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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쌀국수에 담긴 낭만과 복음의 희망

CAS 디스커버리
Web Journal   30호 2024.6

베트남은 상당히 굴곡진 역사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른 나라이다. 특히 기원전 시대부터 중국 왕조가 교체될 때마다 직간접적인 침략과 지배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있었고, 가까운 과거에는 근대식 기술과 무기로 무장한 서구 프랑스와 일본의 지배를 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독립 후에도 미국이 개입된 남북 베트남 간의 전쟁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특기할 만한 사실은 그러한 모든 시대에 베트남 사람들은 외세에 저항했고, 포기하지 않고 투쟁했다는 것이다.

필자에게 이러한 베트남 역사의 단면처럼 각인되어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역사소설 ‘삼국지’ 속의 한 이야기다. 거기서 서촉의 유비가 죽은 후 책사이자 재상이었던 제갈공명이 촉나라 남부 변경을 침입해 온 남만왕 맹획을 일곱 번이나 사로잡았다가 풀어주기를 반복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마다 이 남만국은 끈질기게 다시 도전해 왔다는 것인데, 무려 일곱 번이나 풀어주면서 결국 인화로 감복시킨 제갈량도 대단하지만, 그때마다 항복도 포기도 하지 않고 도전했다는 맹획과 남만국도 기억에 남겨진 대목이었다.

바로 그 나라 남만이 지금의 베트남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소설이기는 하나, 규모와 힘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는 근성과 저력을 가진 결코 만만하게 볼 민족성이 아니라는 강한 인상이 남았다. 또한 베트남 전쟁에서 결과적으로 20세기 미국에 승리한 유일한 나라로 남은 역사 또한 그것을 보증해 주기 충분했다. 이렇게만 보면 베트남은 매우 끈질기고, 저항적이며,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호전적인, 그래서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그런 나라, 그런 사람들이기만 한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뿐일까? 필자는 2023년 다녀온 베트남 현장 리서치 여정에서 만난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들에서 멀리서 볼 때와는 사뭇 다른 그들의 낭만과 유연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그들이 그렇게 오랜 역사 속에서 끈질긴 근성과 자주성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도 그들의 호전성, 강인함만이 아닌 바로 그 깊이 밴 낭만과 유연한 정서의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필자가 그 반전 매력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다름이 아닌 그들의 음식들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묻어나는 역사와 유래의 흔적들이었다. 베트남은 역사 내내 반복된 중국의 침략과 지배에 저항하면서도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남중국 광둥요리의 영향을 받아 자기들만의 독특한 식문화를 만들어 냈고, 프랑스의 지배를 받으면서 치열한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프랑스 풍이 가미된 특유의 요리들을 만들어 내어 자국은 물론 이제 전 세계가 사랑하는 ‘암특 비엣남(Ẩm thực Việt Nam; 베트남 음식)’ 문화를 소유한 나라가 되었다.

이 같은 베트남 음식에 대해 찾다보니, 만나게 되는 말이 ‘배고프면 채소를 먹고 아프면 약을 먹어라(Ăn rau khi đói và uống thuốc khi ốm).’라는 말이었다1). 식물 생장이 빠른 더운 지방 특성상 채소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특별히 베트남 사람들은 채소를 좋아해서 실제로 거의 모든 음식에 이름 모를 여러 채소들이 넉넉하게 들어가 있고, 신선하게 생(生)으로도 많이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비만율이 낮은 나라로 알려져 있으며, 요즘 건강식, 채식문화 인기에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베트남의 모든 음식에 곁들여 먹는 베트남 채소들, 사진출처: unsplash.com

하지만 그렇더라도 베트남의 소위 ‘소울 푸드(soul food)’, ‘암특 비엣남’의 시그니처(signature) 메뉴는 아무래도 ‘쌀국수’일 것이다. 베트남을 찾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묻는 설문에 무려 86%의 응답자가 ‘쌀국수’를 꼽았다고 하니 이론이 여지가 없다고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베트남 쌀국수를 좀 안다는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베트남 쌀국수 = 퍼(Phở)’라는 등식을 상식으로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2000년대 즈음 우후죽순 생겨난 베트남 쌀국수 식당들의 상호에 대부분 이 ‘퍼(Phở)’(주: 한국에서는 주로 ‘포’로 표기)’가 들어가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사실 퍼는 여러 종류의 베트남 쌀국수 중 하나이고, 그 밖에도 면 종류에 따라 분(Bún), 미(Mì), 후 띠에우(Hủ Tiếu) 등이 있다.

