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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선교, 지금 우리가 돌파해야 할 것은?(2) : 베트남 ‘신앙, 종교법’과 ‘선교 베트남’을 중심으로

이슈 인사이드(1)
Web Journal  32호 2024.12

– 목차 –

들어가며
 1. ‘베트남 신앙, 종교법’, 통제인가? 자유인가?
 2. 지금은 선교 베트남시대?
나가며

 

  1. 지금은 선교 베트남시대?

돌이켜 보면, 지난 베트남 선교현장 리서치 과정의 전반부는 앞서 다룬 베트남 ‘신앙, 종교법’에 관한 이슈들의 실체적 진실을 쫓아가는 과정이었다면, 후반부는 우리 ‘한인 선교사의 입지’에 관한 이슈가 필자의 주요 관심사였던 것 같다. 사실 전자의 이슈는 우리가 베트남 북부에서 중부, 남부로 내려오는 순으로 리서치 여정을 진행했기 때문에 사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일종의 ‘종교법 포비아’는 점차 약화되어 호치민에 와서는 분명히 의식은 하지만, 사실 선교사들이 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체감되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베트남은 ‘통일된 남북국1. ’체제인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후자인 베트남 내에서의 ‘한인 선교사의 입지’ 이슈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여기서 ‘한인 선교사의 입지’를 논한다는 것이 상당히 민감한 사안일 수 있다. 더욱이 현장 선교사가 아닌 단기로 방문해서 리서치하고 나온 입장에서는 더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러 증언과 고백 아닌 고백을 통해서 현재 베트남과 베트남 교계 안에서의 한인 선교사들에 대한 일련의 평가와 인식 속에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이어서 우리 스스로 경종을 울리고, 한국 선교사들의 베트남 선교에 있어서의 유의미한 역할을 모색할 단초라도 마련해 보고자 다소 주제넘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여러 현장 선교사들을 만나보니, 이 ‘한인 선교사의 입지’에 관한 우려는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이 이슈는 그 성격상 베트남 교계에서 시작된 것일 수밖에 없는데, 한인 선교사들의 베트남 교회 사역이나 복음화에 대한 기여를 베트남 교계에서 공론화 한 적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베트남 교단 모임이나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그와 같은 이야기들이 언젠가부터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2 .

먼저 필자가 느끼기에 가장 뼈아픈 소리는 한인 선교사들의 베트남 현지 언어 수준 문제이다. 한인 선교사들의 베트남어 수준이 일상생활은 물론 가능하겠지만, 이미 100년 역사가 넘은 베트남 교회 안에서 수준 있는 설교나 신학적 강의를 감당할 정도의 유창한 언어 실력을 가진 선교사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 선교사들의 학력이나 신학 수준을 생각할 때, 설교하고 가르칠 실력을 갖춘 선교사들이 왜 없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전달할 언어인 것이다. 초빙되어 온 교수3라면 양해가 되겠지만, 현지에서 10년, 20년 살고 사역한 선교사들인데 그러한 고급 베트남어를 구사하는 선교사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베트남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역에 한인 선교사들과 동역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반대로 한인 선교사들도 그런 영역들에서 베트남 교회와 동역하기보다는 각자 다른 영역들을 찾아 사역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또한 베트남 교계에서도 ‘한인 선교사들은 베트남 교회가 있는데, 왜 교회와 동역하려고 하지 않고 혼자서 사역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들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아직 베트남 사회나 종교법 적용의 생리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단독 사역을 진행하다보니 여러 가지 불필요한 잡음이나 문제들이 생기는 일들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선교사들이 복음전도와 선교의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사역하다가 베트남 정부의 통제나 제재를 받으면 그것이 일종의 핍박이나 박해로 여겨질 수도 있는데, 이를 말없이 지켜보는 현지 교회나 목회자들 입장에서는 교단을 통하거나 몇 가지 주의사항들을 알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불필요한 일들이라고 

안타까워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이 앞서 ‘신앙, 종교법’을 다루면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경계선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논의의 맥락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 선을 알고 지혜롭게 충분히 원만하게 사역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혹 그 선을 넘어서서라도 도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진정한 헌신의 사역이 될 수 있을 것인데 그러한 사전 정지 작업 없이 사역하는 것은 아쉬운 부분으로 느껴졌다.

