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사람들(4)
Web Journal 31호 2024.9
한 달간의 베트남 도시를 관찰하여 베트남의 도시와 사람들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기에 베트남 리서치 일정 중 참여 관찰했던 장소들을 사진과 함께 짧은 설명으로 잔상을 나누고자 한다. |
다낭(Đà Nẵng)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최대 상업 및 항구도시이자 베트남의 다섯 개의 직할시 중 하나이고, 베트남에서 호찌민시, 하노이, 하이퐁 다음으로 네 번째 큰 도시이다. 다낭의 이름은 짬(Chăm)어의 Da Nak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큰 강의 입구”라는 뜻이다.
다낭은 베트남을 식민지화하는 프랑스 제국 황제 나폴레옹 3세가 집권 중에 가장 먼저 진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투란(Tourane)이라는 프랑스식 지명으로 불리었다. 중화권에는 셴강(峴港)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남베트남 시절에는 제2의 도시이자 남북 군사분계선이 코앞인 중요한 군사 거점이었다. 이 때문에 베트남 전쟁 당시 다낭은 후에(Huế, 城舖)와 함께 최전방으로 통했고 종전 직전까지 격전지였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베트남 중부 관광의 중심지가 되어, 한국에서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릴 만큼 한국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로 부상한 도시이다. 남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호이안 옛 거리(Khu Phố Cổ, 區舖古)가 있고 북서쪽에는 베트남의 옛 수도 후에가 있다. 둘 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다낭은 휴양 외에 볼거리도 많은 베트남 중부의 거점 지역이다.
다낭박물관은 다낭의 자연사, 프랑스 및 미국과의 전쟁사, 다낭지역의 문화 기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 앞에는 응우옌 왕조(Nhà Nguyễn, 家阮)때 프랑스군에 맞서다 전사한 응우옌찌프엉(Nguyễn Tri Phương) 장군의 동상이 있다. 응우옌찌프엉 장군이 전사했을 때 당대 황제인 민망(Minh Mạng, 明命)황제가 엎드려 통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베트남의 민족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 같다.
전시실 1층에는 다낭의 자연사와 고미술품, 다낭의 해양생물, 베트남의 도자기등이 전시되어 있고, 바다로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기 전에 제사를 지내는 모습, 수상가옥의 삶, 피쉬소스를 만드는 모습 등의 생활상이 모형과 사진들로 전시되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프랑스 식민시절 때의 독립운동부터,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호찌민의 모습, 베트남 전쟁 당시의 상황을 담은 사진과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어 베트남 전쟁 때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배 모형, 무기, 포탄 등과 함께 전쟁 후유증을 앓던 사람들의 사진도 함께 볼 수 있어, 전쟁 당시의 참혹함을 느낄 수 있다.
3층은 다낭 및 베트남 중남부 지방의 꽝남성 민족문화가 전시되어 있다. 다낭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아쉬운 것은 전시내용이 잘 설명되어 있지 않아서 전시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개괄적으로 다낭의 역사와 문화를 접하는데 도움은 된다.
다낭부터 그 아래 지역까지는 19세기 말까지 인도네시아계 짬(Chăm)족이 세운 참파(Chiêm Thành) 왕국이었다.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시절 고대 참파 왕국의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프랑스 극동 연구소의 재정 지원을 받아 참 조각 박물관이 만들어졌다.
이 곳은 세계 유일의 참파왕국 전문 박물관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참 조각상이 전시된 곳이다. 참 조각 박물관의 10개의 전시실에는 인도의 영향을 받은 참파 왕국의 7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힌두교 양식 조각 예술품 약 35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다낭 대성당(Nhà thờ chính tòa Đà Nẵng)은 베트남 중부 다낭 대교구의 성당으로, 프랑스 식민지 시대 다낭에 지어진 유일한 성당이다.
