 교단 중에 가장 활발한 반응을 보이면서, 90년대에 총 550개의 미전도종족을 입양하겠다고 한 합동측 교단의 경우, 2000년에 총회세계선교회(현 GMS)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그때까지 총 44개의 교회들이 19개의 종족을 입양선교 하고 있었다. 물론 이 조사가 합동측 교단에 속한 전국 교회를 대상으로 한 조사이며,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지 여부는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지만, 당시 교단신문인 기독신보에는 총 44개 지역교회중 미전도종족입양 파악이 가능한 22개 교회 입양현황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20). 문제는 더 이상의 자세한 내용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뿐이다.

3) 지역교회 종족입양선교 평가
이제는 지역교회 종족입양선교를 마무리하는 측면에서 합동측 교단에서 GMS사무총장, 선교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던 강승삼 선교사의 한국적 상황에서의 미전도종족입양선교 평가21)를 참하여 미전도종족 현장 선교사이자, 종족입양 실무자로 여러 선교 전문가들을 인터뷰 한 후 에 종합적으로 제시된 것을 아래에 여덟가지로 그 원인을 살펴보겠다.

첫째, 처음 시작 단계에서 ‘입양’ 문화가 거의 전무한 한국사회에서 한국인이 갖는 ‘입양’이라는 단어의 생소함과 부담감 그리고 문화적 거부감이 입양선교 그 바탕에 작용하여,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고 확산시켜가는데 쓸데없는 소모적인 논쟁과 오해의 여지가 많았다. 되돌아보면 한국문화와 한국인이라는 부분에서 입양이라는 전략선교 개념이 한국교회의 종족선교 진전에 가장 큰 장애로 작동한 것이어서 ‘문화를 넘어가는 선교운동’이야말로 지속적인 선교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둘째, 종족입양을 위한 지역교회의 전체적인 결정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곧 수평적인 조직과 수직적인 조직이 혼재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특성상 당회와 교육부서 등 전 교회적 결정을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는 입양교회 대부분이 담임 목사의 지시 혹은 대학 청년부의 단기선교 정탐, 그리고 선교지 선교사와 친한 교제를 가지고 있는 교우 중심으로 종족입양을 하게 되었지만, 이후 종족입양을 종족입양식이라는 입양 예배에만 전 초점을 둔 것이 한계로 드러나면서 다양한 계층의 교육 부서와 각 선교회 기관으로 구성된 자역교회의 전체 성도들과 연결고리가 취약했다.

셋째, 또한 한 종족을 입양한다는 것은 선교의 대상을 축소하는 것이라는 반작용이 한국 지역교회 지도자들 내면적으로 작용했다. 현재까지도 선교 대상이 여전히 전 세계, 모든 민족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교의 대상이 좁혀지는 것을 구체적인 전략선교라고 여기기 보다 지역교회는 마치 세계선교를 향한 자기 교회의 역할이 과도하게 축소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1세기 2024년의 지금 전 세계는 도시화와 전쟁으로 다양한 민족들이 전 세계적으로 이동하는 시대를 맞이하여 난민, 이주민, 디아스포라 등 ‘종족집단 사고(思顧)’는 더욱 더 중요한 전략적 통찰을 제공하는 렌즈가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종족입양을 ‘분담과 책임선교’라는 영적 안목을 가지고 성경적인 본질에 의거하여 적극적으로 취해야 할 부분이 반드시 있다.