  퍼(Phở)

베트남 쌀국수의 대명사가 된 퍼와 그 이름에 대한 기원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중국 광둥 기원설이다. 하노이에 살던 중국 광둥계 이민자들이 만들어 팔던 소고기 국수인 ‘유우펀(牛肉粉)’이 그 시작이라는 것인데, 유우(牛肉)가 소고기를, 펀(粉)은 주로 쌀국수를 가리킨다. 베트남어로 펀(fan) 발음은 ‘똥’을 뜻할 수도 있어서 음절 끝의 ‘n’발음이 사라지면서 퍼로 굳어졌다고 한다2).

또 하나의 유력한 설은 프랑스 기원설인데, 프랑스 식민지 시기인 19세기 소고기 스프인 ‘포토푀(pot au feu)’를 베트남 식재료에 맞게 변형하면서부터라는 것이다. 퍼라는 말 역시 이 프랑스어 포토푀(pot au feu)’의 ‘푀(feu)’를 베트남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프랑스인들은 이 포토푀의 건더기만 건져 먹고 국물을 남기는데, 베트남인 공장 노동자들이 그 소고기 국물에 면을 넣어 먹은 것이 시초라는 설이 있기도 하다3).

어쨌든 퍼의 기원설에 영향을 준 두 나라를 보면, 모두 베트남을 식민 지배한 나라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은 그 암울한 역사를 딛고, 물론 그 시대를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이었겠지만, 그 결과 모두가 사랑하는 자기네 식 요리를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실제로 퍼는 중국의 ‘유우펀’과도 같지 않고, 프랑스의 포토푀와도 같지 않은 지극히 베트남적이고 누구나 그 맛을 보는 순간 베트남을 떠올릴 수밖에 없으니, 이것은 고난 중에도 이를 음식과 맛으로 승화시킨 베트남 사람들의 특유의 유연함과 낭만의 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퍼는 쌀을 불려서 곱게 갈아 열을 가한 판 위에 얇게 펴고, 수증기를 쬐면서 익힌 후 그것을 떼어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칼로 썰어서 면을 만든다. 그릇에 면을 담으면 그 위에 고명으로 숙주와 육수에 맞는 고기를 얹는데, 소고기의 경우 고기를 완전히 익힌 것과 날 것을 얇게 썰어 뜨거운 육수에 약간 데친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이렇게 준비되면 이제 베트남 사람들이 퍼의 영혼이라 하는 육수를 부어서 기호에 따라 초절임 고추, 박하잎, 고수, 레몬 등을 함께 곁들여 먹는다4). 퍼 육수는 일반적으로 소고기나 닭 뼈 육수를 쓰는데, 소고기 육수를 쓰면 퍼 보(Phở bò), 닭 뼈 육수를 쓰면 퍼 가(Phở gà)라고 한다5).

퍼 보(Phở bò)와퍼 가(Phở gà), 사진출처:wikipedia

퍼는 주로 하노이(Hà Nội) 또는 남딘(Nam Định) 중심의 베트남 북부 지역 음식이다. 하지만 베트남 공산화와 남북분단 당시 북부에서 남쪽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이 퍼를 만들어 팔면서 이제는 베트남 전국적 쌀국수가 되었다. 그럼에도 지역별로 조금씩 만드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주로 퍼 이름에 지역 이름을 붙여서 구분을 하는데, 위에 소개한 것이 퍼 하노이(phở Hà Nội) 방식이고, 퍼 보 남딘(phở bò Nam Định)은 남딘 지역방식으로 더 얇고 부드러운 면을 사용하며, 북서부 지역에서 생산된 팔각과 계피, 남딘성의 응이어흥, 자오투이, 하이허우에서 생산된 어장을 사용해서 만든다. 퍼 사이공(phở Sài Gòn)은 호찌민식 퍼로서 해선장과 핫소스를 함께 내며, 라임과 고추 외에도 쿨란트로, 타이바질, 숙주나물과 양파초절임 등을 곁들여 더 풍성한 맛을 내서 먹는다. 한국에서 주로 만날 수 있는 쌀국수 식당들에서 이 해선장과 핫소스를 빠지지 않고 내는 것을 보면 이 사이공식 쌀국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퍼 코 잘라이(phở khô Gia Lai)는 잘라이 지방의 퍼로서 국수와 국물이 따로 나오는 ‘따로 국수’ 같은 방식이다6).