대성당은 치솟는 선과 크라운 아치의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성당 안에는 서구 교회를 모티브로 한 성서의 사건을 그린 삽화가 있다. 피뢰침이 있는 교회의 지붕에는 바람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사용되는 합금으로 만든 회색 수탉 조각상이 있다. 그래서 이 성당을 수탉 교회로 부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예수 성심 교회(Church of the Sacred Heart of Jesus), 투란 교회(Tourane Church), 다낭 핑크성당(Pink Church)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베트남에서의 초기 선교와 발전은 주로 C&MA(The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 단체는 19세기 말 A.B. Simpson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설립된 선교 단체로서 지속적으로 선교사들을 베트남에 파송했다. 그들은 우선 1911년 5월 25일 베트남 중부 도시 다낭에 3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R.A. Jeffrey, Paul M. Hosler, G. Lloyd Hughes). 당시 베트남을 통치하던 프랑스 정부로부터 다낭시에서의 선교 사역을 허용받았기에 1911년을 개신교 선교 원년으로 여긴다. 이듬해인 1912년에 응우엔 반 푹씨를 비롯한 7명에게 세례를 주고 다낭시에 최초의 개신교 교회를 세웠다.
아름다운 풍경과 해변, 활기찬 도시인 다낭의 중심에 위치한 꼰 시장(Chợ Cồn)은 1940년에 세워졌고, 다낭 중심부의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꼰”이라고 불려졌다.
꼰시장은 수공예품, 의류, 액세서리와 각종 식료품까지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3층 규모의 재래시장으로 약 2,000여 개의 매장이 있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해 다낭의 ‘남대문 시장’으로도 불리운다. 관광개들보다는 주로 현지인들이 필요한 물품과 식자재를 사기 위해 많이 이용하며, 관광객들은 기념품과 여행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찾는다.
다낭에는 서울의 한강과 이름이 똑같은 한강(Sông Hàn, 또는 Hàn giang, 瀚江)이 있다. 이 강은베트남 다낭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이다. 베트남어로 강을 ‘Song’으로 쓰기 때문에 정식 명칭은 ‘Song Han’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펴낸 여행서적은 물론 인터넷에도 다낭 시내를 흐르는 강을 ‘한강’이라고 부른다.
다낭에는 6개의 다리가 있다. 투언프억교(Cầu Thuận Phước), 송한교(Cầu Sông Hàn), 롱교(Cầu Rồng), 쩐티리교(Cầu Trần Thị Lý), 응웬반쪼이교(Cầu Nguyễn Văn Trỗi), 뚜옌선교(Cầu Tuyên Sơn) 등인데 교량 형태도 야간 조명도 모두 다르다.
이 가운데서도 ‘용다리’(Dragon Bridge)로 불리는 롱교(일명 용다리)와 송한교(한강교라는 의미), 쩐티리교 등 3개의 다리가 가장 멋지다. 특히 야경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다. 아쉽게도 다낭 한강은 강변의 부동산개발로 고층건물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어 경관 훼손과 환경 및 생태계 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다낭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관람차가 있는 다낭 아시아파크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이면서,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 선선한 저녁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금, 토, 일요일에 다낭 아시아파크를 들렸다면, 근처 다낭 헬리오야시장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만, 기존의 로컬 야시장의 느낌은 안나고 음식의 가격도 베트남 로컬 야시장에 비해 비싸다는 것은 염두해 두고 방문해야한다. 근처에 있으니 한번쯤 들려도 괜찮을 것 같다. 또한 아시아파크에서 걸어서 7분 거리에 롯데마트도 있으니 쇼핑도 겸할 수 있다.
다낭에서 오토바이 주차장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음식점이나 커피숍들이 입구 공터를 오토바이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로 경비원인 바오 베(bảo vệ)가 주차번호표를 주거나 오토바이를 지키는 업무를 함께 한다. 가끔씩 이런저런 이유로 자체 주차장을 운영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유료주차장을 이용한다. 우리나라 충북대학교와 자매결연한 두이탄대학교(Duy Tân university) 근처에는 골목골목마다 주택마당에 유료주차장을 운영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이으 쌔(giữ xe)라는 간판이 보이면 오토바이 유료주차장이다.
다낭시의 귀중한 보석으로 알려진 손짜반도(Bán đảo Sơn Trà)는 손짜(Sơn Trà)현 토꽝(Thọ Quang)구에 위치하며, 3면이 바다에 접해 있다. 도심에서 북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손짜반도 는 크고 작은 아름다운 해변, 그늘진 숲, 풍부하고 다양한 자연 산림 생태계로 유명하다.