넷째, 위와 반대로 입양하는 교회의 규모에 비해 주류종족을 입양한 경우, 미전도종족의 크기나 분포가 너무 크고 넓어 그 대상으로서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한 교회가 양로원, 교도소, 소년원 등의 기관들과 자매결연 하는 일은 그 규모의 등가성이나 대상의 구체성이 분명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결연 관계를 갖질 수 있지만, 미전도종족과는 그런 등가성이나 구체성을 느끼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더욱이 현지에 있는 종족이 지역교회가 단기선교라는 기회로 접근 가능성이 어려운 오지와 감시가 심한 종족들인 경우, 이 문제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었다. 따라서 주류종족을 입양한 경우에는 도시에서 복음에 수용적인 해당 종족가운데 이를 테면 사업가 집단, 대학생 계층, 도시로 이주한 시골 사람들 등 다시 세부 계층별로 접근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다섯째, 종족입양의 편중화 현상이 종족입양운동의 확산에 장애물이 되기도 하였다. 위의 종족입양 사례들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한국 AAP가 처음에 우선 입양종족으로 선정한 166개의 종족중 교회가 종족입양을 결정하는 데는 규모가 큰 종족이거나 이미 잘 알려진 종족을 선택한 교회들이 많아 본래 미전도종족입양선교를 통해 자원의 중복투자와 집중으로 인한 낭비를 지양하고자 했던 전략선교가, 오히려 몇몇 종족들에게 선교자원이 집중되어 복음이 더 많은 종족에게 전해지지못하는 결과가 발행했다. 이를테면 캄보디아의 크메르족이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여섯째, 선교의 중요한 축인 선교단체와 현지 선교사들과의 긴밀한 협력체제가 구축되지 못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요인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교회가 선교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인 선교를 수행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선교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즉, 선교지와 교회 사이에서 선교에 대한 촉매자(catalyst) 또는 연결자(connector)로서 선교단체의 역할이 종족입양 선교에서는 교회를 너무 강조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배제되었던 것이다. 지역교회와 선교회가 함께 연합하여 선교해야 더 효과적으로 미전도종족을 선교할 수 있다는 것을 지나간 한국교회 미전도종족입양선교의 시행착오 경험이 현재 한국선교에 주는 뼈아픈 교훈이다.

일곱째, 종족입양을 하더라도 종족에 대한 전 교회적 관심과 사랑을 유지하고 증폭시킬만한 입양 후속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했다. 교회는 스스로 지속적으로 선교적 자극을 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위해 입양하기 전부터 현지선교사와 현지에 필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선교단체와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도록 했다면 한국 미전도종족선교 상황은 많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런 케이스를 통해 종족입양이 활성화된 교회는 다른 교회들에게도 모델로 제시됨으로써 종족입양 운동이 더 널리 전파되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여덟째, 선교정탐에 있어서도 본래의 정탐이 갖는 취지와는 다르게 즉, 미전도종족 사역을 위한 전문적 리서치 사역과는 달리 너무 편만하게 사용됨으로써 그 의미가 희석되기도 하였다. 본래 종족정탐은 현지 미전도종족 정보를 통해서 접근할 수 있는 필요를 파악하고 초기 접근 전략을 위한 기초자료 제공이라는 역할과 그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 선교정탐은 종족정보 부분에 있어서 기술적ㆍ재정적인 한계를 넘지 못했을뿐 아니라, 종족 정보가 동원자료로서 구체적으로 활용되지 못함으로써 전략적인 정보로 사용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문제는 현지 정보 현지 사진, 영상 등의 공유와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한 현재적인 시점에서 다시 선교정탐이 시행된다면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한국선교의 ‘선교종결운동’을 가속화하는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미전도종족 입양선교 관점에서 한국교회 미전도종족선교를 비판적인 각도에서 일갈해보았다. 시기적으로는 주로 90년 대 이후부터 2천년 중반 까지를 중점적으로 고찰했다. 그 이후 한국교회의 미전도종족입양선교는 그 사역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체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선교계는 미전도종족선교를 핵심으로 하면서 새로운 선교적 돌파가 필요한 시점에 ‘전방개척선교(Frontier Mission)’라는 개념을 통해 선교의 남은 과업을 종결하려는 선교종결운동에 지속적으로 한국교회를 도전하고 있다22).