다양한 퍼(Phở),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①퍼 보 남딘(phở bò Nam Định), ②퍼 코 잘라이(phở khô Gia Lai), ③퍼 하노이(phở Hà Nội), ④ 퍼 사이공(phở Sài Gòn), 사진출처: wikipedia, ivivu.com, 사진:baogialai)

  분(Bún)

또 다른 베트남 쌀국수로 가느다란 면인 분(Bún)이 있다. 퍼와 같은 베트남 쌀국수의 대명사 격을 얻지는 못했지만, 분 역시 베트남 요리 전문점에 빠지지 않는 메뉴인 탓에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다만, 그것이 다른 일가(一家)를 이룬 쌀국수류 이름이라는 것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분은 과거에는 특별한 날에 먹는 면이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면 자체가 퍼에 비해 더 가늘어서 만들기에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인 것 같다.

분으로 만든 요리 중 가장 대중적인 것은 역시 하노이의 대표 음식인 분짜((Bún chả)이다. 분짜의 짜(chả)는 다진 돼지 어깨살에 양념을 해서 우리의 떡갈비처럼 만들어 숯불 향 가득하게 구운 것을 말한다. 이러한 분과 짜를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소스인 느억짬(Nước chấm)에 찍거나 적셔서 먹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주로 점심에 먹는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때에 구애받지 않고 먹는 음식이 되었다7).

분짜((Bún chả), 사진출처 :wikipedia

한국인에게는 조금 생소한 이름이지만, 베트남 면류 음식 중 가장 특별한 음식으로 알려진 분다우맘똠(Bún đậu mắm tôm)도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다른 면들과 달리 긴 면을 모아 납작하게 눌러 손가락 크기의 작은 조각으로 자른 형태의 분을 쓴다. 처음에는 밥이 지겨울 때 가족들을 위해 대신 만들어 먹던 간단한 별미 요리였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특이한 형태의 분과 튀긴 두부인 ‘다우(Đậu), 베트남의 새우젓인 ’맘똠(Mắm tôm)이 기본 재료였는데, 점차 사람들이 삶은 돼지고기, 베트남 순대, 짜꼼(Chả cốm), 넴(Nem) 등 다양한 재료를 추가면서 맛은 물론 시각적으로도 매우 매력적이어서 베트남 북부 사람들에게는 대중적이고 전형적인 길거리 음식이 되었다.

그런데 이 요리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넘어야 할 산이 있는데, 분다우맘똠의 소울(soul)이라 할 수 있는 잘 발효된 새우로 만든 베트남 젓갈인 ‘맘똠’ 때문이다. 맘똠은 두리안처럼 먹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식욕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이지만,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참을 수 없이 고역이 되는 냄새로 느껴진다8).

분다우맘똠(Bún đậu mắm tôm), 사진출처: wikipedia

북부에서 비롯된 분짜 못지않게 현지에서 사랑받는 쌀국수 요리로 중부 후에 지방에서 시작된 분보후에(Bún bò Huế)가 있다. 지금은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인들의 베트남 최애 관광지인 다낭(Đà Nẵng) 위에 있는 고도(古都)로 당일치기 패키지 여행지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후에(또는 훼, Huế)는 베트남 응우웬 왕조의 수도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이다. 그렇다 보니 후에 지역의 요리들은 대부분 궁중요리와 관련된 경우가 많은데, 이 분보후에 역시 그렇다. 그래서 지금은 베트남 전역에서 이 ‘분보후에’라는 간판을 단 식당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분보후에의 면은 퍼 면발보다 더 굵고 질긴 식감이다. 국물 특유의 레몬그라스 향과 매운 맛으로 유명하며, 사람들이 이 맛 때문에 분보후에를 오래 기억하게 된다. 이름에 보(Bò)가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쇠고기 국수로 먹지만, 쇠고기 외에 돼지고기를 함께 넣기도 하고, 햄, 튀긴 두부 등 다양한 재료가 함께 들어간다9).