다음으로 현지 교계나 목회자들에게서 자주 언급되는 한인 선교사들에 대한 평가는 ‘한인 선교사들은 재정으로만 사역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선교사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의 여러 현지 교회들의 상황을 보고, 선교사들이 고국에서 어렵게 후원금을 모아 현지 교회를 돕는 사역들이 대체로 많이 이루어졌던 것이 사실이고, 이를 꼭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닐 것이다. 현지 목회자들 역시 한국 교회와 선교사들의 재정적 후원과 도움에 깊이 감사하는 분들이 많고, 또 한편으로는 아직 그러한 재정적 후원 사역이 필요한 영역들도 분명히 많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현지 교회에서 이러한 평가가 나오는 것은 아마도 교회와 좋은 동역자 관계를 맺지 못하였거나(상하 관계 또는 소위 갑질 관계 등), 보여주기식 이벤트성 사역이어서 물질적 사역 외에 실제적인 현지 교회의 필요를 돕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물질 위주의 사역이 갖는 명암에 대해서는 한국 교회와 선교계 안에서도 자성의 소리들이 있어온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보다 균형잡힌 사역을 지향하게 될 것이고, 베트남 사회와 현지 교회의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면서 향후 재정적 사역의 빈도는 많이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만났던 한 현지인 목회자도 이제 베트남 교회도 어느 정도 자립이 이루어진 교회들이 있으니, 한인 선교사들이 베트남 교회가 지금 수준에서는 할 수 없는 그런 영역을 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기존 선교사들이 쉽게 그런 영역을 찾아 사역을 전환해야 한다면 여러 가지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보니 점차 현지 교회와의 긴밀한 동역 사역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필자는 선교사들이 반드시 현지 교단과 함께 사역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본 선교회의 사역관점인 ‘CAS’의 ‘S’가 의미하는 것이 ‘Specialization’으로 ‘사역의 전문화’ 즉, 선교사가 다양한 창의적 사역 영역의 개발을 지지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현지에 교단이나 교회가 있더라도, 현지 교회는 돌아보지 못하는 복음의 사각지대를 찾아 개척하고 섬겨야 할 필요와 대의가 충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어느 한 켠에서는 현지 교단이나 교회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교류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어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현실적으로 한인 선교사들이 많이 시도하는 것이 한국어 교육 사역인 것 같다. 최근 거의 모든 나라들이 그렇지만, 특히 베트남은 현재 한류와 더불어 한국어 열풍이 불고 있어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수요가 많다. 그런데 현장을 살펴보니 그 양상이 단순한 것만은 아니었다. 일단 베트남은 제도권 중고교 교육에서 정규과정으로 한국어 교육을 시행하고 있고, 유수의 대학의 한국어 전공자들도 많이 배출되어서 이제 현지인 한국어 교사의 실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 제도권 교육에서 요구하는 한국인 한국어 교사의 수준은 최소 석사 이상의 실력과 경력이었다. 왠만해서는 현지인 교사보다 한국인 교사가 원어민이라는 것 이상 더 수준이 높다고 보기 어려워서 어지간한 곳은 현지인 교사를 고용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현지에서 한국어학원을 창업해서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역시 같은 이유로 이미 현지인 한국어 전공자들이 많고, 특히 주요 대도시에는 한국어학원이 포화상태이고, 지방 소도시로 가도 외국인인 한국인이 현지 지방에서 학원을 등록하고 설립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넘어야 할 문턱이 매우 높은 현실이었다. 그러다보니 과거 한인 선교사들에게 친화적이라 생각했던 한국어 교육 영역에서도 이미 베트남 현지인들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어서 한인 선교사들이 현지에서 자리잡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또 하나 세계 어디를 가나 선교사들이 접점으로 많이 찾는 영역이 커피숍이나 카페 창업인데, 실제로 베트남 선교사들도 이 영역으로 사역의 접점을 삼은 경우들이 많았다. 베트남이 연유를 섞은 ‘쓰어다’ 커피가 유명한데,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동네 거리 카페마다 낮은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현지인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도심의 현대화된 커피 전문점들에도 많은 베트남 젊은이들이 가득해서 베트남 사람들이 일상에서 얼마나 커피를 애호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선교사들이 잘 준비한다면 커피 사업이 아직도 효과적인 선교 접점이 될 수도 있겠고, 또 한편으로는 이미 현지에 많은 커피 관련 사업이 자리 잡고 있어서 충분한 사전 사업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기에 실패할 가능성도 많고, 실제로 그렇게 된 사례들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커피 관련 사업으로서 선교 사역의 모델이 될 만한 사례가 있는데, 보안상 구체적인 사안 언급은 어렵지만, 베트남 북부 도시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면서 한국 커피 바리스타 협회와 인준관계를 맺고 커피 바리스타 교육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선교팀이다. 