4) 재도전: FTT(Finishing The Task)운동을 통한 미전도종족/미개척미전도종족을 향한 선교종결운동 가속화 움직임
한편 미국이 주도하던 서구 선교운동에서 미전도종족선교의 추이와 관련해서는 암스테르담 2000대회와 Table 71을 주목해야 한다. 암스테르담 대회는 빌리그래함이 주도하던 복음전도협회가 주관한 대회로 2000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는데, 이 대회에서 선교전략코디네이터들이 모이는 그룹은 71번 번호가 붙은 원형 테이블에서 8명의 각 선교단체 지도자들이 회의를 했다. 곧 CCC/YWAM/Walk Through the Bible/IMB/Wycliffe/Mission Spokane였는데 미국 남침례교 IMB의 경우 두 명이 함께 참여하였다23). 당시 이 전략 테이블에서 논의 주제는 ‘어떻게 해야 남아있는 미전도종족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How do we reach the rest of the UPG’s of the world?)였다. 이들은 AD 2000 운동이 지나도 이 과업이 끝나지 않은 원인들을 토의하면서 종족에 대한 데이터가 그때까지도 아직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언어 그룹의 종족 자료만이 아니라, 실제 미전도종족에 대한 자료가 더 명쾌하고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 미전도종족의 새로운 통계와 목표에 대해 고민하였다, 또한 이 회의에서 미전도종족이 제자화 되기 까지의 4단계를 설정하기도 하였다. 이 모임은 다시 미전도종족 선교의 중요성을 환기시킨 대회로 의미가 있다.

이후 2004년 가을에 ‘Table 71’에 참여했던 지도자들이 미전도종족 선교 사역을 지속하기 위해 연합의 필요를 더 느끼면서 ‘Finishing The Task’라는 이름으로 미전도종족선교운동을 계승하기로 하였다. 이 운동이 강조하는 것은 UUPG(Unengaged Unreached People Group)

곧 ‘교회개척단 사역자들이 파견되지 않은 미전도종족 내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이후 2006년 7월에 한국 부산에서 FTT대회를 개최했는데, 이 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미국 선교단체 GAP(Global Assistance Partner)과 FTT코리아가 연합하여 ‘FTT코리아’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 단체는 김궁헌 목사(세계교회미전도종족개척연대 대표)와 안강희 선교사가 주도했는데, 특히 FTT부산대회에서는 우선 첫 목표로 당시 10만 이상 인구를 가진 639개의 종족을 특별 선정하여 집중할 것을 강조했다24). 이들 대부분은 인도에 있는 종족들이다. 한편 이 운동을 한국교회 내에 확산 정착하기 위해 당시 코디네이터로 강대흥 선교사(GMS), 실행위원으로 권성찬 선교사(GBT), 신방현 선교사(통합), 한정국 선교사(KWMA), 한철호 선교사(선교한국)를 선출하여 미전도종족선교를 재점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당시 FTT운동은 전적으로 이 운동을 실행할 전담 조직과 인물이 미국에 거주하면서 한국에서는 3년 이상 지속되지 못한 채 정체되고 말았다. 당시 한국의 지역교회들중 FTT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교회는 인천 필그림교회(김형석 목사)와 부광감리교회(김상현 목사), 신방현 목사(분당임마누엘교회 목사) 등이다. 이후 한국에서 FTT코리아는 지난 2020년 10월에 다시 인천 송도에서 ‘세계교회지도자 미전도종족 개척선교대회’에 릭 워렌 FTT 총재, 폴 애쉴만 국제 CCC 부총재, 켄트 팍스 Beyond 대표, 루이스 부시 AD2000 국제대표 등 국제 리더들과 90개국 현지인 목회자 500명을 한국에 초청하기로 했으나,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비대면 온라인 대회로 전환되면서 인천필그림선교교회에서 유튜브를 통해 10월 14일~16일까지 미전도종족 대회를 진행하였다25)