분보후에(Bún bò Huế), 사진: wikipedia

  미(Mì)

‘퍼’나 ‘분’과 구분되는 또 다른 베트남 쌀국수로 ‘미꽝(Mì Quảng)’이 있다. 꽝(Quảng)은 베트남 중부의 꽝남(Quảng Nam)을 의미하는데, 1997년 이전에는 다낭도 꽝남에 속해 있었다가 분리되었고, 베트남 전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부끄러운 ‘꽝남 학살’ 사건이 Việt Nam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16세기 응우웬(Nguyễn) 왕조 시대에 꽝남과 인접한 호이안(Hội AViệt Nambánh tráng nuang mèn)을 중심으로 대외 무역이 성행하며 외국 상인들이 붐비게 되었는데, 그때 상당히 많은 중국인들이 이 지역에 오면서 중국 음식도 함께 들어오게 되었다.

현재의 미꽝의 기원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중국 국수는 밀가루로 만드는데, 미꽝은 쌀로 만든 쌀국수라는 차이가 있다. 미꽝은 보통 쌀가루를 갈아서 치자나무의 씨와 계란을 반죽해서 만든다. 그래서 면발 색깔이 다른 하얀색의 쌀국수들과 달리 노란색이다. 그리고 고명으로 돼지고기, 새우, 닭고기 등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특이하게 개구리 고기와 먹는 ‘개구리 미꽝’(Mì Quảng Ếch)이 있다. 미꽝은 국물이 아주 적고 걸쭉한 느낌에 달콤한 맛이 난다. 면과 고명들이 어우러져 노란색, 녹색, 붉은색 등 다양한 색이 혼합되어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인다10).

채식미꽝(Mì Quảng), 개구리 미꽝(Mì Quảng)’ 등 다양한 종류의 미꽝(Mì Quảng)’ 사진출처: wikipedia, vinpearl.com

  후 띠에우(Hủ Tiếu)

베트남 남부에서 유명한 쌀국수로 ‘후 띠에우(Hủ Tiếu)’가 있다. 후 띠에우는 1950년대부터 베트남 남부, 특히 호치민(Hồ Chí Minh)에서 만들어진 대표 쌀국수이다. 사실 이 후 띠에우는 중국 푸젠, 차오저우 및 타이완에 사는 민난족, 차오산족의 전통 쌀국수인 꾸에띠아우(또는 궈티아오, 粿條)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이 동남아 여러지역으로 널리 퍼지면서, 꾸아이띠아오(ก๋วยเตี๋ยว, 태국), 꾸이띠어우(គុយទាវ, 캄보디아), 퀘이탸우(kwayteow, 말레이시아), 퀘티아우(kwetiau, 인도네시아), 후 띠에우(hủ tiếu, 베트남) 등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호치민시의 모든 골목에서 후 띠에우를 파는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호치민에서 토착화한 후 띠에우는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주로 사용하는 그 조리법과 특유의 풍미가 독보적이다. 남부인들은 전통적으로 점심에 국수를 거의 먹지 않는 편이라, 후 띠에우는 일반적으로 아침 또는 저녁 식사 요리라고 할 수 있다. 후 띠에우의 주재료는 육수는 다진 고기와 돼지 내장을 함께 끓여 만든다. 그런 다음 국수에 육수를 살짝 묻힌 다음 숙주, 쪽파, 다진 고기 등의 재료를 추가한다. 후 띠에우를 먹을 때 소고기로 만든 버 비엔(Bò viên), 칠리 소스, 블랙 소스와 함께 먹을 수 있다11).