이 팀은 이 사역을 베이스로 해서 제자훈련과 예배 모임 개척까지 안정적으로 잘 이루어진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 과정 중에 여러 시행착오와 어려움들이 있었고, 지금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상존하고 있지만, 이제 커피는 물론, 복음의 제자들이 된 현지인들과의 팀워크를 잘 이루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 시작했다가 어려움을 겪은 사례들도 많아서,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사업가와 동일한 전문성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 감사하게 잘 되어도, 사역과 사업 사이에서 내외적 갈등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 선교는 사업 뿐 아니라, 사역적으로도, 사역자 내면적으로도 충분한 검증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렇게 교회개척 등의 전통적 사역 외에 베트남에서 대표적인 사역을 살펴보았는데, 과거에 비해 베트남 사회 자체가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소위 말하는 ‘블루오션4의 시기가 지나고, 이제 ‘레드오션5‘의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비단 예를 든 사역 영역 외에‘다리 놓는 사람들’ 사역을 통한 음악, 찬양 사역, 현지 대학 교수 사역 등 다양한 접점을 찾아 열매 맺는 사역을 이루어가는 사례들도 있다. 그러한 경우는 베트남 사람들이나 현지 교회가 하지 못하는 영역에 특별한 은사나 전문성을 가지고 준비해 온 경우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현지 가정 교회를 전전하거나 조기 철수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결과론적으로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현재 베트남 선교는 ‘신앙, 종교법’ 등의 베트남 체제 이슈 뿐 아니라, 일종의 사역 현장이 경제의 인플레이션 현상처럼 수준이 빠르게 상승하는데 비해 선교사들의 대응이나 언어, 사역 수준 등이 미치지 못해서 오는 현실이라고 평가해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추출되는 핵심은 현지 교회가 아직 감당하지 못하는 보다 발전된 영역에서의 사역적 필요를 찾아 공급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꼭 교회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 해도, 현재 베트남 사회가 필요로 하면서, 선교사역의 접점으로 선택하기에 건전한 영역을 발굴해서 개척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선교사 개인의 은사와 전문성을 고려한 것이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 반드시 베트남 현지 사회를 그 안에서 녹아들 듯 이해하고 배우는 일종의 리서치 과정을 거치기를 권장한다. 오늘날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기업과 회사들은 자기네 상품의 품질과 기술 향상에 투자하는 것만큼, 그 상품을 구매할 잠재 소비자들의 성향과 필요를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한 시장 리서치에 수많은 재정을 투자하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필자는 그 상품과 비교할 수 없이 가치 있고, 스스로 알지 못하지만 실상은 그들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누리도록 해야 할 사명을 가진 선교사들이라면 이 세상 그 어떤 비즈니스맨들보다 더 복음전도와 선교의 대상지와 사람들에 대한 면밀하고, 철저한 일종의 시장 리서치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준비된 선교사는 무엇보다 복음과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특심해야 함은 물론이고, 먼저 자신의 은사와 이미 마련된 전문성과 강점을 정확히 알고, 동시에 현장에 대한 심도 깊은 리서치와 사전 연구 등을 통해 현지 교회와 영혼들, 사회의 필요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그것을 위해 자신의 사역적 전문성을 준비하는 사역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왜? 어쩌면 자신의 평생을 바쳐, 또 온 가족과 함께 헌신해야 할 선교지, 또 그 영혼들인데, 우리가 고작 물질적 이윤을 추구하는 세상 기업이나 비즈니스맨들보다 그 사역 준비를 위한 노력과 수고, 또 변화하는 시대와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가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수고를 등한히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은 중국 공산당 정부에 의해 대대적인 비자발적 철수가 이루어졌지만, 베트남은 머지않아 베트남 교회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필요가 없으니 더 이상 오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베트남 교회가 충분히 성장하여 모든 면에서 네비우스의 3자 선교정책에 따른 온전한 토착교회로서의 사역이 가능해지는 상황이라면 감사할 것이다. 한편 그런 날도 머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때까지 한인 선교사들이 베트남 교회와 그 땅과 영혼들을 위해 필요하다면 선교사들의 의식과 사역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된다.