끝으로 미전도종족입양선교를 통해 한국교회에 미전도종족선교를 도전해오던 입장에서 FTT 선교종결운동을 보았을 때, 아쉬운 점은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선교단체들과 더 유기적이고 긴밀한 협력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미국의 GAP선교회와 FTT코리아가 한국의 몇몇 지역교회들과 현지 선교사들을 통해 연결된 현지교회 지도자들과 협력해서 이루어지는 운동이기에 이로 말미암은 장단점이 있다. FTT운동은 한국에서 미전도종족입양운동이 정체 혹은 퇴보 상태에 있던 시기에 보다 더 미복음화된 선교종결운동으로 전개되어 아직 진행되고 있는 선교인데 국내에서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서 아직 평가가 어렵다. 또한 FTT 평가를 위해서는 이 운동을 전개한 이들과 사례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바라기는 지난 한국 미전도종족입양선교의 시행착오를 시금석으로 종족이라는 렌즈로 남은 과업을 향한 선교에 더욱 한국교회를 재도전해주길 기대한다. 미전도종족 입양선교로 고찰해본 한국교회 미전도종족선교②… .글 | 정보애(SIReNer)

[각주]
13) 
박형진, 「선교역사가 소개: 케네스 스콧 라투렛(Kenneth Scott Latourette)」, GMF, 『현대선교』, 17호, 2014. 11. pp. 183~213.
14)  
박형진, 「선교역사가 소개: 스티븐 닐(Stephen Neill)」, GMF, 『현대선교』, 20호, 2017. 8. pp. 135~160.
15) 앞의 글.
16) 앞의 글.
17) 
정민영, 「21세기 세계선교의 동향과 전략적 이슈들」, 『2004년 방콕포럼자료집』, 2004년 1월.
18) 
기독개혁신보, 「선교한국으로의 재도약 위한 2000 세계선교대회 8월 15일 개막」, 『기독교개혁신보』, 2000년 8월 4일.
기독개혁신보, 」2000년 세계선교대회, 10일간 대장정 폐막」, 『기독교개혁신보』, 2000년 8월 23일.
19) 당시 엔코위 대회에서는 UPMA의 IMPAC 연구소를 중심으로 대회 전 1년 동안 ‘한국선교사 현황조사를 통한 선교사의 전략적 배치’라는 연구조사를 기조 발제 주제로 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특히 필리핀과 중남미권 선교지에서 사역을 해오던 선교사들이 강한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20) 노충헌, 『기독신문』, 2000, 12, 11 기사, 출처 : 주간기독신문(https://www.kidok.com)
21) 
강승삼, 『한국선교의 미래와 전방개척선교』, 한선협(KWMA),, 2006. 10. 31.
22) 
주로 선교한국에서 분리된 미션 파트너즈에서 진행하는 퍼스팩티브즈 PSP과정, 특히 선교의 역사적 관점과 남은 과업을 통한 선교 훈련과 동원 부분에서 전방개척선교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전방개척선교 활성화를 위해 직접적으로는 전방개척선교저널(KJFM)이 지난 2005년 10월에 첫 발행을 한 후에 2024년 2월 현재 제 111호인 3~4월호를 발행해오고 있다. 전방개척선교저널 이외에 KWMA(한국세계선교협의회) 중심으로 전방개척선교 네트워크도 형성되어 포럼이나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23) 조명순, 「한국에 통용되는 미전도종족선교 관련 용어 정리」, 『미전도종족: 한국 미전도종족선교 성과· 과제· 미래협력』, 2014년 6월 16일 발행. PP. 191~192에서 재정리.
이 책은 2013년 6월에 개최한 ‘한국미전도종족선교 20년 포럼’의 후속으로 지난 20년간 한국의 미전도종족선교를 한번 정리 평가 해본 이후 후속으로 정리 작업을 통해 다시 미전도종족선교의 확산과 발전을 위해 233쪽 분량의 책으로 발행했다.
출저: 미전도종족선교연대(UPMA), 『미전도종족: 한국 미전도종족선교 성과· 과제· 미래협력』, 업마 넷, 2014년 6월 16일 발행.
24) 
GMS 총회세계선교회, 『FTT국제선교세미나자료집』, 2006년 10월 23일.
25) 
이지희, 「복음화율 0.1% 미만 ‘미개척미전도종족’ 복음화 전략은? 2020 세계교회지도자 미전도종족 개척선교대회 열려」, 『기독일보』, 2020. 10. 15.

 위 자료의 저작권은 UPMA에 있으므로, 인용하여 사용하실 경우 반드시 출처를 남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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