역사에 따르면, 손짜반도는 고대부터 3개의 산이 있는 떠다니는 섬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해안 바닷물이 충적층(alluvium, 沖積層)1을 운반한 덕분에 이 세 개의 산은 본토에서 섬 외부로 이어지는 띠 모양의 땅에 퇴적되어 반도를 형성했다.
전쟁 중에는 손짜반도를 “인도차이나의 신의 눈”으로 여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손트라항은 중부 지역의 가장 중요한 심해항이자 미얀마-다낭까지 이어지는 동서경제회랑동서경제회랑(East-West Economic Corridor, Hành lang kinh tế Đông – Tây)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손짜반도의 열대 숲 깊숙한 곳에는 다낭에서 가장 크고 인상적인 사원인 영응사(Chùa Linh Ứng, 靈應寺)이 자리해 있다. 링응사는 베트남 전쟁 당시 보트를 타고 탈출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현재에도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불상으로 여긴다. 령응사에는 높이 100m가 넘는 언덕에 해수관음상 (Lady Buddha, Tượng Phật Di Lặc)이 우뚝 솟아 있는데, 연화좌의 지름은 폭 35m, 상의 지름은 17m, 높이는 건물 27층 높이 정도인 67m에 이른다. 또 12ha 규모의 경내는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 화려한 법당, 유명한 관음상 등으로 채워져 있다.
삼문 형태의 거대한 정문까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돌 마당 양쪽에는 조각상들이 나란히 늘어서있는데, 조각상마다의 고유한 표정을 지니고 있는 석상을 가까이에서 관찰해 볼 수 있다. 안뜰 뒤에 자리한 밝은 녹색의 지붕을 한 본전과 법당은 불상과 화려한 탱화를 감상할 수 있다.
다낭역(Ga Đà Nẵng)은 베트남 북부 지역과 남부 지역을 연결하는 기차역으로 1902년부터 중부 베트남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노이와 호치민, 후에 등 베트남의 주요 도시로 향하는 기차들이 매일 발착하고 있어 항상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역 앞 광장에 자리한 퇴역 증기 기관차가 관광객들의 포토 스팟으로 인기가 많다.
베트남에서 외지 사람들의 손기잉 닿지 않은 현지 모습을 그대로 느껴보려면 동네 마다 아침에 열리는 시장을 가보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 다낭에서도 아침일찍 숙소 근처의 시장을 방문해서 둘러보고 시장에서 파는 국수로 아침식사를 해결해 본다. 위생을 따진다면 힘들겠지만, 다낭의 동네 분위기를 경험하고 싶다면 어딜가나 맛은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또 아침시장에서 나와서 싱싱한 야채와 과일, 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재미도 느껴 보면서 싱싱한 재료로 아침을 만들어 먹어 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베트남에는 무수히 많은 커피숍이 있지만, 베트남의 대표 체인 커피숍 중에 하나가 콩카페(Cà phê Kông)이다. 이 카페는 코코넛 밀크 커피 스무디라는 메뉴 하나로 알려진 카페이지만, 베트남 남북통일 이전 사회주의 하노이를 컨셉으로한 직원 유니폼과 인테리어로 베트남 통일 이전의 사회주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는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하노이나 호치민에도 체인이 있지만 다낭에 오면 한번쯤 분위기를 즐겨 보는것도 괜찮은 것 같다.
다낭을 한국에서는 경기도 다낭시 라고 말하는 것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어 한국말이 어딜가나 들리고 가게 간판과 메뉴까지도 한글이 가득하여 한글로 소통이 되는 곳이라서 그런 것 같다.
다낭 한시장(Chợ Hàn)은 한강 다리에 가깝게 위치해 있고 다낭의 특산품 뿐만 아니라 기념품을 쇼핑하기 좋다. 한시장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서는 각종 간식류와 과일, 작은 기념품 등을 판매한다. 2층에서는 옷과 가방 및 기타 잡화를 주로 판매하고 있다.
다낭 한시장은 ‘부르는 게 값’인 시장이며 많은 사람으로 정신없는 와중, 자신도 모르게 비싼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방문 계획이 있다면 한국인 여행객들의 후기와 에디터가 직접 가서 확인한 한시장 시세표를 캡처 또는 출력해 가서 쇼핑하면 좋다.
사진으로 보는 도시와 사람들:다낭 정리| 장영순(SIR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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