여기서 필자는 그러한 현재 베트남 교회의 온전한 토착교회 됨의 척도로서 베트남 교회가 동일 문화권인 자국 복음화를 책임지고, 더 나아가서 타문화권 선교를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사이에 구별된 54개 종족6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인 베트남이기 때문에 베트남 자국 내 여러 미전도 소수종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도 준(準) 선교사역으로서 반드시 베트남 교회가 책임져야 할 영역일 것이다. 어쨌든 베트남 교회가 자발적으로 타문화권 선교를 위한 선교사 자원을 발굴하고, 충분히 훈련시켜 복음이 필요한 곳으로 파송할 뿐 아니라, 베트남 교회 스스로 파송한 선교사들을 재정적으로 영적으로 후원하고 책임질 수 있는 상태가 되는 때가 한 지역국가의 교회로서 베트남 교회가 온전한 토착교회가 되는 것이라 본다는 것이다.

사실 베트남 교회는 미국 C&MA의 선교 초기 정책의 영향으로 빠른 시기에 자립7 하고 자치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했다. 이와 관련한 베트남 선교사 이선재의 석사 학위 논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개신교 베트남 선교의 시작은 A. B. Simson이 1897년 설립한 C&MA(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에서 1911년 베트남에 선교사를 파송하면서부터이다. 베트남 개신교 역사는 1911년 최초의 정식 선교사 파송 후 1927년까지를 교회 설립에서 자립의 시기로 보는데, 이때 C&MA의 선교정책은 “자립, 자치, 자전” 3자 원리에 입각해 있었다. 1922년 다낭에서 열린 선교사 총회에서 제프리(Jaffray)는 “베트남 교회는 시작부터 끝까지 자립해야 한다.”라고 했다. 또한 처음에는 선교사들이 교회 개척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지인들이 선교사들보다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책임을 넘겨준다. 총회 선교부 현지인과 선교사 비율을 2:1로 한다.”라고 하며 점차 베트남 교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정책을 시행했다8.

초기 선교사들의 의지와 정책에 따라 베트남 교회의 자립과 자치는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1927년 베트남 복음성회 총회가 조직되고, 각 선교사들은 베트남 교회 독립이라고 하면서 자립문제에서 손을 뗐다. 1927년 8개 교회가, 1940년에는 84개 교회가 자립이 되었다고 한다9.