지금까지 면 종류에 따른 가장 대표적인 베트남의 쌀국수들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베트남 음식, 특히 이 다양하고 독특한 쌀국수 이면에는 그들의 아픈 역사가 있고, 또한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한 유연함과 낭만이라는 멋이 있다. 온전히 다 고유한 것은 아니지만, 적절하게 받아들이고 지역의 정서와 풍토에 맞게 변형해서 나름의 맛을 만들고, 즐기고, 또 자기네 땅에 찾아온 이방인들과 아낌없이 나눈다. 그리고 또 그 맛이 그리워 다시 찾아오게 만든다. 사실 현지인들도 지역별로 특화된 쌀국수의 종류를 다 알지 못할 정도로 베트남 쌀국수는 면, 주재료, 소스, 만드는 방식, 지역에 따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다양하다.

필자의 편애일 수도 있지만, 사실 전 세계 국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중국도 수많은 국수와 쌀국수들이 있지만, 베트남처럼 시그니처로 각인된 것은 아니고, 역시 많은 쌀국수를 보유한 태국이나 인근 인도차이나반도 나라들이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도 베트남만큼 독보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쌀국수는 베트남’, ‘베트남은 쌀국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여기서 쌀국수를 통한 베트남 사람들의 또 다른 저력을 엿보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응용과 확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국민성과 저력이다. 단지 그들의 고난의 시간을 견디는 유연함과 낭만의 힘만이 아니라, 그 주어진 상황을 응용하는 힘이 없었다면, 그것도 다른 거창한 것들이 아닌 자신들에게 있는 것들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그런 응용력, 그리고 자기네에게 적합한 모델을 찾았을 때, 이웃 지역의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그것을 수용해서 자기 지역에 맞는 방식으로 또 확장, 재생산해 내는 힘, 이것이 없었다면 오늘의 베트남 쌀국수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필자는 그렇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저 중국 쌀국수의 아류 정도밖에, 사람들도 ‘아, 중국에 가까우니 중국 사람들이 쌀국수를 여기 들여왔나 보다.’할 정도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것도 몇백 년 걸린 것이 아니라, 불과 100년 남짓 밖에 안 되는 기간에 이루어낸 세계의 사랑을 받는 특유의 식문화라는 것은 그들의 저력을 보여주는 아주 소프트(soft)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면의 특성에 따라 크게 4종류의 큰 갈래만 소개하였지만, 베트남 각 지역마다 저마다 신선한 지역 재료와 방식을 가지고, 특유의 맛과 향, 식감을 만들어내는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한 쌀국수의 매력은 그곳을 떠나와 시간이 지난 시점에도 매우 강렬하게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이러한 어떤 문화 이면에 내재된 역동성은 만들어 내려고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만이 가진 어떤 보이지 않는 DNA, 유전자 같은 것이고, 어떤 문화추동적 계기를 위한 매우 중요한 동기가 된다고 생각된다. 또한 필자는 이러한 베트남 사람들의 면모가 ‘그들을 위한’ 복음에도 적용되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서는 ‘그들에 의한’ 선교에도 발휘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필자가 쌀국수를 특별히 좋아하기도 하거니와12), 그 이상 세세하게 분석하고, 추려내게 된 결론적 이유이다.

베트남은 100여 년 개신교 선교 역사와 함께, 선교사들이 남긴 현지 교단을 갖추고 있다. 정식 신학교가 있고, 자체적으로 목회자들을 길러내고 있기도 하다. 초창기 미국 C&MA(the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 선교사들을 비롯한 서구 선교사들의 노력은 물론, 1990년대 이후 지속적인 한국 선교사 파송과 그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지만, 지금도 베트남 선교의 부흥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후하게 잡아도 복음화율 2% 미만의 미전도 국가이고, 그마저도 흐몽(Hmong)족과 같은 소수 종족에 편중되어 있다. WTO 가입과 함께, 경제, 사회 분야의 개방과 자유화가 진작되었으나 여전히 공산국가로서 지역마다 주민통제가 강하게 시행되고 있고, 전도는 물론 예배나 작은 규모의 모임을 포함한 허가되지 않은 모든 종교행위는 금지되어 있고, 다양한 형태의 감시체계가 작동하고 있다. 여행자의 관점으로 보면 상당히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베트남 사회인 것이다. 그래서 현지 선교사들도 (물론 지역 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상당히 위축되어 있고, 조심스럽고 제한된 사역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베트남의 한 공인교회의 주일예배