이러한 선교 초기 C&MA 선교사들의 정책과 노력 때문인지, 우리가 만난 베트남 교회와 지도자들의 모습들에서는 비슷하거나 더 오랜 역사를 가진 다른 인도차이나반도나 동남아 지역 교회들과는 사뭇 다른 주체 의식과 목회자로서의 자존감 또는 동일한 동역자 의식 견지와 같은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사역하는 한국 선교사들은 베트남 교회 역사에서 비롯된 이러한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선교사들에게 자립과 동역의 개념을 훈련받았고, 어려운 역사 과정 속에서도 그렇게 베트남 교회를 세우고 지켜왔기 때문이다.

비록 빈곤한 국가 환경 탓에 지속적으로 경제적 자립에서 어려움을 겪어 왔지만, 자립적이고, 주체의식이 강한 교회로 성장한 베트남 교회는 그 상황이 상당히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베트남 교회의 남은 과제에 대해 이선재는 “첫째는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있는 복음서회의 총회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둘째는 가정교회와 화해이다. 역사 과정 속에서 품지 못하고 나누어진 가정교회와 화해하는 일이 남겨진 과제이다10,” 라고 했다. 이 또한 베트남 교회가 내부적으로 극복하고 치유해야 할 온전한 교회로 가는 첩경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건설적 관점에서 베트남 교회의 남은 과제라 하면 그것은 앞서 언급했던 베트남 교회의 타문화권 선교 주체로서의 동참, 즉 ‘선교 베트남11의 실현이라 할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베트남 선교현장 리서치를 통해 발견한 핵심이자, 지금까지 본 고에서 다룬 논의의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베트남 현지에서 점차 기존의 사역 영역과 방식이 실효적이지 않고, 현지 교회들도 한인 선교사들의 역할과 입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들을 내놓는 상황에서 그렇다면 정말 항간의 이야기들처럼 곧 베트남에서 ‘(한인) 선교사 무용론’이나 (한인) 선교사 철수론‘이 대두될 것인가? 사실 이것이 현지 선교사님들께 외람되게도 필자가 베트남을 두루 다니던 사역 중반 이후 계속 가졌던 의문이었다. 만약 아직 그때가 아니라면, 혹은 이제 그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 한국 교회와 선교사들이 베트남 교회를 위해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과연 이 전환의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앞서 기존 베트남 선교사와 베트남 선교를 지망하는 선교 후보생들 안에 베트남 선교를 위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였듯이, 한국 선교사들이 베트남에서 의미있게 할 수 있는 현재와 다음 스텝의 사역 영역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선교현장 리서치를 마치면서 향후 그 중요한 흐름 중 하나가 ’선교 베트남‘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해서 베트남 현지인 선교 동원 사역을 하고 있는 이OO 선교사12는 베트남 교회가 남부의 소수종족 교회 [efn_note]남부 소수종족 교회들은 시골, 산지 교회들이 성도 수가 1천명, 2천명 모이는 교회들도 있어서 여러 가지 잠재 가능성이 많다. 이들을 하나님의 사역에 동원하고, 훈련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efn_note]를 중심으로 열정이 ‘끓어오르고’ 있으며, 그 열정으로 전도와 선교에 눈을 뜨고 헌신하는 일들이 적잖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실례로 ‘비전 50’이라는 베트남 자생의 선교단체는 ‘2050년까지 500명의 베트남인 선교사를 보낸다.’라는 비전을 걸고, 선교사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아직 제대로 된 선교 훈련 프로그램이나 파송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열정은 있으나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까지 일단 보내자는 식이어서 부작용들이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 선교사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며, “베트남 교회가 선교의 열정이 일어나고 있으나, 선교사를 길러낼 훈련 역량이 전무하다.”라고 강조했다. 필자는 이 선교사의 이러한 지적과 강조의 이유는 바로 이것이 현재 베트남 교회의 현실이자, 사역적 필요라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이 지점이 한국 선교가 베트남 교회를 돕는 선교 사역에 있어서 일종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베트남 교회 상황을 살펴보면, 현재 베트남의 소수종족 교회13 들이 신앙 열정이 일어나면서, 카이로스 훈련 14 이 잘 조직되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훈련을 통해 도전받고 선교에 헌신하고 선교사로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카이로스 훈련팀은 말하자면 1차적인 선교동원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이렇게 동원된 선교헌신자들을 훈련시킬 전문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이 없었다. 물론 베트남 교회도 아직 선교사를 제대로 훈련시켜 파송한 경험도 없고, 정식 선교 훈련 프로그램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카이로스 훈련팀 리더가 카이로스 강사로 온 이OO 선교사에게 WEC에서 선교사 훈련을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이미 오랫동안 그러한 선교사 훈련사역을 해온 이 선교사는 그 필요를 확인하고, WEC 선교회 내 국제 동원 사역팀인 IMM(International Mission Mobilization)의 METC(Mission English Training Course)15 훈련 프로그램으로 2021년부터 베트남 선교 헌신자들을 받아 훈련을 진행하게 되었다.

아직 베트남 내에 이러한 선교사 훈련 과정이 없었는데, 이 선교사와 WEC 팀을 통해 훈련이 진행되게 되자, 카이로스 훈련에서만이 아니라, 베트남 내 YM 팀에서도 1차 선교동원을 통해 헌신한 사람들을 이 훈련에 보내게 되고, 현지인 교회에서도 목사님이 헌신된 청년들을 보내서 훈련받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훈련의 후속 프로그램으로 IMTC(Inter-cultural Ministry Trainning Course)라는 본격적인 타문화 사역 훈련 과정을 베트남 교회들의 요청16으로 계속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타문화 훈련이니, 2024년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진행하는 IMTC 훈련에서 함께 훈련을 진행했는데 12명의 훈련생 중 8명이 베트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 선교사는 이 대목을 ‘선교 베트남’을 위한 매우 고무적인 증거로 지적했다.

이러한 경과와 맥락에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한 베트남 교회 목사의 전언이었다. 그 목사가 이 선교사에게 “기본적인 성경은 우리가 베트남어나 소수종족어로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없는 영어와 타문화권 선교 훈련을 도와주십시오17.” 라고 했다고 한다. 필자는 바로 이 전언 속에 지금 현재 ‘베트남 선교’와 장차 ‘선교 베트남’의 키(key)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즉, 이미 베트남에는 100년 역사의 교단과 교회가 있고, 한인 선교사역 초기에는 비록 연약하였지만, 이제 이들의 사역 역량이 올라와서 많은 영역에서 이들이 주체적으로 사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베트남 교회가 할 수 있는 영역은 더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이들이 아직 사역 경험이나 노하우가 부족한 영역들을 우리 한인 선교사와 한국 선교단체 등이 협업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시점에서는 바로 선교사 훈련을 통한 선교사 파송이고, 이 영역이 베트남 교회 안에 하나의 큰 흐름이 될 때, 선교 베트남의 비전이 가시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베트남 교회도 이제 서구 유학을 다녀온 목사들도 있고, 여러 가지 사역적 안목 수준이 향상되었기 때문에, 베트남 교회가 할 수 없는 영역을 돕되, 그저 예전처럼 선교사 개인의 역량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주먹구구로 구색만 갖춘 그런 방식은 안되고, 선교단체 차원이나 전문 훈련 사역자 수준의 프로그램과 훈련 역량을 갖추어 베트남 교회의 신뢰와 인정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은 이 사역의 블루오션을 보고, 선교사 개인이 비전을 품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선교계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중국 선교에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중국 가정교회의 신학적 필요를 보고, 비전을 품고 우후죽순 신학교 사역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개인 신학교 수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았던 것과 같은 시행착오나 과오를 답습하지 말고, 한국 선교계 전체나 베트남 한인 선교사회 전체가 어렵다면, 양질의 훈련 역량을 가진 선교단체들 차원에서라도 보다 체계적으로 이 사역에 접근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 사역 영역 역시 한국 선교가 계속 장악하고, 영향력 아래 두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선교사는 이 사역의 시작부터 선교사 훈련의 필요를 느낀 베트남 교회를 중심으로 이사 그룹을 조직해서 점차적으로 이들이 이 훈련에 대해 이해하고, 자체적으로 운영해 나갈 수 있도록 구조화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매우 바람직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주목한 핵심이 무엇인가? 베트남 교회가 할 수 없는 것을 우리가 동역하되, 그것도 장차 베트남 교회가 자력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서 결국 베트남 스스로 세계 선교 사역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선교 베트남’을 이루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인 선교사, 한국 선교는 처음부터 이를 견지해야 하며, 베트남 교회가 베트남 상황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잘 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선교 베트남’이라는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비전이고,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때가 이르러야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비단 이 사역 영역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성장하는 베트남 교회의 시의적 필요가 있는 사역 영역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베트남 교회에 합당하고, 그것을 발견하게 하신다면, 누구든지 어떻게든 그것에 도전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베트남 선교현장 리서치를 통해 발견하게 하신 통찰과 답이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에 이 글을 읽을 여러분에게 나누고 도전하는 것으로 본인의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나가며