그럼에도 필자는 베트남 ‘그들을 위한’ 복음과 ‘그들에 의한’ 선교에 희망을 품게 된다. 그 희망의 단초는 베트남 현장 리서치를 통해 보고 느낀 베트남 사람들이며, 여기서 다루었던 쌀국수 이면의 그들의 정서와 낭만, 그리고 그 너머의 그들이 가진 응용과 확장의 저력이었다. 물론 점차 발전하는 그들의 경제력과 젊은 세대의 열린 사고방식 등도 가능성의 배경에 있다. 문제는 이 복음이 더 이상 외세의 종교가 아니라, 베트남 사람 자신들을 위한, 그래서 그들 스르로 ‘우리의 복음’이라고 여길 수 있게 되는 그 변곡점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 복음 이야기와 자신들의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 그래서 복음 속 피 묻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 자신들에게 주는 의미와 필요, 그 ‘절실성’을 발견하고, 복음의 역사가 이제 시공을 넘어 베트남 자신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게 되면, 그들은 자기네 환경과 정서 속에서 베트남식 복음의 ‘적실성’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면 그 적실성 있는 베트남 그들의 ‘우리 복음’을 베트남 최북단 ‘룽꾸(lũng cú)’에서부터 최남단 까마우(Cà Mau)까지 나누고 확장시켜 나갈 것이다. 그리고 머잖아 성경의 명령하심과 성령의 이끄심으로 그들은 ‘베트남의 선교’를 이루어나갈 것이다. 필자는 베트남에 머무는 한 달 남짓한 시간동안 수없이 먹은 다양한 베트남 쌀국수 속에서 ‘베트남 선교’와 ‘선교 베트남’의 희망을 함께 보았다. 베트남 전국을 넘어 온 세계가 사랑하는 그 쌀국수 한 그릇처럼, 베트남의 복음, 베트남의 선교가 싹을 띄우고, 열매를 맺어 세계 교회와 열방을 섬기게 될 그 날을 기대해 본다. .글 | 강호세아(SIReNer)

[각주]
1) 김기태, “베트남의 음식문화 고찰” 『동남아 연구』 제5권 5호,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 동남아연구소), p146
2) 김기태, p155
3) 차준철 (1999년 8월 28일). “입맛 따라 발길 가는 이색음식 베트남 쌀국수·터키 케밥 인기”. 《경향신문》. 2024년 5월 8일 확인.
4) 이요한, “베트남의 음식 문화와 한국 속의 베트남 음식”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2011), (전주: 한국동남아학회, 2011), p60
5) 그밖에 퍼 똠(phở tôm, 새우 육수 퍼), 퍼 빗(phở vịt, 오리고기 육수), 퍼 엑(phở ếch, 개구리 육수 퍼), 퍼 해오(phở heo, 돼지고기 육수 퍼) 등 다양한 육수로 만든 퍼(phở)가 있다.
6) 현정석 (2015년 12월 23일). “[엠디팩트] 알고보면 프랑스·베트남 합작품 ‘쌀국수’ … 소고기 육수에 숙주나물·고수”. 《비즈N》. 2024년 5월 8일 확인. 참조.
7) 응웬 티 타잉 마이, “한국과 베트남의 전통 면류 음식 관련 문화 비교 연구” (석사학위논문,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학과, 2022), p19.
8) 응웬 티 타잉 마이, p20.
9) 응웬 티 타잉 마이, p23.
10) 응웬 티 타잉 마이, p24.
11) 응웬 티 타잉 마이, p25.와 위키백과(꾸에띠아우, 2024. 5. 8 확인)를 참조하여 정리,
https://ko.wikipedia.org/wiki/%EA%BE%B8%EC%97%90%EB%9D%A0%EC%95%84%EC%9A%B0

12) 필자가 교회 사역할 당시, 한국화된 여러 베트남 쌀국수 프랜차이즈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유독 고유한 현지맛을 내는 작은 식당이 있었다. 그래서 청년들을 심방할 때면 항상 식사 메뉴는 그 쌀국수였다. 그렇게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오히려 먹을 때마다 늘 새로운 맛을 발견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 지역을 떠났지만, 현재 지역에서도 베트남 본래 맛을 살리는 쌀국수 집을 찾아 자주 사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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