C&MA의 첫 베트남 선교사 파송 전인 1893년, 데이비드 르 나세르(David LeLacheur) 목사가 사이공을 방문하고 싱가폴에서 심슨 목사를 만나, “안남(An Nam)은 지금 열려 있다.”라고 보고했고, 당시는 베트남을 식민통치 중이던 로마 카톨릭 국가 프랑스에 의해 개신교 선교는 어려운 시점이었기 때문에 심슨 목사는 베트남 외부 중국 광서 지방에 베트남 선교 거점을 새우고 베트남 선교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나서야 첫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었으나, 그 시작은 르 나세르 목사의 “안남은 지금 열려 있다.”라는 믿음과 비전의 보고에서 비롯되었다18.파해 나가야 하는 것이니, 베트남의 지금 현실 속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무엇이 불가능하지만, 돌파해야 하는지 기도와 사색으로 가늠하고 통찰하는 것은 선교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베트남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하여 선교사들의 기존 사역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한편 감사한 일일 것이다. 선교사는 늘 가변적인 상황 속에 우리가 아닌 선교지의 필요에 민감하게 할 일을 찾아 함께 변모해애 하는 존재인 만큼 현재 우리에게 보이시는 베트남 교회가 필요로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합당한 사역을 찾아 다음 시대의 디딤돌을 하나 더 놓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고로 아직 미미하지만, 선교 베트남의 조각 구름은 이미 떠올랐다. 조각 구름을 보고 곧장 엘리야에게 보고했던 사환처럼 우리는 베트남 현장에서, 또 그 비전과 믿음을 가지고 베트남 교회를 동원하고, 훈련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통해 선교 베트남의 조각 구름을 먼저 보았다. 이제 그것을 한국 교회와 선교계에 전한다. ‘지금은 선교 베트남의 시대’라고. (CAS 31호에 이어서)   글| 강호세아(SIReNer)

위 자료의 저작권은 UPMA에 있으므로, 인용하여 사용하실 경우 반드시 출처를 남겨 주십시오. 

  1. 베트남에 관한 선행 스터디를 하면서,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북부와 남부가 다르고, 심지어 베트남 최대 교단인 복음성회 교단 총회도 남과 북이 나뉘어져 있고, 우리 한인 선교사들의 선교사 연합회도 남과 북이 나뉘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를 보면서 통일된 나라이지만, 사실은 남북국 상태인 것 같다고 하여, ‘통일된 남북국’ 체제라고 생각했었다
  2. 복수의 베트남 현장 선교사들에 의해 확인되었지만, 구체적인 출처를 밝히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항간에서는 ‘한국 선교사 무용론’까지 회자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3. 북부 하노이에 최근 한인 신학교수가 한 분 초빙되어 왔다는 전언이 있었다. 물론 선교사 파송을 받아 갔을 것 같지만, 이 경우는 통역을 통해서 강의가 진행된다고 한다.
  4. 잠재적 혹은 현재적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많아서 거의 경쟁이 없는 사업 수익과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경우를 의미하는 시장경제 용어.
  5. 블루오션’과 반대로 이제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져서 사업 성공을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감수해야 하는 시장을 의미하는 시장경제 용어.
  6. 베트남은 전체의 85%를 차지하는 주류 종족인 비엣(낀)족을 포함해 54개 종족이 있고, 그 중 비엣(낀) 족을 포함한 40개 종족이 복음화율 2% 미만의 미전도종족으로 남아 있다.(Joshua Project 기준)
  7. 외부의 재정적 의존없이 교회가 운영되고, 사역자를 발굴해서 세울 수 있다는 조건에서 다소 애매한 부분은 보는 관점에 따라 있을 수 있다.
  8. 이선재, “베트남 가정교회 역사와 선교전략(UGOC를 중심으로)”(선교학 석사 학위논문,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대학원, 2016), 10-11.에서 Lê Hoàng Phu, “Lịch Sử Hội Thánh Tin Lành Việt Nam(1911-1965)” 104-105. 내용을 재인용
  9. 이선재, 14-15.에서 Lê Hoàng Phu, 189; 198. 내용을 재인용
  10. 이선재, 21.
  11. 과거 1990년대 시작되었던 한국 교회의 선교적 부흥을 상징하는 ‘선교 한국’이라는 표현을 베트남에 적용한, 베트남 교회가 선교의 주체로서 일어나는 선교적 부흥을 의미한다.
  12. 이OO 선교사는 WEC 선교사로서 뉴질랜드에서 10년 간 구약을 강의했고, 캄보디아에서 3년, 베트남에서 5년 이상 사역하고 있고, 현재 남부 모처에서 베트남 현지 선교 헌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훈련 프로그램을 섬기고 있다. 필자와는 2024년 8월 29일 ‘선교 베트남’, ‘베트남 교회 선교 동원’ 이슈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13. 베트남의 주종족인 비엣(낀)족은 전체의 85%에 달하는 약 8천만 명으로, 복음화율은 1.4%의 미전도종족으로 남아 있다. 오히려 소수종족들 가운데 복음화된 종족들이 많이 있고, 많은 경우 30% 이상의 복음화율을 달성한 종족들도 있다. 그러나 절대적인 인구수를 따지면, 베트남 전체 복음화율이 1.23%로 성도수는 약 120만 명인데, 주종족 비엣(낀)족 성도수는 약 115만 명 수준이다. 즉 전체 베트남 교회를 놓고 보았을 때, 역시 주류는 비엣(낀)족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베트남 전역에 흩어져 있는데 반해, 소수종족 교회는 적은 소수종족 집단 안에 집약적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안에서 최근 열정적인 신앙, 선교 운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14. 1994년 한 뉴질랜드 선교사에 의해 고안된 미전도종족 복음전도 훈련으로서,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13개 토착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이 전해지면서 훈련의 효용성이 알려졌으며, 현재 106개 국가에서 30여개 언어로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도 2009년 도입 이래 현재 8개 교단, 21개 선교단체, 50여 교회, 4000여 명이 훈련에 참여했다.
  15. 영어로 진행되는 언어 및 선교기초 훈련으로, 한국 여수의 MTI 훈련을 벤치마킹한 훈련이라고 한다.
  16. 베트남 교회의 이와 같은 환영하는 반응가 지속적인 요청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이 순수하지 못한 생각일 수 있으나) 또 한편 이것이 베트남 교회에서 개인이 부적절한 다른 목적(개인의 영어 훈련, 해외 이주 기회 등)으로 전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감도 들었다.
  17. 이 선교사가 구어체로 전한 말을 필자가 어의를 살리면서 조금 다듬어 인용함
  18. 이선재, 9.

디지털 저널
C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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